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유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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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죽음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우리 가족은 모두 대구에 있는 장례식장엘 가야 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해도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창 재수할 무렵 친할머니가, 대학 다닐 때는 외할머니가, 휴학했을 때는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에게 ‘죽음’이 ‘이별’이란 걸 알려 준 죽음은 외할머니였다. 어릴 때부터 키워주신 분이라 정말 많이 울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고, 화장터에 관이 들어갈 때는 거의 숨 넘어갈만큼 울었더랬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입관할 때 들어갔다. 장례 지도사가 이마에 손 얹고 인사를 하래서 아무 생각없이 그런건가 싶어 돌아가신 분 이마에 손을 얹었는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차가움’이란 게 얼음처럼 차가운 것도 아니고 쇠처럼 차가운 것도 아니었다. 이 세상 차가움이 아닌 것 같은 그 소름끼치는 느낌… 이 때 내게 ‘죽음’은 공포였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전에 꿈을 꿨는데 저승사자가 나온 꿈이라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20대 초반까지 나에게 죽음은 이별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다.

그리고 또 맞이한 죽음은 ‘또래의 죽음’이었다. 같이 공부하던 후배가 두 명이나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 때 삶이 참 허망하다고 느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두렵다기보다 허무했다. 그리고 남겨진 부모님들의 절규는 진짜 심장을 후벼파는 듯 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그 분들의 눈물 앞에 괜히 죄책감마저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친구의 어머니, 아버지도 돌아가시는 등 장례식장만 매년 서너번 넘게 다닌 것 같다. ‘죽음’은 ‘삶’과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제일 처음엔 내가 보았던 ‘죽음’들이 떠올랐다. 여전히 나에게 죽음은 ‘객관화된 죽음’이었다. 알버트가 맞이할 죽음은 나의 죽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남겨질 이들이 얼마나 슬플지, 그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투병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면 그건 남겨질 이들에게 나름 준비할 시간이 되기도 한다. 문득 남편이 죽는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편은 우스개소리로 늘 서로보다 하루 일찍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막상 진짜 남편이 떠난다면 얼마나 슬프고 허전하고 이상할지 무서웠다. 역시 죽음은 무서운가.

그러다 내가 죽는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남겨진 고양이들이랑 남편은 어쩌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 나는 ‘나’보다 남겨진 존재들에게 마음이 가는걸까. 이런 집착은 슬프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테고, 남겨진 이들도 슬프지만 살아갈테니까. 난 이 세상을 살고 인연이 다하여 훌훌 떠나면 좋겠다. 하지만 내 몸이 마비가 되어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해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슬플테니까.

그러고보니 강신주님의 말처럼 2인칭의 죽음이야말로 무섭고 슬프고 아프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죽는다는 건 끔찍하게 두려운 일이다. 언제나 함께 할 것 같던 이의 빈자리는 얼마나 크고 어두울까. 그래서 알버트는 삶을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살고 싶은 마음이 에일린과 크눗을 움직여 기적을 만든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에일린이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기적을 불러온 걸까.

삶은 불꽃이고 순간적으로 강하게 번쩍이는 빛이다. 언제나 기쁘기만도 슬프기만도 하지 않다. 내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리 무섭지만도 않을텐데. 문득 <전쟁과 평화>에서 삶과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안드레이가 떠올랐다.

인간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내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우연일까?
우리는 화학적, 물리적 방식을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을까? - P102

금은 수십억 년 전에 있었던 초신성 폭발의 결과로 생긴 물질이다. 우리의 반지는 거대한 별이 폭발하고 소멸한다음 생겨난 잔류물인 것이다. 우리는 그 옛날, 별이 파괴되며 남은 것으로 서로에게 속한다는 약속을 했다.
우리가 우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우리 또한 초신성 폭발로 인해 생성된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이니까. 그렇다. 우리는 우주의 티끌, 우주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우주의 티끌이라 칭하기보다 우주의 불꽃 또는 섬광이라 부르면 어떨까? 우리는 우주의 암흑 속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 P118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을 느낀다. - P126

우리는 삶을 살아오며 수많은 공간을 마치 성난 바람처럼 지나쳐 왔다. 그리고 그 유령 같고 답답하기까지 한 바람에 관해선 입에 올리지 않는다. 우리 외에는 그 어떠한 영혼도 찾아볼 수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둑한 그림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가 섬뜩한 이유는 유령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바로 그 어둑한 그림자들 때문이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유령 그 자체가 아니라 유령이 존재하는 바로 그곳, 즉 세상의 또 다른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1우리는 결국 세상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곧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한 인간이라는 종에서 벗어나게 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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