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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대루
천쉐 지음, 허유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월
평점 :
거대한 '마천대루'는 우리가 아는 대도시를 닮았다. 작가의 나라인 대만의 타이페이도 보이고 서울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곳. 친밀한 관계도 있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도 있고 범죄자도 있다. 신분제도가 없는 곳임에도 계급이 존재하고 신분상승을 꿈꾸는 사람과 몰락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었다.
범죄소설이지만 이야기는 느리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간다. 사람들은 제각각 결핍을 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옥 속을 헤매는 것만 같다. 마천대루 1층 아부까페에서 인기 많은 매니저인 중메이바오 역시 그랬다. 아름다운 그녀는 불행한 가정의 희생자였다.
마천대루는 상승과 하강, 상실과 탐욕이 공존하는 곳이다. 애초부터 고층을 차지했더라도 끊임없이 하강하다 결국 그곳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부푼 꿈을 안고 이곳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을 따라다닌다.
마천대루 부동산 중개인인 린멍위는 공실에서 불륜 정사를 나누는 인간이다. 로맨스 작가인 우밍웨는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셰바로워는 죄책감에 짓눌려 자신을 버리다시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이 마천대루에서 상실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중메이바오의 상처와도 닿았다.
메이바오의 동생인 옌쥔도 첫사랑인 다썬도 죽기 전 만났던 셰바로워도 모두 그녀에게 구원을 줄 수 없었다. 그녀의 비참함은 과거 가족에게서 나왔고 결국 벗어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정하고 비참한 가족사에서 빠지지 않는 양부의 성폭력은 화가 날 지경이었다. 세상은 왜 이렇게 막되먹고 나쁜가. 실제로 생부도 딸을 성폭행 하는 세상이니 개연성이 없다 화를 낼 수도 없고 너무 현실적이라 욕할 수도 없고 그저 그런 짐승같은 놈들 거세나 시켰으면 하고 투덜거리기나 할 뿐이다. 그런 내가 너무 못나 보였다.
벗어나지 못한 그녀가 사라진 이후에도 마천대루는 사람들이 살았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메이바오를 알던 사람들의 삶은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있었다. 어쩌면 다음에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