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진 베일 (워터프루프북) 쏜살 문고
조지 엘리엇 지음, 정윤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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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지난 여름 호캉스를 즐기며 수영장에서 읽으려고 했는데, 호캉스가 아닌 집콕이 되어 버려 한동안 읽지 못했다. 얇아서 가볍게 읽어야지 했다가 나도 모르게 빨려 들었는데, 장황한 듯 아닌 듯 섬세한 표현들이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예민하고 병약한 래티머는 언젠가부터 사람의 마음을 엿보고 미래의 어떤 때를 볼 수 있게 됐다. 어린 나이에 발현된 능력은 그를 더 심약하게 만든 것도 같고, 감정을 더 풍부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는 누가 보더라도 자신만만하고 멋진 형과 형의 약혼자 ‘버사’가 있었다. 래티머는 ‘버사’의 마음만은 읽지 못했는데, 그 베일에 쌓인 그녀의 마음 때문에 그녀에게 더 끌렸고, 급기야 버사와 결혼하는 미래를 보게 된다.

그렇게 미래는 래티머가 본대로 흘러가는데, 만약 그가 좀 더 연애에 대해 알았다면 그런 미래는 오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 미래가 보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벗겨진 베일은 추악했고 래티머는 회피했다.

오히려 래티머를 어릴 때 진찰했던 ‘찰스’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죽은 이를 되살리기 위해 동맥에 피를 주입하다니… 게다가 살아났어!!! 잠시지만 살아 난 아처 부인은 독살의 음모를 밝히는데, 사실 증오와 복수심이 가득 차 있어서 피를 주입한 것이 효과가 있는건가 싶을만큼 극적인 장면이었다.

미래를 엿본다는 건 불행한 일이라는 걸 보여 준 래티머는 기괴하지만 불쌍했다. 다른 이의 마음을 읽는 것도, 얽힌 미래를 보는 것도 너무 힘들고 지치고 혼란스럽겠지. 끝없이 아는 사람이 없는 세상으로 도망쳐야 할테니. 너무나도 익숙한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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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나라, 켈름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이작 싱어의 유쾌한 고전 동화
아이작 B. 싱어 지음, 강미경 옮김, 유리 슐레비츠 그림 / 두레아이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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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동화라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아마 현실 세계를 아이들이 보면 ‘바보들의 나라’라고 하지 않을까? 특히나 지금 일어난 전쟁만 보더라도 말이다. 그로남이 일으킨 전쟁과 지금의 전쟁이 다른건 진짜 현실은 참혹하고 가슴 아프다는 사실이겠지. 부디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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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유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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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죽음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우리 가족은 모두 대구에 있는 장례식장엘 가야 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해도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창 재수할 무렵 친할머니가, 대학 다닐 때는 외할머니가, 휴학했을 때는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에게 ‘죽음’이 ‘이별’이란 걸 알려 준 죽음은 외할머니였다. 어릴 때부터 키워주신 분이라 정말 많이 울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고, 화장터에 관이 들어갈 때는 거의 숨 넘어갈만큼 울었더랬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입관할 때 들어갔다. 장례 지도사가 이마에 손 얹고 인사를 하래서 아무 생각없이 그런건가 싶어 돌아가신 분 이마에 손을 얹었는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차가움’이란 게 얼음처럼 차가운 것도 아니고 쇠처럼 차가운 것도 아니었다. 이 세상 차가움이 아닌 것 같은 그 소름끼치는 느낌… 이 때 내게 ‘죽음’은 공포였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전에 꿈을 꿨는데 저승사자가 나온 꿈이라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20대 초반까지 나에게 죽음은 이별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다.

그리고 또 맞이한 죽음은 ‘또래의 죽음’이었다. 같이 공부하던 후배가 두 명이나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 때 삶이 참 허망하다고 느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두렵다기보다 허무했다. 그리고 남겨진 부모님들의 절규는 진짜 심장을 후벼파는 듯 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그 분들의 눈물 앞에 괜히 죄책감마저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친구의 어머니, 아버지도 돌아가시는 등 장례식장만 매년 서너번 넘게 다닌 것 같다. ‘죽음’은 ‘삶’과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제일 처음엔 내가 보았던 ‘죽음’들이 떠올랐다. 여전히 나에게 죽음은 ‘객관화된 죽음’이었다. 알버트가 맞이할 죽음은 나의 죽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남겨질 이들이 얼마나 슬플지, 그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투병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면 그건 남겨질 이들에게 나름 준비할 시간이 되기도 한다. 문득 남편이 죽는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편은 우스개소리로 늘 서로보다 하루 일찍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막상 진짜 남편이 떠난다면 얼마나 슬프고 허전하고 이상할지 무서웠다. 역시 죽음은 무서운가.

그러다 내가 죽는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남겨진 고양이들이랑 남편은 어쩌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 나는 ‘나’보다 남겨진 존재들에게 마음이 가는걸까. 이런 집착은 슬프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테고, 남겨진 이들도 슬프지만 살아갈테니까. 난 이 세상을 살고 인연이 다하여 훌훌 떠나면 좋겠다. 하지만 내 몸이 마비가 되어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해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슬플테니까.

그러고보니 강신주님의 말처럼 2인칭의 죽음이야말로 무섭고 슬프고 아프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죽는다는 건 끔찍하게 두려운 일이다. 언제나 함께 할 것 같던 이의 빈자리는 얼마나 크고 어두울까. 그래서 알버트는 삶을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살고 싶은 마음이 에일린과 크눗을 움직여 기적을 만든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에일린이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기적을 불러온 걸까.

삶은 불꽃이고 순간적으로 강하게 번쩍이는 빛이다. 언제나 기쁘기만도 슬프기만도 하지 않다. 내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리 무섭지만도 않을텐데. 문득 <전쟁과 평화>에서 삶과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안드레이가 떠올랐다.

인간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내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우연일까?
우리는 화학적, 물리적 방식을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을까? - P102

금은 수십억 년 전에 있었던 초신성 폭발의 결과로 생긴 물질이다. 우리의 반지는 거대한 별이 폭발하고 소멸한다음 생겨난 잔류물인 것이다. 우리는 그 옛날, 별이 파괴되며 남은 것으로 서로에게 속한다는 약속을 했다.
우리가 우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우리 또한 초신성 폭발로 인해 생성된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이니까. 그렇다. 우리는 우주의 티끌, 우주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우주의 티끌이라 칭하기보다 우주의 불꽃 또는 섬광이라 부르면 어떨까? 우리는 우주의 암흑 속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 P118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을 느낀다. - P126

우리는 삶을 살아오며 수많은 공간을 마치 성난 바람처럼 지나쳐 왔다. 그리고 그 유령 같고 답답하기까지 한 바람에 관해선 입에 올리지 않는다. 우리 외에는 그 어떠한 영혼도 찾아볼 수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둑한 그림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가 섬뜩한 이유는 유령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바로 그 어둑한 그림자들 때문이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유령 그 자체가 아니라 유령이 존재하는 바로 그곳, 즉 세상의 또 다른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1우리는 결국 세상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곧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한 인간이라는 종에서 벗어나게 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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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기담 수집가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 지음 / 프시케의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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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삶이랑 닮았다. 저마다 삶이 있듯, 책마다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책과 사람 사이에도 눈물이나 웃음 같은 사연이 있다. 삶이 흐르듯 책이 가진 이야기도 흐른다. 같은 책이라도 젊어 읽을 때랑 나이 들어 읽을 때랑 느낌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

세상에는 참 책을 사랑하고 많이 읽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에 나오는 책들 중에 내가 읽은 책은 거의 없다. 읽으면서 이런 책도 있구나 이 책은 구할 수 있나 찾아보기도 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책은 많다.

이 헌책방 주인장은 고객이 원하는 책을 찾고 수수료로 책에 얽힌 사연을 듣는다. 꽤 재밌고 또 정말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다. 책 이름을 몰라도 내용을 듣고 책을 찾아주는 건 정말 대단하다. <꼬마 니콜라>를 찾는 부부의 사연이나,아버지가 추천해 준 책인 <바보들의 나라, 켈름>을 찾는 K씨의 이야기나, <켈케골의 종교사상>과 관련된 C씨의 이야기 등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재미있고 안타깝고 뭉클하다. 역시 실제 있는 이야기든 있음직한 이야기든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삶은 늘 아름답지 않다. 꽃을 피우는 비가 있고, 잎을 떨어트리는 비가 있듯, 겨울이 오면 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책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알고 있기에 때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여행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다. 어떤 시인이 그렇게 노래한 것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테니까. 그들의 우정도 이처럼 오래 아름답기를 기도한다. - P226

꽃은 싹트고 잎이 나오고 활짝 피어났다가 시들어 고개를 숙이는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내 인생에서 더는 싱싱한젊음의 아름다움 같은 건 없겠지, 라고 생각했던 일을 깊이 반성했다. 아름다움이란 어떤 한 시기의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더구나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한다면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인생은 보다시피 그렇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가 봅니다."
S씨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외우고 있었다. 이 문장 때문에 화가나서 책을 쓰레기통에 버린 일을 반성하는 의미로 똑같은 책을 찾아 이번엔 소중하게 간직하겠노라 다짐했다. S씨는 꽃과 우리 인생이 비슷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피고, 지고, 열매 맺고, 향기를 전하고………. 이 전부가 삶이 아니겠냐는 수수께끼 같은 얘기를 마지막으로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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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 보석과 여인 지만지 한국희곡선집
이강백 지음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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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들이다. 현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이야기들.

<파수꾼>은 권력에 관한 이야기다. 정보를 독점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중을 조종하는 촌장과 진실을 알면서도 ‘질서’ 유지를 위해 진실을 묻어버린 파수꾼 ‘다’. 파수꾼 ‘나’가 늘 겁쟁이더라도 단 한 순간 용기를 내면 용감한 사람이 되는거라고,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다’는 진실을 밝힐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리떼’는 없고 사람들은 공포에 시달리며 다리가 부러지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몹쓸 짓을 당하는데 그 ‘질서’라는 건 무엇일까. 결국 권력에 순응한 ‘다’는 다시는 마을로 돌아가지 못한다. 딸기 따기 어쩌고 그리운 추억 어쩌고 하는 촌장이 너무 끔찍하다.

<보석과 여인>은 환상 소설을 보는 기분이다. 뭔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나타나 ‘젊음’을 준다고 거래를 하자 한다. 완벽한 보석을 세공하게 된 ‘노인-그이’는 ‘남자’의 제안에 흥미를 보인다. 완벽한 보석을 만들기 위해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던 ‘그이’는 보석을 완성했으나 그 보석을 줄 사람이 없었다. ‘보석’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었던 거다. ‘진실’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 자체로 빛날 수는 없을까.

‘그이’는 완벽한 보석을 포기하는 대신 젊음과 사랑을 얻는다. 그리고 비로소 그 ‘완벽한 보석’이 완벽해지는 때를 만났다. 완벽하지 않은 삶을 살 것인가, 완벽한 순간을 맞이한 채 죽을 것인가. 하지만 사람마다 진실이나 완벽은 다른가보다. 여인에게 ‘그이’ 없는 ‘완벽한 보석’은 그저 돌덩이에 지나지 않으니까. 악마의 속삭임이란 게 참으로 무섭다.

나 : 누구였으면 하고 미리 정해 두지 않았단다. 그랬다가만일 틀린 사람이라도 오게 되면 실망할 것 같아서….
그런데 첫눈에 너를 보자 기뻤다. 그 순간 나는 정한거란다, 바로 네가 왔으면 하고, 내 뜻은 이루어졌다.
넌 그때 휘파람을 불며 왔었지??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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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2-23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수꾼>이 들어 있는 이이의 희곡집을 사 놓았는데, 기대하겠습니다! ^^

꼬마요정 2022-02-23 17:44   좋아요 1 | URL
짧지만 재밌더라구요. 골드문트님 기대에 꼭 부응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