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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평점 :
이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언자의 경고이자 어딘가에서는 실현되었고 어딘가에서는 일어날 뻔한 일이다. 우리는 독재정권 때 이미 겪었고, 또다시 겪을 뻔한 일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시리아 인들이 겪은 일이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에서 동호가 겪은 일이고, 이 책의 베일리가 겪은 일이다. 그들은 어렸고, 단지 누군가를 돕고자 했을 뿐인데 어른들이 잔인하게 살해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사람들을 잡아간다. 그들에게 적용되는 건 정권이 정한 법 뿐이다. 구인절차도, 재판도 없다. 사복경찰은 그저 지목하고 데려가면 그뿐이다. 그리고 잡혀간 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살아있는지 알 수 없다. 아일리시의 남편인 래리는 잡혀간 뒤 연락이 끊겼다. 큰아들 마크는 반란군에 가입했고 연락이 끊겼다. 아일리시는 몰리와 베일리, 벤을 건사해야 했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 사이먼을 보살펴야 했다.
래리로 인해 반역자의 낙인이 찍힌 아일리시는 고기를 사기 위해 먼 마을까지 가야 했고, 항의의 뜻으로 하얀 스카프를 맨 뒤 직장에서는 해고 되었다. 내전이 일어났고 식량도, 물도, 전기도 부족했다.
만약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아마 우리는 아일리시처럼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버터야 했을 것이다. 자유는 누리는 게 아니라 지키는 것이란 말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아일리시는 통금을 지키라는 반란군의 말투에서 그가 자란 고향, 다닌 학교를 알 수 있었다. 조국이라고 믿고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평범한 시민들을 억압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한 정권이 있었다. 여기서도 무릎에는 드릴 자국이 있고 온 몸에 담배로 지진 흉터가 가득한데도 사인은 심장마비라고 한다.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그렇게 몰아가는 사람들이 정작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것 같다. 독재자의 의견에 반대하지 못하고, 독재자를 추종하고 떠받들며 사람들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날씨나 아이들 이야기만 나눈다. 희망은 오히려 더 큰 절망이 되어 갈 뿐이다.
처음부터 줄곧 문장의 나열이었다. 누군가는 말을 하고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대답을 한다. 문장은 거의 나뉘지 않고 쉼표가 가득하며 가끔 혼란스럽다. 덕분에 아일리시의 초조함과 불안이, 다급함과 두려움이 너무 잘 느껴져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교원 노조원인 아일리시의 남편 래리는 노조원이라서 잡혀갔다. 그들도 처음엔 설마 정권이 그럴 리가 있을까 의심했다. 우리가 무슨 이 시대에 계엄령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래리가 출근 후 연락이 끊기자 아일리시는 남편의 행방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젊은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노력을 정권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것으로 보았다. 큰아들 마크는 갑자기 징집 대상이 되었다. 그저 열 일곱살인데도. 마크는 숨어지내다 비겁함에 몸서리를 치며 반란군에 가담했다. 몰리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생기를 잃었고, 베일리는 호승심과 어린 치기에 가득했다. 벤은 여전히 유아차에 얌전히 있어야 할 나이였다.
아일리시는 이 곳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래리가, 마크가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떠나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미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6월의 어느 날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고 바베큐를 먹던 일은 과거의 환상이 되었다. 아일리시는 끊임없이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래리와 대화를 하고, 마크의 흔적을 되새김질하고, 베일리의 얼굴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몰리와 벤이 있었다. 여자아이인 몰리와 아직 아기인 벤을 지켜야 했다.
이런 혼란한 와중에도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권의 부역자들이다. 그들은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브런치를 즐긴다. 그리고 이 나라를 떠나려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브로커들이 있다. 그들은 엄청난 돈을 받고 그들을 물건인 마냥 취급하며 국경을 넘게 한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마음에 들면 성적으로 착취하기도 한다. 약자인 난민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감내해야 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신과 사상이 다르면 고문하다 죽일 수 있고,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큰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며 사람들을 실어 나를 수 있다. 권력을 가지면 그 힘에 도취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나라에서 권력을 가졌으니 내 말을 안 들으면 죽여버릴 거야, 내가 국경을 넘게 해 줄 수 있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어. 이런 마음들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알량한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면 황홀한가.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지지는 않는다. 모든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희생하면서까지 유대인이나 난민들을 구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저렇게 힘으로 상대를 짓밟으려 하는 사람들이 나쁜 것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노래한다.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