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9일의 나는 입덧이란 걸 하고 있었다고 알라딘이 알려준다. 내가 썼지만 18년 전 글이라고 알려준 건 북플이니깐. 태명을 알라딘이라고 하라던 이웃님들 말을 안 들었네. 그 ‘알라딘’ 놈은 지금 17살의 어수룩한 사람이 되었고, 그때의 내 몸이 지금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하게 힘든 상태. 장아찌 먹고 싶다 했더니 종류별로 장아찌를 소포로 보내셨던 이웃님들. 나는 이제 무장아찌를 내 손으로 담을 줄 알게 되었고 이웃님은 서재에 잘 안 오시고, 사진 속 장아찌들은 추억이라는 것으로 남았다. 사진을 보고서야 집에 있는 동그란 플라스틱 병들의 출처를 알았다. 문득 기회가 된다면 그 때 응원해주고 다독여주시던 많은 이웃님들께 ‘알라딘’이가 이만큼 컸다고 사진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 불쑥.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낫지를 않아서 이번주 일을 포기했다. 사실은 단순하고 감정은 복잡하다. 아니 그 어떤 것도 단순하기는 어렵지. 살이가 참, 단순하지가 않아. 이상기온으로 34도인 날씨, 그럼에도 아직은 시원한 오전 바람, 수확이 한창인 포도밭, 현관 앞 내리쬐는 햇살 속에 어지러이 잠깐 서 있는 나는 이 모든 것과 심지어는 햇살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오직 내 안부만 들여다본다. 혹여 가래가 끓을세라 잔뜩 겁을 먹으면서.

멍한 머리로 타임슬립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과거로 간다면 나도 엄마 아빠를 못 만나게 해야지. 못 만나게 해서 나를 태어나지 않게 해야지. 따로 각자의 삶을 살았으면, 그럼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고 아니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 않고 살 수도 있을 테니. 그렇다면 내가 없어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지금 아프기 때문일까? 그럴 일일랑 꿈에도 일어날 수 없으니 그럴까? 아니아니 다 말고 그냥 다시 2주 전으로만 갈 순 없을까? 코로나 안 걸릴 수 있었던 그 때로. 후회와 자책은 나를 갉아먹을 뿐이지만 사실은 사실로 남아 어떤 순간을 움켜쥐기도 한다.

모든 것은 우연이다. 이 말만이 나를 구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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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9-09 1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모처럼 서재에 글을… 이런 걸로 ㅠㅠ

은오 2023-09-09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난티나무님 ㅠㅠ 코로나 독하네요. 얼른 물러가라 난티나무님 그만 아프게 하고......

난티나무 2023-09-10 03:58   좋아요 1 | URL
은오님 고마워요. 얼른 물러가라! 저도 되뇌겠습니다!

우끼 2023-09-09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이 우연이다.. 이 말이 저에게도 와닿습니다

난티나무 2023-09-10 04:11   좋아요 1 | URL
우끼님^^

미미 2023-09-09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글이다!! 하고 들어왔는데 아프시다니 ㅠ.ㅠ 알라딘 군은 난티나무님 사랑 먹고 무럭무럭 자랐겠군요! ^^ 아...다들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난티나무님 얼른 몸 나으시길 바랍니다.

난티나무 2023-09-10 04:1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미미님~^^

페넬로페 2023-09-09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이 아프면 맘도 울적해지고 여러가지 상념에 젖지요.
난티나무님!
어서 쾌차하시길요!
서재 식구들의 많은 응원을 받고 쑥쑥 자라난 알라딘군 사진 언제 한 번 보여주세요.
저도 부지런히 읽고 써서 이곳에서 난티나무님처럼 오랜 연식을 갖고 싶어요.

근데 어찌됐던
만날 사람은 만나고 난티나무님은 태어난다, 이것 아닌가요 ㅎㅎ

난티나무 2023-09-10 04:17   좋아요 2 | URL
이미 태어나버렸다…ㅠㅠ ㅎㅎㅎ
패넬로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