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2008년 즈음이었을 것 같다. 일요일이었고 근처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벼룩시장 구경을 갔다. 언덕 꼭대기 잔디밭에서 열린 벼룩시장에는 그 때문인지 손님이 드물었다. 한가한 가판대들을 천천히 훑으며 지나가는 나에게 한 프랑스 남자가 말을 던졌다. 너 얼마면 되니? 더 정확하게는 너 얼마 주면 팔래? 였던 것 같다. 지금 정도의 의식이 있었다면 어느 나라 말이건 상관없이 톡톡 잘근잘근 그 남자의 말을 되받아 씹어줄 수 있었을 텐데, 매우 아쉽게도 그때의 나는 어리버리한 애기엄마에 불과했다. 정말 짧은 순간에 인상을 써야 하나 그냥 웃어넘겨야 하나 못 알아듣는 척 할까가 스쳤다. 남자는 혼자 있지 않았다. 옆 가판대의 남자와 함께였다. 나는 웃음을 택했다. 애매모호한 웃음.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여자가 나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남편이 장난기가 많아서...(혹은 농담을 하는 거라고 했던가.)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당신 파트너가 잘못한 걸 왜 당신이 사과하느냐고 물었어야 했는데 역시나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지면 당황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주 그렇다. 저멀리 앞에서 구경을 하던 옆지기를 따라잡아 말했더니, 욕을 하며 돌아서 가려는 옆지기, 싸울 태세. 그러나 싸움이 나면 손해보는 건 뻔하게 외국인인 우리일 테니, 내가 그냥 넘겨버렸으니, 나는 말렸다. 그들은 같은 동양인인, 덩치도 큰 남자가 나의 남편이라는 걸 짐작했을 테고 동양인 아이들이 두 명 뛰어지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며 그 뒤를 따르는 내가 그 아이들의 엄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옆에는 자기 부인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던지는 인간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성희롱은 도시의 길거리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작고 작은 시골 마을의 언덕배기 잔디밭에서도 일어난다. 부인이 옆에 있어도 그렇다. 남편이 근처에 있어도 그렇다. 틈만 나면 일어난다. 

그 날 이후로 가끔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자책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가 이어지면서 지금이라면 이런 말을 하겠다고 한없이 문장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별것 아닌 일 같아보였는데 생각할 때마다 열불이 치솟는다. 결국 별것이었던 거다. 웃어넘겨서는 안 되었던 거다.


몇년 후 우리는 이사를 했다. 그 시골 언덕 잔디밭은 우리집 뒷산이 되었다. 인생 참 아이러니다. 이사오고 나서야 그 언덕이 이 언덕이라는 걸 알았다. 보통 그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벼룩시장이니 그 때의 그 부부도 이 마을에 살 확률이 높았다. 아니다. 다른 마을에서 참여한 사람들일 것이다. 상상의 나래는 때로 사람을 좀먹기 마련이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능력(?)이 이럴 땐 다행스럽다. 
















성희롱 부분을 읽으면서 내 경험이 생각나 적었다. 더 심한 경험이 아님을 감사해야 할런지. (도대체 누구에게?) 책을 보며 솟구치는 화와 눈물은 어쩌고. 하... 






... 뭄바이 전역에는 "남녀 공용 공중화장실이 3536개 있지만 여성 전용 화장실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일부 경찰서와 법원에조차도."
2015년 조사에 따르면 뭄바이 빈민가 거주 여성의 12.5%는 밤에 실외에서 대변을 본다. 그쪽을 "58m를 걸어가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보다 선호한다. 58m는 그들의 집과 공용 화장실 간의 평균 거리다." 그러나 실외에서 대변보는 것이 썩 안전하지는 않다. 여자들이 용변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역 근처 또는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숨어 있던 남자들에게 성폭행당할 위험이 있다. 폭력의 정도는 엿보기-엿보면서 자위하기 포함-에서부터 강간, 극단적인 경우에는 살인에까지 이른다. (2장 성 중립 화장실) - P79

여자들은 공공장소를 탐색할 때 대량의 위협적인 성행동도 탐지한다. 성폭행 같은 심각한 행위를 일단 차치하더라도 여자들은 매일같이 여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 대게 불편하게 만들도록 계산된 - 남자들의 행동과 씨름하고 있다. 그것은 캣콜링에서부터 음흉하게 쳐다보기, "성적 욕설과 이름을 가르쳐달라는 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중 어느 것도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하진 못하지만 하나같이 성적 위협감을 가중한다. 감시당한다는 느낌, 위험하다는 느낌.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실제로 쉽게 악화한다. 여자들은 "웃어, 아가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가 얼마나 갑작스럽게 "쌍년아, 네가 뭔데 나를 무시해?" 또는 ‘집까지 따라와 폭행‘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경험해봤기 때문에 낯선 남자의 "무해한" 발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2장 성 중립 화장실) - P84

여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직면하는 위협적 행위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남자들이 남자 일행이 있는 여자에게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 일행이 있는 여자는 이런 종류의 행위를 경험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브라질 여성의 3분의 2가 교통수단으로 이동 중에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경험했는데 그중 절반이 대중교통에서 일어났다. 남자의 경우는 18%에 불과했다. 따라서 성폭력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남자는 어디선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들의 그런 이야기를, "나는 한 번도 못 봤는데?"라는 무의미한 말로 너무나 쉽게 일축해버린다. 이 또한 젠더 데이터 공백이다. (2장 성 중립 화장실) - P85

2016년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 여성의 90%는 대중교통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해 5월 두 남자가 파리 지하철에서 윤간을 시도하다 검거됐다. 2016년 워싱턴 지하철의 조사에 따르면 여자는 대중교통에서 성희롱당할 확률이 남자의 3배였다. 그해 4월 워싱턴 지하철에서 성기를 노출한 용의자의 신원이 확인됐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그는 지하철에서 여자를 칼로 위협하여 강간했다. 2017년 9월 또다른 상습범이 워싱턴 지하철에서 체포됐다. 그는 같은 피해자를 두 번 노렸다. (2장 성 중립 화장실) - P87

인도에서는 - 델리는 2014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여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위험한 도시로 뽑혔다 - "델리 윤간"으로 알려진 사건이 일어난 후로 여자들이 직접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전 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한 이 성폭행은 2012년 12월 16일 저녁 9시 직후에 델리 남부에서 시작됐다. 23살의 물리치료학과 여학생 조티 싱과 남사친 아바닌드라 판데이는 영화관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나와 델리에서 흔한 개인 버스에 올라탔다. 그들은 집에 갈 작정이었지만 그 계획은 결국 좌절됐다. 두 친구는 처음에 녹슨 쇠막대로 심하게 구타당했다. 그다음에는 여섯 남자가 싱을 윤간하기 시작했다. (싱의 몸에 금속 막대를 강제로 삽입하는 것이 포함된) 이 폭행은 거의 1시간 동안 계속됐고 너무나 잔인해서 싱의 결장에 구멍이 뚫렸다. 결국 제풀에 지친 강간범 6명은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두 사람을, 그들이 버스에 올라탄 곳으로부터 8km 떨어진 길가에 버렸다. 13일 후 싱은 사망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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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05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ㅠㅇㅠ외국에서는 더 말할수도 싸울수도 없는 것 같아요. 인도는 뉴스를 통해 한번씩 저런 소식을 듣게되니 너무 무섭습니다. 어떤 사건은 다 똑같은데 미국인 부부였어요. 남편앞에서..이 책 고등학교 교과서 함 좋겠어요!

난티나무 2021-05-05 15:12   좋아요 1 | URL
뉴스에 나오지 않는 사건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ㅠㅠ 무섭고 화가 나고 진저리가 쳐집니다.

볼빨간레몬 2021-05-05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의 글을 읽고 이 책 정말 읽고 싶어졌습니다. ‘프랑스 여성의 90%가 대중교통에서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것처럼 대부분의 여성들은 알아채든 모르고(?) 지나치든 성희롱의 경험이 있지요. 그 순간 당황스러워 넘겨 버리는 일도 많구요. 성희롱 문제 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여성만이 받고 있는 위협들이 많아 살기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타자가 겪는 문제들을 못보고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책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난티나무 2021-05-05 15:17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볼빨간레몬님.^^
책 추천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성희롱 문제만이 아닙니다. 여성이 더 아프고 더 힘들게 사는 게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다니 @@ 꼭 읽어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반갑습니다.^^
 

책이 왔다!!!

그런데... 요즘 소설 읽는 힘이 딸림... 흐유...
책 표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꽃인가 했더니 아닌가 보다. 얇은 천? 궁금하네. 색은 왜 빨강일까? 표지는 내용과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실물이 훨씬 좋다. 색감도 그렇고. 그리고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두껍다. 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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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0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도착했군요! 저는 하드커버라 놀랬어요 ㅎㅎ

난티나무 2021-05-04 23:26   좋아요 0 | URL
저도요!!! 지금까지는 하드커버 별로라 하는지라... 책이 커서 그렇게 만든 걸까요? 아니면...ㅎㅎㅎ 아무튼 어유 묵지익 ~~~ 합니다!

잠자냥 2021-05-05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가 커서 아마도 금방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ㅎㅎㅎ

난티나무 2021-05-05 15:26   좋아요 0 | URL
오!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네요!!!!! 🤗

블랙겟타 2021-05-0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 올 것 같아요 😁
그런데..크고 두껍다라.. 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5-06 00:18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께서 글씨가 크다고 하셔서 펼쳤더니 과연! 글자가 큽니다! ㅎㅎㅎㅎ
쪼큼 안심하여 보지만 방심이 될까 두렵습니다.ㅎㅎㅎ
 

* 소박실재론 : 우리 몸 밖의 세계는 우리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관점.

* 확증편향 : 자신의 선입견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것.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읽는 중 나오는 두 개의 단어. 이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글 [편협한 이야기의 위험 The danger of a single story]에도 마찬가지 맥락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지리아 사람인 작가가 '아프리카인'이라는 말을 미국에서 들으며 '새로운 정체성'이라 명명한 것처럼 나에게도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다. '아시아인'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빠리나 리옹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대도시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시골에서의 경험. 일단 어 아시아사람이다, 관심을 던진다. 신기하니까. 다르게 생겼어. (웃기게 생겼어,가 더 맞을 지도.) 어디서 왔어요? 그리고는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일본?(나 일본 알아.) 중국?(중국도 알지.) 베트남? 태국?(어쩌면 프랑스에 있는 외국식당을 아는 순서대로 대는 것 같기도 하네.) 아무튼 아는 아시아 나라들 대여섯 개를 줄줄이 대보면서 맞추려고 든다. 아는 나라를 다 말해도 끝까지 한국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내가 답을 말해 주면 아아 그런 나라가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얼른, 아 축구!(한참 축구로 한국이 이름을 날렸던 때) 요즘이라면 아 BTS!(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웬만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모르기 일쑤다.) 혹은 기생충!(나 그거 봤어.) 또는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묻는다.(나 좀 알지, 거기. 김정은도 알아. 그러면서 한국 대통령 이름은 모름.) 그러니까 그들에게 한국은 둘로 나뉘어진 나라이면서 아시아 어딘가에 있는 작은 나라임에도 축구를 아주 잘하는 나라인 것이다. 영화로 알려진 작은 나라인 것이다.(아마도 영화 속 이야기가 한국의 흔한 이야기라고 착각하겠지.) 면전에 대고 말은 잘 안 하지만 아마 속으로는 너네 개고기 먹는다며?도 추가될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아디치에가 말하는 싱글 스토리, 편협한 이야기다. 미국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편견을 갖듯이 말이다. 한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

나는 그렇게 프랑스에 와서 '아시아인'이 되었다. 대체로 외모만으로 중국인이라 짐작 당하면서.(엄마, 중국사람이야. 손가락질을 하며 아이가 엄마에게 말한다.) 빤히 쳐다보는 눈빛.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우월감에 차서 상대를 내려다보거나 비난하는 눈빛. 너 되게 싫다를 의미하는 눈빛. 꺼지지 않고 왜 계속 거기 있니 하는 눈빛. 상대가 눈치채고 쳐다볼 때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 너 까고 있어 알리는 눈빛. 무표정을 가장한. 이 눈빛은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있었다. (자, 이 눈빛은 인종차별인가 아닌가.)

아디치에의 '아프리카인'은 나의 '아시아인'이다. 아마도 '아프리카인'에 대한 편견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아시아인'도 만만치 않다. 세계 공통 편견이자 일반적인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인종의) 인식대로, 혹은 현실에서 취급당하는 순서대로 인종을 줄세우면 맨 꼴찌로 바닥에 있는 게 아시아 여성이라고 한다. 여기 사람들의 눈에 내가 그냥 '아시아 여자'로 보인다면, 내가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그저 똑같은 취급을 당할 밖에.

흔히 사람들은 어느어느 나라에선 인종차별 안 해요, 그런 일 적어요, 당해본 적 없어요, 라고 말한다. 그 나라에선 그래도 인종차별 안 하지 않나? 하는 편견을 갖고 있다. 외국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지가 외국에서의 경험을 좌우하고 가치관을 형성한다. 편견도 만든다. 여행 중에 만난 그 나라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개방적이고 편견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당신은 아주 운이 좋은 것이다. 실제로는 자신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흔하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상대의 면전에 대고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슈퍼의 계산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글생글 웃던 직원이 내 차례가 되면 굳은 표정으로 바뀌는 일이,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일이, 내 얼굴만 보고 프랑스말을 하지 못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잘 되지도 않는 영어를 꺼내 쓰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다. 그것이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인지,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좀처럼 알 수가 없지만.

'아프리카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가진 편견도 생각해 본다. 아프리카에 대해, 거기 있는 수많은 나라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대체로 마찬가지일 것이다. 떠오르는 것은 단편적인 단어이거나 이미지일 뿐이다. 그러니 나도 아프리카에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아프리카까지 갈 것도 없다. 일상에서도 수두룩하다. 나의 편견들은 내가 깨닫고 깨어버리려고 노력하면 된다지만(실제로 깨지고 말고는 차치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은 어찌할 것인가. 가서 콕 집어 편견이라고 말해줄 것인가.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어디까지 그럴 수 있을 것인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힘이 세고 권력도 더 가진 사람이라면, 직장 상사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스스로 깨우칠 일은 없어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해도 소용없음을 아는 것은 득인가 실인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보다 약하다는 것은 누가 판단할 일인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아는 게 맞을까. 내 생각 또한 편견이 아닐까. 여러 가지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질문 또한 계속된다. 답을 찾기가 어렵다면 같은 질문을 계속 해야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나부터 잘하자에 나만 잘하면 안 되지가 더해진다. 얼마전 읽은 <비건 세상 만들기>에서도 그랬듯이,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어렵고 지난한 길이다. 상대에 따라 묘수를 부려야 하는 일이다. 옳음을 주장한다고 해서 편견이 부서지지는 않는다. 작든 크든 하나의 편견을 깨부수는 일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렵다. 얽힌 문제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이었나 싶다. 그랬던 거다. 몰랐을 뿐이다. 















([The danger of a single story]는 한글책이 없는 듯 보인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프랑스어판에 실린 글이다.

테드 강연이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ted.com/talks/chimamanda_ngozi_adichie_the_danger_of_a_single_story?utm_source=tedcomshare&utm_medium=social&utm_campaign=tedsp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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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라는 말이 잠깐 낯설다. 정신 차려, 5월이야.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누구긴. 

3월에 정신 없을 줄 알지 못하고 욕심을 부려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이 있고, 4월은 정신 없을 줄 알고 조금 줄였으나 아예 읽지 못한 책도 있다. 허허. 그래서 5월에는 일단 못 읽은 책들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5월에도 정신이 없을 예정이라.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네 시작하려 애써보았습니다. 내 정신은 딴데 가있는 와중에 울프님의 어조는 너무나 자유분방하였던 것입니다. 두어 페이지를 들여다보다 이건 이 정신머리로 읽을 일이 아니구나 깨닫고 얌전히 책장을 덮어두었습니다. 4월에서 5월로 밀려났으나 이번달에 읽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6월로 밀려나도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아무도 안 알아준다 한들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보이지 않는 여자들> 

4월에 읽었어야 할 책을 4월 말에 펼쳤다고 합니다. 희한하게 소설이 읽히지 않는 정신머리인데 이 책은 또 읽힙니다? 플래그 붙여가며 동그라미 쳐가며 죽죽 진도 빼는 중...이라고 말하면 좋겠으나 오전 중 말짱(?)한 기운에 읽을 때와 저녁 흐릿한 불빛에 읽을 때의 차이가 너무 커서 좌절 중이라 합니다. 말짱할 때 진도 빼라고 해야 겠습니다. 
















나익주,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3월에 읽겠다고 해놓고 3월에 얼추 절반 이상 읽었으나 3분의 1 지점에서부터 슬렁슬렁 책장이 넘어가는 기현상 발생, 급기야 덮어버리고 말았다고...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여유로울 때 다시 펼쳐봅시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메리, 마리아, 마틸다> 

5월 여성주의책읽기 도서. 

오늘 우체국에 맡겨졌다는 비보. 그러니까 사기는 엄청 오래 전에 샀단 말입니다? 항공 배송료가 겁나 올랐단 말입니다? 그동안 항공으로 척척 받던 책들을 그냥 다 동생 집에 보관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 해서 꼭 받을 책을 딱 세 권 골라 부쳐달라고 부탁했는데 동생이 책을 집안에서 뱅뱅 돌면서도 못 찾았다는, 그런 말입니다. 대충 읽었다고 해서 웬일이야 잘 했네 했더니만 글쎄 책을 착각하고 있었다지 뭡니까? 그러니까 동생이 대충 읽었다는 책은 이 책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좋다가 말았습니다. 책 시작하려면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하네요. 다 읽고 감상이든 뭐든 한글자도 못쓴 소설책이 두 권, 아니 세 권.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 슬픈 이 시기에 잘 읽을 수 있을런지 지레 겁이 나긴 합니다만. 




욕심을 내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만. 

4월 30일 금요일 밤 열 시에 쓰는 5월 읽을 책 가벼운 목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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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5-01 0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난티나무님 동생분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힘내세요!!

난티나무 2021-05-02 21:50   좋아요 1 | URL
아하하~~~ 책 표지를 착각하는 바람에 이틀을 뱅뱅 뒤졌대요.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1-05-01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아 저도 5월은 읽다만 책들 꼭 끝내고 싶어요! 함께 파이팅해요! 🙋‍♀️📚

난티나무 2021-05-02 21:50   좋아요 1 | URL
넵! 그래서 열심히 <보이지 않는 여자들> 읽는 중입니다. 열불 나요.ㅠㅠ
 















프랑스어판으로 현재 한국의 친구들(프랑스어책읽기)과 함께 읽고 있는 책. 같은 책을 두 권 갖고 있지만 두번째 이야기들이 다르니 같으면서도 다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아래 사진 오른쪽 책으로 읽는 중. 두 권 동일하게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실었고, 왼쪽 책에는 단편소설 하나가, 오른쪽 책에는 또다른 TED 강연이 실려 있다. (<우리는 모두...>도 TED 강연이었다.)


짧고 적확하고 쉽다. (TED 강연을 텍스트화한 것이고, 워낙에 말(글)이 명료하다.)

제목만 보고 거부감을 가질 사람들도 있겠다. (그러나 맞는 말인 걸.)

스웨덴에서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책이라고 한다. (부럽다.)

프랑스에서는 나누어주지 않으니 내가 사서 아이들에게 읽혔다. (가격도 싸다. 2유로.)

이런 책은 가볍게 만들어 주저없이 사서 마구 뿌려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한국에서도 작고 가벼운 판형으로 갱지를 써서 책을 만들면 좋겠다. (불가능하지 않은데 안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책의 내용보다 판형과 재질과 디자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아닐까 스물스물 드는 생각.(독자들이여 바뀌어라!)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Nous sommes tous des féministes.(should be가 왜 sommes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devons être여야 하지 않나. 페미니스트여야 한다와 페미니스트이다의 차이.)  정말 그러합니다. 알게 되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페미니즘은 나쁜 게 아니라니깐요. 모두를 위한 것이죠. 당신을 짓밟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일단 한번 읽어봐~ 


[편협한 이야기의 위험] -> Le danger de l'histoire unique. 역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TED 강연을 텍스트화한 것이다. 앞부분 번역해 가며 읽는 중. 똑똑해. 빛이 난다. (l'histoire unique, 영어 원문 single story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S님이 답을. 단면 혹은 단편적인 이야기. 짱이야.)

강연 비디오를 찾아 들어도 좋다. 나는 아직 안 들었다. 그냥 글자로 먼저 읽고 싶다. 다 읽고 비디오 볼래. 이미지가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더라고. 작년에 <헝거> 읽을 때 록산 게이의 테드 강연 비디오를 봤는데 책 읽는 내내 얼굴이 떠오르더라. 영상이 글자 읽기에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그건 이미지를 보기 전에는 알아챌 수 없으니.

이미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젊은 작가들이 게스트 출연 많이 하고 있다. 아는 작가가 티브이에 나오니 반갑기는 한데 그것이 또 예능에 나와 말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 그동안 책에서 쌓았던 작가의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지는 경험도 하게 되는지라... 시대가 변하면서 작가의 일상도 변해가는군 하는 중이다. 두문불출하면서 한우물 파던 시대는 버얼써 끝난 거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거지. 이 또한 자본주의 사회의 요구가 아닌가. 검색도 유튭으로 하는 세상이니 이미지 마케팅은 당연한 것인가. 모르겠다. 좋아하는 마음 쪽의 작가들이 나와서 찌릿하게 만드는 말 한마디씩 하면 좋겠다. 편집에서 다 잘리려나. 아마 그렇겠지. 그러니까 예능은 예능인 거야.

잠시 샜다. 영어로 쓰여진 글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글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아주아주 어렵지만 아디치에 작가는 이런 나를 위해 어렵지 않은 문장들을 선사해 주었다. 쩔쩔 막히면 안 되는 영어문장도 보고 번역기도 돌려보고 사전도 찾고 우당탕탕. 프랑스어 문장들을 읽으면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설명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당췌 한국말로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는 아주 난감한. 그럴 때 나는 그 문장들을 아는 것인가 모르는 것인가. 80% 정도는 모르는 것이 아닐까. 뉘앙스를 눈치채는 일은 정확한 언어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과 다르다. 아니 그리고 나는 왜! 찾아본 단어와 구절들을 자꾸 매번 계속 까먹는 거냐. 들어도 소용없고 적어도 소용없고 입으로 읊어도 소용없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술이 너무도 뛰어나다. 그래서 언어는 밖에 나가 사람들을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슬프다. 책 이야기 하다가 자책하는 기술 또한 뛰어나군. 정신 건강을 위하여 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자. 그러니까, 음, 이제, 겨우 두어 페이지 읽었는데 이렇게 할 말이 많다고? 계속 이러길 바래. 책 한권 다 읽고도 한마디도 못하는 날은 우울해.

(TED 강연 영상 페이지 들어갔다가 텍스트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는 걸 알았다.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 아무튼, 한국어 번역이 나름 매끄럽다? 순간 프랑스어 번역하지 말고 여기서 긁을까 하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5초 정도 하다가 황급히 접었다. 공부하는 자세가 글러먹었어. 쯧.)




「스웨덴에서는 스웨덴여성로비, 스웨덴유엔연맹, 스웨덴노동조합연맹 등의 주도로 이 책의 스웨덴어판을 전국의 모든 16세 고등학생에게 배부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스웨덴여성로비의 회장 클라라 버글룬드는 “이 책은 학생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에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스웨덴 정부는 스스로를 “세계 최초의 페미니스트 정부”라고 자부하며 세계에서 성평등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나가고 있는 정부로 손꼽힌다. 스웨덴은 현직 장관 24명 중 12명이 여성이며, 젠더 주류화를 정부의 핵심 의제로 삼고 있다. 미국 공영방송사 NPR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배포 소식을 전하면서, 이 프로젝트에 이의를 제기한 스웨덴인은 전혀 없었으며 심지어 한 칼럼니스트는 “페미니즘의 기치를 교육받고 자란 스웨덴 고등학생에게 이 책의 내용은 좀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고 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성평등 국가인 스웨덴에서 모든 고등학생에게 이 책을 읽히기로 결정한 것은 이 책에서 전하는 ‘21세기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이 유효하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준다. 아디치에는 멋진 선물을 받게 된 스웨덴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저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자는 ~ 해야 한다, 할 수 없다,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을 듣지 않는 세계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남녀 모두 성역할에 얽매이지 않는 세계, 남녀가 진정 평등한 세계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입니다. 16세 때 저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말뜻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페미니스트였습니다. 이 책을 읽는 스웨덴의 청소년들도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결정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세계가 진짜로 공정하고 평등해져,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없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 -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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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5-01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줌마라는 이유만으로, 애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는 가능하고 -는 불가능하고 이런 제약을 스스로에게 두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습관이 무서운 건지 저도 모르게 딸아이한테 여자가 그러면 안돼 라고 할때 있어요. 입틀막이죠 -_-;;;;;;;; 반성합니다. 이 얇은 책이 주는 무게가 이렇게 클 줄 알지 못했어요. 읽지 않았다면 큰일날뻔.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락)

난티나무 2021-05-01 00:49   좋아요 0 | URL
저도 입틀막 가끔 합니다.^^;;; 입으로 나가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화들짝 할 때도 있고요. 왜 안 그렇겠어요...ㅠㅠ 얇은 책 많이많이 뿌리고 싶은데 제목 보고 안 펼칠 사람들이 너무 많네요.ㅎㅎㅎㅎㅎ 함께 읽기! 아자!

단발머리 2021-05-01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책이든 번역된 책이든 너무 쉽게 생각하고 읽는 사람이 바로 저라서ㅠㅠㅠㅠ 번역의 고충 이야기하시는 거 듣다보니 새삼... 맞아, 아, 그래, 번역가들 진짜 힘들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또 혼란스럽고 헤매고 고민하는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하고 정직한 공부법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더 열심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싶은데, 이제 의지할 수 있는 번역은 딱 한 개 뿐이랍니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완벽 비매품이죠. 움하하하하하하핫!!!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해요,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1-05-02 21:53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뭐라고 할 말이....ㅎㅎㅎㅎㅎ 하겠다고 해놓고 하루만에 후회도 했어요.^^;;;
이거시 정말, 한국말로 뭐라고 써야 하나 고민되더라고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 실력에 관한 이야기이니 부담은 갖지 마시고요.ㅎㅎㅎ
저는 번역책 읽으면서 막 욕하면서 읽거든요. 번역이 이게 뭐냐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반성도 하지만 또 읽다 보면 그것이, 욕 안 하기가 어렵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