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는 세계
김아직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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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로봇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은퇴한 노신부 레미지오는 비 오는 어느 밤, 병자성사를 요청 받는다. 병자성사를 요청한 신도는 루치아. 레미지오는 자신이 이제 늙고 치매 증상도 있어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던 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성사라 여기고 비 오는 거리를 헤치고 달려가 루치아에게 병자성사를 내린다.


성사를 받은 대상은 누구이든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인간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라든지 염소나 원숭이라든지 아니면 로봇이라든지 말이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오로지 인간이여야만 하는 걸까? 인간이 가장 잔인한 존재임에도 인간이기 때문에 천국의 문이 열려 있단 말인가. 


레미지오는 병자성사를 집전한 후 루치아가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임을 깨닫는다. 루치아가 자신은 그 자체로 유효한 은총의 예식을 받았으니 천국에 갈 수 있다 말하지만 레미지오는 계속해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너는 천국에 갈 수 없다 외쳤다. 기계가 갈 수 있는 천국을 찾아보든지. 


레미지오는 요양촌의 책임자인 묜시놀 유안석에게 자신이 로봇에게 성사를 내린 사실을 말한 뒤 사라졌다. 보수적인 기독교 종파의 일원인 유안석은 제이에게 사라진 로봇 루치아와 레미지오를 찾으라고 명령한다. 선택받은 자들의 도시인 메가시티에서 기억을 잃은 채 유안석의 수하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제이는 루치아와 레미지오를 찾으며 놀랍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가게 되는데...


인간이 로봇에게 성사를 내린 게 어째서 큰일이 되는걸까.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하고, 배척하는 것을 신의 뜻이라고 의미 지어 권력을 얻기 때문이겠지. 이것이 유안석이 몸담고 있는 근본주의 교회의 모습이었다. 중세 시대에 휘둘렀던 '마녀의 망치(말레우스 말레피카룸)'를 이 시대로 불러내어 '안드로이드'에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녀의 출현이었다. 감히 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자리를 탐냈다는 이유로 루치아 아니 루시는 근본주의 교회의 추격을 받았고, 보통의 생각과는 다른 사고 회로를 가지고 있는 루시는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해결하고, 제이는 자신이 거짓 세계에 살고 있었단 사실을 깨닫는다.


여자는 죄악이라고 생각하면서 제이를 이용하고, 일자리든 천국의 자리든 인간의 자리를 대체한다고 여겨지는 안드로이드는 죄악이자 마녀라고 생각하면서 강화인간을 만드는 그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 신이 있다면 그들을 칭찬하기는커녕 그들에게 가장 깊숙한 지옥에 자리를 마련해두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녹슬지 않는 세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듯 하지만, 난 그 미래가 너무나 가슴 아팠다. '영원'을 말할 만한 가치가 과연 존재하는 지 알 수 없었기에. '영원'은 결국 혼자 살아남는 것을 뜻할테니, 아끼고 사랑하던 모든 존재들을 떠나보내야만 할테니. 그리하여 인간의 천국에 들려던 로봇은 오히려 지상의 천국을 잠시 엿보고 영원의 지옥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면 그 '녹슬지 않는 세계'가 기계들의 천국일까.


세상에 '구원'은 있는지, 천국에는 누가 갈 수 있는지, 나는 어떤 '천국'을 꿈꾸는 지, 어떤 가치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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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6-27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해외 카툰을 봤는데요, 키우던 개가 죽어서 지옥을 갔는데, 거기에 주인이 있어서 행복해하는 내용이었어요. 그것처럼 안드로이드도 주인/친구가 있는 곳이 천국이지 않나 싶어요... ^^

꼬마요정 2024-06-28 16:50   좋아요 1 | URL
아아 주인이 있다면 그 곳이 천국이죠. 저도 만약 저희집 냥이들이 있다면 그 곳이 천국일거란 생각이 드네요 ㅎㅎㅎ 안드로이드도 주인이나 친구가 있는 곳이라면 천국일 거예요. 물감 님의 따뜻한 말씀 고마워요 ㅎㅎㅎ 마음이 훈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