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선택의 산물
주택에 지출된 재고
정치,경제,사회,법률,역사,철학 등을 포괄하는 엄청난 넓이와 깊이를 지닌 경제학 고전의 명저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선조를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선조들이 시도한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어떤 실패를 했든 간에 "나의 아들아, 괴로워하지 마라. 네가 해내지 못한 일로 누가 너를 탓하겠느냐?"57


주석

57. 인도 경전 『비슈누 푸라나Vishnu Purana』에서 인용. "나의 아들아, 괴로워하지 마라. 네가 과거에 행하지 않는 일로 누가 너를 탓하고, 네가 해내지 못한 일로 누가 너를 탓하겠느냐?" 푸라나는 힌두교 신화에 대해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모든 경전을 가리킨다. 푸라나는 신에게 영감을 받아 쓰인 성전聖典으로 여겨지며, 각 신을 찬양하는 성전이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종교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세속적인 지식까지 망라한 백과전서이기도 하다. 중요한 푸라나는 18종이며, 『월든』의 장수章數와 일치한다.




총 18장으로 이루어진 『월든』의 장수章數가 힌두교 경전인 푸라나의 숫자와 같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18개의 장들 가운데 대다수의 장들은 제목부터 소박하기 그지없다. 「콩밭」, 「마을」, 「호수」, 「난방」, 「겨울 동물들」, 「겨울의 호수」, 「봄」 등등이 그렇다.

그러나 몇몇 장들은 제목부터 좀 묵직하다. 「경제」,「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독서」, 「고독」, 「더 높은 법칙들」등등.

그런데 소로우가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 오랫동안 퇴고를 거듭하면서도(9년 동안에 7번이나 고쳐 썼다.) 유독 「경제」를 맨 앞장에 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18개의 장들 가운데 유난히 많은 분량을「경제」에 할애한 까닭은 무엇일까?(『주석달린 월든』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이 책은 본문 내용이 415쪽이고, 「경제」가 97쪽으로 약 1/4을 차지한다. 빼곡하게 달린 주석 또한 총 1,640개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경제」에 정확히 400개가 달렸다.)

이제 와서 찬찬히 생각해 보니 소로우의 깊은 뜻을 조금은 알수도 있겠다 싶다. 그는 '현실과 멀리 동떨어진 이상'만을 추구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언제나 '단단한 토대'를 강조했던 사람이다. 다만 그가 강조한 '경제', 즉 소박한 삶에 필요한 경제, 진정한 여가를 즐기는 삶을 위한 경제를 우리가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현실과 너무 맞지 않는다고 지레짐작할 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지나치게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로 서둘러 결론내리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경제」에서 다루는 여러 주제들 가운데 일부인 '옷'과 '집'과 '빵'만 하더라도 그에겐 할 말이 너무 많아 보인다. 의식주衣食住에 대한 그의 기나긴 안목과 날카로운 통찰은 당장 '집값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오늘날의 경제'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주는 듯하다.


인류의 유아기에 한 용맹무쌍한 사람이 피신처를 찾아 바위 틈새로 기어들어갔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모든 아이는 세상을 다시 시작한다.153 아이들은 비가 내리고 추운 날에도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고 목마놀이를 한다. 그런 놀이를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완만하게 비탈진 바위나 동굴 입구를 보고 흥미를 느끼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가장 원시적이었던 조상이 그 부분에 대해 품었던 자연스러운 열망이 우리 안에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동굴에서부터 시작해 종려나무 잎, 나무껍질과 나뭇가지, 힘들게 짜서 펼친 아마포, 풀과 짚, 판자와 널빤지, 돌과 타일로 지붕을 덮는 단계로 발전해 나갔다. 마침내 우리는 야외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제 우리 삶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 좁은 울타리 내에서 이루어진다. 화덕에서 밭까지의 거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우리가 자신과 천체天體 사이에 어떤 장벽도 없이 더 많은 낮과 밤을 보낼 수 있다면, 또 시인이 지붕 아래에서 시를 읊조리지 않고 성자가 지붕 아래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다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새들은 동굴 안에서는 노래하지 않고, 비둘기도 비둘기장 안에서는 순결을 지키지 않는다.(67쪽)


주석

153. ······ 어린 시절과 지혜의 관련성은 소로의 「아울루스 페르시우스 플라쿠스」에서 찾을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의 삶은 무척 즉흥적이다. 그가 모든 시간을 포괄하는 영원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는 매순간 어린아이며, 지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에서 불쑥 내던지는 원대한 생각은 어른이 된다고 해서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의 생각은 그 자체로 빛나기 때문에 구름에서 번갯불을 끌어내릴 필요가 없다." 소로는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의 마지막 단락에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날만큼 지혜롭지 못한 걸 항상 한탄해왔다."라고 썼다.



비록 소로우는 뚜렷한 직업조차 없는 무능한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이 책의 주석에 따르면 "소로는 하버드 대학교의 관리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는 교사-개인 가정교사, 측량사-정원사, 농부-페인트공, 목수, 벽돌공, 일용 노동자, 연필 제조공, 사포 제조공, 작가, 때로는 삼류시인입니다"라고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다.") 그는 누구보다 경제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고 경제를 철학처럼 중요시한 인물이었다.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자꾸 그를 새롭게 쳐다보게 된다.


 

경제162는 가볍게 다루어지는 경향을 띠지만, 가볍게 결정해서는 안 될 문제다.(68쪽)


주석

162. 경제economy의 어원은 그리스어 'oikonomia'로 원래 가정이나 가사의 관리를 뜻했다. 소로는 이 장에 '경제'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이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 '공동체가 부를 창출하는 방법 혹은 검약한 삶'까지 의도했다. 또한 그가 흔히 그랬듯이 어원적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 에머슨은 「개혁적인 사람」에서 "원대한 목표를 추구하는 경제, 따라서 소박한 취향으로 검약한 삶을 추구하고, 자유와 사랑과 헌신으로 행해지는 경제는 고결하고 고상한 일, 요컨대 신성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장의 뒤에서 소로는 생계를 위한 경제를 '철학과 같은 뜻'이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지체없이 삶에서 실험해보는 것보다 삶을 사는 법을 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내 생각에는 그렇게 해야만 수학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훈련시킬 수 있다. 어떤 아이가 예술과 학문에 대해 뭔가를 알기를 바란다면, 나라면 그 아이를 학자의 옆집으로 보내는 식의 케케묵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뭔가를 배우고 실습하겠지만 정작 삶을 살아가는 기술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통해 세상을 조사하는 법은 배우겠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법은 배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화학이나 기계학은 배우겠지만, 자기가 먹을 빵을 어떻게 만들고 벌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할 것이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하는 법은 배우겠지만, 자기 눈의 티를 찾아내거나267 자기가 어떤 건달의 위성 노릇을 하는지 알아내는 법은 결코 배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초 한 방울에 숨어 있는 괴물들은 눈여겨보며 조심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주변에서 우글대는 괴물들에게 현혹당해 살아가고 있다는 걸 모르게 된다. 예컨대 관련된 책을 읽어가며 광석을 채굴하고 녹여 잭나이프를 만든 학생과, 인스티튜트에서 야금학 강의를 들었고 아버지에게 로저스 사의 주머니칼을 물려받은 학생이 있다고 해보자. 누가 손가락을 베일 가능성이 크겠는가? ······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서야 항해학270을 수강했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차라리 내가 직접 배를 몰고 항구를 한 바퀴 돌았더라면 항해학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았을 것이다. 가난한 학생조차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배워야 하지만, 철학과 동의어 관계에 있는 생계를 위한 경제학은 이 나라의 대학에서 진지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 결과 가난한 학생은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와 세271를 열심히 읽으면서 아버지를 헤어날 수 없는 빚에 몰아넣는다.(95쪽)


주석

267. 「마태복음」7장 3절의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를 빗댄 표현이다. 비슷한 구절이 「누가복음」6장 41절에도 있다.

270. 항해천문학은 1830년대 하버드 대학에서 2학년 수학 강의의 일부였다.

271.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경제학자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썼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는 영국 경제학자로 『정치경제학과 조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을 썼으며, 장 바티스트 세(Jean-Baptiste Say, 1767∼1832)는 프랑스 경제학자로 『실천 정치경제학 통론 Cours Complet d'Economie Politique Pratique』을 썼다. 소로는 C.R.프린세이가 번역한 세의 『정치경제학 개론』(필라델피아,1834)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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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도
아이들한테 '참된 살림'을 안 가르쳐요.
어쩔 수 없겠지만,
교과서 엮는 학자들부터 살림을 모르고,
교과서로 교과과정 나가는 교사도 살림을 모르니까요...

oren 2013-12-15 00:07   좋아요 0 | URL
학생과 교사와 교과서마저 참된 살림을 가르치지 않으니, 가정과 사회가 그나마 그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을텐데, 경제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겠다 싶네요.
 


『주석달린 월든』을 읽다가 소로우의 '옷'에 대한 철학을 다시금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옷'에 대한 철학을 떠올리면 우선『의상철학』이라는 명저를 쓴 토머스 칼라일이 막연히 생각난다. 사실 나는 그 책의 이름과 저자만 익히 들어봤을 뿐 정작 그 책이 '옷'에 대해 어떤 철학을 담고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그런데 다행히『주석달린 월든』을 통해 아주 조금이나마 내 '무지의 일단'을 벗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도 품어본다. (토머스 칼라일의 책 내용이 월든의 '주석' 곳곳에 꽤 자주 나온다.) 드문드문 얘기만 들었을 뿐인 '칼라일과 의상철학'을 '주석달린 월든'에서 발견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한가지가 더 있다. 칼라일의 책 속에 몽테뉴의 책 내용이 나오고, 소로우는 칼라일의 책을 통해 알게 된 몽테뉴의 재치있는 글을『월든』에도 슬쩍 담았다는 점이다. '옷' 때문에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고, 또한 그들의 멋진 생각이나 재치있는 글들을 다시 음미해 보는 재미 또한 『주석달린 월든』이 아니었더라면 쉽게 마주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옷'에 대해 소로우는 '근엄하게 혹은 심각하게' 얘기하지만, 몽테뉴는 '웃으면서 혹은 즐겁게' 얘기한다. 두 사람의 글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보니 서로 너무 다른 '옷'을 입은 듯싶어 이 글을 쓰는 나조차 좀 뻘쭘하다.


 * * *


 

을 구입할 때,117 우리는 진정한 실용성보다 새것을 좋아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하는 경우가 더 많다. (57쪽)

주석

117. 과 관련해 소로는 토머스 칼라일의 『의상철학Sartor Resartus』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의상철학』은 에머슨의 편집으로 1836년 보스턴에 소개됐다. 소로는 은 상징적인 껍데기일 뿐 그 을 입은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소로가 1854년 1월 21일, 해리슨 그레이 오티스 블레이크에게 보낸 서간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내 외투가 마침내 닳아 해졌네. ······ 그 외투를 만든 사람은 내 기분이 어땠는지 몰랐을 거네. 그 외투를 입을 때마다 내 마음이 울적했는지 하늘을 날 듯 즐거웠는지 말이야. ······

그러나 다시 외투 문제로 돌아오면, 우리는 그보다 더 치명적인 외투, 다시 말하면 거의 한평생 우리에게 맞지 않는 외투를 입고 힘겨워하네. 직업이나 신분이라는 외투를 생각해보게. 우리는 서로를 아무런 편견도 개입되지 않은 진정한 모습으로 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네. 우리가 허세를 부리니 상대가 우쭐대는 모습을 묵인할 수밖에. 또 판사는 자기에게는 있지도 않은 권위를 법복으로 포장하고, 증인 역시 원래는 겸손하지 않으면서도 법정에서는 부들부들 떨면서 얌전한 모습을 보이며, 죄인도 진실을 숨기고 자책하는 모습을 띠거나 거꾸로 뻔뻔하게 죄를 부인하지 않는가. 우리가 어떤 외투를 어떻게 입고 입지 않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네. 외투를 바꿔 입혀보게. 예컨대 판사를 죄인석에 앉히고, 죄인을 판사석에 앉혀보게. 그럼, 자네가 그들을 바꿔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까.



 

당신이 지금 입은 을 허수아비에게 입히고, 당신은 그 옆에 맥없이120 서 있어 보라. 허수아비보다 당신에게 먼저 인사할 사람이 있을까?  (59쪽)

주석

120. 기운 빠진 모습을 뜻하는 말장난으로 '을 걸치지 않고'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만약 입고 있는 을 홀랑 벗겨놓으면 과연 몇 사람이나 자신의 현재 지위를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이런 경우, 당신은 가장 존경받는 계급에 속한다는 문명인들을 자신 있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59쪽)



 

힘들게 할 일을 찾아낸 사람이라도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새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 다락방에서 기약 없이 먼지가 쌓이던 헌 이라도 그에게는 충분할 것이다. 영웅은 하인이 오랫동안 신었던 낡은 구두라도 기꺼이 신을 것이다-영웅에게 하인이 있다면.124 또 맨발이 구두보다 더 오래된 것이므로 영웅은 맨발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교 파티와 입법 기관에 들락대는 사람들에게는 새 외투가 있어야 한다. 외투를 바꿔 입을 때마다 사람이 달라 보일 테니까. 그러나 내 웃 과 바지, 내 모자와 구두가 하느님을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다면, 내게는 그것들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60쪽)

주석

124. '어떤 사람도 자신의 하인에게는 보통 사람이다'라는 속담을 빗댄 표현으로, 이 속담은 프랑스의 수필가 미셸 드 몽테뉴가 「후회에 대하여」에서 "가족에게 존경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한 말을 영어식으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소로는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에서 "그 재치 넘치는 프랑스 작가가 남긴 '어떤 사람도 자신의 시종에게는 보통 사람이다'라는 말을 우리는 제멋대로 부인한다"라는 글을 읽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의 생각 ①)
'여기서' 『몽테뉴 수상록』에 나오는 대목을 곧바로 충분하게 '인용'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집안 사람들에게 숭배받았던 인물은 거의 없었다

자기의 개인 생활에까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훌륭한 인생에서 보는 일이다. 저마다 광대놀이에 참가하여, 무대 위에서는 점잖은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이 허용되고 모든 것을 감추어 두고 있는 가슴속, 마음속에 질서를 세워 보는 일이다. 그 다음 단계는 아무에게도 보고할 필요가 없고, 연구도 기교도 없이 살아가는 자기 집에서 평소의 행동에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그 때문에 비아스는 가정 생활에서의 훌륭한 태도를 묘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가정의 주인은, 그가 밖에서 나라의 법과 사람들의 평판이 두려워서 처신하는 식으로 집안에서도 그대로 행해야 한다." 줄리우스 드루수스가 장인(匠人)들에게 한 말은 점잖은 말이었다. 장인들이 그에게 3천 에퀴만 내면 그의 집을 전과 같이 이웃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하자 그는 대답했다. "내가 6천 에퀴를 주겠으니, 누그든 어느 기둥이나 주춧돌을 들여다보아도 좋게 만들어 놓으라." 아게실라오스가 여행할 때에 항상 그의 숙소를 사원 안에 정하며, 사람들이나 신들이 모두 그의 개인적인 행동까지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칭송할 만한 일로 주목된다. 자기 아내와 하인이 보아도 별로 눈에 띌 일이 없게 살아간 자는 세상에서도 놀라운 인물이다. 집안 사람들에게 숭배받았던 인물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공적 행동으로는 황공해서 저자를 그의 집 문 앞까지 바래다 준다. 그 자는 그의 과 더불어 역할도 벗어 놓는다. 그는 높게 올라갔던 정도로 낮게 내려온다. 그는 자기 집안에서는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다. 질서가 서 있다고 해도 이런 변변찮은 행동 속에 그것을 알아보려면 예민하게 식별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뿐더러 질서는 침침하고 희미한 덕성이다.

성벽을 무찌른다, 외국으로 사절단을 데려 간다, 한 국민을 다스린다 하는 것은 혁혁한 행동들이다. 자기 집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과 부드럽고 올바르게 꾸지람하고 웃으며, 팔고 사며, 사랑하고 미워하고, 교섭하고 되는 대로 일하지 않고, 자기 말을 어기지 않는 것 등은 눈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더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888∼889쪽)
 

 


 

사람이 벗어 놓은 은 안쓰럽고 기괴하기도 하다. 사람이 입은 에 비웃음을 억누르고 신성함을 더해주는 것은, 그 을 입은 사람이 쏟아내는 진지한 눈빛과 그 사람의 내면에서 흐르는 진실한 생명이다. (65쪽)




(나의 생각 ②)
여기서 또다시 재치넘치는 몽테뉴의 글을 더 찾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옷'으로 검색되는 대목만 찾아 또다시 충분하게 '인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풋내기들 436

그것은 마치 무도회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 귀족들의 점잖은 행세를 모방할 수 없으니까, 무도 학교를 세워 가면서 배운 위험한 뜀박질이나 익살스런 동작의 색다른 잡술을 가지고 장기를 삼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리고 정식 무도회에서 부인들이 천연스런 걸음으로 순진한 자세와 타고난 우아미를 보여 주기만 해도 되는 것을, 몸뚱이를 비꼬아 뒤흔드는 무도회에서는 그녀들의 자태를 값싸게 보여 준다. 나도 역시 본 일이지만, 탁월한 배우들은 일상적인 을 입고 화장기 없는 용모로도 그들이 예술이 줄 수 있는 모든 쾌감을 주는 데 반해서, 풋내기들은 공부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므로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을 괴상하게 입고는 우리를 웃기려고 동작을 거꾸로도 하고, 얼굴을 망측하게 찌푸리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관념은 《아에네이스》와 《광분하는 롤랑》을 비교해 보면 어느 경우보다도 더 잘 이해가 된다. 전자는 확고하게 날개를 활짝 펴서 높게 날며, 늘 자기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후자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아 앉듯,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뛰어 돌아다니며, 자기 날개에 자신이 없어 짧은 거리밖에는 날지 못하고, 숨과 힘이 지탱 못할까 봐 밭이랑마다 내려서 쉰다.


그는 단거리 질주를 시도한다.                (베르길리우스)


 

 

대지 위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진 단 하나의 동물 486

자연은 보편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포용한다. 그리고 생령 중에서, 자연이 그의 생명 보존에 필요한 모든 방법을 아주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사람들이(그들은 방자한 생각으로 때로는 자기를 구름 위에 올려놓고, 때로는 그 반대편 극단 속에 집어넣는다) "우리는 속박당하고 잘 씌워져서 대지 위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진 단 하나의 동물이며, 남이 내버린 물건으로밖에 자기를 싸감아 무장해 볼 거리도 없다. 반면에 다른 피조물들은 자연이 그들을 조개껍데기·깍지·덧껍질·털·모사·가시·가죽·잔털·날개짓·거북·등껍질·양털 가죽, 돼지털 등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대로 을 입혀 주고, 그들을 발톱·이빨·뿔 등으로 무장시켜서 공격하고 방어하게 하고, 자연이 헤엄치기·달음질치기·날기·노래하기 등 그들에게 맞는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반대로 우는 것 외에는 배우지 않으면 길가기·말하기·밥먹기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다.


 

 

미다스 왕 이야기 632

미다스 왕은 자기가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이 되게 하여 달라고 신에게 요구하였다. 그의 소원은 성취되어서 포도주가 황금이 되고, 그의 빵과 이불의 털도 황금, 그의 셔츠와 도 황금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소원이 성취된 것을 누리기에 지쳤고, 감내하지 못할 보물을 선물받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축원을 풀어 달라고 기도해야만 하였다.

부유하고 동시에 궁색한 이런 새로운 불행에 놀라서
그는 재물을 멀리하며,
전에 갈망하던 것을 지금은 혐오한다.
      (오비디우스)



 

이 책으로 일반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교제 734

내가 이 책으로 일반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교제는 기껏해야 그들의 인쇄 기계를 빌린다는 일뿐이다. 그것이 더 신속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책의 낱장은 아마도 장터에서 버터 한 귀퉁이가 녹아 떨어지지 않게 막아줄 것이다.

다랑어나 올리브를 마음껏 싸는 포장지가 되어 주자.                                                   (마르티알리스)

그리고 나는 자주 고등어에게 편하게 들어 있을 을 제공하련다.                                 (카툴루스)



 

동정과 처녀 951

나는 동정을 지키키보다는 한평생 갑을 입고 있는 편이 더 쉽다고 본다. 그리고 처녀를 지키는 서약은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서약보다 더 고상하다고 본다. "마귀의 힘이 신(腎)에 있다"고 성 히에로니무스는 말한다.



 

미모, 자연의 특권 1179

미모가 얼마나 강력하고 유쾌한 소질이라고 생각하는가는 아무리 자주 말해 보아도 부족하다.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짧은 시기의 폭군이라고 불렀고, 플라톤은 그것을 자연의 특권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미모보다 더 신용을 얻는 특권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교제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미모는 앞으로 나타나며, 경이로운 인상으로 지대한 권위를 가지고 우리의 판단력을 유혹하며 독점한다. 프리네가 만일 그녀 깃을 슬쩍 벌리며 미모로 재판관을 유혹하지 않았던들, 탁월한 변호사에게 걸려서 소송 사전에 패소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온 세상의 주인이던 키로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가 이 미모를 끝까지 중시했다고 본다. 그리고 대 스키피오도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스 말로는 '좋다'와 '아름답다'에 같은 낱말이 쓰인다. 그리고 성경에는 자주 아름답다는 말을 '좋다'는 말로 표현한다. 나는 플라톤이 야비하다고 말했지만, 옛날 시인에게서 따온 노래에 따라 건강·미모·부유를 선(善)의 범주에 넣은 것에 찬성하고 싶다.

 Phryne. 그리스의 창녀로 오만과 탐욕의 전형. 프락시텔레스는 그녀를 모델로 하여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궁핍 속에서 얻는 감미로운 맛 1208

자기의 팔 힘만으로 살아가는 내 하인들과 나와의 차이를 보라. 스키타이 족들과 서인도 사람들은 형체나 힘으로는 나와 별로 다른 점이 없다. 거지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부려 보았더니, 얼마 안 가서 그들은 그전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하며, 밥 잘 먹고 잘 입으며 지내던 내 집에서 떠나버렸다. 그 중의 하나가 그 뒤에 돌아다니며 쓰레기더미에서 조개나 주워 먹고 끼니를 때우는 것을 발견하고, 내가 아무리 달래고 위협해 보아도 그는 궁핍 속에서 얻는 감미로운 맛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거지도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위풍과 탐락이 있으며, 그들에게도 직책이나 직무와 정치적 질서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버릇의 성과이다. 버릇은 우리를 자기 멋대로의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현자들은 그 때문에 부리는 습관이 즉시 우리를 좋은 형태로 만들어 주기 쉽도록 가장 좋은 형태 속에 박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변화와 변종으로 만들어 간다.



 

규칙이 괴롭힌다 1212∼1213

한편에서는 병이 우리를 괴롭히고 다른 편에서는 규칙이 괴롭힌다. 아무리 해도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쾌락을 좇으며 저지를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힘들지 않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쉬운 것이 수상하게 보인다.

여러 사물들에 대한 나의 욕망은, 그 자체가 상당히 묘하게 조화하여 내 위장의 건강에 적응해 주었다. 소스의 신맛과 쏘는 맛은 젊었을 때에는 구미에 맞았었다. 그 후에는 내 위가 그런 것을 받지 않으니 내 입맛도 바로 변해 버렸다. 포도주는 병자에게 해롭다. 그것은 맨 먼저 내 구미에서 벗어나 억지로 권해도 싫어졌다. 내가 받아서 불쾌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 몸에 해롭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맛있게 먹는 것은 아무것도 해로운 것이 없다. 나는 기분에 맞는 행동으로 해를 입어 본 일이 없다. 그래서 모든 의료법이 결정한 것을 아주 대폭적으로 내 쾌락 앞에 양보시켰다. 그리고 젋었을 적에는,

사랑이 붉은 자락을 날리며
내 주위를 이러저리 즐겁게 돌아다닐 때,
 
     (카툴루스)


나는 누구만큼이나 방자하게 정욕에 사로잡혀 지냈으며,

나는 싸울 때마다 상당한 영광도 거두었다.
      (호라티우스)

돌격보다도 차라리 끈덕지게 오래 끌었으며,

여섯 번까지 지탱했던 것만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오비디우스)

내가 얼마나 어린 나이에 처음 애정의 압제에 부딪혔는지 고백해 보면, 실은 불운도 있고 기적도 있었다. 그것은 정말 부딪힌 일이었다. 그때는 선택이라는 지각이 생기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너무 오랜 이야기라서 내 일이지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기가 처녀였던 시절의 생각이 안난다던 카르틸라(Cuartilla, 페트로니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여자)의 기억에 비겨 볼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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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1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몸에 맞는 옷이란, 내 삶에 맞는 길이 되리라 느껴요.
내 삶은 내가 사랑하고 아껴야 아름답겠지요.

oren 2013-12-12 10:11   좋아요 0 | URL
옷만 하더라도 내 몸에 맞추기 보다는 '남의 생각'에 맞추는 방향으로 더더욱 발전해 온 듯해요.
그런 경향들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이젠 '남의 눈'에 맞추어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으로 그 영역을 넓히는 것도 모자라, 얼굴뿐만 아니라 턱뼈에까지도 칼을 들이대는 지경에 이르렀지만요.

다크아이즈 2013-12-1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서늘하도록 좋아요.
찬찬히 읽으면서 오렌님의 내공을 되새겨 봅니다.
안에서 존경 받기 힘든 그 상황은 오렌님 메모에서 힌트 얻어 저도 단상 하나 건졌어요.
제 페이퍼에도 올렸어요. 간단 단상이에요. 감사합니다.^^*

oren 2013-12-12 11:35   좋아요 0 | URL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리저리 다듬어 내 자신의 글로 다시 포장하기는 몹시 어려워도, 이런 식으로 미리 베껴 놓은 글을 이래저래 '붙여넣기'란 너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이지요. 이것 자체도 좀 뻘쭘하고 민망한 일임을 모르는 바 아닌데 팜므님께서 공감해 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네요.

프레이야 2013-12-1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개 끄덕이며 생각을 던져주는 글귀들 잘 읽었습니다. 늘 그렇듯 맛과 영양을 고루 갖춘 페이퍼 고맙습니다^^

oren 2013-12-13 10:0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반갑습니다. 흰 눈이 내리고 날씨가 차가우니 문득 김장독이 떠오릅니다.(프레이야 님께서 '맛과 영양'을 언급해 주신 덕분이겠지요.) 차가운 땅 속에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숨어 앉은 그 항아리 속엔, 잘 다져지고 버무려진 온갖 양념들을 제 몸 구석구석에 끼고 엉켜 누운 배추와 무우들이 이제 막 내년 봄과 여름을 생각하며 가만히 숨을 죽이기 시작했겠지요. 이 긴 겨울이 우리 모두 조금이라도 더 성숙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알라딘에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한지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세월 참 빠르다.

며칠전 문득 '서재 태그' 맨 밑에 달려 있는 more 버튼을 슬쩍 눌러 봤더니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그동안 글을 쓸 때마다 심심풀이로 적어 넣었던 '태그'들이 깨알같이 모조리 떠올랐던 것이다. 역시 알라딘은 가끔씩이나마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요술램프에서 피어오른 형형색색의 글씨들을 보고 놀라는 것도 잠시, 곧바로 창피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글씨들 가운데 가장 크게 부풀어 오른 글씨들을 클릭해 보니 온통  그 '글씨'와 관련된 (베껴쓴) 글들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처럼' 모조리 빠짐없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글들은 대부분 내가 그 책을 쓴 저자와 책 내용을 그냥 한번 읽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에 앞으로도 두고 두고 읽어볼 요량으로 (나만 봐도 좋고, 남들이 봐도 나쁠 건 없다 싶어서) '그냥' 올려놓은 글들도 많았다. 물론 내가 그동안 베껴쓴 내용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어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결국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법인가 보다. 지금에 와서 '태그'를 일일이 찾아 없애기에는 너무 일이 벅찼다. 그리고 나로서는 아무래도 그동안 애써 엮어 놓은 태그를 지우는 일은 '스스로 죽을 꾀를 내는 일은 아닌가' 싶어서 조금 고민스러웠다. 내가 애써서 베껴쓴 글을 도대체 '태그' 하나 때문에 내가 그 글들을 모조리 지워야할 까닭이 뭔가 싶었다. 이리 저리 고민하던 끝에 정말 뜻밖에 책 한 권이 내 눈에 번쩍 띄었다.













'베껴쓰기'도 글쓰기 연습이 되는구나. 여태 글쓰기를 가르쳐 주는 책은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그럼 그동안 열심히 책 내용을 베껴쓰는 일을 알라딘의 주된 과업으로 삼아온 나는 내 나름대로는 글쓰기 연습을 한 셈이로구나......

그럼 나는 과연 예전에 비해 글쓰는 게 좀 나아졌을까. 그건 좀 자신없다. 내가 쓴 글은 예전에 쓴 거나 최근에 쓴 거나 별로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다만 맞춤법이나 조금 덜 틀리게 쓰고 내 멋대로 지어내던 비문이나마 조금 줄어들었으면 다행이겠지. 다만 그동안 훌륭한 인물들이 애써 만든 책들을 읽으며, 거기서 발견한 인상깊은 구절들을 열심히 베껴쓴 덕분에, 그들을 조금씩 흉내내려고 어줍잖게 애쓰고 있는 모습들은 아마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늘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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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30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마음에 밥이 되어 준 말인걸요.

oren 2013-11-30 12:35   좋아요 0 | URL
저 많은 말들을 제가 '밥'처럼 먹고 살아 왔다고 생각하니 나는 정말 '잡식성의 딜레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정말 괴상한 동물이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 * *
역겨움의 목적은 무엇인가? 로진은 인간이 '잡식성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유칼립투스 잎을 주식으로 먹기 때문에 그것이 부족해지면 위기에 처하는 코알라와는 달리, 잡식성 동물들은 광범위한 메뉴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다. 단점은 많은 음식들이 유독하다는 것이다. 많은 종류의 물고기, 양서류, 무척추동물이 강력한 신경독을 갖고 있다. 평상시에는 무해한 고기에도 촌충 같은 기생충이 있을 수 있고, 상한 고기는 부패를 야기하는 미생물들이 청소동물들을 막고 고기를 독차지하기 위해 독을 분비하기 때문에 굉장히 치명적이다. – 스티븐 핑커

saint236 2013-11-3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해봐야겠는데요. 전 분량이 절반도 안될 것 같은데요

oren 2013-11-30 12:38   좋아요 0 | URL
태그를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분량이 좌우되는 셈이니,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 싶어요.
알라딘 서재의 달인들은 아마도 '태그'가 너무 많아서 쓸모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ㅎㅎ

saint236 2013-11-30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해봤는데....장난이 아니네요. 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들이 줄줄이 나오네요.

oren 2013-11-30 12:40   좋아요 0 | URL
사람들마다 각자 얼마나 다른 '태그'들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다 싶어요.

transient-guest 2013-12-0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기'와 '쓰기'에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런 책을 소개받게 되니 참 좋네요.

oren 2013-12-02 09:26   좋아요 0 | URL
읽기와 쓰기는 누구나 다 고민하는 문제이지 싶어요. 우린 하루도 읽지 않거나 쓰지 않으면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제가 '상품넣기'로 소개해 드린 저 책은 저 또한 읽어 보지 못한 책이라, (감히 추천해 드릴 처지는 못 되고) '그냥' 소개만 해 드릴 뿐임을 헤아려 주세요~

페크pek0501 2013-12-0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심하게? 많은 태그입니다. 님의 역사를 말하고 있군요.
베껴쓰기... 중요하다는 것 알고 있었어요.
신경숙 작가도 이십대에 오정희, 이청준 작가의 소설을 노트에 베껴 썼다고 해요.
저는 요즘 좋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걸로 대치하고 있어요. 마음으로 베끼는 것이죠. ^^

oren 2013-12-02 15:37   좋아요 0 | URL
pek 님의 댓글을 읽어 보니, 문득 학교 다닐 때 국어선생님께서 좋은 시를 많이 암송하게 했던 '숨은 이유'도 알 듯 하네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더욱 좋은 방법은 많이 외우는 것이겠죠. 앞으로는 딱딱한 문장들보다는 '아름다운 시'를 많이 외웠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요.
 
 전출처 : 알라딘님의 "알라딘 중고매장 일산점 후기 이벤트 당첨자 발표 "

 

무려 5만원의 적립금을 주시다니요...
감사드리며 알라딘 중고서점 일산점의 무궁한 발전을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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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11-1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oren 2013-11-16 21:0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3-11-1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너무 부럽습니다, 저도 도전해볼걸, 하는 후회와
아니야, 오렌님 페이퍼가 멋졌어 하는 긍정 두가지를 함께 느끼네요. ^^

oren 2013-11-16 21:02   좋아요 0 | URL
마고님께서도 도전해 보셨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드네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이 글은 1856년 12월 6일,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해리슨 블레이크에게 쓴 편지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제 또 다시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

어떤 것이든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양하게 분출해 내십시오. 나는 앞으로 천 년 동안 넘쳐흘러 밑바닥까지 모두 분출해 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요! 나의 수족은 새카맣게 타버렸고 정신도 역시 타버려서, 이제 당분간은 벌레 먹거나 썩을 염려는 없습니다. 내가 들이쉬는 숨이 내게는 감미롭습니다. 내가 가진 재산은 무한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자꾸만 미소가 지어집니다. 내 은행 잔고는 아무리 꺼내 써도 다 쓸 수가 없습니다. 나의 재산은 소유가 아닌 향유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요즘의 나날들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나요? 이제 또 다시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은 지난겨울과 같은가요? 가난한 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을까요? 겨울에 쓸 장작들은 들여놓았나요? 그리고 또 겨울을 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요? 무엇으로 벽난로에 커다란 불을 지필 것이며, 또 무엇으로 당신의 가슴에 작지만 강렬한 불을 지필 건가요? 당신에게 주어진 행복과 불행, 지난여름 뜨거운 태양의 대가와 그 비싼 수업료를 지불할 확실한 준비가 되어 있나요?

시간은 천리마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지 않던가요? (148∼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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