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제 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언제나 이맘때면 내가 부산에 사는 것이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모른다. 작년엔 사정상 <전,란> 한 편만 봤지만 올해는 조금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일단 개막작인 <어쩔 수가 없다>는 너무 치열할 것 같아서 미리 포기했다. 어차피 극장에 바로 올라오기도 하고, 여기 매달리면 다른 작품은 하나도 못 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예매 성공한 게 <프로젝트 Y>, <친애하는 X>, <탁류>, <완벽한 집> 이었다. 남편은 <탁류> 대신 <루의 운수 좋은 날>을 예매했다. 그리고 <타년타일>도 예매했는데 결국 취소했다. 그렇다. 우린 저질 체력이었다.


2015년인가 하루에 영화를 세 편씩, 몇 날을 봤더랬다. 그 때 봤던 영화가 <헬라스로 가는 길>, <비행기처럼>, <시카리오>, <주바안>, <디판>, <벨아미>, <사랑의 법정>  등등 이었다. 이후에 아마 영화를 좀 멀리했더랬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매년 한 두 편씩만 보다가 대망의 2022년 양조위 특별전 때문에 확 불이 붙어서 부국제를 신나게 즐겼다. 양조위 배우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다니... 근데 그게 벌써 3년 전이라니 너무 놀랍다. 후아....

<무간도> GV


그리고 작년에 <전,란> 보고 게스트와의 만남에서 전설의 강동원 배우 다리꼬는 모습을 직접 봤다. 영화를 본 직후 감독과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은 정말 흥미로웠다. 이게 부산국제영화제의 근사한 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김신록 배우의 말이 무척 인상 깊었는데 그녀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전,란> GV - 강동원 배우 다리 길이가....


그리고 이번 부국제 역시 재밌었다. 예매 전에 남편한테 영화 뭐 볼까 물어봤는데 너무 심드렁해서 내가 볼 영화만 빼곡히 뽑았다. 사실 부국제 할 때, 상영하는 영화는 많은데 정보는 많지 않아서 좀 선택하기 힘든 면이 있다. 그래서 최대한 내 관심사에 맞추는 편인데, 이번에 꼭 보고 싶은 영화는 <어쩔 수가 없다> , <안녕, 용문객잔>, <친애하는 X>, <탁류>, <실연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프로텍터>, <쓸모있는 귀신>, <완벽한 집>이었다. 이 중에 <친애하는 X>와 <탁류>는 ott에 상영할 시리즈 드라마 두 편을 미리 보여주는 것으로 온 스크린 섹션이다. 


하지만 역시 이 많은 영화를 다 볼 수도, 예매할 수도 없었기에 정말 열심히 볼 영화들만 고른다고 고생했다. 1순위는 <친애하는 x>와 <탁류> 였다. 작년에 <전,란>을 큰 스크린으로 보니 너무 좋은 거다. 그래서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없는 것 중 기다리던 작품을 골랐고, <프로텍터>와 <안녕, 용문객잔>은 상영시간이 안 맞아서 제외했다. 그리고 예매 당일 참전한 남편이 꼭 보고 싶다고 한 영화 <프로젝트 Y>를 넣었고, 시간대가 맞은 <완벽한 집>을 예매할 수 있었다. 솔직히 <어쩔 수가 없다> 보고 싶었으나 유리 같은 부국제 예매 사이트 서버 때문에 포기했다. 어찌됐든 모든 걸 볼 수는 없지만 적당히는 볼 수 있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진짜 올해가 마지막인 것처럼 너무 화려해서 좀 놀랐다. 유명한 감독, 배우들 다 오고 멋진 영화를 상영해서 눈이 돌아갔지만 난 몸이 하나라서 아주 아주 많은 것을 포기했다. 내가 올해만 살 수는 없잖아... 


<프로젝트 Y> GV


영화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잘 만들었다는 느낌. 남성-남성, 여성-남성, 남성-여성 조합이었으면 식상했겠단 생각이 들었다. 잔인하기도 했지만 너무 불편하지는 않아 좋았다.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좋았다. GV에 오지는 않았지만 김신록 배우 멋진 연기였고, 멋진 역할이었다. 근데 다들 연기를 왤케 잘해.... 어떤 일이든 쉽게 돈을 벌 수는 없고, 어디서든 돈과 권력에 미쳐 사기치는 놈들이 있다. 누가 누구를 구원하나, 자기가 자신을 구원하는 거지. 맞는 말이다. 이환 감독이 제목 프로젝트 Y에서 관객들이 생각하는 Y는 무엇인가 물어보는데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지...



<친애하는 X> GV


<친애하는 X> 야외무대인사


드라마 너무 기대된다. 2편까지 먼저 봤는데 11월 초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싶었다. 피카레스크라기엔 아직 악하다고 보기 어려운데 3편부터는 학교라는 작은 공간이 아닌 사회라는 큰 공간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싶다. 재미도 있는데 일단 배우들 영상미가 너무 예뻐서 즐거웠다.


<친애하는 X>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프로텍터> 야외무대인사 - 밀라 요보비치 너무 멋지고 생기 넘친다. 작가가 한국인이라니 놀랍다. 


<탁류> GV


조선시대 나루터에서 시작한다. 나루터라는 공간에서 로맨스도 있을 수 있고 스릴러도 있을 수 있는데 감독은 일단 먼저 왈패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처음은 느와르다. 하지만 혹독한 세금에 시달리던 민초들의 삶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주인공들의 은밀한 사정들은 제쳐두고 권력 관계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율과 정천에겐 무슨 사연이 있으며, 무덕은 어떻게 한양에서 버틸 것이며, 최은은 상단에서 최고 자리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디즈니가 저작권에 엄청 신경쓴다더니 상영하는 내내 특수장비를 찬 스태프가 다니면서 불법촬영을 못하게 한다고 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폰으로 문자를 했더니 요원이 와서 엔딩크레딧 다 올라간 뒤에 폰 하라고 주의를 줬다.


<루의 운수 좋은 날> GV 장첸


<파과> GV를 마치고 나온 연우진 배우와 이혜영 배우


<완벽한 집> GV


청년들의 주거 문제와 노인들의 고독사 문제를 결합하여 만든 공포물이다. 재개발 지역의 무너져 가는 집에서 금림이 친구인 순복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묘하게 집과 몸이 연결되어 끝까지 주제를 놓치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 자체를 가지지 못한 청년들의 불안과 건강하게 살아갈 육체를 가지지 못한 노인들의 불안,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있는 자신들의 욕망만이 우선인 탐욕스러운 존재들까지 결합하여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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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9-2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제 라는 것이 이런 분위기군요. 부럽습니다!!!
개인적으로 <안녕, 용문객잔>이 궁금하네요.

꼬마요정 2025-09-22 10:51   좋아요 0 | URL
정말 축제 같고 재미있고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영화를 보는 점도 있구요, 영화제라 영화비도 조금 저렴합니다. 예전에 5천원, 6천원, 8천원 이랬는데 올해는 만 원이네요. 작년에도 만 원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물가상승률이 어마어마합니다.

오늘 <안녕, 용문객잔> 보러 갑니다. 용케 표를 구했어요. 시간상 안 될거라 포기했는데 가능하게 되었거든요^^

페넬로페 2025-09-21 1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가 30주년이라 행사를 크게 하는 것 같네요. 제가 다른 도시에 살 기회가 된다면 살고 싶은 곳 1순위가 부산입니다.

꼬마요정 2025-09-22 10:54   좋아요 2 | URL
30주년이라 진짜 크게 해요. 유명한 감독들, 배우들 많이 오구요. 제가 영화를 잘 모르는데 아는 감독들이 오더라구요. 기요르모 델 토로나 차이밍량 같은 외국 감독부터 박찬욱, 봉준호, 변영주 등 한국 감독들까지 부산국제영화제 위상이 많이 높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특히 올해부터 경쟁부문 생겨서 영화제에 힘이 더 실렸다고 하더라구요.

부산 좋습니다^^

카스피 2025-09-21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산국제영화제를 직접보신다니 넘 부럽습니다.에전에 보수동 헌책방거리를 방문한적이 있는데 참정감있는 곳이더군요

꼬마요정 2025-09-22 10:55   좋아요 0 | URL
보수동 헌책방거리 좋지요. 고즈넉하고 정감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어디서나 개발 광풍에 영업 부진에 안 힘든 곳이 없는 듯 합니다.ㅠㅠ

skarly 2025-09-22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럽네요🤣 저도 젊었을때는 부산영화제때마다 내려갔는데 나이가 드니 관절이 아파서 영화 많이 못보겠..😭

꼬마요정 2025-09-24 10:29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부산 사는 게 아니라면 힘들지 않겠어요. 저도 뮤지컬이나 연극 보러 서울 자주 갔는데 이젠 너무 힘들더라구요ㅠㅠ 일단 기차든 비행기든 이동하는 게 너무나 힘들더군요.

관절이 아픈 건… 혹시 주짓수 때문일까요? 다치면 뼈 붙기 힘들어요 ㅎㅎㅎ 같이 조심해서 오래오래 운동해요!!!

서곡 2025-09-24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장첸!! 저는 안녕 용문객잔 전에 봤는데요 극장에서 보기에 너무나 딱인 영화입니다 즐감하시길요~~

꼬마요정 2025-09-25 10:53   좋아요 1 | URL
장첸 강렬하죠 ㅎㅎㅎ <안녕, 용문객잔> 극장에서 보기 딱인 영화 맞더라구요. 이제는 쇠락해버린 그 공간이 계속 생각납니다. 영화제가 끝나가니 좀 아쉽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09-26 0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 많은 곳 다녀오기가 참 힘들어 부국제를 한 번도 다녀와본 적이 없네요.ㅜ.ㅜ
하지만 해운대 영화의 전당을 지나가다 보면 한 번 가보고 싶은 부국제입니다.
글을 읽다 김신록 배우 이름과 얼굴을 보니 반갑네요. 김신록 배우 제가 넘 좋아하는 배우라.^^
이혜영 배우의 포스는 와 진짜👍
배종옥 배우는 나이 들수록 우아해지네요.
제가 알아보는 배우가 몇 명 안되는군요.ㅋㅋ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도 요즘은 참 쉽지가 않던데 요정 님과 남편분 부러 시간 내서 다녀오셨다면 의미있는 시간이었겠어요.
요즘은 체력적 소모도 생각해야 하니까 더더 뜻깊었겠어요.^^
저는 영화관 다녀오는 것도 힘들어서 딸이 같이 영화 좀 보고 오자고 막 졸라도 겨우 한 번 다녀오곤 하거든요.ㅋㅋㅋ
암튼 덕분에 좋은 영화 그리고 귀한 사진 즐겁게 봤네요. 감사해요.^^

꼬마요정 2025-09-28 23:51   좋아요 1 | URL
작년에 김신록 배우 너무 멋졌어요. 아직도 생각나네요. 생각도 연기도 너무 멋진 배우입니다. 이혜영 배우 포스는 말해 뭐해 입니다. 진짜 멋집니다!!! 배종옥 배우도 진짜 우아하고 배포도 크고 연기도 좋았어요.

장첸 배우도 아실 것 같아요. 또 김유정 배우나 박지환 배우, 최귀화 배우 아실 것 같아요. ㅎㅎㅎ 아, 밀라 요보비치 배우도요. 진짜 에너지가 넘치더라구요. 요즘 어휘량이 부족해지는 거 느끼는데요, 멋지다 외에 다른 말도 많은데 자꾸 멋지다 밖에 모르겠어요ㅠㅠ 책 읽은 거 헛거인가...ㅠㅠ

제가 5월에 폰을 바꿨는데 6개월 요금제를 강제로 써야 하는 것 때문에 영화를 매달 한 편씩 보거든요.(영화 공짜가 있어서요) 이번에 본 영화는 연상호 감독과 박정민 배우의 <얼굴>이었는데, 그 영화도 진짜 좋았어요. 그거 보고 부국제 영화 보고 와... 체력이 체력이... 진짜 막내가 준 경옥고 먹고 버텼어요. 아, 내년에도 이렇게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