고전에 관한 정의 가운데 진부하지만 꽤나 유명해진 이야기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라는 말입니다. 이 유명한 정의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작가 이탈로 칼비노가 쓴 『왜 고전을 읽는가』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대표작이자 세계 최고의 장편소설로 불리는 『전쟁과 평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 작품만큼은 칼비노가 말한 고전의 첫 번째 정의에서 살짝 벗어나는 작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전쟁과 평화』는 평생에 한 번 읽기에도 분명 벅찬 작품인데, 단지 이름난 고전이기 때문에 이걸 '지금 다시 읽고 있다'고 가볍게 말할 사람은 그리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테니 말입니다.




이 유명한 작품을 2016년에서야 겨우 한 번 읽었던 저로서는 이 방대한 작품의 엄청난 분량에 놀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몽테뉴 수상록』,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과 같은 두껍기로 소문난 대작들과 함께 놓고 작품의 길이를 서로 비교해보기까지 했더랬습니다. 과연 어마어마했습니다. 이 작품의 길이는 대략 『돈키호테』의 1.3배, 『안나 카레니나』의 1.6배, 단테의 『신곡』의 1.8배,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3.0배 정도였으니까요.


이토록 방대한 작품을 내 평생 다시 읽을 날이 과연 있기나 할까 싶은 예감 때문에 『전쟁과 평화』를 처음으로 읽는 동안에도 이 작품에 담긴 빛나는 문장들을 적잖이 필사해 놓았는데, 정말 뜻밖에도(!) 이 작품을 다시 읽을 수밖에 없는 참으로 고약한 기회가 금년 봄에 찾아왔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한때 구소련 연방의 종주국이자 우크라이나에게는 큰 집이나 다름없던 러시아가 다짜고짜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간 전쟁이었습니다. 지금이 도대체 어떤 시절인데? 전세계인이 유튜브 생중계로 밤낮없이 빤히 쳐다보는데도 이토록 볼썽사나운 전쟁이 터진단 말인가? 누군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수십 만 군대가 하루 아침에 탱크를 몰고 이웃나라 영토를 마구 짓밟아도 좋단 말인가? 지금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연유로?


전쟁의 발발 원인은 놀랍게도(!) 러시아의 지도자 푸틴이 스스로를 21세기판 '러시아 제국의 차르'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무슨 기묘한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싶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10년 전인 1812년에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이끄는 60만 대군에 맞서 러시아 국민들이 온 힘을 다해 적들을 물리쳤던 영광스런 '조국전쟁'의 기억은 벌써 말끔히 잊어버렸단 말인가? 


모스크바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


조국전쟁 당시 수도 모스크바까지도 통째로 적군에게 내어주고 끝없이 도망치면서도 언젠가는 기어이 자신들의 영토를 되찾을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던 그 위대한 러시아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고, 제국주의 군대에 무참하게 침략당했던 러시아가 도리어 무람한 침략자로 돌변해 나폴레옹의 군대를 흉내낸단 말인가?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1812년 서곡의 영광과 찬미는 하루 아침에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져도 좋다는 말인가! 


6년 만에 다시 읽는 『전쟁과 평화』는 매일 긴박하게 전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 때문에라도 결코 허투루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비롯, 2014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크름 반도 등은 마침 『전쟁과 평화』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지명이어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이 작품을 쓴 톨스토이는 젊어서 한 때 포병 장교로 근무하면서 크름 반도의 군사적 요충지인 세바스토폴에서 터키와의 격렬한 전투를 치른 경험까지 있던 터였습니다. 어쨌든 하루하루 우크라이나의 여러 도시에서 긴박하게 진행되는 살벌한 전쟁 상황을 지켜보면서 다시 읽는 『전쟁과 평화』는 그저 평화로운 시대에 특별한 긴장감 없이 읽었던 『전쟁과 평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바로 이번 전쟁 때문에 수많은 도시가 폐허로 변하고 숱한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는 참극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모습



사실 인류의 역사를 장식했던 대전쟁들은 수십 만의 군대가 막대한 자원을 총동원하여 사생결단으로 서로 맞붙어 싸운 만큼 인류의 삶에 오래도록 파괴적인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지만, 그토록 끔찍한 전쟁의 결과에 비해 그 전쟁의 원인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의 헛된 욕망에 불과한 경우도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고대로부터 다양한 전쟁의 원인들을 고찰했던 역사가나 철학자들은 바로 그 때문에 한결같이 비슷한 장탄식을 쏟아냈습니다.


"그토록 사소한 사건 하나가 그토록 엄청난 대사건으로 비화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고대의 여러 이름난 전쟁과 인물들의 이야기에 유난히 탐닉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이같은 전쟁의 고약한 특성을 특유의 입심으로 다음과 같이 재치있게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
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


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질투 등, 수다스런 마나님 둘이 서로 할퀴며 대들게 할 만큼 성나게 할 것도 못 되는 원인들, 이것이 전쟁의 핵심이며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런 전쟁을 일으킨 주요한 인물이며, 동기가 된 자들의 말이면 바로 믿어 주어야 할 일인가?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영화 <트로이>(2004)


1812년에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60만 대군에 맞서 싸웠던 조국전쟁 역시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나폴레옹의 권력욕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나폴레옹은 자신이 벌인 전쟁을 스스로 숭고하다고 여겼지만, 톨스토이가 보기에 나폴레옹의 그런 인식이야말로 자신의 무가치함과 나약함을 인정하는 데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숭고에서 (그는 자기 내부에 무슨 숭고한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스개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발짝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온 세계가 50년에 걸쳐서 '숭고! 위대! 위대한 나폴레옹! 숭고와 우스개 사이는 단 한 발짝이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선악의 기준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은 다만 자신의 무가치와 한없이 비소(卑小)함을 인정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 동서문화사, 『전쟁과 평화』



모스크바에서 퇴각하는 나폴레옹


인류의 황제가 될 뻔한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를 점령했던 그해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서둘러 도망친 끝에,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니우스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때 그가 말했던 '숭고와 우스개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발짝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은 톨스토이뿐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자신의 범죄가 발각될까 극도의 두려움에 떨면서도 잠시나마 나폴레옹을 떠올리고 나서 자신의 죄는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하지요.


 

<아니, 그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진짜 《거인》,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는 사람은 툴롱을 호령하고 파리에서 대학살극을 벌이고, 이집트에서 군대를 《잃고》, 모스끄바로의 진군에서 50만의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빌니우스에서는 그 일을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그런데도 죽은 후에는 그를 우상으로 떠받들지 않았는가. 즉 《모든 것》이 허용된 것이다. 아니, 아마도 이런 사람의 몸은 살로 되어 있지 않고 청동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398쪽) - 열린책들, 『죄와 벌』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


일생 동안 러시아 민중들의 삶에 대해 늘 각별한 애정과 연민을 지녔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으로 빚어진 조국전쟁(1812년 전쟁)의 대서사를 외면할 리는 결코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마치 전 인류를 구원할 듯이 파죽지세로 전 유럽을 휩쓴 끝에 마침내 대군을 이끌고 모스크바 원정까지 감행했지만, 사실 러시아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은 한낱 전쟁 기술의 천재가 벌인 무모한 침략 전쟁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민중이야말로 역사의 진정한 주체'라는 톨스토이식 역사관이 녹아든 작품이 바로 『전쟁과 평화』였습니다.


톨스토이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빛나는 예술작품으로 완성하기까지는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젊어서 한 때 포병 장교로 복무하면서 크림전쟁(1853∼1856) 당시 세바스토폴 전투에 직접 참전한 경험도 있었고, 단편 「12월의 세바스토폴」, 「1855년 8월의 세바스토폴」등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흑해 최대의 항구 도시 세바스토폴은 2014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름 반도를 강제로 빼앗을 때까지 숱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고대 그리스 식민지 시절부터 따지자면 무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배권 쟁탈이 벌어진 흑해의 전략적인 요충지였습니다.


세바스토폴



톨스토이는 크림 전쟁이 끝난 1856년, 5년 동안의 포병장교 생활을 마치고 퇴역하면서 크름 반도를 떠났는데, 바로 그해에 그는 유형지에서 막 러시아로 돌아오고 있던 어느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장편소설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 작품에 대한 구상은 『전쟁과 평화』의 창작이 본격화된 1863년까지도 길게 이어졌는데, 따지고 보면 데카브리스트 혁명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 또한 1812년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1825)


일명 '12월 당원'으로도 불리는 데카브리스트들은 1812년 조국 전쟁때 나폴레옹을 추격하여 파리까지 뒤쫒아간 러시아 귀족 출신의 청년 장교들이 서유럽 자유 사상을 접하면서 태동하기 시작했으며, 1816년부터 혁명적 결사를 조직하여 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활동을 계속했는데, 1825년 알렉산드르 황제가 갑작스레 사망한 뒤 반동 보수 성향의 둘째 동생 니콜라이 1세가 후계를 잇게 되자 황제 즉위식이 열리던 당일 무장 봉기를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은 곧바로 황제의 군대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되었고, 전도유망했던 명문가 귀족 청년들 중심의 데카브리스트들은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 대부분 그곳에서 죽었으며, 이 비극적인 사건은 푸슈킨을 비롯한 러시아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오래도록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지요.


"1856년에 나는 가족과 함께 러시아로 돌아오고 있던 한 데카브리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중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현재에서 내 주인공의 오해와 불행의 시기인 1825년으로 옮아갔고, 시작했던 작업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의 젊은 시절로 옮아갈 필요가 있었고, 그의 젊은 시절은 1812년의 러시아, 그 영광의 시대와 일치했다 ……"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유배지에서 돌아온 어느 혁명가의 귀가 모습)


1869년 12월에야 최종적으로 완성된 『전쟁과 평화』는 끝끝내 데카브리스트를 주인공으로 삼은 1856년의 작품 구상과는 멀어지고 마는데, 1812년 전쟁을 다루기 위해서는 또다시 그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 시기인 1805년부터 본격화된 프랑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등이 각축을 벌였던 여러 전쟁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쟁과 평화』는 1805년부타 시작하여 1812년 조국 전쟁에 이르는 일련의 기나긴 과정을 시간적 배경으로 다루는데, 1825년에 일어난 데카브리스트 혁명까지 한 작품에 모두 담아내기에는 서사의 범위가 너무 방대했기 때문에 대문호 톨스토이조차도 엄두가 나지 않았던 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구상 단계에서부터 이처럼 커다란 변화를 겪었지만 집필 과정에서도 끊임없는 수정 보완작업을 거친 것으로 유명한데, 작가 스스로도 이런 다짐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주요한 것을 쓰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수정을 지겨워하지 말 것이며, 똑같은 것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고쳐 쓰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야스나야 폴랴나 영지



톨스토이가 7년 동안이나 심혈을 기울여 손질한 끝에 탄생한 작품은 어느 장면이든 예외없이 현실 세계를 그대로 묘사한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드는데, 톨스토이 평전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소설을 읽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문 너머로 현실 세계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고, 막심 고리키는 그의 형상들은 지극히 조형적이고 "거의 육체적으로 느껴져서" 그것들을 "만지려고"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뻗을 만큼 감각적이고 실제로 우리를 흥분시킨다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얘기들은 랄프 왈도 에머슨이 『몽테뉴 수상록』을 두고 표현했던 말과도 쏙 빼닮았습니다.


"성실성과 정수는 그 사람이 쓴 문장에 나타난다. 여기 실린 문장에서 단어를 잘라 내면 피가 쏟아질 것이다. 문장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섬세한 세부 묘사와 장편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사상적 개념 모두에 자신의 생활 경험을 생생하게 녹여냈는데, 포병장교로 복무하는 동안 캅카스와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인상들을 꼼꼼히 기록해 놓은 일기장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집필하면서 톨스토이는 인물 묘사와 세부적인 심리 묘사, 플롯과 관련된 상황을 창조하기 위해 1860년대와 1850년대뿐만 아니라 1840년대에 쓴 일기까지 뒤적일 정도였습니다.


포병장교 시절의 톨스토이(1854)



톨스토이는 이 장편소설의 집필을 위해 역사적 저작과 회고록 등의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데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대함에서 비롯된 위업으로 보는 것을 속물적인 우쭐거림으로 보았고, 다른 사람들이 위대함을 발견한 행위에서 오히려 그의 약점을 발견하고자 애쓸 만큼 언제나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데 힘썼습니다.


예를 들면 보로디노 전투의 생생한 묘사를 위해 톨스토이는 장군용 지도를 가지고 이틀간이나 말을 바꿔타고 전선을 누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생존한 어느 전쟁용사의 세부적인 경험담을 직접 들으려고 수 킬로미터나 기차를 타고 그를 찾아간다. 그는 모든 서적을 독파하고, 도서관들의 구석구석을 이 잡듯 뒤지고, 심지어는 귀족이나 문헌담당자에게 실종된 문서나 사적인 서한들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데, 그것은 오직 그로부터 현실의 본질을 캐내고자 함이다. 이렇게 여러 해를 거듭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소한 관찰로부터 미소한 양의 정수가 수은덩이처럼 옹골차게 모여지고 또 그것은 점차 유연하게 상호 침투됨으로써, 둥그렇고 순수하며 완전한 형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64쪽) - 슈테판 츠바이크, 『톨스토이를 쓰다』


보로디노 전투, 1812년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이 특별한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스로 '저자의 견해'를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이것은 장편소설도 아니고, 서사시도 아니고, 역사적 연대기는 더더욱 아니다." 아니, 세계 최고의 장편소설로 널리 인정받는 이 소설이 장편소설이 아니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전쟁과 평화』는 실제로 여느 장편소설과는 사뭇 다른 형식과 구성을 지닌 매우 독특한 작품입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가공의 등장인물들 간에 복잡하게 얽힌 개인적인 운명들이 1812년 조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면서 어떤 시련들을 겪으며 새로운 변화와 운명들을 맞게 되는가를 그리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1812년 조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대사건의 흐름을 좌지우지했던 나폴레옹을 비롯한 다양한 실존 인물들의 움직임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특히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보로디노 전투 등 당대 유럽의 수십 만 대군이 격렬하게 싸웠던 유명한 전투들은 여느 역사가의 서술 못지 않게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거대한 건조물이며 얼마나 놀라운 정연함인가! 어떤 문학도 우리에게 그와 비슷한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한다. …… 국가 및 개인 생활의 모든 영역, 역사, 전쟁, 땅 위에 있는 온갖 공포, 모든 열정, 신생아의 고고성에서부터 죽어가는 노인의 마지막 감정 폭발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활의 모든 순간, 동료에게서 지폐를 훔친 도둑의 감정에서부터 영웅주의의 고상한 움직임, 그리고 내적 깨달음에 대한 생각들에 이르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기쁨과 슬픔,  이 모든 것이 이 그림 속에 구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느 한 인물도 다른 인물을 가리지 않고, 어느 장면, 한 인상이 다른 장면과 인상을 방해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적재적소에 배치되고, 모든 것이 명확하고, 모든 것이 독립되어 있으며, 모든 것이 서로서로 그리고 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 N. N. 스트라호프(1828∼1896)



작품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는 이 정도로 그치고, 이제부터는 작품 속에 담긴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보지요.


소설이 시작되면 1805년 어느 여름날 러시아의 군사적, 정치적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당대 최상위급 인물들이 황태후를 모시는 어떤 관리의 저택으로 속속 모여드는데, 그날 저녁 모임에서 귀족들이 주고받는 나폴레옹 황제의 움직임을 비롯한 '최신 국제 정세에 관한 다양한 대화'들은 민중들의 삶과 괴리된 당대 러시아 귀족 사회의 위태로운 일면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위태로운 역사적 시기에 러시아 미래의 희망인 '새로운 젊은 세대'가 바야흐로 봄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으니, 그 무대는 바로 로스토프가의 영지였습니다. 거기에는 이 작품의 여주인공인 열세 살의 나타샤, 앳된 장교 보리스, 대학생 니콜라이, 열다섯 살의 소냐, 어린 막내 페챠가 온갖 자유분방함과 꾸밈 없는 활발함으로 매혹적인 장면들을 마음껏 발산합니다. 장난스러운 아이들의 세계는 온갖 권력다툼의 총화로 나타나는 전쟁과 정확히 대비되는 '평화로운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동심, 따스함, 발랄함, 명쾌함은 독자들에게 즉각적이면서도 더 바랄 게 없을 만큼의 행복감을 고조시킵니다.


로스토프 가 인물들


한편, 로스토프가에 뚜렷이 대비되는 또다른 주인공의 집안은 볼콘스키 공작 집안입니다. 한때 황제의 총애를 받았으며 육군 원수까지 지낸 늙은 공작에겐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근엄한 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은 젊은 안드레이 공작과 귀여운 젊은 공작부인, 여동생 마리야 등이 엄격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함께 생활합니다. 안드레이 공작의 친구이자 병든 베주호프 백작의 사생아인 피예르는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가 이제 막 모스크바로 돌아온 순박한 청년인데, 러시아의 대부호였던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일약 모스크바에서 가장 핫한 신랑감으로 떠오르지만, 그는 뚜렷한 직업도 없는 데다 몸가짐조차 상류사회의 다듬어진 예절에 어긋나기 일쑤였고, 세상물정도 모르고 그저 물려받은 재산만 많은 무람한 청년일 뿐이었습니다.


볼콘스키 가 인물들



이들 세 집안과는 또다른 분위기의 귀족집안은 바실리 쿠라긴 공작 집안입니다. 바실리 공작은 몹시 출세지향적인 성격이어서 화려한 미모를 지닌 외동딸 옐렌을 피예르와 결혼시키며, 차남인 아나톨은 불량배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며 사고나 저지르던 끝에 안드레이 공작과 약혼한 나타샤를 유혹해 야반도주까지 시도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1805년의 아우스터리츠 전투때부터 차례대로 군에 입대하여 여러 전장에 배속되어  나름대로 군대의 규율과 전투 경험들을 쌓게 되는데, 젊은 안드레이 공작은 러시아군 총사령관 쿠투조프의 부관으로, 니콜라이는 견습사관에서 시작하여 기병장교로, 피예르는 전쟁 막바지에 뒤늦게 민병대의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프랑스 군대의 포로로 끌려가며, 로스토프가의 어린 막내 페챠까지도 세상물정 모르는 10대의 어린 나이에 군대에 자원입대하지만 막상 전쟁터에서는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한 채 전사하고 맙니다. 


수많은 전쟁 장면에서 톨스토이는 서로 다른 계층과 다양한 근무 환경에 놓인 등장인물들을 모두 전쟁에 참여시키며 그들의 행동들을 서로 긴밀히 연결시켜 민족적 이해로 단합시키는데, 최초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쇤그라벤과 아우스터리츠 전투 장면에서 티모힌의 중대, 투신의 보병 중대, 바그라티온 총사령관의 임무 수행 모습들은 그로부터 7년 후에 벌어진 1812년의 보로디노 대전투에 참전했던 러시아 민중들의 행동에서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러시아군 총사령관 쿠투조프



톨스토이가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자 애쓴 대목들은 대규모 군대들이 접촉하는 전선 보다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 속에서 인물들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독특한 개성들을 통해 최대한으로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유럽 세 나라의 황제가 동시에 참전했던 아우스터리츠 대전투에서 전투 경험이 전무했던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엉겁결에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지는데 바로 그때 안드레이 공작이 들판에 드러누워 쳐다본 파란 하늘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전쟁과 평화 사이의 거리'가 얼마만큼 아득한가를 각인시키는 동시에, 작가 자신의 실제 전투 경험이 그대로 담긴 듯해서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감동적입니다.


‘뭐야, 이건? 나는 쓰러져 있는 것인가?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뒤로 쓰러졌다. ……  머리 위에는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ㅡ개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없이 드높고, 그 아래를 회색 구름이 조용히 흐르고 있는 높은 하늘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하고 평온하고 엄숙할까. 내가 달리고 있었던 때와 판이하다.‘ 안드레이는 생각했다. ‘우리들이 달리고 외치고 서로 잡고 싸운 것과는 전혀 다르다ㅡ구름이 이 드높고 끝없는 하늘을 흘러가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왜 나는 전에 이 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것을 알아차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든 것은 공허다. 이 끝없는 하늘 이외에는 모든 것이 거짓이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아니, 이 하늘 외에는 그것조차도 없다. 정적과 평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고맙게도!‘(384-385쪽)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하나둘씩 각자 자신만의 '고난의 여정'을 겪게 되지요. 남주인공 격인 젊은 부호 피예르 베주호프 백작은 옐렌이라는 외모만 번지르르한 사치스런 여성과 결혼하면서부터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피예르와 친구 사이인 안드레이 공작은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고통을 겪습니다. 로스토프가의 장남 니콜라이는 무모한 도박에 빠져 기울어가는 집안 형편을 더욱 궁지에 빠트리게 되고 둘째딸 나타샤는 자신의 사랑을 보리스에서 피예르로, 또다시 바람둥이 아나톨과 안드레이 공작에게로 거듭 옮아가는 과정 속에서 고통을 겪지요. 


한편, 『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 나타샤는 타고난 청순하고 아리따운 외모와 특유의 밝고 활기찬 성격 때문에 로스토프가의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매력을 발산하는데, 그녀가 얼마만큼 쾌활하고 사랑스러웠는지는 1956년에 만든 불후의 명작 영화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오드리 햅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런 행동으로 언제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독차지한 데다가, 그녀 스스로도 주위 사람들을 언제나 기분좋게 만드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생기발랄하고 사랑스런 그녀도 젊은 아내와 사별한 안드레이 공작에게 반해 그와 약혼하면서 한순간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맙니다. 건달이나 다름없는 바람둥이의 유혹에 빠져 안드레이 공작과 파혼에 이르고, 게다가 그 남자와 야반도주까지 시도한 끝에 음독자살을 기도하는 등 온갖 시련과 극심한 고통을 겪은 나타샤는 예전의 발랄함과 건강과 미소까지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파혼 후 극심한 고통을 겪는 나타샤


저는 『전쟁과 평화』를 맨 처음으로 읽을 때는 그녀가 그렇게나 자주 사랑하는 남자를 쉽게 바꿔가며 방황한 끝에 최종적으로 피예르와 결혼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도 벅찬 감동까진 느끼지 못했는데, 두 주인공 사이의 행복한 결말을 미리 다 알고 나서 다시 찬찬히 읽는 동안에는 처음 읽을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의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나타샤와 피예르 사이에 일찍부터 움튼 사랑은 처음부터 몹시 특별했으며, 이 두사람을 둘러싼 여러 등장인물들이 차츰 성장하면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와중에도 오로지 그들 두 사람 사이에 움튼 사랑의 감정만큼은 언제나 한결같았으며, 나타샤가 극도로 방황하는 동안에도, 가령 안드레이 공작과의 약혼과 파혼뿐 아니라 아나톨에게 매혹되어 야반도주를 도모했을 때조차도 더욱 깊어만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재회하는 나타샤와 피예르


『전쟁과 평화』는 가공의 등장인물들 사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만 다루는 게 아니라 1812년 전쟁의 발생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해서도 몹시 진지하게 고찰하는데, 그토록 대규모의 군대가 충돌한 전쟁이 그저 몇몇 황제들의 권력욕으로만 설명될 수는 없으며, 당대 민중들의 온갖 의지가 한데 모여진 끝에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필연성까지도 성찰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과연 인류 역사에 얼마만큼 개입될 여지가 있는가 하는 철학의 근본 문제까지도 파고듭니다. 톨스토이의 몇몇 다른 작품에도 그러한 경향이 있듯이, 『전쟁과 평화』에도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영향이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데, 쇼펜하우어 특유의 '의지의 형이상학'을 그대로 베낀 듯한 다음 문장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쇼펜하우어



역사의 노예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전 인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도구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행하여진 행위는 되돌아오지 않고, 인간의 행위는 시간 속에서 다른 인간들의 무수한 행위와 결부되어 역사적인 뜻을 얻는다. 어느 인간이 사회의 상하관계에서 높은 위치에 있으면 있을수록,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더욱 큰 권력을 가지게 되고, 그 일거일동이 미리 결정되고 필연적이라는 것이 더욱 명백해진다.


황제는 바로 역사의 노예인 것이다. (841-842쪽)



『전쟁과 평화』는 전4권, 15부 361장, 에필로그 2부 28장으로 구성되고, 559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실로 웅대한 장편 역사소설입니다.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여러 황제들과 최고사령관뿐 아니라 이름조차 생소한 까자크의 농노들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온갖 인물들이 러시아뿐 아니라 흑해의 크름 반도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광활한 무대를 배경으로 격동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겪게 되는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들에 대한 묘사와 서사 자체도 놀랍지만, 작가 스스로도 온갖 사건들의 틈바구니 속으로 뛰어들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길게 서술해 놓은 '역사 비판'과 '전쟁 철학' 등이 한데 녹아 있어서 몹시 특별한 느낌을 줍니다.


한편, 전쟁이 제아무리 치열하게 벌어지는 와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터에서 비켜나 있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 속엔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 이야기 말고도 당대 러시아의 명문 귀족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의 또다른 한 축을 이룹니다. 각양각색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즐거움과 행복, 좌절과 불행, 사랑과 배신, 소박과 탐욕을 작가는 놀랍도록 섬세하고도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그러한 점들이 이 소설을 전쟁소설만이 아니라 가정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나 심지어 성장소설처럼 읽히게 만듭니다.


2022년 2월에 러시아가 벌인 무모하기 짝이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새 열 달째 이어지고 있지만 종전의 기미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듯합니다. 어느덧 끝없는 소모전으로 변한 참혹한 전쟁이 어서 빨리 마무리되고,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땅에도 평화가 다시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것으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작품 소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22-12-28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님의 페이퍼를 보니 독서욕구가 뿜뿜합니다. 제가 지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벽돌깨기를 하고 있는데 현재 추세로 보면 아마도 2034년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전쟁과 평화를 읽게 되겠습니다. ㅋㅋㅋㅋ 2034년!!! ㅋㅋㅋㅋ

oren 2022-12-29 00:41   좋아요 0 | URL
2034년이라면 <멋진 신세계>의 시간적 배경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2034년이 닥치면 무슨 엄청난 미래 같지는 않을 듯한 느낌도 듭니다. 아무쪼록 부지런히 달려서 <전쟁과 평화>와 멋지게 조우하시길 바랄께요.^^ 2034년도 좋고, 물론 그 이전이나 그 이후로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