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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 하이드리오타피아, 유골 항아리 매장에 관하여
토머스 브라운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10월
평점 :
《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 하이드리오타피아, 유골 항아리 매장에 관하여 _토머스 브라운(지은이), 공진호(옮긴이) / 아티초크(2026-10-05)
원제 : Hydriotaphia, Urne-Buriall
5,6년 전 종합검진 중 직장암을 발견해서 수술 후 회복이 잘 되어가는 친구가 있었다. 마초기질과 허세가 좀 섞인 친구였지만, 나름대로 주변에 베풂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흠이라면 술을 너무 좋아했다는 점이다. 거의 매일 술이었다. 직장암 수술 후 그렇게도 좋아하던 술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금단현상을 겪었지만 잘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늘 죽음을 의식했다. 불안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을 것이라 짐작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다고 느낀 듯하다. 오랜만에 만났더니, 자기는 죽은 후 자신의 뼈가 동해안에 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후(死後)처리는 산자들과 남은 자들의 몫인데 가족들한테 이야기했냐고 했더니 아직 말 안했다고 했다. 친구에겐 아직 미혼인 두 딸이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딸 둘은 각기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집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친구의 뼈는 동해안으로 가지 못했다. 큰딸의 주관으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추모원(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그 추모원은 큰딸이 기거하는 집에서 승용차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아빠 살아있을 때, 자주 집에 못 와서 미안해. 이젠 자주 찾아올게” 특히 작은 딸이 많이 울었다. 친구는 자신의 뼈가 망자(亡者)들의 아파트 같은 납골당 항아리 안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이 책『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의 저자 토머스 브라운 경(1671년 영국 찰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음)은 17세기 영국이 낳은 가장 독창적인 지성이자 영어 산문의 대가이다. 두 군데 칼리지에서 고전문학의 기초를 닦은 브라운은 그 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럽 각지를 떠돌며 쌓은 의학적 수련과 삶의 여정을 통해 나라마다 민족마다 각기 다른 신앙과 문화를 체험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의 첫 부분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1923년 호화한정판으로 제작된『토머스 브라운 경 저작집』에 대한 서평이 실려 있다. 브라운이 이 책을 처음 출간한 때가 1658년이니까 260여년 만이다. 울프는 “왜 우리는 토머스 브라운을 읽는가”라는 글에서 이 책『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를 읽는 것은 “문턱에서 진흙 묻은 장화를 벗어야만 들어설 수 있는 신전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울프 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브라운의 저서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울러 브라운은 일반적이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끌어온 낯선 어휘를 대담하게 영어에 들여왔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이 그의 글에서 인용한 문장은 4,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 책의 모티브는 영국의 어느 한 지역에서 발견된 마흔 내지 쉰 개의 달하는 유골항아리이다. 각기 약간씩 다른 항아리에 유골이 담겨있었다. 유골 외에도 작은 상자조각이나 정교하게 세공된 빗, 자그마한 청동기구의 손잡이와 청동 집게 같은 여러 부장품들이 함께 나왔다. 어느 항아리에서는 오팔의 일종으로 보이는 것이 나오기도 했다. 의사였지만 유물 연구자이자 과학자이기도 했던 브라운은 이들 항아리를 통해 인류가 육신을 처리해 온 다양한 방식인 매장과 화장의 역사를 살펴본다. 각 민족과 그들이 지닌 신앙심이 사후 세계에 대한 신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석한다. 브라운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요하네스 키르히만이나 안토니오 보시오 같은 당대 유럽의 방대한 유물 연구가의 문헌을 참고했다. 요즘과 달라서 문헌 참고는 지난한 노력과 수고가 필요했을 것이다. 브라운의 박식함은 그가 책에 인용한 그리스 로마 신화, 성경, 고대 역사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한 공진호 역자의 세심한 주석이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된다. 교양인문학 도서로 강력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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