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 뚱 해 서  죄 송 합 니 다 :



 


 

 


배리나를 위한 변명



 


                                                                                                          배리나란 유튜버가 있다. 그녀는 메이크업 방송 채널을 운영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탈코르셋을 선언하며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 >> 라는 동영상은 500만 뷰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엮은 책이 동명의 <<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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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녀는 수많은 유튜버들에 의해 마녀 사냥을 당하고 있다. 도대체 배리나는 무슨 잘못을 했던 것일까. 뚱뚱해서 죄송합니다 ?!   배리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일관된 논리를 펼치고 있다. 비만은 질병이다 !  즉, 노력해서 병을 고칠 생각은 안하고 게을러서 병을 방치한다는 비판이다. 배리나는 노력은 하지도 않은 주제에 정신 승리'부터 한다는 비판이다. 같은 질문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던지자.  비만은 질병입니까 ?  나는 개인적으로 비만은 병증(病症)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비만이 병증이라고 해서 배리나가 비판받아야 이유는 1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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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나를 비판하는(윾튜뷰를 중심으로 한 짭튜브)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건강을 잃어 병을 앓는 사람들은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병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모두 루저'다.  웃긴 것은 병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윾튜브와 짭튜뷰의 논리가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비판하는 대목이 히틀러식 우생학을 닮았다는 데 있다.  나치즘의 핵심은 건강한 독일 신체에 대한 숭배이다.  그들은 유대인, 집시, 부랑자, 장애인을 질병 유전자'로 낙인 찍었고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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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 비만 > 을 많이 먹지만 상대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은 결과'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니체를 호명할 수밖에 없다. 니체는 << 우상의 황혼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보는 것보다 더 위험한 오류는 없다. 나는 그것은 이성이 본질적으로 타락한 모습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많이 먹는 주제에 게을러서 운동조차 하지 않으니 살이 찐다는 비난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예이다. 니체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자면 " 나는 그것은 이성이 본질적으로 타락한 모습이라고 본다 ! " 




 



싸구려 변명-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  배리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소리가 <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 > 란 동영상이 결국은 페미코인을 벌기 위한 수작이다 _ 라는 말이다. 이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자. 그리고 이 비판을 했던 윾튜브의 동영상 조회수를 살펴보자. 조회수가 곧 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윾튜브의 안티페미니즘 동영상은 돈이 된다. 고로, 반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코르셋을 입은 적도 없으면서 탈코르셋을 주장한다    :   불알후드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내놓는 해법이다. 코르셋에 대한 대항마는 코브라가 적격이다. 코르셋 대신 코브라를 예로 들어보자. 코브라에게 물린 적도 없으면서 코브라를 조심해야 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코브라에게 물린 적도 없는 놈이 코브라를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웃긴 일인 줄 알아  _ 라고 비난할 수 있나 ?  이게 논리적인 논박인가 ?!  이런 식의 말대꾸는 은유법에 대한 이해가 저능하다 보니 그것을 직설법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발생하게 되는 오류이다. 코르셋을 입은 적도 없으면서 탈코르셋을 주장한다는 식의 말대꾸는 교양은 천박하고 지식은 박약하며 논리는 빈약할 때, 3박자가 고루고루 섞일 때 발생하게 된다. 어디 가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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윾튜브


                                      아침 출근길, 만원 버스를 천 원 내고 탄다.  만원 버스를 탈 때마다 항상 돈 버는 기분이 든다. 오늘...... 구천 원 벌었네.  종종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버스 때문에 승객을 다 태우지 못한 채 몇몇을 정류장에 두고 떠나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승객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조금씩 공간을 양보해서 출근길 사람들을 모두 태우고 떠나야 한다고 운전기사에게 말하는 쪽과 다른 하나는 그것에 반대하는 쪽이다. 모든 이의 편의를 다 봐주다 보면 우리 모두 지각을 하게 됩니다.  전자는 보편성을 강조하는 진보이고 후자는 선별성을 강조하는 보수이다. 그렇다면 윾튜브 같은 일베 벌레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  아마도 차창을 열고는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에게 소리칠 것이다. " 야, 씨발놈들아 ! 너희들 때문에 나도 지각하게 생겼어. 에라이 씹할 놈들아 !  " 윾튜브는 배차 간격에 실패한 버스 회사를 욕하기보다는 오히려 버스 회사의 들쑥날쑥한 배차 간격 조정 실패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된 사람을 공격한다. 그것이 윾튜브 같은 xx의 특징이다. 종종 내 이웃들이 윾튜브 방송을 시청하며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평을 남기곤 한다. 그럴 때마다 당혹스럽다. 그들의 변명은 윾튜브가 과격한 면은 없지 않으나 꽤 논리적이라고 말한다. 논리적이다 ?!  그가 한의학를 폄하한 적이 있다. 양의학은 어느 병원을 가나 동일한 병명이 나오는데 한의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사례라며 어느 한의원은 자신을 태음인이라고 진단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태양인으로 진단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사례를 통해 졸라 역겹다는 말투로 한의학은 엉터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진단이야말로 엉터리'다. 왜냐하면 어느 병원에서 위염이란 진단을 내렸는데 알고 보니 위암이더라는 진단 오류 사례는 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료 행위에 있어서 진단 오류는 양의학과 한의학 모두 벌어질 수 있는 경우인 것이다. 이처럼 혐오의 발언들은 대부분 비논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윾튜브의 주장이 논리적이라고 믿는 이유는 말하는 내용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니라 말하는 태도'를 신뢰한다는 데 있다. 물론 이 태도는 연극적이다. 유튜브에서 가면 탈 쓸고 방송하는 영상은 믿을 것이 못된다.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익명으로 발화되는 것은 팔 할이 쓰레기다. 당신의 호기심이 벌레들의 좋은 먹잇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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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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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가 ​시청각 교재'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20분이 한계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는 상영 시간 20분 즈음에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영상 정보를 제공한다. (대중)영화 시나리오 작법은 이 사실을 가르친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영화 한 편을 골라서 그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흥미를 유발하는 장면이 연출될 때 런닝타임을 체크하길 바란다. 대부분 영화 상영 시작 20분 언저리에서 흥미로운 단서가 노출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유튜브 영상도 마찬가지다. 시청자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볼 수 있는 한계는 10분 내외이다. 영화관 관객과 유튜브 관객의 인내심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유튜브 영상은 공짜라는 데 있다. 영화관 관객은 안 보면 손해이지만 유튜브 시청자는 안 보면 그만이니깐 말이다. 윾튜버는 이 사실을 기막히게 알고 있는 녀석이다. 윾튜브와 윾튜브를 따라하는 짭튜브의 공통점은 런닝타임이 짧고 말이 빠르다는 데 있다.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루는 유튜버는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주장을 담기 위해 말을 FF ( fast-forward ) 하게 된다. 내가 관찰한 바, 유튜브는 젊은 극우가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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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이나 하자




 




인도적 추락사

                             박소연 케어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 케어 안락사 논란 > 에 대해 내놓은 답변이 " 인도적 안락사 " 라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박소연의 해명은 전형적인 어불성설 語不成說 이고 언어도단 言語道斷 이다. 애초에 언어의 쓰임(語) 자체가 잘못되었기에 그 진술(說)이 참일 가능성은 제로'이다. < 인도적 - > 이라는 말과 < 안락사 - > 라는 말은 서로 양립 불가 관계이다. 설령, 안락사가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숨탄것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 비인도적 > 행위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사형수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약물 주입 방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행위가 " 인도적 사형 집행 " 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자연사가 아닌 물리적 개입의 죽음은 모두 비인도적'이다. 박소연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 행위를 희석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 인도적 ㅡ " 이라는 말장난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박소연의 변명은 구질구질하고 허술(虛述)하다. 백 번 양보해서 인도적 안락사라는 궤변이 궤변이 아니라고 치자. 그렇다면 죽고 싶어 벼랑 끝에 선 사람을 위해 등을 떠밀어 그 사람을 추락시켰다면 그 행위는 " 인도적 추락사 " 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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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와 손혜원

                                  노인들이 패딩을 입고 지나가면 유심히 보는 편이다. 언제부터인가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있는 노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 등골브래이커 " 로 악명 높았던 브랜드 말이다. 고가의 아웃도어였는데도 없어서 못 팔 지경에 이르자 몇 년 전에 노스페이스 본사 회장이 감사 차원에서 한국을 다녀간 적도 있었다. 높은 산이 없기로 유명한 한국에서 아웃도어가 교복처럼 팔리니 신기했던 것이다. 한때 아이들이 입었던 옷을 이제는 노인들이 입고 다닌다. 아마도 손자가 입던 옷이리라.  노스페이스 로고가 박힌 숏패딩을 입은 노인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 의혹'이 생각났다. 적산가옥이 즐비한 거리(손혜원 의원이 매입한 근대역사문화 공간)는 한때 목포의 중심가'였다. 공간도 시대에 따라 생로병사를 거치게 된다. 유행따라 번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가 되는 것이다. << 창성장 >> 은 일종의 노스페이스 패딩이다. 한때 명성 휘날렸으나 이제는 롱패딩의 인기에 눌려 헌옷 취급을 받는 꼴이 영락없이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노스페이스 패딩을 버리는 것은 현명한 소비형태가 아니다. 한 땀 한 땀, 장인이 바느질한 솜씨는 명불허전이어라. 더군다나 패딩 속에 깃털을 채우기 위해 죽은 짐승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롱패딩의 유행에 밀려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옷인 것이다. SBS 는 손혜원의 목포 땅 구입을 << 투기 사업 >> 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 재생 사업 >> 이다. 헌옷 리사이클링인 셈이다. 그 대상이 옷이 아니라 건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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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이 눈에 선하다

                                자유한국당이 릴레이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 시간표까지 나왔으니 실행에 옮길 모양이다. 걱정이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단식의 고통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24시간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안다. 비록, 대한민국을 좀먹는 쥐새끼... 아니다. " 좀먹는 "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민주주의 곳간을 " 퍼먹는 "  녀석들이기는 하나 그래도 인지상정이라. 단식으로 몸이 상할까 걱정이 된다. 단식 시간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일도 아니고 5시간(30분)이란다. 아침 9시에 단식을 하셔서 오후 2시(30분)에 끝나고, 오전 단식이 끝나면 오후 조가 릴레이를 이어가는데 오후 2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란다. 이들의 논리가 맞다면, 대한민국 사람은 365일 동안 365일 단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5시간짜리 단식이라니 ! 아, 아아. 5시간짜리 단식이라니 ! !  이 창발적인 아이디어를 계획한 최초 제안자는 누구인지 궁금하다. 내가 자유한국당의 5시간 단식 코미디를 지켜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자유한국당의 완벽한 몰락이다. 그들은 이 퍼포먼스가 조롱거리가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몰락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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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SBS 손혜원 목포 투기 의혹 보도를 보면서 떠오른 장면은 << 찐빵소녀 조작 방송 >> 이다. 자세한 내용은 미디어오늘 << 찐빵소녀 조작방송, 그 후 10년 >>  을 참고하기 바란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 SBS 제작진이 변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것은 그 치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변씨를 압박해 자신들의 의도(방송 내용)에 부합하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 이 판결로 인해 << SBS 긴급출동SOS24 >> 는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SBS는 가짜 뉴스를 어떤 식으로 사실인양 위조했을까 ? 다음과 같다.


① 제보 동영상 부분=제작진이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영상을 마치 제3자의 믿을 만한 동영상 제보인 양 둔갑. ② 손님 인터뷰 부분=허위 인터뷰 대상자를 내새워 변씨의 피해상황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작출.  ③ 변씨가 몸에 난 상처에 대한 질문을 회피한 채 자리를 피하는 장면=휴게소 주차장에서 손님에게 아이스커피를 갖다 주고 돌아가는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서, 왜곡 편집. ④ 변씨 얼굴에 난 멍에 대한 김씨의 답변 부분=다른 일시, 다른 내용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임의로 편집해 마치 허위진술하거나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작출. ⑤ 변씨가 김씨 앞에서 연신 굽신대는 장면=실제로는 변씨가 한번 구부린 장면을 연속 재생하는 방식으로 작출해 노예처럼 쉴 틈 없이 일만 한다는 인상을 줌. ⑥ 김씨가 변씨의 답변내용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는 부분=김씨가 변씨에게 ‘지적장애인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잘 행동하라’고 충고한 대화내용을 왜곡 편집. ⑦ 선생님 인터뷰 장면=교장선생님 인터뷰를 담임선생님 인터뷰로 왜곡해 김씨가 가해자인 것처럼 몰기 위한 의도로 편집.  ⑧ 변씨 할머니의 진술 부분=할머니가 인터뷰하면서 변씨를 가리켜 ‘거짓말을 잘하고 집에서도 물건을 훔친다’고 진술했고, 가출 부분도 휴게소 부부측 주장에 부합했지만 인터뷰 내용을 왜곡해 자신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부분만 일부 발췌. ⑨ 정신병원 입원과 솔루션위원회 구제조치=시간순서를 반대로 편집해 신빙성을 높이려 한 악의적 편집.  ⑩ 정신병원 입원과정=언니의 자발적 요청으로 (변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는 등 실제 사실관계와 다르게 구성.  ⑪ 변씨의 부위 상처=대상포진으로 인한 상처라고 알렸음에도 김씨와 무관한 상처장면과 변씨의 진술을 동시에 방영해 시청자로 하여금 마치 이 부분 방송 장면의 상처가 김씨의 가혹행위로 인한 것으로 오인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조작. ⑫ 대질신문 회피 장면=김씨는 경찰로부터 대질신문을 통보받은 다음날 대질신문에 응했고 제작진 역시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방송에서는 ‘아직도 대질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으로 허위사실 공표.  ⑬ 상당기간 감금했다는 내용=제작진은 취재를 통해 변씨의 근무형태, 숙식기간, 외출 여부 등을 모두 확인했음에도 별다른 설명 없이 변씨 등의 진술을 그대로 방영해 상당 기간 감금당했음을 암시하는 화면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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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오늘


찐빵소녀는 정신병원에 감금되었고 찐빵 가게 부부은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지만,  SBS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사과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과 방송을 내보내지도 않았다.  SBS가 최근 제작한 손혜원과 이재명 보도는 명백하게 방송의 힘을 빌린 핀 - 포인트 폭력'이다.  오보를 남발했지만 사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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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7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27 18:21   좋아요 0 | URL
기레기.. 한국에는 언론이 없죠. 그냥 권력에 따르는 자만 있을 뿐.... 한국에 기자가 어디 있나요. 다 쓰레기지..ㅎㅎ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 [초특가판]
씨네코리아 / 200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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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 지 도    못 하 면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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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는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이라는 이름'에서 " - cock " 은 누구네 아들'이라는 의미로 종합하면 히치콕은 " 히치네 아들 " 혹은 " 히치 2세 " 라는 뜻이다.  훗날,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알프레드 히치콕은 청과상으로 부를 쌓은 상인 히치 씨의 아들'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히치라고 합니다  _  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는 익살스럽게 뒷말을 덧붙이곤 했다. " 하지만....... 좆은 없습니다. ㅋㅋㅋ " 정확히 기술하자면 " 히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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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cock)은 없습니다만 ! " 인데, cock이 속어로 페니스를 뜻하는 단어이니 말장난인 셈이다. 히치콕은 자신을 거세된 남자'로 소개하는 것이다. 이 농담은 가볍게 웃고 넘어갈 일이기는 하나 공교롭게도 히치콕이 영화에서 주로 다루던 주제가 < 거세될 위기에 놓인 남성 > 이다. 나는 항상 히치콕은 양성애자라기보다는 동성애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비록 영화적 동지인 알마와 결혼해서 외동딸을 낳았으나 트뤼포와의 대화에서 결혼해서 아내와 섹스를 한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고 그것도 어디까지나 애를 가지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 고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

영화 <<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내 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 >> 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미국인 의사는 제목과는 달리 똑똑이가 아니라 헛똑똑이'이다. 미국인 의사 부부 가족을 지배하는 것은 아내'이다. 일종의 모계 중심 가족인 셈이다. 이 가족은 해외 여행 도중 아들이 유괴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균열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 가장은 미국인 의사는 동분서주하며 악당과 싸우지만 먼저 선빵을 날린 적은 없고 악당이 훅을 칠 때 잽만 날리니 타격감마저 낮다.  조금 더 흉을 보자면  : 목 마르다고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성격이어서 겁은 많아 새 가슴을 간직했으나

​

고집만큼은 황소'여서 자존심은 높다. 그리고 속은 뒤틀려서 아내에 대한 자격지심이 크고 질투심이 강하다.  잘난 척은 다 하지만 하는 일마다 실투투성이'이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 맨스플레인 " 의 전형이다. 요약하자면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남자 구실을 못하는, 거세 위기에 놓인 남자는 과연 남근을 되찾을 수 있을까 ? 에 있다.  남자는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되찾아 집으로 귀환한다. 영화는 스릴러에 촛점을 맞췄다기보다는 분열된 가족이 어떻게 다시 복원되었는가를 중심에 둔 가족극이다.  해체된 가족이 재난으로 인해 다시 뭉친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는 < 스릴러 > 가 아니라 차라리 < 재난영화 > 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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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하는 대목은 음악 연주회 홀에서 외국 대사를 암살하려는 암살자를 연기한 무명 배우 레지 날더의 얼굴이었다. 그는 내가 무수히 목격한 영화 속 얼굴 중에서 손에 뽑힐 만한 압도적 아우라를 가진 절대적 얼굴이었다. 아, 이 남자 정말 맬랑꼴리하며 야리꾸리한 눈빛의 소유자로구나 ~  그가 등장하는 엘버트 홀 시퀸스는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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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 암살자는 붉은 커튼 뒤에 숨어서 권총을 꺼낸다. 이때 화면은 권총 총부리 때문에 불쑥 튀어나온 커튼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모든 현상을 성(性)과 연결을 시키는 내가 보기에 이 장면은 양복 바지 입은 남자가 발기했을 때 바지 천 위로 불쑥 솟는, 민망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다음 장면은 총부리가 천을 뚫고 그 모습을 드러낸다. 거짓말을 한 피노키오의 코처럼 총부리는 점점 길어지는데 이 장면은 누가 봐도 남근이 발기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모습을 목격한 미국인 의사의 부인이 놀라는 장면은 마치 바바리맨이 박쥐처럼 날개를 펼쳤을 때와 유사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암살자와 표적(정치인)이 둘 다 남자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동성애적 성적 함의로 읽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감독은 이 장면을 찍기에 앞서 암살자 역을 연기할 배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자네가 죽일 표적을 말이야. 아름다운 여인을 황홀하게 바라볼 때의 표정으로 바라보라고, 사랑스럽게 ! " 그의 주문대로라면 히치콕이 연출한 엘버트홀 시퀸스는 명백하게 성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동성애가 이성과의 섹스에 실패하는 서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 내내 흐르는 야리꾸리한 갬성은 " 섹스리스 " 이다.

 

암살자가 쏜 사랑의 큐피트 총, 얼마나 남근적인 오브제인가 !     는 빗나가고, 의사 부부 또한 내내 섹스리스 상태였다. 아내는 여행 도중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남편에게 우리 애는 언제 가질 것이냐고 묻는다. 첫째 아이 출산 이후로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읽히는 대목이다. 영화의 결말은 히치콕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이 급조된 해피엔딩이다. 그것은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고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미국인 의사가 되찾은 것은 잃어버린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남근이었지만, 부부의 섹스리스가 과연 해소될지는 모르겠다. 라캉의 경구를 빌리면 성관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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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 초특가판
빅터 플레밍 감독 / 기타 (DVD)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인 형 의    집 으 로    오 세 요  :




 

 


 a friend of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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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터 플레밍 감독이 1939년에 연출한 << 오즈의 마법사 >> 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다가 그만 " 풀잠1) " 을 잔 모양이었다. 눈을 뜨니 방안은 온통 짙은 어둠이 깔린 터라 마치 무성영화 흑백 화면을 보고 있는 듯했다.  런닝타임이 길지 않은 꿈이었으나 꿈자리는 사나웠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꿈에서 나는 쫓기고 있었나 보다. 꿈을 깨고 나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눈을 뜨고 나서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침대 옆에 놓인 노트북을 끌고와 모니터에 입력된 글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 저자는 죽고 독자는 탄생 " 한다는 롤랑 바르트의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이 원작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다시 해석될 수도 있다.  원작자의 작품 의도가 무엇이든, 그가 손을 뗀 이상 그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독자에게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작자인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자신이 쓰던 서류용 선반 첫 칸이 A부터 N까지고 두 번째 칸이 O부터 Z인 것을 보고 마법사 이름을 오즈 OZ 로 지었다(라는 " -카더라 일화 " 가 있다)고 해도 독자들은 얼마든지 시대 상황에 맞는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  마법사 오즈 OZ  > 에서 " OZ " 가 금과 은의 단위인 온스(Ounce)의 약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 같은 범성론자는 오즈를 팔루스( = 돈 권력 욕망 )로 환유할 수 있다. 오즈 나라 사람들은 유한계급이다. 그들은 " 12시에 일어나 1시부터 일을 하고, 1시간 동안 점심을 먹으면 2시에 일이 끝난다 "  12시에 일어나 1시부터 일을 하는데 그때부터 한 시간 동안 점심을 먹으면, 이거..... 결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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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  발기한 남근 >  을 뜻하는  팔루스 Phallus 가 지배하는 에메랄드 캐슬 시티는 성공한 남성 자본가 중심인 유한계급 사회인 것이다.  반면에 금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은구두를 신은 도로시와 도로시의 친구들 a friend of Dorothy 은 모두 남근이 거세된 이들이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 a friend of Dorothy >> 라는 표현의 사전적 의미'가 " 남자 동성애자 " 를 뜻하기 때문이다1-1). 허수아비는 뇌가 없고, 양철나무꾼은 심장이 없고, 사자는 용기가 없다. 이 결핍 - 들은 곧 거세를 의미한다.  하지만 원작에서도 밝혀졌듯이 오즈는 " 아무것도 아닌 것 " 에 불과하다. 좆도 아닌 것이 좆도 있는 척을 했으니 헛것이다. 이 결말은 남근의 무능을 폭로하는 것이다. 결국, 도로시와 친구들은 팔루스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을 돕는 이가 수호천사가 아니라 착한 마녀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전 03 : 36

2019-01-23

  

 

 

 

모니터 속 커서가 깜박깜박 점멸하며 문자 입력을 강요했다. 일어나서 불을 켰다.  방안 인테리어는 온통 흑백 모노톤이었다. 마치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황급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오소리보다 약간, 조금 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2).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짙은 회색이었다 ! 문득, 몇 달 전에 김시선 안과에서 시력 검사를 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의사가 말했다. " 선생님은 현재 망막 색소 결핍증이라는 희귀 병'을 앓고 계십니다.  망막 색소를 잃음으로써 서서히 일상 속에서 색깔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무서운 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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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붉은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무지개색 전체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전체 화면에 흑백으로 보이게 되죠. 세상이 흑백영화처럼 보이는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 페루애, 이 박복한 인간 ! 살아생전에 그토록 색을 밝히더니. 아이구야. 이 못난 화상아 ~ " 거실을 향하기 위해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거실이 아니라 총천연색 먼치킨 마을3)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  도로시는 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나뭇꾼, 용기가 없는 사자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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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가 나를 발견하더니 말했다. " 페루애, 우리와 같이 안 갈래 ?   마법사 오즈 님이 계신 에메랄드 캐슬에 가자.  전지전능한 오즈 님은 우리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어. 우리 함께 가자 ~ "  허수아비는 뇌가 없고, 양철나무꾼은 심장이 없고, 사자는 용기가 없는데......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이 없다는 것일까 ?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도로시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페루애, 넌 불알이 없잖아 !!! "   불알이 없다고, 내가 ?  미쳤어, 정말.  하, 어이가 없네. 불알이 없다고, 내가 ????!!!!!!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나는 어느새 그들과 함께 마법사 오즈가 사는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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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오즈는 허수아비에게는 학위 수여증을, 양철나무꾼에게는 하트 모양 시계를, 사자에게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오즈는 내게 당구공 두 개를 선물로 주었다. 오즈가 말했다 : 이보게 ! 이 당구공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다네. 가치로 따지자면 100억이 넘지.  최고 상품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근 = 권력이지. 곧 불알 = 돈'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네. 지상에 내려가거든 당구공을 팔아서 인공 불알을 만들게나.  나는 손안에 잡힌 당구공을 만지작거렸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여기까지가 간밤에 꾸었던 꿈이다. 사나운 꿈자리 때문에 늦잠을 자서 헐레벌떡 씻고 집을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어깨가 무거웠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주머니 속에는 당구공 두 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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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니 다이아몬드로 세공한 당구공이 아니라 싸구려 페놀수지 재질로 만든 평범한 당구공이었다. 나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괄약근에 힘을 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 아 !  오즈4), 이 시발새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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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풀잠은 꽃잠의 반대말이다.

1-1) dorothy의 애칭이 doll(인형)이다. 그러니까 a friend of Dorothy 는 인형 친구들이라는 뜻으로 인형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의미한다.

2) 오소리보다 조금 더 소스라치게 놀라다 _ 라는 표현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상투어'다.

3) 영화 < 오즈의 마법사 > 에 나오는 마을 이름

4) 원작 < 오즈의 마법사 > 를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는 디플레를 무찌르러 갔다


    켄사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오리바람 타고서 끝없는 모험이 시작됐지요.  프랭크 바움이 1900년 발표한 아동문학 '오즈의 마법사'는 발표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골 소녀가 허수아비와 사자를 만나 기상천외한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제1편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후 열세 편의 후속작들이 나왔다. 1903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1939년 MGM 영화로도 상영됐다.  하지만 이 작품이 19세기 말 디플레이션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농민과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경제학자인 휴 록오프가 1990년 발표한 논문 '금융의 은유로 보는 오즈의 마법사', 헨리 리틀필드가 1964년 쓴 '오즈의 마법사:인민주의에 빗대어' 서적은 오즈의 마법사에 담긴 정치 경제적 은유를 상세히 담고 있다. 시대적 배경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1873년 금ㆍ은본위제에서 은을 뺀 금본위제로 돌아선다. 금본위제도는 통화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지 않아 중앙은행이 함부로 돈을 찍어내 화폐경제에 교란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금본위제도에서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내는 양만큼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중앙은행이 만 원을 찍어내려면 만 원어치의 금도 갖고 있어야 했다. 돈을 금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언제라도 금을 내줄 수 있는 '금태환'이 가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금 생산량이 부족해 화폐를 원하는 만큼 찍어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1880년부터 1896년 사이 미국은 물가가 20%대로 떨어지는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이득을 봤지만 농민이나 근로자는 부채의 실질 부담이 커져 큰 고통을 받았다. 당시 금본위제와 금ㆍ은본위제를 주장하는 미국 정당들은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미국 북동부의 윌리엄 매킨리 공화당 후보와 자본가 계층은 금본위제를 지지했고, 남서부의 농민 노동자 계층은 금ㆍ은 본위제를 지지했다. 결국 1896년 대통령선거에서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공화당이 이겼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되는데, 알래스카ㆍ호주ㆍ남아프리카 등에서 금광이 발견됐고 원석에서 금을 효율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청화법'이 발명돼 미국으로 유입되는 금의 양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통화공급이 증가하면 자연히 물가는 오르게 된다.  다시 '오즈의 마법사'로 돌아가 보자. 도로시는 여행길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생각할 수 있는 뇌를 갖고 싶어하는 허수아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어 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얻고 싶어 하는 겁쟁이 사자다.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에메랄드 시에 도착하지만 오즈의 마법사는 서쪽나라의 악한 마녀를 죽이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도로시는 악한 마녀를 처치했지만 마법사 오즈는 가짜이며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도로시가 신고 있는 은구두를 툭툭 치면서 소원을 빌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다.   경제학자 록오프는 우선 주인공 도로시는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허수아비는 가난한 농민, 양철 나무꾼은 산업 노동자, 사자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동부의 은행들은 변장한 마법사, 서쪽에서 불어닥친 회오리바람은 금본위제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을 뜻한다고 봤다. 특히 도로시가 은 구두를 신고 노란 벽돌 길을 걷는 장면에서 은구두는 모든 소원을 이뤄주는 은본위제, 노란 벽돌 길은 금본위제를 가리킨다. 도로시와 친구들은 화폐를 의미하는 초록색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에메랄드 시에 도착하는데 마법사 오즈를 만나기 위한 험난한 여행길은 금본위제로 겪는 디플레이션의 폐해를 상징한다. 금이 귀해 디플레이션이 유발됐기 때문에 당시 보유량이 많았던 은본위제를 병행하면 통화량이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촉진되면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해석도 덧붙는다.  (구채은 기자 )

 

ㅡ 아시아 경제 [금융뒷談 ]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는 디플레를 무찌르러 갔다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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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1-23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페미니스트들이 < 오즈의 마법사 > 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해석하지 않는지가 궁금하다. 이 작품은 명백하게 페미니즘적이다.

임모르텔 2019-01-23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진짜!
꿈이야기 ㅎㅎㅎㅎㅎ 제가 단기기억상실이 좀 있으나 기억나날때마다 키득댈것 같습니다.
별 웃을 일 없는 나이에,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24 15:28   좋아요 0 | URL
웃을 일 없을 때 더 웃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