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대해 잘 모른다. 어렵다는 건 안다. 다른 언어를 한글로 옮길 때 원문의 뉘앙스를 그대로 살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번역의 과정이 있어서 세계의 책들을 접할 수 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사상 입문>을 읽었다. 초보자를 상정한 입문서이기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슬슬 읽기 나쁘지 않았다. 맨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이 꽤 길길래 그것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옮긴이의 말' 때문에 이 책이 싫어졌다. '월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책의 내용이 공감&비판할만하다면 비평을 쓰면 되고 궁금한 것이 생겼으면 저자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게 왜 빠졌을까(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에 대해 번역자가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 부분은 왜 빠졌는지 궁금했다, 정도면 되지 않나? 저자가 이러저러한 철학자를 빠뜨렸으니 내가 설명하겠다, 이런저런 책을 보아라, 저자의 이 주장은 수정했으면 좋겠다, 더 알고 싶으면 내 블로그를 참고하시라? 이렇게 쓴 '옮긴이의 말'은 처음 읽었다. 저자는 '생초보' 입문자에게 어렵지 않게 다가가려고 애를 썼는데(그 방식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옮긴이는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대신 설명하느라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출판사&편집자는 이 '옮긴이의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하다. 지바 마사야는 한글판 책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알까?
어쩌면 내가 좁은 시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말'은 어떠해야 하는가? 에 고정 관념이 있을 수도.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앞으로 이 사람이 번역한 책은 좀 거르고 싶은 삐딱한 마음이... 책 잘 읽고 삐딱하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