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의 여행을 떠나기 전, 책꽂이를 살핀다. 달리는 차 안에서 틈틈이 읽을 만한, 너무 어렵지 않고 또 너무 가볍지는 않은 책. 소설이 별로 끌리지 않아 잠깐 맴돌다 집은 책은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기대했던 내용이 아닌 것 같아 미뤄뒀었다. 어땠기를 바랬을까? '기대'야말로 모든 악감정의 근원이라고 어디선가 봤는데. 아마도 제목과 목차에 끌려서 샀었나 보다. 특히 끝부분의 "싸움을 하는 열 가지 방법"이라는 소제목. ㅎㅎ 

공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대학을 다녔음에도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한, 공부. 하긴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는데, 후회는 하지 말자. 다만 지금도 나는 '공부'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많이 알고 싶으면서도 어려운 말에 몸서리치고, 머리 아픈 이론은 멀리하고 싶고, 규칙적으로 강의를 들으며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서. 

이런 생각은 '나는 왜 공부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 닿는다. 한마디로 나는 싸우고 싶다. 원대한 목표, 커다란 희망, 인류애, 다 좋지만 나는 우선 내 삶이 먼저고 우선 내가 살아야 겠기에. 나만 빼고 모두 남성인 이 4인의 사회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솔직히 싸우기 싫다. 겁나 피곤하다. 그런데 책에서 이런 구절들을 만난다. 


"기술 없는 이론이 무력하다면 왜 이론이 필요할까? 실생활에서는 넘쳐 나는 이론보다 거친 기술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에노 지즈코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직관이란 분절되기 전 논리의 다른 이름이다. 직관에서 논리까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직관만 존재하는 차원에서는 자신 외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기억의 정치학」 "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91)


그렇다. 거친 기술을 갖기 위해 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지. 옳습니다. 옳아요. 하지만. 




"여성학 강의를 듣고 변하는 남성은 거의 없다. 남성이 교육으로 변하지 않는 현실은, 젠더가 적대를 전제로 하는 권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계급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자본가를 교육하고 각성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없다. 자본가는 촛불 시위나 특별 검사 같은 제도나 물리력을 통해 '젼화'하고, 동시에 언제나 역전을 노린다. 그들은 멈추는 법이 없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p.29 정희진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ㅠㅠ. 교육도 설득도 안 된다면, 그렇다면 싸움밖에 길이 없다는 말인가. 정녕 그러합니까, 선생님. 싸우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틈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 왜 어려운가. 내 지식이 얕은 탓도 있고 자꾸만 말에 휘둘리고 마는 그동안의 습성 탓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계속, 너는 잘 몰라, 니 생각은 틀렸어, 그거 아니야,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같은 말들을 들으며 확신을 잃어가는 경우.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결혼 초기까지도 옆지기가 하는 말이 대체로 다 옳다고 믿었다. 그거 아니잖아, 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 그런가 하고 넘어갔다. 어느 순간 결국엔 내가 한 말이 맞았음을 알게 되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오간 대화가 항상 핀트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가 나의 말을 자르고 부정해서 더이상 진전이 없었던 것임을. 최근 상황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날은 무척 더웠고 낡은 차는 에어컨 기능이 부실해 창문을 열고 달리는 중이다.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집까지 뻗은 4킬로미터 정도의 도로 양쪽으로는 모두 포도밭이다. 나갈 때 이미 농약을 치고 있는 기계들을 보았다. 나의 도그코는 사방에 흘뿌려진 농약 냄새를 마스크를 쓰고서도 감지해낼 수 있다. 

- 사방에 농약차 천지네. 창문 닫아야 겠다. (창문 닫으라는 소린데 더 강하게 하지 못하는 나.ㅠㅠ) 

- 모든 도멘이 다 농약 치는 건 아니야. (응 나 그거 안 물었거든. '사방 천지'라는 발언에 반발하는 말. 어김없는 예외의 법칙 등장) 

- 농약이, 치는 포도밭에만 딱 흡수되는 거 아니잖아. 공기 중에 다 날리는데 창문 닫아야지. (역시 안 강한 나.ㅠㅠ) 

- 요즘은 비오디나미(친환경농법) 하는 데도 많아. (아니 그거 물은 거 아니라고. 딴소리 시전하기.) 

- 지금 농약 뿌리고 있고 냄새도 나는데 적어도 여기 달리는 동안에는 창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버럭!) 

- 아니, 그러니까 내가 농약 칠 때 창문 닫아야 하는 건 맞다고 그랬잖아? (얼씨구. 안 한 얘기 했다고 우기기.) 

- 그런 말 한 적 없거든?! 처음 말했을 때 다 농약 치는 거 아니라 했고, 두번째엔 비오디나미 얘기했잖아? 그런 적 없거든?! (버럭버럭!) 


대체로 이런 식이다. (옆지기는 끝내 창문을 닫지 않았다. 설왕설래 하는 동안 길을 거의 다 지나왔기 때문이다.ㅠㅠ) 며칠 전 식탁에서 나와 옆지기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큰아이가 말했다. 아빠는 맨날 엄마한테 아니라고 하더라. 흑흑 너라도 알아주어 고맙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살았다.ㅠㅠ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불끈. 오늘은 또 무슨 말 때문에 싸우게 될까. ㅎㅎ





"싸움 뒤에는 권력투쟁이 있고, 포기 뒤에는 지배가 있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124)


"모르니까 쓰지 못하는 게 아니다. 쓰지 않으니까 모르는 채로 있게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래도 말을 할 수 없다면,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된다. 말은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만 가능성의 싹을 틔운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275) 


"세계가 말로 표현된다기보다는 말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 노구치 유지, <내러티브테라피의 세계>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세계의 모습을 확인하고 변경한다. - 앞의 책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273~276)


"모든 걸 다 페미니즘에 기댈 게 아니라 자신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기는 각자 자기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말로 표현해서 이해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건가? 


자기는 자기에 대한 언설을 통해 구성되어 간다. - 앞의 책


자기를 가시화하지 않으면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없다. 사람은 말하기를 포기해도 말로 사고한다. 감정도 말로 지각한다. 사람이 언어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구축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276) 





여행길에서 제법 읽고(탁월한 선택) 집에 와서 마저 읽고. 어쩌면 휘리릭 읽어버릴 수도 있는 책이지만, 한번씩 발을 걸고 넘어뜨리는 구절들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책을 들고 파는 것만으로도 잘 싸울 수 있을까. 가끔 넋두리처럼 늘어놓는 글로 내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말을 잘 하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대도시로 이사를 가고 싶다.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말과 글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열망. 그러나 빠리로 간다고 한들, 그런들 달라지는 거 있으려나. 그동안 겪어보지 않았나. 그리고 줌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너잖아. 

사람들은 항상 환상을 꿈꾼다.ㅎ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한 권도 못 읽었다. 궁금함이 물결처럼 일어나는 와중에 페미니즘 책읽기를 전투적으로 하는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우에노 지즈코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본다. 마리아 미즈의 책과 제목이 같아 자주 혼동한다. 마리아 미즈의 책은 살 수 있지만 우에노 지즈코의 것은 품절이다. 중고도 없다. 하고 많은 지즈코의 구입 가능 책들 다 놔두고 낙심한 와중 한 줄기 빛과 같은 **님의 구원이 내려왔다. 그렇다. 나는 중고도 없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구했다! 거기에 더해 역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까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하루카 요코가 책 말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열심히 말하고 있는 거다. 학자는 어려운 말로, 누군가는 좀더 쉬운 말로. 그러니 이제는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도, 푸코도 크리스테바도, 어렵다고 투덜대지 말자.ㅠㅠ 


그리 길지도 않은 말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지나려 한다. 바람이 불고 해도 나고 구름도 있는 좋은 날이다. 더위가 가고 시원함이 왔다. 이 또한 이상기후지만 어쨌든 시원하니 좋다. 이미 늦어버렸으니 점심은 라면이다. 내가 이럴라고 라면 사다 놨지. 각자 자기 거 끓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7-29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9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하다. 이상한데 좋다. 조금은 낯설다. 낯선데 좋다. 왜 좋은지 생각한다. 문장들이 주는 감정, 정확히 그 감정이 아니라 해도 무엇을 말하는지 왠지 알 것 같은,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 비슷하게나마 내가 느꼈던 것들. 주목받지 않고 알 필요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 첫 단편에서부터 툭툭. 아아. 

이런 관계, 이런 시선, 이런 어긋남을 알아챌 사람들이 어딘가엔 있겠지. 여성의 경험 속에서 알아채지는 것들. 수많은 선과 경계와 시간과 공간 들. 그냥 내뱉은 말로 보이는데 말 속에 힘이 있고 뼈가 있고 가시도 있다. 그리고, 상실을, 슬픔을, 분노를, 고통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들. 



「보내는 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 어디까지 노력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손을 뻗어야 하나,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은 어떻게 헤아려야 하나, 얼마나 오래 함께 손잡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별개로 작용하는 관계의 상호작용.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헤어지게 된 사람들을 생각한다. 아쉬운 관계도, 덜 아쉬운 관계도 있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것 중 제일이다. 


「여기 우리 마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사람들. 혐오는 공포를 낳는다. 그건 어쩌면 누군가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작품 속 현실에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두 여자의 관계에 안도한다. 


「눈으로 만든 사람」

처음 읽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시 읽었다. 어렴풋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표제작이라 기대를 한 건지도. 작가의 말을 읽고 제목에 지나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졌다. 


「나와 내담자」 

누구도 도울 수 없다. 다만 들을 수 있을 뿐. 

상처와 말할 수 없음, 벗어나기 어려운 과거. 말할 때까지 있어주기. 상처, 상처, 상처, 그리고 상처...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운내」

얼마 전 읽은 책의 사혈이 생각났다. 옛날 서양에서 의사의 처치로 행해지던 만병통치의 방법. 사혈,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부터 불안했다. 단번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말들을 하는데, 희한하게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 존재하지 않는 감옥에 갇혀버린 아이들. 


」 

슬픔과 죄책감을 놓지 못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내게 내가 나일 그때」 

다른 책에서 읽은 단편인데 다시 읽으니 그때보다 좋다. 좋다고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고 아리다. 


「11월행」

역시 다른 단편모음집에서 읽은 작품. 비슷하게 느꼈던 일상의 숨겨진 감정들,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구나.


「점등」 

낯선, 종교 행사의 이면. 괴로움과 고통의 드러나지 않는 원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알 것만 같은 느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옆에 있는 사람, 내가 하는 말을 알아채는 사람, 고통의 원인을 몰라도 아픔을 짐작하는 사람, 울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삶이었으면. 그런 삶이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런 사람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나도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되자. 그런 사람 꼭 한 명은 만나자. 소설들이 내게 그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아이가 방학을 하면 개인 시간은 어차피 없었다. (「보내는 이」)

나는 알고 있었다. 진아씨네 식탁 등이 아무리 각별해도 여긴 내 아이의 친구 집이다. 진아씨는 내 아이 친구의 엄마이며,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비슷한 여건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 관계를 이어가는 게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아는 나이이므로, 이 관계를 오래 가꿔가고 싶다면 훅 들어가선 안 된다. 우리를 짓누르는 사회구조적인 것들에 대해선 얼마든지 얘기를 나눠도 좋지만 개인적인 고통을 털어놓는 건 신중해야 한다.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내 아이에게 불리한 빌미가 될 수도 있으므로, 내 스트레스 생활 또한 너무 드러내는 건 좋지 않다. (「보내는 이」)

은채의 표정이 좋지 않으면 남편은 딱 한마디를 하고 지나갔다. 우리 딸 사춘기인가! 남편은 은채가 열 살일 때도 그 말을 했다. 우리 딸 사춘기인가! 하하하! 기분이 좀 좋은 날이면 남편은 서점에 들러 초등 고학년 딸이 엄마와 갈등을 겪다 서로를 이해하는 내용의 아동소설을 사왔다. 그는 한 번도 부녀 관계에 대한 책은 사오지 않았다. (「여기 우리 마주」)

은욱이의 아이를 생각하면 엄마는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자다가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왜 깨어 있을 땐 잘 웃지 않았었는지, 그런 게 궁금할 뿐이다. (「美山」)

"목요일부터 계속 까만 밥을 먹었어요."
"흑미밥?"
"먹버섯 남은 게 있어서 먹버섯밥을 했더니 그래." 하은 대신 은형이 말한다.
"먹버섯이 그게, 항암 효과가 그렇게 좋단다."
규옥은 항암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항암 다음에 좋아하는 말은 항산화. 미나리, 시금치, 고구마, 호박, 작두콩, 무, 배추, 어디에서나 규옥은 항암과 항산화 성분을 발견했다. 항암 효과가 불러온 이상한 피로감에 젖어 은형은 멍한 상태로 운전을 계속했다. (「11월행」)

신부가 웨딩드레스 말고 한복을 입었는데, 한복도 이쁜 게 좀 많니. 결혼식인데 화사하면 좀 좋아? 퓨전인지 뭔지라는데 색깔은 위아래 다 허연 게, 비녀는 금방 흘러내릴 것처럼 비뚜룸하고, 새색시가 아니라 꼭 상주 같았다니까."
덕산 방면으로 우회전을 하면서 은형은 결혼식 날 상주 같아지고 만 신부에 대해 생각했다. (「11월행」)

"엄마 둘에 딸 둘이시네요."
...
규옥과 은형과 하은은 성이 다 달랐는데 하은은 전씨였다. (「11월행」)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7-29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9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8-06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난티나무 2021-08-07 00:16   좋아요 0 | URL
앗 초딩님 감사합니다~!!! 초딩님도요~^^

thkang1001 2021-08-06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난티나무 2021-08-07 00:17   좋아요 1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난티나무 2021-08-07 00:17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그레이스님도요~~!^^

2021-12-29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을 주는 일은 얼마만큼의 경계를 가져야 수월한 걸까. 나의 경계와 너의 경계가 달라 어긋나는 시선. 상처와 말할 수 없음. 문장마다 고통스러워 가슴이 아린데, 좋다. 아픈데 좋다고 말해도 되나. 그래도 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인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가 현실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슬프면서도, 그래도 희망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책. 남성 페미니스트를 응원한다. 더 깊은 사유를 바라며 별 하나 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버틀러의 책은 안 읽고 다른 책 구절 가져오기. 




"앞서 서술한 "생물학적 여성이란 논쟁적인 용어"라는 언설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논쟁은 제3물결 페미니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기존 페미니즘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섹스(생물학적 성)와 젠더(사회적 성)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섹스는 언제나 이미 젠더였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가 등장하면서 여성학계에는 커다란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젠더 트러블』에서 섹스 역시 젠더만큼이나 문화적이고 정치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버틀러의 주장은 섹스를 해체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곧 생물학적 자연에 대한 소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순수한 생물학적 실체가 맞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보자. 보부아르가 위와 같은 주장을 했던 1949년 당시, 지배적인 성 담론은 사회생물학이었다. 사회생물학은 남성의 성은 충동적이고 능동적인 반면, 여성의 성은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라고 여기며,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동의 기초를 생물학적 근거에서 찾으려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보부아르는 역으로 사회규범이 여성성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자연적인 실체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버틀러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겉보기에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성적 사실들이 정치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면서 과학 담론인 양 이해되고 있었다면, 섹스가 불변의 특성을 지녔다는 것 역시 의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몸의 경험을 인식하는 것마저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섹스가 아닌 젠더가 아닌가. 자궁을 적출하거나, 완경한 여성을 훼손된 여성이라 간주하던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와 "자궁이 없는 자, 말하지 말라"라는 넷 페미니스트들의 언설은 얼마나 상통하는가. 버틀러는 "생물학은 운명"이라는 공식을 논박할 의도로 제시된 섹스와 젠더의 구분이 오히려 그 주장에 공헌하게 되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버틀러는 2세대 페미니즘이 그동안 다뤄오지 않았던 가부장적 이성애주의를 퀴어의 정치학으로 비판하면서 역대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를 도발적으로 해석한다. 또한 버틀러는 운동 주체로서 보편 여성이라는 일관되고 매끄러운 재현주체가 필요하다는 기존 페미니즘의 정체성 논의에도 반기를 든다. 버틀러에 의하면 주체가 정치학에 앞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정치적인 지점이다. 왜냐하면 정치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주체가 있다는 생각은, 배타적인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 "주체가 구성되고 생산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떄문이다. "여성"이라는 용어는 늘 가변적이고 모순적으로 성립되며, 누군가를 규정하는 완전한 의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이라는 대상을 재현하고자 할 때, "어떤 여성을 재현할 것인가?"라는 불안한 경합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배타적인 실천은 결국 '동일성의 폭력'이라는 또 다른 폭력에 가담하면서 더 심한 파편화를 불러일으킨다." 


(이아름 「모두의 페미니즘을 위한 정치윤리학 : 당사자주의를 넘어서 우리'에 대하여」, <페미니즘 쉼표, 이분법 앞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