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에도 읽을 책을 미리 골라놓아본다. 책꽂이에서 빼내어 쌓아두면 틈틈이 쳐다보면서 아아 이번달 안에 읽어야지 스스로 압력을 넣게 되니까 괜찮은 방법이다. 





<젠더 트러블> 어렵다고 소문(?)나서 좀 겁난다. 전체 페이지를 나누기 30 하여 매일 억지로(?) 읽을까 생각 중. <'위안부'는 여자다> 마찬가지로 겁내는 중. 이건 좀 다른 의미로 힘들 것 같아서. 나도 잘 모르는 것 많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안부'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싸우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와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를 짝꿍으로 골랐다. 한국 남성 파보기. 

소설 중에 한 권 고르려고 보니 읽다 만 <티끌 같은 나>가 눈에 띄어 꺼냈고, 사자마자 읽었지만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아 다시 읽으려고 <서우>. 

그리고 다음주부터 새로 시작하는 프랑스어책읽기 도서 <페미니스트, 마초를 말하다>. 작년에 앞부분 필사하며 읽다가 말았는데 이번에 꼼꼼히 다시 읽어야지. 뽜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를 꺼냈다 다시 넣었다. 옆에 있는 보부아르의 <죽음의 춤>과 함께 다음달에 읽기로 한다. 막 다 꺼내놓고 싶어. 하루에 한 권씩 읽으면 좋겠다. 클클클. 

꺼낸 책들 말고 늘 그렇듯이 전자도서관에서 한눈 팔 계획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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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01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페이퍼 보고 충동적으로 위안부는 여자다 꺼내러 갑니다. 저도 가급적 이번 달 안에 읽을게요. 빠샤!

난티나무 2021-07-01 21:01   좋아요 1 | URL
오! 같이 읽어요! 뽜샤!!!!

미미 2021-07-01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다면 <위안부는 여자다> 저도 장바구니 퐁당! 겹치는 책이 3권이라 반갑네용ㅋㅋㅋ🤭

난티나무 2021-07-01 21:02   좋아요 1 | URL
미미님도 함께!!!! 뽜샤!!!
세 권이나 겹친다니 와락!!!!!!

라로 2021-07-02 0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티끌같은 나> 저도 정신없이 읽었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ㅎㅎㅎ 다시 읽어봐야겠는데,,,,언제??ㅠㅠ <서우>가 K-픽션 시리즈 물이군요. 괜찮은 시도네요!! 열심히 읽으시는 난티님을 응원하며 저는 그냥 부러워하는 것으로.^^;;

난티나무 2021-07-02 21:11   좋아요 0 | URL
라로님 늠 바쁘셔서 ㅠㅠ 그래도 틈틈이 열심히 읽으시는 것 알아요.^^
화성… 다음달? 한번 꺼내볼까 생각만 해 봤습니다.ㅋㅋ

라로 2021-07-02 22:09   좋아요 1 | URL
다음 달,,,, 콜!!!ㅎㅎ 그냥 합시다,, 그래야 하게 되니까.ㅋㅋ

난티나무 2021-07-03 04:02   좋아요 0 | URL
OK!!!!!!
 
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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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가 이렇게 안 읽히는 소설은 오랜만이다. (아, 소설이 별로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 금지) 오랜만이라기보다는 요즘 소설을 덜 읽어서 그런 것일 수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묘사'다. 풍경 묘사. 소설의 첫부분이 기나긴 묘사일 때 집중을 하지 못한다. 길지도 않은 프롤로그만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소설 시작 부분도 마찬가지로 여러 번을 보아야 했다. 나는 설명을 싫어하나 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를 잘 하는 게 글을 잘 쓰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명처럼 보이지 않게 설명하기.ㅎㅎ 


처음의 고비를 넘으니 다음부터는 책장이 빨리 넘어갔다. 1/3 즈음 되자 이야기가 점점 넓어지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그 이야기들 속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속속들이 들어앉아 있는지, 스케일이 엄청나다. 얼마나 자료조사를 했을까 골치가 지끈지끈했겠다 싶을 정도다.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까. 


그러던 며칠 전, 아침을 먹으면서 읽으려고 식탁에 얹어둔 책을 옆지기가 집어들더니 책 뒤에 실린 추천글을 꼼꼼히 읽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것도 보지 않고 아무런 정보 없이 2/3을 읽은 상태다. 책 안 읽어도 되겠다, 다 써 있네, 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나도 그걸 읽는다. 권여선과 이다혜의 글. 괜히 읽었다. 스포 하는 소개글 싫어한다. 리뷰의 줄거리 요약도 되도록이면 읽지 않는 편이다. 책 겉면에 실리는 소개글들은 홍보를 위한 것들이다. 나도 책을 살 때 참고하기 위해 읽어보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막상 책을 읽어보면 나의 느낌과 다를 때가 많았기 때문이고, 감상은 각자의 것이라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작가의 추천글에 등장하는 단어들 몇 개가 이미 소설의 성격을 규정지어버리는 것 같다. 소설의 2/3을 읽은 나는 그 소개글이 싫다. 아, 이런 내용이구나 하는 편향된 선입견을 갖게 한다. 선입견을 갖기에는 이 소설이 너무 크다. 한참 이야기에 빠져있었는데 그만 흥이 깨지는 느낌이다. 와, 도대체 깔린 게 얼마나 많은 거야, 하나하나 꼽던 중이었다. 오전의 독서는 뒤로 미루어졌다. 


그 날 밤, 마지막 부분은 끝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일상의 취침시간을 넘겨 새벽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후련하다 시원하다 아쉽다 섭섭하다 이런 감정들보다, 묵직한 무엇이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매우 찜찜하고 여전히 답답하고, 속시원하지 않아 캥기는, 우리가, 우리 사회가, 우리 나라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 난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스포 하고 싶지 않아 애써 둥글려 말해보자면. 온갖 유착과 비리와 알력과 권력관계와, 빈곤과 노년과 약품과 돌봄과 건강을 빌미로 하는 사기와, 노동과 환경과 종교와 트라우마와, 멀쩡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밟고 선 인간들. 위선. 혹은 무지. 개인과 개인의 엉키고 꼬인 관계가 개인들을 타고 넘어 다시 그들을 묶어버리고 마는. 그 사이사이 켜켜이 들어앉은 반목과 힘겨루기. 인간이란... 아, 추천글만 읽어도 흥이 깨지는데 이런 단어들의 나열이 거기에 보탬이 되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진퇴양난이로다. 그러나 이게 최선이다.ㅠㅠ 그만 두자. 


아무튼! 추천합니다. 추천글보다 소설이 훨씬 좋았어요. 다음에 다시 읽으면 어떨란지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거고, 한번만 읽은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아홉번째 파도>인지 모르겠... 역시 다시 읽어야... 


작가가 캐릭터에 매몰되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작가님, 그런데 서상화는 왜요? 왜죠? 왜때문이죠? 그럴 수밖에 없으셨을까요? 흑흑. 등장인물 어케 하든 작가님 마음이지만 그래도, 별 하나 뺄 거야. 흑흑. (소설 쓰기 진!짜! 어렵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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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7-01 0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화야!!! 흑흑흑 저도 왜 그랬어요 왜요 하고 작가님께 묻고 싶었습니다만. 왜 그런지는 솔직히 알 것 같습니다. (아파야 소설이지 제일 좋은 건 잠깐 줬다 뺏어야지 암암 하는) 저는 도시 하나를 한 권에 이렇게 담기도 하는 구나 하고 놀라면서 또 슬퍼하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난티나무 2021-07-01 15:49   좋아요 1 | URL
맞아요, 뒤로 갈수록 놀라움이 커지는. 슬프고 어처구니 없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살짝 결말이 마음에 안 들어도, 뭘 더 어쩔 수 있었겠나 싶었고요.ㅎㅎㅎㅎ 소설에서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이 좋은지, 그대로 보되 조금은 낙관적인 결말을 보는 게 좋은지, 이 책 읽으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7-01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알았는데 저는 2018년 6월 30일에 이 책 읽었다고 북플이 알려주네요 ㅋㅋ이런 우연이 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7-01 19:28   좋아요 1 | URL
오!!!!!!
 

6월에 읽기로 혼자 약속한 <가부장제의 창조>. 


어떤 역사든 간에 두루두루 잘 모르는 나라서, 이름만 들어본 것 같은 메소포타미아나 아시리아, 고대국가 이야기, 소크라테스 무슨 ~스 등의 철학자들, 솔직히 정확히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건지 매우 헷갈려서 읽는 내내 혼란 속에 헤매긴 했으나,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느 문명이 어느 위치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존재했는지를 모른다 하더라도 기원이라는 시간의 기준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인간이 정착하여 사회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그 이전부터, 세상에 이미 존재했었던 여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졌는지를 아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마지막 남은 챕터(11장)를 오늘 오전에 꼭꼭 눌러 읽었다. 페이지마다 스티커를 붙이고 있으려니 빨간 색연필을 들고 이 장의 첫글자부터 끝글자까지 색칠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황칠을 해놓으면 다시 보기 불편하겠지 싶어 손대지 않고 단락마다 스티커를 붙였... 이 부분을 읽으려고 나머지를 잘 견디며 읽었구나. 요약 정리도 잘 해주고 저자 참 좋다, 하다가. 390페이지의 '수다'라는 단어에 그만 넘어져 눈물이 터졌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마음속에 모형을 창조하고 상세하게 정의하고 그로부터 일반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남성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쳤듯이, 그런 사고는 감성을 배제해야만 한다. 가난한 사람들, 종속적이며 주변적 위치의 사람들처럼 여성들은 모호함에 대해, 섞여 있는 감정에 대해, 추상적인 것을 채색하는 가치판단에 대해 근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여성들은 항상 자아(self)와 공동체의 현실을 경험해 왔고, 그것을 알고, 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세계에 살기 때문에 그들의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는 오명을 안고 있다. 따라서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불신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을 배웠다. 월경 속에 무슨 지혜가 있을 수 있는가? 모유로 가득 찬 젖가슴 속에 무슨 지식의 원천이 있는가? 일상적인 수유와 청소 속에 추상성을 위한 무슨 재료가 있는가? 가부장적 사고는 그와 같은 성별 정의된 경험들을 비초월적인 '자연스러움'이라는 영역에 소속시켰다. 여성의 지식은 단순한 '직관'(intuition)으로 되었고, 여성들의 이야기는 '수다'(gossip)로 되었다. 여성들은 특히 희망이라고는 없는 특수한 것들을 다룬다. 그들은 자신들의 서비스 기능(음식과 쓰레기를 처리하는) 속에서, 끊임없이 방해받는 시간 속에서, 그들의 분산된 주의집중 속에서, 매일 매시간 현실을 경험한다. 그 특수한 것들이 자신의 소매를 당기는 동안 사실들을 일반법칙으로 추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상징을 만들고 세계를 설명하는 그와, 그의 신체적·심리적 욕구와 그의 자녀를 돌보는 그녀 - 그 둘간의 간극은 엄청나다." (11장 p.390) 



창 밖의 하늘을 쳐다보며 나는 지금 왜 눈물을 흘리는가를 생각했다. 본문에 나오는 '모호함', '섞여 있는 감정', '가치판단' 같은 단어들이 내 눈물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 때문이라는 소리. 말하기 어려워서 억울하다는 생각. 수다,라는 단어 하나에, 그 단어 뒤에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과 비슷비슷한 경험들과 한숨과 터질 것 같은 답답함과 그러면서도 어쩔 줄을 모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그 뒷모습들이, 그런 그들을 폄하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그들의 남편들이, '수다'조차도 마음대로 나누지 못하는 그들이, 그런 그들이 한심하다는 말에 동조라도 하듯 넘어가곤 했던 지난날의 내가, 겹쳐지고 겹쳐지고 겹쳐지고. 


그리고 어쩌면 나의 모습이, 남들보다 정도가 덜 하니까, 큰 탈 없으니까, 별 것 아니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누구만큼 힘든 건 아니지 않냐고, 그냥 넘겨버리려고 했던 작은 이야기들의 모음인 나의 모습이, 스스로를 작고 작다고 여기려 했던 나의 모습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 타협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이율배반에 갈팡질팡하는 나의 모습이, 글자들 속에 박혀있는 내가. 


필연의 중간 어디쯤에 와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나는 내 눈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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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3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30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6-30 06: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난티나무 님도 눈물을 좋다고 마지막에 쓰신거겠지요.
마음을 담아 읽고 쓰셨다는 게 전해져서 저까지 이 글에 동조되어 가슴이 저릿해져요. 필연의 중간쯤 까지 오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눈물 흘리겠지만 멈추지 말고 갑시다. 가시는 길 함께 가며 응원할게요!

난티나무 2021-06-30 15:13   좋아요 0 | URL
끝은 없겠지만 출발선에 서있는 거 아닌가 싶어 중간이라는 단어 쓸 때 망설였어요. 시작과, 끝이 없는 끝의 사이라면 중간도 맞다 싶기도 했고요. 아무렴 어떠나, 아무튼 돌아갈 수는 없으니 하기도..ㅎㅎ
항상 응원 고맙습니다~^^

공쟝쟝 2021-06-30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 같이 운다 ㅠㅠㅠㅠ 저도요 제 눈물 좋아요 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이 넘어짐이 아픈데… 좋아요 ㅠㅠ

난티나무 2021-06-30 15:14   좋아요 1 | URL
같이 울어주셔서 고마워요~ 가슴 아프고 좋은 거.. 뭐라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흑흑.

공쟝쟝 2021-06-30 15:16   좋아요 1 | URL
웅 많이 울어요, 토닥토닥! 내맘 내가 잘 알아주면 돼죠 // 우리에겐 책과 글쓰기가 있다!!!

난티나무 2021-06-30 15:24   좋아요 1 | URL
뽜샤!!!!!!!
 
[eBook] 5번 레인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2
은소홀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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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성장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 덕분이다. 주위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보다, 그들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말없이 옆에 있어줄 줄 알고 적당한 거리도 두며 늘 믿음을 주는, 그런 사람인가. 자괴감 몰려오지만 반성&다짐하게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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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 -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 때문에 억울하고 화가 나는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실제로 바꾼 놀라운 실험
이브 로드스키 지음, 김정희 옮김 / 메이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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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보고 보관함에 담아두긴 했으나, 내용에 크게 끌리지는 않았었다. 집안일을 100장의 카드로 정리해 게임을 하듯 그것을 나누라니. 시작부터 못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었거나 아예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거나. 

한동안 나도 내가 하는 집안일을 모조리 종이에 써보자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엇을, 어디까지 적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서 시작도 못했다. 그 대신 반대의 방법을 택해 다른 식구들에게 자기가 알아서 하는 집안일을 적어보라고 했다. 결과는 대실패. 나의 의도는 빗나가버렸다. 내가 수시로 불평하며 이야기를 해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끊임없이 반복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보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면 자극 요법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테이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때서야 이 책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어떤 방법이든, 그것이 집안일의 공정한 분배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어떤 책이라도 읽겠다는 마음이. 그동안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면서 늘 고팠던 가르침 중 하나가 집안일 분배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기에. 방법에 관한 이런 책도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많이 나와야 하는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 요즘 자주 하는 말.^^;;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어서인지 나쁘지 않아, 해봐야 겠어, 생각했다. 술술 읽히기도 한다. 단순한 일의 분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짚어주어 좋았고. 집안일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을 찾으라는 격려도 좋았다. 이 프로젝트가 남편들에게 어떤 점이 좋은지를 적은 부분은 그대로 보여주어도 효과가 있을 듯 하다. 협상 테이블에 앉힐 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게임을 통해 진정한 삶을 되찾고 관계 변화의 경험을 누리고 싶다면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규칙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시간에 가치를 매기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고, 각자 집안일에 쓰는 시간을 균형 있고 재조정한다는 목표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다. 파트너에게 시간을 인식하는 틀을 바꾸라고 요구하기 전에 당신 스스로도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남편이 화상 회의를 하는 2시간은 내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2시간보다 더 값진가? 즉, 무대 뒤에서 집안일을 하는 데 드는 시간은 무대 위에서 유급 활동을 하는 데 드는 시간과 같은 가치를 갖는가?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파트너의 대답은 어떤가? 당신과 파트너 모두 서로의 시간을 한정된 자원으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집안일 대부분이 여성에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다. 두 사람의 시간 모두 다이아몬드다. 둘 다 똑같이 하루 24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당신의 시간이 파트너의 시간과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스스로 확신해야만 육아와 가사 노동 분담이 동등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은 이것이 아닐까. 내 시간이 파트너의 시간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 더 나아가 확신하는 일. "남편은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해요. 그런 사람한테 집안일을 해 달라고 할 순 없잖아요." 같은 말들을 내뱉지 않기 위하여 내 시간과 노동력이 가치 있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일. 집안일을 나누자고 제안하기 전에 나의 확신을 먼저 세우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파트너가 조목조목 어쩌구저쩌구 그럴싸한 언어로 공격한다면 받아칠 여유 없이 금세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 지금껏 내가 집안일 분배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일단 엎드려 자세인 것은 이것 때문일 확률이 매우 높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이 남성보다 멀티태스킹에 더 뛰어나다는 가설을 뒷받침해 줄 연구는 없습니다. 사실, 멀티태스킹은 남녀 누구에게나 좋지 않아요. 우리 뇌는 한 번에 하나 이상의 복잡한 일을 처리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여성이 멀티태스킹에 더 강하다는 걸 입증하려고 설계한 연구에서도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 짐작에, 여성들이 가정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건 그 일을 더 잘하는 쪽으로 생물학적 변이가 일어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문화적인 영향이라고 봅니다. 여성이 그걸 더 잘한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믿는 거죠." 


실제 생활에서 다른 식구들(모두 남자)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 못한다. 그 하지 못하는 일을 나는 한다. 그러니까 이게 내가 그렇게 길들여져서 그런 거란 말이지. 그리고 어쩌면 멀티태스킹을 남자들이 잘 못하는 건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 그러니까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집 안의 누군가가 늘 그런 일들을 하고 있으니까.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 옆지기는 자기 가족의 생일을 정확히 모른다. 어떻게 엄마 아빠 생일도 모르냐고 했더니 늘 (여)동생이나 형수가 챙겨 미리 알려줘서 외울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오마이갓.




"당신은 장보기 카드를 갖고 있다. 당신의 아들은 머스터드 소스를 뿌린 핫도그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런데 냉장고와 식료품 창고에 머스터드 소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것이 바로 인지(Conceive)다. 이제 당신은 매주 새로 짜는 장 볼 목록에 머스터드 소스를 추가한다. 가게에 언제 갈지 일정을 잡고 파트너와 다른 식구들에게 추가할 게 없는지 확인한다. 이렇게 계획(Plan)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상점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와 아들이 핫도그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기 전에, 냉장고에 머스터드 소스를 넣는다. 이것이 실행(Execute)이다. 

공정한 게임에서 CPE를 한다는 것은 특정 카드를 가진 사람이 혼자 알아서 - 누가 상기시켜 주거나, 적당히 하거나, 핑계를 대거나, 아니면 완수한 일에 대해 '잘했다'는 칭찬을 바라지 않고 - 인지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그건 비현실적이야. 우리 방식도 아니고, 해 본 적도 없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렇지 않다. 나는 다양한 커플들을 대상으로 시범 테스트를 한 결과, CPE를 잘 따른 부부들이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소극적으로 드러내는 적대감을 멈추고 공정하고 능률적으로 집안일을 분담함으로써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걸 수없이 봐 왔다." 


확실히 저자의 카드를 이용한 방법은 말보다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 같다. 조금씩 집안일을 분배하려고 아이들에게 맡긴 일은 언제나 내가 그것을 '인지'시켜야 겨우 행해진다. 결국 나만 피곤한 건 매한가지인 상태. 

며칠 전 저녁의 일이다. 저녁식사 후 씽크대의 그릇 정리와 뒷마무리를 맡은(내가 맡긴) 큰넘이 세척기에 들어가지 못한 그릇들을 씻고 있었다. 옆지기가 가득 찬 주방 쓰레기통을 비우려 해서 내가 말렸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음식찌꺼기 등이 나오는데 씽크대 정리가 끝나야 쓰레기봉지를 묶을 수 있으니까. 한참 후 (옆지기에 의해) 묶인 쓰레기봉지를 작은넘이 들고 나갔다. 쓰레기와 재활용 용기 등을 현관 밖 쓰레기통에 가져다 넣는 것은 작은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옆지기에게 이 간단하고도 복잡한 일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주방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모아 바깥에 내다놓는 일을 세 사람이 했을 뿐 아니라, 앞서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식의 집안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내가 식구들에게 바라는 것도 저자의 말처럼 인지, 계획, 실행에 이르는, 알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을 하는 모습이다. 

나는 카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협상 테이블에 세 남자가 기꺼이 앉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로 문장을 바꾼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라. 단, 신중하게. 




"당신의 삶에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할 때, 아니면 그것을 꿈꾸거나 상상하기 시작할 때 그때가 바로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하는, 죄책감과 미안함이라는 강풍에 떠밀려 머릿속을 시커멓게 뒤덮는 온갖 허드렛일의 짙은 먹구름에 가장 취약할 때다. 있는 힘껏 저항하라. 삶의 열정과 목적을 되찾는 것에 대해 나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시간에 대한 잘못된 메시지들은 무시해 버려라. 그런 메시지는 당신이 유니콘 스페이스에서 결실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결국 그 공간까지 삼켜버릴 테니까 말이다.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 저편에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게 있다. 그것을 절대 잊지 마라." 


죄책감과 미안함. 이걸 떨쳐버리려고 무진장 애쓴다. 미안한 감정이 생기면 내가 왜 미안해야 하지, 생각하면서도 찜찜한 느낌이 남는 건 아직 어쩔 수 없다. '머릿속을 시커멓게 뒤덮는 온갖 허드렛일'도 되도록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물론 잘 안 된다. 최소한의 일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어떻게 하면 계속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한다. 식구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앞으로 내가 제안할 생활규칙과 집안일분배의 기준&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이것 역시 쉽지는 않다. 반발도 예상된다.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 위해, '두려움 저편에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게 있다'를 잊지 말아야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협상 테이블에 네 식구가 둘러앉아 집안일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 날을 되도록 앞당기고 싶다. 




"혹시 아내가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읽는 걸 보고, 당신과 전혀 상관없는 자기 계발서라고 넘겨짚었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하겠다. 나는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될 수 있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 사실 둘 다 직접적인 이익을 보지 못하면 이 게임은 실패작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다. 당신이 공정한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면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가정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당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새로운 언어(마침내 당신과 배우자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게 된다

- 역할과 기대치의 명확한 정의(더 이상 누가 무슨 일을 맡아야 할지 헤매지 않아도 된다)

-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파트너와 함께 집안일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자율성 

- 당신이 할 일에 대한 확실한 소유권

- 파트너/남편/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넘어 개인의 관심사를 쫓고 우정을 나눌 여분의 시간

- 행복한 파트너십 

- 더 만족스럽고 뿌듯한 육아 경험 

- 외가소성 향상과 수명 연장 


이 정도면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 아닌가? 이게 다가 아니다. 공정한 게임에 참여했을 때 잃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지긋지긋한 잔소리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때 느껴지는 나쁜 기분 

- 애써서 한다고 했는데 지적당하고 비판받는 기분 

- 가정생활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에 관한 입씨름 

- 누가 더 많이 하고, 누가 더 잘했나를 따지는 일상 

- 시간에 쫓기는 기분 

- 배우자가 '이제 난 할 만큼 했어!'라고 선언하는 것에 대한 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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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6-30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멀티 못해요. 😭 남자가 더 멀티 못한다는 식으로 퉁쳐주는 거 ㅋㅋㅋ 싫으네요 진짜 ㅋㅋㅋ 그리구 이 글에서 느껴지는 지난한 난티님의 노동력(사랑없이는 맘먹어지지않는..)!!! 제가 다 속상하네요.. 인류 역사와의 투쟁 승리하시길! 지더라도 잘지는 싸움 하시길!! 전 사보타주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ㅋㅋ

난티나무 2021-06-30 15:23   좋아요 1 | URL
사실 여자들이 멀티태스킹을 잘 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라 익숙해져서 잘 한다고 착각하고 사는 거겠죠. 한번에 하나만 할 수 있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과학적으로도 그렇다고 하고요.
인류 역사와의 투쟁! 우와 듣고 보니 그렇네요. 요즘 저의 모습을 보면 사보타주 은근히 하고 있는 거 같으네요. (단어 뜻 정확히 떠오르지 않아 찾아보고 왔어요.ㅠㅠ) 계획적이지는 않았으나 부분적으로 하고 있... 아하하... 좀더 적극성이 필요하겠어요. 아자!

공쟝쟝 2021-06-30 15:37   좋아요 1 | URL
최대한 웅장하게 싸움과 실천에 의미 부여하기 ㅋㅋㅋ 근데 사실이 그래요 ㅋㅋ 그쵸? ㅋㅋ 가부장제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