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하이드 > 신의 물방울에 나온 와인 정리

 

 

 

 

 

 

 

 

 

 

1권

RICHEBOURG (리쉬부르) DRC (도멘 로마네 콩티) 1990년
RICHEBOURG (리쉬부르) Henry Jayer (앙리자이에) / 1959년
ROMANEE-CONTE(로마네 콩티) 1985년 (100만엔)
Aleth Le Royer-Girardin, Domaine Pommard 1999/2000년
Chateau Mouton Rothschild (샤토 무통 로칠드) 1982/1994년 - 그랑크뤼 1등급 (5대 사토중 하나)
Chateau Mont-Perat (샤토 몽 페라) 2001년
Opus One (오퍼스 원) 2000년
Chateau Leoville Las Cages (샤토 레오빌 라스 카쥬) 1983년 - 그랑크뤼 2등급
Chateau Pichon Longueville Baron (샤토 피숑 롱그릴 바롱)
VOSNE-ROMANEE CROS-PARANTOUX (본 로마네 크로파랑투) Henry Jayer (앙리 자이에)
RICHEBOURG (리쉬부르) Meo-Camuset (메오 카뮤제)
BOURGOGNE (부르고뉴 루쥬) Meo-Camuset (메오 카뮤제)
BOURGOGNE (부르고뉴 루쥬) Emmanuel ROUGET (엠마뉴엘 루게) 2001년
BOURGOGNE (부르고뉴 루쥬) FAIVELEY (페브레)
Hautes Cotes de Beaune (오트 코트 데 본 루쥬) Jayer Gilles (자이에 질) 2000년
Chambolle Musigny (샹볼 뮤지니 루쥬) 에쥬랑 자이에  
BOURGOGNE (부르고뉴 루쥬) 쇼바네 쇼팽 2002년
BOURGOGNE (부르고뉴 루쥬) 클로로 듀가 2002년
VOSNE-ROMANEE Les Jachees (본 로마네 레 잣세) Bizoi (장 이브 비조) 2000년
BOURGOGNE (부르고뉴 루쥬) 필립 사를로팽 파리조 2002년
Chateau Margaux (샤토 마고) 1988년 - 그랑크뤼 1등급 (5대 사토중 하나)
VOSNE-ROMANEE LES BEAUMONTS (본 로마네 레 보몽) Emmanuel ROUGET (엠마뉴엘 루게) - 1997년
MIANI (미아니) - 이탈리아와인 (후리우리주의 레어급 와인)
VOSNE-ROMANEE 그로 프렐 에 셀 2001년 (마을단위와인)
Echezeaux (에세조) 2002년

2권

VOSNE-ROMANEE CROS-PARANTOUX (본 로마네 크로파랑투) Emmanuel ROUGET (엠마뉴엘 루게) 1999년
Chateau dyquem (샤토 디켐) 1990년 (귀부와인의 최고봉)
Chateau Calon Segur (샤토 칼롱 세귀) 2000년
Chateau Mouton Rothschild (샤토 무통 로칠드) 1982년 - 그랑크뤼 1등급 (5대 사토중 하나)
Chassagne-Montrachet (샤사뉴 몽라세) - 부르고뉴지방 최고의 화이트와인
Chateau Mouton Rothschild (샤토 무통 로칠드) 2000년 - 그랑크뤼 1등급 (5대 사토중 하나)
Chateau Lagrange (샤토 라그랑쥬) 1996년
Le Haut-Medoc de Giscours (루 오메독 데 지스쿠르) 2000년
REDIGAFFI (레디가피) 2000년 - 이탈리아 와인
Tenuta di Trinoro (테누타 디 트리노로) 1999년 - 이탈리아 와인
le Macchiole Paleo Rosso (레 마키오레 팔레오 로소) 2000년 - 이탈리아 와인

3권

Chablis 1er Cru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 Verge (베르게) 2003년
Chambolle Musigny (샹볼 뮤지니) Alain Hudelot-Noellat (알랭 유드로 노엘라) 2000년
Saint Cosme (생콤) Cotes-du-Rhone (코트 두 론) Les-Deux-Albion (레 되 알비온) 2001년
Chablis Premier Cru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 Francois Raveneau (프랑소아 라브노)
Chablis (샤블리 마을단위) Louis Jadot (루이자도)
Coteaux du Layon (코트 드 레이옹) Moelleaux (모엘로) 1978년
Chateau La Mission Haut-Brion (샤토 라 미숑 오브리옹) 2001년
La Chapelle de La Mission Haut-Brion (라 샤펠 데 라미숑 오브리옹) 2001년 - 샤토 라 미숑 오브리옹의 세컨드
Le Pin (샤토 르팽) 1982년 - 뽀므롤 지방의 최고 와인 (시마부장에도 나옵니다)
Santenay 1er Cru (상트네 프리미에 크뤼) Clos Tavannes (클로 타반) 2002년

4권

Marsannay (마르사네 마을단위) Philippe et Vincent Lecheneaut (필립 에 뱅상 레스노) 2001년
Clos de la Roche Grand Cru (클로 드 라 로쉬 그랑크뤼) Philippe et Vincent Lecheneaut (필립 에 뱅상 레스노) 2002년
Chateau Latour (샤토 라투르) 1998년 - 그랑 크뤼 1등급 (5대 샤토중 하나)
Bellenda (베렌다) 2000년 - 이탈리아 와인
Canneto (칸테토) 2000년 - 이탈리아 와인
Roggio del Fillare (로지오 델 필라레) - 이탈리아 와인
Chateau Boyd-Cantenac (샤토 보이드 캉트냑) 2001년 - 그랑크뤼 3등급
Sanct Vallentin Alto Adige (생트 발렌틴 알토 아디게) Pino Nero (피노네로) 2000년 - 이탈리아
Ata Rangi (아타랑기) 2001년 - 뉴질랜드 와인

5권

Nuit-St-George 1er Cru (뉘 생 조르쥬 프리미에 크뤼) Henry Gouges (앙리 구쥬) 2000년
VOSNE-ROMANEE (본 로마네 마을단위) Bizot (비조) 2002년
Chambolle Musigny (샹볼 뮤지니) Jacques Frederic (쟈크 프레드릭) 2001년
Chambolle Musigny 1er Cru (샹볼 뮤지니 프리미에 크뤼) Les Charmes (레 샤름) Michele & Patrice Rion (미셸 에 파트리스 리옹) 2001년
Bonnes-Mares Grand Cru (본 마르 그랑크뤼) Robert Groffier (로버트 그로피에) 1999/2001년
Chateau Lynch Bage (샤토 린슈 바쥬) 1983년 - 그랑크뤼 5등급
Pavillion Blanc du Chateau Margaux (빠삐용 블랑 드 샤토 마고) 2002년

 http://cafe.naver.com/winenjoy.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11
여기도 펌이던데, 어느 고수께서 작성하셨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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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실비 > 2006년 실비의 이벤트 개시!!

오래만에 이벤트 하겠습니다..
요즘 꿀꿀 하기도 하과 이런저런일이 계속 생기고 있어서 좀 그렇지만..

이제 알라딘 한지 1주년 도 다가오고 10000hit도 다가오네요^^

그래서 2가지를 할려고 합니다.

1. 당연히 10000hit 잡아주시면 됩니다.
   첫번째 잡아주시는 분과 마지막으로 잡아주시는분. 시간은 2분안으로 제한할게요.
    만원상당 책선물 할게요^^
   이번주 안으로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될려나 싶네요.
   숫자가 가까이 오면 페이퍼를 만들터이니 거기다 잡아주시면되요.

2. 삼행시 짓기!!!
   실비네(내) 로 삼행시를 지어주시면 됩니다. 
   '네'자가 별로 없는것 같아서 '내'로 하셔도 되요. 그러면 한결 수월하겠죠?^^
   추천수 가장 많은 분과 한분은 동생맘대로 뽑겠습니다.
   동생보고 뽑기를 하든 보고 뽑아달라고 할거여요. 그러니 동생 맘이겠죠?ㅎㅎ
   두분께 만원상당의 책선물 할게요.
   페이퍼 보시면 실비에게!! 라는 페이퍼에다가 써주시면 되요.
   요즘  엽서가 뜸해서  써주시면서 한번더 써주시지 않을까 싶어그럽니다.
   1월 19일 목요일 밤 12시까지 받을게요. 그 다음날이 1주년 되는날입니다.^^

이제 벌써 1주년이라니 시간이 빠르네요..
여기서 님들을 알게 되서 너무 기뻐요.. 저한테 많은 힘이 되주셔서요.
힘들때 걱정해주시고 기쁠때 같이 기뻐해주시고 아마 평생 여기서 살것 같습니다.
많이들 퍼가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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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프랑스 소요 사태가 말하는 것

프랑스 소요 사태가 말하는 것
-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와 법질서는 폭력의 악순환을 부른다


 

소요사태의 책임은 국가와 경찰, 그리고 지배계급에게 있다

지난 10월 27일, 이슬람 신도들이 한 달 동안 낮 시간에 금식을 하는 라마단의 마지막 날, 주민 중 실업자가 50%에 달하고 어린이의 반수가 유급을 경험하며 불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고 경찰의 무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불심검문이 아이들에게 생애 최초의 굴욕과 증오를 가르치는 파리 방리유(외곽도시) 클리시 수 부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내무장관이 10월 19일 교외 폭력 행위에 ‘가차없는 전쟁’을 치르겠다고 선포한 이래 경찰 검문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늦게까지 공놀이를 하던 이민자 2세 청소년들은 모욕을 피하고 한 달간 주린 배를 한시라도 빨리 채울 생각에 우회로를 택한다. 경찰과 마주친 이들은 달리기 시작하고 이들 중 두 소년 지에드(17)와 바누(15)는 송전소 담을 넘다가 변압기에 떨어져 감전사한다.

프랑스 언론은 “주변에 일어난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이들 소년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을 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는 경찰의 주장을 일제히 보도한다. 그러나 당일 주변 지역에서 절도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방리유 젊은이들은 분노한다. 사고 발생 다음날 밤, ‘경찰의 살인적 추격 작전’을 규탄하며 400여 명의 젊은이들이 250-300여 명의 경찰과 대치한 가운데 실탄이 경찰차에 날아들고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 다음날, 클리시 수 부아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과 희생자 가족 등 500여 명이 비폭력 침묵시위를 벌이고,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상황은 없는 등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

그러나 10월 30일 밤, 사르코지는 소년들의 죽음에 대한 경찰의 책임을 부인하고, 도시 테러를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더 이상 순찰의 문제가 아니다… 체포다”라는 등 강경 발언을 내놓는다. 이와 함께 지난달 25일 또 다른 방리유 아르장퇴유에서 무슬림들을 쓰레기라고 모욕한 사르코지의 발언이 저녁뉴스 시간에 수 차례 방송된다. 이에 더해 사르코지는 소요현장을 초강력 분무기로 청소할 것을 주문하면서 방리유 주민들을 다시 한번 쓰레기 취급한다.

이처럼 명백한 도발에 분노하며 화염병과 돌을 든 방리유 젊은이들이 다시 거리로 나온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소규모 그룹을 이룬, 14-20세의 마그레브나 아프리카 본토 출신 이민자 자녀들로 구성된 젊은이들의 산발적 방화와 약탈이 늘어난다. 파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22개 교외 소도시들로 소요가 확산되고, 11월 6~7일 밤은 자동차 1,400대가 방화되고 400명이 체포된다. 파리 근교에 한정됐던 혼란은 디종을 시작으로 지방 도시까지 번져 226개 마을에서 1,173대의 차량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며, 심지어 독일과 벨기에 대도시의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프랑스 소요사태의 모방범죄로 보이는 차량방화 사건이 발생하여 전 유럽이 긴장한다.

전국적인 소요사태가 13일째 계속된 11월 9일 프랑스 정부가 본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비상사태령을 선포한다. 야간통행금지, 집회와 결사 금지, 영장 없는 단속·체포·체포·언론·출판 통제·거주지 제한 등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항목으로 이루어진 비상사태법은 1955년 프랑스 식민지이던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정부가 2-3세대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을 식민지 신민으로 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방도시들에는 산발적인 소요가 이어지고, 경찰은 에펠탑과 샹 젤리제 대로 등 주요 지점을 위주로 삼엄한 경계 활동을 펼친다. 한편 파리 라탱 구역에서는 좌파 및 노동 단체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열려 정부의 비상조치 발동을 비판하고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한다.

한편 사르코지는 9일 하원회의에서 이번 소요사태에 관해 유죄 판결을 받은 외국인은 체류의 합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추방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피고인이 동일범죄에 대해 이중으로 형사처벌받을 위험을 방지하는) ‘이중위험’(double jeopardy) 금지의 원칙을 드러내놓고 비웃는다. 소요사태를 계기로 “외국인 전원추방”을 주장하는 극우파들도 목소리를 높인다. 11월 8일 『르파리지앵』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3%는 야간통금에 찬성한다. 또한 여론조사기관 CSA에 따르면, 강경발언으로 논란이 된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우파성향의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는다. 우파 정당 프랑스운동(MPF)의 필립 드 빌리에 당수는 “통금령을 실시하고 군대를 투입하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또 1980년대 중반 ‘이민자 2백만, 실업자 2백만’이라는 악명 높은 선거구호로 반(反)이민운동을 선도하고 2002년 대선 결선투표 진출로 기염을 토했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은 이민자 대량 유입이 프랑스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자신의 경고가 옳았던 것으로 입증됐다면서 “프랑스 신분증이 있다고 다 프랑스인이 아니다.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민자들은 그들의 원래 나라들로 돌려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전선의 신입당원 담당 부서는 사태 발생 이후 1천여 명이 새로 가입했다고 밝힌다.

며칠 동안 침묵하던 시라크 대통령의 첫 발언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법질서를 존중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빌팽 총리는 11월 8일 오후 하원에 출석해 “프랑스가 진실의 순간을 맞았”으며 “우리 통합 모델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은 부분적으로는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이민정책에 있다”면서 불법 이민을 더욱 강력하게 금지하겠다고 밝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질서와 경찰논리는 모든 사회쟁점과 갈등을 압도하는 절대선의 자리에 등극한다. 시라크는 “공공질서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질서 회복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랜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부시 역시 테러와의 전쟁이 ‘끝없는 전쟁’이며 인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주 문제’ - 사회 위기를 전가하기 위한 희생양

이번 프랑스 소요사태의 중심에는 이른바 ‘이주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주 문제’라는 말은 그 자체로 심각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실업, 빈곤, 주거, 사회갈등, 범죄, 교육, 동일성, 보건, 복지 등 여러 사회 문제들이 ‘이주자’들의 존재 때문에 생겨나거나 악화되었다고 진단하고, 따라서 이주자들을 추방하거나 경찰적·행정적 수단에 따라 관리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처방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주자들은 전간기(戰間期) 유럽 특히 독일에서 유태인의 지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민족적 나아가 유럽적 동일성을 위기에 빠뜨리고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불순물로 전시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난 20년 간 프랑스 정부는 이주자를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조직된 비행’으로 간주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억압적·굴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 쪽으로 점점 더 이끌렸다. 좌우 간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좌우파 간 격렬한 경쟁의 특권적 대상으로 등극했다. 1990년대 후반 미등록 이주자의 거대한 투쟁 앞에서 법과 행정부의 권위를 강압한 것은 다름 아닌 ‘좌파 총리’ 조스팽이었다. 그 이후 좌우 양편에서 ‘세계화’의 경제적 힘, ‘범죄적’ 이주 네트워크, 경제적 또는 문화적 특수주의, 마지막으로 ‘탈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홀린 관념적 지식인과 단체가 뿌리째 흔들고 있는 민족주권 및 ‘공화국’을 수호하자는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확고해진다. 이 이데올로기의 특권적 공격 대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주자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주권이다. 즉 국가가 자임하는 ‘주권’과 경제정책·집단안보·정보기술 등에 관해 국가가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무능력이 대비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극히 무력한 이주자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권위가 건재하다는 허구를 상연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권위적으로 잠재우려는 것이다. ‘폭력’과 ‘치안’ 담론의 득세는 정확히 이 맥락 위에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신자유주의 반혁명이 시민권을 축소시키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다. 이를 시민권의 보편적 확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의 권리가 열등하고 취약하며 기존 사회에 통합되었다는 징표를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따라서 르펜과 사르코지가 말한 것처럼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주자들은 신분증이 있더라도 추방될 수 있다는 것)을, 외국인 특히 ‘남반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가행정 전반의 ‘제도적 인종주의’를 통해 전시함으로써, 민족 구성원의 시민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는 안도감을 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의 뿌리로서 식민주의 동화 담론 - 되돌아온 식민주의 유산

현재 국가행정 전반에 확대되는 ‘제도적 인종주의’는 제국주의/식민주의 유산을 직접적 뿌리로 한다. 우선 현재 알제리와 같은 과거 (반)식민지 영토 출신 노동자들에게, 나아가 이른바 ‘남반부’ 노동자들 전반에게 적용되는 행정적 조치와 관행은, 프랑스 국가장치 형성의 결정적 시기에 식민지 영토에서 ‘토착’ 인구를 대상으로 집행된 정책을 그 기원으로 한다. 방리유에 대한 도시 정책이 그렇고, 무엇보다 이번에 발동된 비상사태법이 그렇다.

또한 이주 문제의 해결책인 양 제시되는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조차 기실 제국주의적인 동화 담론에서 연원한 것이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통합과 차별(화)라는 통념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특수, 공/사의 위계와 유비할 수 있는 위계를 이룬다. 이 위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공화주의’라 불리는 프랑스 민족성으로, 여기에 통합되는 정도에 따라 ‘문화’와 ‘종족(성)’이 차별적으로 범주화되어, 예컨대 ‘공화국 시민’과 ‘이등 시민’, 그리고 ‘불법 이민’이 분할된다. 역사적으로 이 같은 위계의 목적은 식민지 토착민이 새롭게 해방된 시민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특수하고 사적인 것으로 분류되는 집단들에 대한 물리적·상징적 폭력 및 그로 인한 갈등 가능성을 포함한다.

한때 사라지거나 약화된 줄 알았던 이 같은 (재)식민화 경향은 그동안 잠복해 있다가, 80년대 들어 경제적 세계화와 새로운 불평등의 효과를 배경으로 재출현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는 세계 및 인류에 대한 고정관념 유포, 특히 남반부 인민들에 대한 체계적 평가절하였다. 세계 속에서 그들이 차지한다고 여겨지는 위치는 특정 국가 안에서 그들이 점해야 한다고 간주되는 위치로 번역되어 할당된다. 이는 각각의 인종이 고유한 문화를 가지는 바, 이를 보호하려면 문화들이 섞이지 않게 하고 ‘문화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순수주의적 고립주의, 반-인종주의를 후방으로부터 공격하는 이른바 ‘차별화주의적’ 신-인종주의와 결합한다. 이에 따라 남반부 출신 시민들은 주로 도시나 교외의 게토로 분리수용되거니와, 이곳에서는 식민지 점령지에서 실행되는 행정조치가 집행되고, 종종 적나라한 경찰 폭력이 지배한다. 소요가 일어나기 전 클리시 수 부아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남한에서도 전혀 예외가 아니어서, 국가는 이주노동자들을 영장 없이 강제단속하고 고무총으로 탄압하며, 수갑과 쇠사슬을 휘감는다.

이렇듯 화려하게 부활한 식민주의의 인종 분할은 보충적인 사회적 효과를 갖는다. 우선 경제적 면에서 볼 때, 인종 분할에 기초한 노동시장 분할은 상당한 정도의 자국 노동력이 (비록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입헌화’된 사회적 권리와 조절에 의해 보호받는 시기에, 자국 노동자들에게 경향적으로 금지된 과잉착취를 보충하는 한편 이들을 압박하는 전통적인 ‘산업예비군’을 재생산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유럽연합, 특히 중심국들은 이주의 흐름을 막을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들은 유럽연합 중심국과 주변국, 또는 유럽연합에 속하지 못한 유럽의 주변국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유지함으로써, 낮은 임금과 혹독한 규율, 극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주변국 노동자들이 회원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강제한다. 유럽의 주변국은 더욱 빈곤해지고, 이 빈곤을 피해 중심국으로 들어온 노동자들은 ‘중심 안의 주변’, ‘제 1세계 안의 제 3세계’를 형성한다. 프랑스 방리유보다 이 말에 잘 들어맞는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방리유는 프랑스 곳곳에, 그리고 유럽 도처의 ‘경계지대’에 있다.

이리하여 개별 국가 안에서 ‘소수자’인 이주자들이 전 유럽 차원에서 보면 유럽연합의 ‘16번째 회원국’이라 불릴 정도의 ‘다수자’로 등장한다. 각 국가들이 이주자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 특히 이번 소요사태를 두고 전 유럽이 확대가능성에 대해 긴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주자를 1848년 당시 마르크스가 유럽을 배회한다고 말한 ‘유령’, 각국의 지배계급을 공포에 떨게 만든 ‘위험계급’과 비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로 이 같은 정치적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 인종 분할의 정치적 효과다. 즉 외국인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 간,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 간의 인종 분할을 통해, 이주자들이 전통적인 계급투쟁 형태에 참여하거나, 사회적 관계가 초민족화하는 맥락에 맞게 새로운 형태를 발명해 내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분할선을 사이에 두고 분할선 이 편에 있는 방어적 대중운동은 현재 위기의 원인뿐만 아니라 그런 위기를 무력하게 겪는 스스로에 대한 절망과 미움을 분할선 저 편의 이주자들에게 투사한다. 이는 현재의 위기를 상상적으로 회피하려는 노력으로, 이 같은 정서가 강력한 한에서 대중들은 국가가 이주자들에게 가하는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능동적으로 동참한다. 분할선 저 편에서 이주자들은 공적 영역에의 접근, 표현의 자유와 투쟁의 가능성이 금지되고 게토에 감금되며, 개성화와 사회화를 동시에 억압받고 따라서 식민지 상황에서 그런 것처럼 개인적·집단적 자유의 쟁취를 제약받는다. 이주자들의 정치적 진출이 이들의 억압과 배제 곧 ‘비권리’에 기초한 착취 가능성 및 사회적 다수자의 지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의가 프랑스의 공적 생활을 기초하고 있다. ‘진실의 순간’ 운운에도 불구하고 빌팽 총리의 발언이 비길 데 없이 위선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주자들을 끊임없이 불법 상태로 내모는 것이 기존 프랑스의 ‘사회통합’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이주자들의 불법 상태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다시 한번 배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착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프랑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프랑스와 동일한 불의에 기초한 모든 국가와 사회에 확산될 잠재력을 갖는다. 우리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유럽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바꿔 놓는 거대한 ‘사건’을 막 지난 것인지도 모른다.

 

갈등의 범죄화는 더큰 불의와 폭력을 부를 뿐이다

프랑스 소요사태는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경제위기와 세계화 속에서 계급간·지역 간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되는 한편 기존의 민족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 그 원인을 적합하게 인식하고 발본적으로 변혁하기보다 방어적이고 행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생겨난 극단적 결과다. 신자유주의가 불평등과 배제를 심화시킴과 동시에 이렇게 발생한 문제를 행정적·경찰적으로 다루는 ‘배제에 기반한 관리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는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날부터인가 ‘정치논리와 이념’을 배제하고 ‘시장원리와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민생정치’와 ‘사회적 합의·통합’에 주력하자는 담론이 좌/우, 진보/보수세력을 막론하고 세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프랑스 소요사태의 구조적 원인이 되는 관리주의의 핵심 논리로, 이는 정치를 말의 강한 의미에서 ‘통치’와 ‘치안’으로 타락시킨다. 관리주의는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종언’, 즉 계급투쟁과 여타 갈등 형태의 정당성을 발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치 적어도 민주주의 정치가 갈등의 생산성을 인정한다면, 행정의 논리는 갈등을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가운데 합의와 통합을 지향한다. 그러나 갈등과 근본적 차이에 대한 몰인정 및 법질서적 접근, 결국 갈등과 차이의 범죄화는 자신들을 그 상태로 밀어 넣은 지배계급과 엘리트에게 오히려 쓰레기 취급을 받는 대중들의 격분을 초래한다. 만일 대중들에게 어떤 정치적·공적 해결책도 주어져 있지 않다면, 대중들은 종종 극단적이고 자기파괴적이며 ‘주소 없는’ 폭력을 통해 존엄성의 침해에 대한 격분을 표현한다. 이번 프랑스 소요 사태에서 우리는 이 같은 대중들의 분노를 목격한다.

하지만 이 같은 분노는 역설적으로 법질서적이고 경찰적인 논리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흡수된다. 실제로 이번 사르코지의 대응에서 보듯, 경찰논리의 대변자들은 갈등을 범죄화하여 대항폭력을 도발한 후, 그렇게 유발된 대항폭력과 이 폭력에 대해 느끼는 대중들의 불안에 힘입어, 이른바 ‘예방폭력’으로서 자신의 폭력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한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 시민들의 70% 이상이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찬성하고, 법질서적 접근을 지지하며, 르펜당에 며칠 사이 1000명 이상 가입하는 것을 보라.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지배계급들이 취약한 정당성을 보충하는 방식이다. 또한 갈등을 ‘법질서’를 해치는 ‘범죄’로 바라봤을 때, 우리 스스로 빠질 수 있는 반동화의 위험이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것은, 이 사건으로 등장한 대중들의 비참한 조건을 법질서와 경찰논리의 이름으로 억압하고 은폐하지 않으면서, 똑바로 대면하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으로,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절망적인 외침에 응답하면서, ‘사회통합’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배제한 기존 사회를 변혁하고, 그 사회 안에서 안락하지만 불의한 지위를 부여받았던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점점 더 야만적이고 경찰적으로 변하는 국가 개입이 일종의 ‘상수’로서 개입하여, 대중들의 분노 및 폭력의 악순환을 도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의 과제와 함께 무엇보다 긴급하게 제기되어야 하는 것은 법질서와 경찰을 앞세워 폭력을 악화시키는 국가와 지배계급의 폭력에 맞서는 것이다. 이는 이미 벌어진 사안에 대한 대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의 전개를 선제적으로 규정하는 폭력의 구조 자체에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클리시수 부아의 비극, 우리 사회에서 더 비참하게 고통받고 모욕당하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우리가 져야 하는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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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 > 제1회 서재질 향상을 위한 대토론회

지난 월요일, 저녁 7시부터 ‘서재질 향상을 위한 대토론회(1)-페이퍼는 어떻게 쓰는가?’가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391명의 서재인이 참가한 이 토론회는 원래 강의 1시간, 토론 1시간으로 예정되었지만 워낙 참석자들의 열기가 뜨거워 예정을 훨씬 넘긴 밤 11시에 종료되었다. 현장 스케치를 잠깐 해본다.


-7시, 신밧드님 개회사. “알라딘 서재를 지키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알라딘의 보배”라고 한 신밧드님은 “서재폐인들이 많다던데 알라딘에 손해배상을 요구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7시 5분, 파란여우 특강. ‘강의를 듣고 싶은 알라디너 1위’에 뽑힌 여우님은 “추천받는 페이퍼를 쓰는 요령”에 대해 15분간 열강을 했다. 여우님은 툭하면 터져나오는 기립박수 세례에 몇 번이나 강의를 중단해야 했다.

[...사람들은 털달린 동물 얘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늘 염소 얘기를 우려먹는 것도 다 이유가 있죠. 그리고 일상의 얘기를 쓰더라도 그럴듯하게 포장해야 합니다. 술먹고 속이 아프다는 것도 그냥 “술먹고 몸져 누웠다”고 쓰는 것보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 당연히 죽음같은 밤을 보내고 여명이 터 온다.”라고 쓰면 훨씬 더 생동감이 있잖습니까. 여기서 ‘여명’은 중국 배우 여명을 뜻하기도 하고, 날이 밝아옴을 뜻하기도 하는 일종의 중의법이지요. 이런 단어는 가끔 한번씩 써줘야 합니다...]


-7시 20분, 플레져님 특강. “분위기 있는 서재인이 되는 비결”을 강의함.

[...제가 글을 좀 쓰긴 하죠. 하지만 분위기라는 건 글만 가지고는 안되요. 자신의 미모를 가끔씩 내세울 필요가 있어요. 얼마 전 제가 쓴 ‘홍콩 로맨스’라는 페이퍼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어요.

신사(스페인 사람)는 조금 머뭇거리면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뷰티풀 우먼 안녕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절 스페인에서도 통하는 이국적인 미모를 갖춘 여인으로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런 글도 썼었죠.

아저씨가 나를 힐끔 거리면서 거스름돈을 쥐어주고는 내 귀에 속삭이기를,

‘연예인이죠? 요새 그... 뭐더라, 거기 나오는  그...’”

사람들은 미모와 지성이 결합되었을 때 신비감을 느낍니다. 가장 예쁠 때, 어릴 적도 괜찮아요. 그때 들었던 찬사를 글에 섞는 거죠. 가끔씩은 자신의 미모를 자랑합시다]


-7시 35분, 야클님 특강. “유머있는 페이퍼를 쓰는 요령”을 강의함.

[...사실 제가 유머를 강의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하긴, 요즘 마모님 유머에 많이들 식상했죠(웃음). 유머는 노력이 아니라 순간의 재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해요. 마모님이 엄청난 노력을 들여가며 웃기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주말에 선을 보는데, 그 여자의 목소리가 굵다는 걸 이렇게 표현했어요.

소개녀: (굵은 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네, 접니다."

켁~~~ 거의 남정네 목소리닷! 내가 남자한테 잘못 걸었나 헷갈릴 정도로.

차마 목소리 굵다는 말은 못하고 이런 저런 우스갯소리 몇번 했더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

소개녀: (굵은 바리톤으로)"껄껄껄~~~^^ " 

주말이 별로 기다려지지 않는다. 설마 Adam's apple까지 있는건 아니겠지... 

이런 게 바로 촌철살인의 유머입니다. 하다못해 목욕탕에 가더라도 웃길 소재가 없는지 머리를 굴립니다. “나이 든 아자쒸들 탕속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는 건 이해가 가는데..... 가사도 없는 이상한 정체불명의 노래(우오~~♬~허어~~하는 일종의 허밍)는 왜  하는걸까?(남탕에서)” 이거, 공감도 가고 웃음도 주잖아요? 또하나 중요한 게 댓글 달 때 좀 유머있게 다는 거예요. 파란여우님이 <불륜과 남미> 리뷰 쓰셨을 때, 제가 댓글 이렇게 달았어요.

야클
<불륜과 미남>의 오타가 아닐까요? 그래야 앞뒤가 맞는데.... =3=3=3 - 2005-10-11 21:17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모든 사물에 유머의 소재가 있고, 모든 페이퍼에는 웃긴 댓글의 소재가 될만한 게 있습니다...]


 

-7시 50분, 클리오 특강. “논쟁거리가 되는 페이퍼를 쓰는 요령”

[..제가 이 자리에 선 건 얼마 전에 쓴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때 추천 12개랑 댓글 52개 받았는데... 제목부터 뭔가 좀 있어 보이죠?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는데, 사실은 제 야심작이었죠. 연애와 결혼생활에 관한 글인데, 이 글이 그토록 화제가 되었던 건 무엇보다 솔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표현을 제가 멋들어지게 했죠. “그는 결혼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다른 사람이 보는 모습은 공식적인 모습이다.” 이런 구절들, 사실 제가 썼지만 멋있잖아요? 이런 걸 쓰려면 평소에 멋진 말들을 잘 기억해 놔야 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게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었고, ‘이주의 페이퍼’에도 뽑히고 그래서 보람은 있었습니다...]


-7시 58분, 하이드 특강, “대박 이벤트를 만드는 법”

[... 이번에 ‘현대 알라딘인 생활백서’ 때문에 불려온 것 같은데요, 이거 덕분에 이번주 서재순위 1위는 맡아놓은 것 같습니다(웃음). 요령은 간단해요. 맨날 알라딘에 뭘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TV 광고에서 본 게 생각이 났던거죠. 그게 나중에 보면 쉬워 보이지만, 사실 어렵거든요. 그 시리즈가 아마 50번을 넘겼죠 지금? 서재 탄생 이래 최고의 이벤트라는 평을 듣고 있다더군요(웃음). 중요한 건 평소에 늘 생각을 해야하는 거해요. 얼마 전에 알라딘 공사 재개가 예정보다 다섯시간 가량 늦어졌어요. 그때 상어떼처럼 기다리고 있다 접속을 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그러다 이번주 또다시 공사를 한다는 말을 듣고 대번에 이벤트를 생각해 냈죠. “알라딘이 정상화되는 건 몇시일까요?” 아, 이거 아주 인기였어요. 생각을 많이하다 보면 이렇게 건수가 생기는 법이죠...]

 

 

-8시 11분, 토론회 시작. 바람구두님 사회를 봄. 강사들이 교대로 답변해 줌.

바람구두: 어느 분야든지 궁금한 게 있으면 기탄없이 질문해 주십시오.

가을산: 서재달인 순위 정할 때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따지는가요? 하도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찌리릿: 월요일 아침 6시부터 일요일 아침 5시까지 쓴 걸 계산해서 월요일 6시에 발표를 하죠. 일요일 쓴 게 성적에 안들어간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시장미; 강사는 어떻게 정한 건가요? 제가 빠진 걸 이해할 수 없네요.

바람구두: 서재지수가 높은 분들 중 투표로 정한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시장미: 야클님하고 저하고 100점 정도밖에 차이가 안나는데, 이건 좀 납득할 수 없거든요.

물만두: 맞아요. 서재지수 하면 또 저 아닙니까. 저도 하고 싶은 말 많습니다.

바람구두: 저, 웬만하면 페이퍼 잘쓰는 법에 대해서 질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인터라겐: 알라딘도 예스처럼 특정카드로 결재하면 2천원씩 할인해 주면 안될까요?

신밧드: 그건 얼마 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영엄마: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알라딘 분들은 게임에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요. 임요한 얘기 부지런히 올려도 댓글이 거의 없어요.

icaru: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치카: 추천의 공정성이 의심될 때도 있어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책 리뷰에다 할머니랑 밥먹은 얘기 써놨는데 추천이 20개가 넘게 달렸더라구요.

salt: 맞아요. 저도 그때 추천은 했지만, 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바람구두: 저... 웬만하면 페이퍼 잘쓰는 것에 대해서 얘기해 주시면...

올리브: 홍콩에서 막 왔습니다. 페이퍼를 잘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파란여우: 그건 강의 때 다 얘기했는데 이제와서 그러시면....

야클: 미국에 있는 마냐님한테 여쭤보면 어떨까요?

검은비: 유명 서양화 말고, 제 그림에도 좀 관심을 가져주면 안될까요?

sweetmagic: 맞아요. 제가 my pig이라는 시리즈를 300편 이상 올렸는데, 댓글이 너무 안달려요. 속상해 죽겠어.

바람구두: 저 웬만하면 페이퍼 잘쓰는 것에 대해서 얘기해...

서림: 야클님께 질문합니다. 어떤 식으로 유머를 훈련하셨나요?

야클: 그게요, 이 자리에서 쉽게 말씀드릴 수는 없구요, 나중에 페이퍼에 시리즈로 올릴께요.

매너리스트: 꼭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좀 어려워서...

stella09: 바람구두님께 질문 있어요.

바람구두: 전 사회자구요, 질문은 강사 분들한테 하세요.

stella09: 그럼 없어요.

kelly: 파란여우님께 질문합니다. 물마시는 데도 요령이 있는 거 아세요?

수암: 야클에게 질문하오. 내일 뭐입지?

박예진: 클리오님, 중학교 가면 그렇게 힘들어요?

하날리: 제가 “그녀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라는 페이퍼를 올렸는데요, 누구를 지칭하는지 아는 사람?

하이드: 전가요?

세실: 왜 서울에서만 이런 모임을 하나요? 청주에서도 한번 해요. 버스 시간 때문에 전 이만!

검둥개: 클리오님께 질문합니다. 해리, 귀엽지 않나요?

과일이좋아: 전 사실 과일 싫어합니다.

쥴: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얘기하지 말고, 쥴 섭시다!

갈대: 여자 마음은 정말 갈대인가요?

바람구두: 이 사람들이 정말.... 페이퍼 잘쓰는 것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구요.

조선인: 저는 페이퍼의 수준에 비해서 추천이 늘 부족해요. 이유가 뭔거 같아요?

멍든사과: 제가 대답해도 될까요?

조선인: 아니요.

진주: 하이드님께 묻습니다. 알라딘인 생활백서, 제가 쓴 게 가장 뛰어나지 않습니까?

놀자: 진주님, 나랑 놀아요!

판다: 배고파. 죽순 먹고 싶어!

실론티: 차라도 한잔 줄까요?

꼬마요정: 이 돌을 죽순으로 만들어 주겠소! 변해라, 얍!

투풀: 저도 질문하고 싶어요. 근데 뭘 질문하려고 했더라?

실비: 참가비 냈으면 과자라도 좀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삶은달걀: 예를 들면 달걀이라도...

토토랑: 저보고 토토로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지 마세요.

부리: 저 청소해야 하는데 이만 끝내주시죠.

돌바람: 많은 분들이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설적인 의견도 여럿 나왔던 것 같습니다. 오늘의 모임이 여러분이 폐인이 되는데 일말의 도움이라도 줬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kimji: 근데 왜 마지막 멘트를 돌바람님이? 혹시 주주세요?


* 미처 입장을 못한 로렌초, 별사탕, 참나 등 몇몇 서재인들은 토론회가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농성을 벌였고, 알라딘 사장 신밧드님으로부터 1,000원 쿠폰 한 장씩을 받고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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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야클 > 경제학을 전공하려는 J양에게

얼마전  타계하신 정운영교수님의 글입니다. 제일 처음 접한 고인의 글이 아마 이 <경제학을 전공하려는 J양에게>라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이후로 정운영 교수책은 나올때 마다 전부 사서 읽었구요. 애독자로서 참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지금 읽어 보아도 정말 명문입니다.

 

<경제학을 전공하려는 J양에게>

J양에게!
  "
중국에 대해 기행문을 쓰려거든 그곳에 도착한 지 사흘 이내에 쓰시오." 라는 어느 서양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흘이 지나면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물과 조금씩 친숙해지면, 오히려 점점 더 당황하게 되어, 마침내는 붓조차 들지 못한 채 그 시도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를 염려해서 일러 준 말이겠지요. J양이 잡지사로 보낸 편지를 전해 주면서 편집자는 나에게 '가장 자상하고 가장 친절한' - 말하자면 최상급의 형용사가 두 번이나 반복되는 - 회답을 부탁했지만, 아무래도 이 편지가 수신인을 잘못 짚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편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J양은 아마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으로서 경제학이란 그 '삭막한' 느낌의 학문을 - 실제로 토마스 카알라일은 "경제학은 우울한(dismal) 학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 전공으로 선택해도 좋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생이라는 나무는 그것을 가꾸는 과정의 인고(忍苦)가 그 열매를 따는 순간의 희열보다 더 소중한 법이니, 지금의 고민에서 쉽게 도피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과 적극적으로 대결하십시오. 내용은 다르나 내게도 지금 그와 비슷한 고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경제학을 하나의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예컨대 한 권의 소설책을 덮으면서 던질 수 있는 '재미있다'거나 '지루하다'라는 식의 즉흥적인 감상을 그대로 경제학에 옮기는 일이 결코 용이하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대해 기행문을 써야 할 한 서양인의 당혹과 곤란이 '잘못된 수신인'에게 하나의 현실로서 다가선 셈입니다.

  경제학이라는 말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상은 아마 ''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밥그것이 빵이나 스파게티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 경제학입니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라는 철학자는 "인간이란 요컨대 먹는 존재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만, 실상 이 지극히 평범한 발견이야말로 경제학이 성립하는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블라디미르 두진체프의 소설 제목은 아주 지당하고 매력적인 말씀이나, "밥 없이 살 수 있는 녀석이 있으면 나서 보라"는 투박한 항의 또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이미 짐작했으리라 믿으나 밥은 그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한 보따리의 소비재일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밥은 한 사회의 발전과 쇠퇴를 규정하는 최초의 요인입니다. 따라서 그 밥을 어떻게 만들고 또 어떻게 나누느냐는 방식에 따라 그 사회의 문화가 형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밥을 만드는 행위를 경제학에서는 '생산'이라고 합니다. 이 생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토지나 천연 자원과 같은 '노동도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일정한 조직과 통제 아래서 이들 생산수단 (노동대상과 노동도구)을 실제로 사용하는 '노동력'의 역할입니다. 이렇게 생산의 원천을 노동이라 할 때, 경제학은 "태초에 노동이 있었으니 거기서 생산이 비롯되었느니라."고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토지와 같은 노동대상은 자연에 의해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 인간의 노동력과 무관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자연에는 인간의 노동이 부가되어야만 그것이 경제적 의미를 가집니다. 냉장고 속의 작은 얼음 한 조각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북극의 빙산에 무관심한적어도 경제적으로는이유는 그 자연의 결정에 인간의 노동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본이라고 부르는 생산 설비와 같은 노동 도구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전에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만들어 낸 노동의 집적이며 그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노동력은 토지나 자본에 선행하는 생산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생산의 주요 요소는 자연, 자본, 노동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대상, 노동도구, 노동력이며 그 중에서도 노동력이 가장 본원적인 요소라고 고쳐 말해야 됩니다.

  나는 위에서 밥을 어떻게 생산하느냐는 문제가 곧 그 사회의 문화적 형태와 깊은 관련을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J양이 써 보낸 대로 경제학이란 요컨대 "한사람의 위대한 시인 보다 한 개의 발전소 건설을 더 소중하게 여기지나 않는지요." 라는 우려에 대해 얘기해보지요. 인간이 처음으로 경제 생활을 시작하면서 노동력은, 구체적으로 그 노동력을 지니고 노동하는 사람은 노동대상과 노동도구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사유 재산이란 개념이 도입되면서 노동력은 먼저 노동대상을 잃게 됩니다. 예컨대 힘세고 욕심 많은 어느 한 사람이 자연이 하사한 광활한 토지에 사유의 울타리를 둘러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은 여태까지 함께 열매를 거두던 땅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또 지금까지 같이 고기를 잡던 강에 다가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점점 더 발전하여 자본주의 단계로 들어오면 노동력은 다시 노동도구와 분리됩니다. 현대의 어떤 노동자도 자기가 일할 공장을 스스로 짓거나 자기가 사용할 기계를 스스로 지고 일터로 가지는 않습니다. 경제학이란 '프리즘'을 통해 볼 때 인류의 역사란 한마디로 인간의 노동에 의해 생산이 되풀이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노동의 주체인 인간은 자연(노동대상)이나 자본(노동도구)를 차례로 잃게됩니다. 주인어어야 할 노동력이, 즉 인간이 오히려 그 도구에 예속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소외'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대의 경제학이 이 소외의 문제를 '대단히 소홀하게' 다루는 것은 사실이고, 바로 그런 점에서 크게 비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경제학이 이 소외로부터의 인간 해방이란 그 본연의 사명을 끝끝내 포기할 수는 없기에, 아마 멀지 않은 장래에 경제학은 다시 J양이 걱정하는 그 시인에게 진정으로 용기 있는역할을, 주인의 자리를 빼앗은 노예를 고발하고 노예가 된 주인을 분발하도록 만드는 힘찬 노래의 제작을 요청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미 만들어 놓은 밥을 어떻게 나누느냐는 문제, '분배'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나눈다는 행위는 그에 앞서 각기 이해가 대립되는 집단을 상정하게 만듭니다. 만약 서로 많이 가지려고 경쟁하지 않고, 서로 적게 가지려고 노력한다면 경제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이해 대립의 집단을 경제학에서는 '계급'이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고대 사회에서는 노예가 생산한 결과를 귀족이 채찍을 휘둘러 빼앗았으며,중세 사회에서는 농노에게 빌려 준 토지의 대가라는 명분으로 영주가 지대를 걷었으며,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는 생산물의 일부를 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자본가가 이윤으로 차지합니다. 계급이란 이렇게 밥의 생산과 분배에 참여하는 사람과 사람 즉 노예와 귀족, 농노와 영주,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사실상 노동대상과 노동도구를 차지한 집단과 노동력만을 지닌 집단의 갈등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은 투입보다 산출이 커야 한다는 단순한 산술에 의거하는데, 이 산출과 투입의 차액을 잉여라고 부릅니다. 만약 누가 100원을 비용으로 들여(투입) 120원을 수입으로 얻었다면(산출), 그는 이 사업에서 20원의 잉여를 낸 셈이 됩니다. 그런데 이 잉여를 귀족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데에 탕진하고, 봉건제 사회에서는 농노로부터 수취한 지대를 영주는 고딕 사원을 세우는 일에 낭비해 버렸습니다.
 
물론 나는 이 이윤이라는 단어가 매우 건조한 느낌과 황폐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던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윤이 때때로 아주 고약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도 모르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말은 J양 나이의 세대가 평가하는 사치 서열에서는, 예컨데 삶이니 사랑이니 혹은 휴머니즘이니 하는 개념들보다 훨씬 아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J양이 사회의 정신 건강을 위해 아주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는 미술관의 건립도 사실은 두부 공장의 건설과 마찬가지로 이 잉여가 경제 발전을 규정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고, 또한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그 사회의 문화 형태까지도 결정한다는 설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그 잉여의 생산과 분배가 전혀 정의롭지 못한 관계와 방법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밥을 만들고 나누는 가장 구체적인 현상에서 시작하여 그 밥을 만들고 나누는 사람들의 관계로 관심을 돌릴 때, 경제학은 '밥과 사람의 관계'를 따지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기에 내재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밝히는 학문으로그 본연의 사명을 회복하게 됩니다.
  
바로 그사람이라는 문제에 관하여 현대경제학이 표상하고 있는 '경제인(homoeconomicus)'또한 그렇게 애착이 가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온통 도시를 압도하는 그 육중한 건물 안에서 하루 종일 자신의 머리를 컴퓨터의 단말기처럼 증권 시세표로 꽉 채우고 있는 비정한 표정의 금융인이나, 혹은 "하늘의 별을 헤아리기보다는 주머니 속의 화폐를 셈하기에 바쁜" 메마른 심성의 기업가에서 "한줌의 매력조차 느끼지 못한다." J양의 지적을 굳이 탓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경제학이 그토록 약삭빠르기만 해서 항상 현실에 안주하거나 주변과의 타협 속에 연명해 온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학은 중세의 봉건 사회를 지배해 온 자연법 사상에 대한 처절한 항거에서 싹텄다는 사실이나 혹은 마르크스 이래의 정치경제학이 자본주의 제도에 내재된 온갖 모순의 극복을 위해 여전히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사정을 기억해두십시오.

  이제 그 경제학이 지닌 현실 개혁의 자세랄까 혹은 장래의 각오이랄까에 관해 얘기 해 보도록 하지요.  이 대목에서 내 개인의 기억을 하나 섞는 것을 양해하십시오, 벌써 한 20여 년 전, 그러니까 대학에 입학해서 첫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경제학이 얼마나 '훌륭한' 학문인가에 대해 추호의 의문이 없도록 처음부터 신입생의 머리를 철저하게 훈련시켜야 할 '중대한' 사명을 띠고 우리 앞에 나선 한 선배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엉뚱하게도 그것은 인류의 진보를 가져온 세 개의 사과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우선 아담이 먹었다는 창세기의 사과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의 계명을 거역하고 자유 의지를 선택하게 한 최초의 상징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뉴턴이 보았다는 사과는 자연의 공포로부터 인간이 지식과 이성의 독립을 선언한 찬란한 기록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텔이 쏜 사과는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인간의 압제를 전복하고 자유와 사랑을 실현하게 만든 위대한 승리의 표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가 그 선배의 창작인지 아니면 타인의 작품을 도용한 (?) 것인지를 알 수 없으나. 그 내용은 확실히 산뜻한 재치 못지 않게 상당한 설득력을 지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 아담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텔의 사과를 거치면서 인간은 차례로 신과 자연과 인간의 폭력으로부터 그 '자유의 영역'을 확대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사과에 대해서는 철학의 영역에서 그 시비가 가려지고, 뉴턴의 사과가 자연과학 분야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면,  텔의 사과는 필경 사회과학에서 관심이 대상이 되겠지요. 사실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소위 계몽사상은 바로 인간의 해방에 대한 최초의 자각이랄 수 있는데, 그 중요한 계기는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776년 아담 스미드의 "국부론" 의 출판으로부터 현재까지 경제학 200여 년의 역사는 실상 밥을 만들고 밥을 나누는 자유를 독점하려는 집단과 그 독점을 저지하려는 집단이 벌인 처절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자연법 질서에 대항해 1770년대 '고전과 경제학' 이 태동되었습니다. 그후 1870년대에 들어와 이 고전파 경제학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란 이유로 '신고전파 경제학'이 이의를 제기했고, 반대로 그것이 너무 보수적이란 이유로 '마르크스 경제학'이 도전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신고전파 경제학이 지닌 이론과 정책의 오류에 대한 반동으로 1930년대에 '케인즈 경제학'이 성립되었습니다.
 
나는 이들 여러 이론이 실현하려고 애썼던 자유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새로운 주장이 예전의 생각을 계승하기보다는 거부한 면이 압도적으로 크기때문에, 새 이론이 옛 이론의 '발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과의 '대결'이란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경제학은 J양이 여러 차례 우려했듯이 현실에 자족하는 무기력한 학문이 아니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명하는' 학문이란 뜻입니다.
  
위에서 나는 경제학이 밥과 사람의 관계에서 시작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해명하는 학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만, 앞의 관계는 한 마디로 풍족한 밥에 대한 요구이고 뒤의 관계는 자유의 영역 확대에 대한 집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경제학을 통해서 '밥과 자유'라는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두 측면을 규명 할 수 있게 됩니다.

   J!
  
앨프리드 마셜은 경제학자들에게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함께 지니도록 당부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J양이 냉철한 지식(이론)과 열렬한 애정(실천)을 가지고 자신과 이웃이 밥을 얻고 자유를 찾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경제학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결코 자상하지도 못하고 또 친절하지도 않은 이 회신이 J양이 '미래'를 선택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광대의 경제학<까치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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