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란슬롯. 어찌해서 란슬롯이 아니라 갈라하드인가... 치욕과 절망 뿐이더라도 끝까지 성배 탐색에 나선 란슬롯. 이중의 불륜으로 태어난 갈라하드에게 영광을 돌리는 건, 좀 우습지 않은가. 하긴 멀린도 처녀와 악마의 자식이고, 아더도 불륜의 소생이고, 모드레드는 근친상간으로 태어났으니 그런 태생의 흠 쯤은 그냥 일상적인 것인지도. 어부왕의 핏줄이라면 퍼시발이 있고, 아더왕의 후계라면 가웨인인데... 물론 여신 귀네비어의 선택을 받은 이는 란슬롯이고, 기독교의 영향이 아니었다면 모든 영광은 란슬롯에게 돌아갔겠지만. 뜬금없이 나타난 갈라하드는 나타날 때처럼 사라진다. 육신이 아닌 정신으로 이루어진 기사. 란슬롯이 잃어버린 ‘갈라하드‘란 이름을 가져간 란슬롯의 아들. 성배의 비밀은 그에게만 밝혀지고, 성배 탐색의 임무는 끝이 난다. 이제, 아더 왕의 몰락만이 남았을 뿐.
충고 중에 맘에 들지 않는 것들도 많지만 귀담아 들을 것도 많다.
"결투에 임할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하게. 패배한 맞수가 자비를 구하거든 그의 청을 들어 자비를 베풀게. 나의 우위를 인정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네.""여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쉽게 사랑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술책과 거짓으로는 일시적인 영광밖에는 얻을 수 없다네.""침묵은 때로 말보다 더 값진 것이지. 수다쟁이들은 사방에 어떤 일을 할 거라고 떠벌리고 돌아다니지만 정작 완수할 능력은 없을 때가 많지. 다른 사람의 일에 끼어들지 말게. 증오와 경멸을 가져다 줄 지도 모르는 질문은 던지지 말게. 반대로, 사람들이 자네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걸 무시해서는 안 되네. 대답하기 전에 사려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해.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하는 가를 보고 양식이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법이라네."(pp.70-71)
작가님이 후예한테 너무 가혹한 듯. 헌원에게는 모모도 있었는데, 후예는 눈 앞에서 부모도 보내고, 사랑하는 동생도 보내고... 영생을 사는 신과 고작 100년도 못사는 인간의 사랑은 결국 끝이 났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연인은 추억이 되고, 기다림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 그렇게 수 천년 혹은 영원을 살아야 한다... 가혹하지만 그래도 남은 생 전체를 다 걸고서 한순간을 살았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