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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호명된다(10.08). 아무도 문학을 읽지 않는 시대에 노벨 문학 수상자 결정일을 기다리는 것이 의미없어 보이기는 하나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해마다 가을이 오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궁금하다. 예상 명단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해마다 후보에 오르는 하루키, 애트우드, 핀천, 루쉬디..... 과연 누가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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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훌륭한 문학성을 갖췄지만 개인적으로 하루키만큼은 제외되었으면 싶다. 하루키 문학은 뭐랄까. 징징거린다 ?! 주인공은 젊은 남성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다. 떠난 이유도 알지 못한다. 아니 알 것도 같다. 그래서 괴롭다. 남자는 이별의 고통에서 도통 헤어나오지 못한다. 하루키의 문장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 담담한 문장을 구사하는 척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질릴 정도로 질척거린다. 남자는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외로움에 몸서리를 친다. 외로우니무니다, 외로우니무니다, 외로우니무니다, 와따시와 조또 외로우니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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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문학을 읽다가 나는 그만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다. 남자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며 밀러 맥주를 병 채 마신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고 소리를 고래처럼 내지른다. " 야, 이 새끼야 ! 맥주는 잔에 따라 마셔. 새캬 !!! " 하루키의 사내새끼들은 왜 이렇게 징징거리는 걸까 ? 하루키 문학을 읽다 보면 샌드위치와 맥주는 일본의 국민 음식이란 생각이 든다( : 하루키 주인공이 나또와 미소된장 먹는 장면은 잘 보지 못했다. 대부분 남자는 재즈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거나 샌드위츠를 먹으며 밀러를 마신다. 그리고 냉장고엔 항상 가리비가 구비되어 있다). 그놈의 파스타, 그놈의 스카치 위스키, 그놈의 샌드위치, 그놈의 클래식, 그놈의 연식 차(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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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남자는 여자의 부재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여자에 굶주린 것은 아니다. 그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미소녀들이 줄을 선다. 마치 바닥에 떨어진 설탕물에 몰려드는 개미처럼. 이 외로운 남자를 위해서라면 브라자 훅 정도는..... 이 남자 앞에서 미소녀들이 옷을 벗을 각오를 하지만 남자는 쉽게 여자와 몸을 섞지 않는다. 대신에 " 마스터베이션 " 를 한다. 하루키 월드의 화룡점정. 습관성 자위. 손이 가요, 손이 가 ~ 어머머. 나도 모르게 자위를. 지구가 내일 멸망하더라고 오늘은 자위를 하리라. 하루키 표현대로 하자면 자위보다는 마스터베이션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자위 ~ 참고 참고 또 참지 못하고 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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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문학 작품을 읽다가 결국 포기하고 내려오는 지점이 하루키의 마스터베이션이다. 하루키 문학을 흉내 내자면 이렇다. 문장 완성은 1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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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타나베는 커티 삭 한 잔을 마시면서 버터처럼 부드럽게 지퍼를 내렸다. 지퍼 내려가는 소리가 쓸쓸하게 들렸다. 나오미, 나오미 교코하리.... 그는 딱딱한 성기를 꺼내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근원적 고독이 밀물처럼 몰려들 때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의 4악장이 연주되고 있었다. 챌로 소리를 들으며 그는 첼로 소리가 나오미의 목소리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낮고 부드러운 떨림과 함께 그의 몸도 부르르 떨려왔다. 하얀 정액이 최고급 이집트산 마호메트 양탄자 이쉬탄(양탄자 상품명) 위로 떨어졌다. 나오미, 나오미, 오 나의 나오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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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 졌다, 시바. 문학적 취향은 모두 다를 수는 있겠으나 나는 당최 하루키 문학에서 문학성을 발견한 적이 없다. 그리고 20년 내내 그가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1) 자체가 노벨상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하루키만큼은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으면 싶다. 만약에 그가 올해 문학상을 수상한다면 나는 지구가 망한 것처럼 펑펑 울 것이다. 문학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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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노벨 문학상과 관련된 미디어에 불만이 많은 이유는 하나다. 하루키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키가 후보로 선정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보다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노벨 위원회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 명단을 50년 후에나 공개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후보 명단은 1976년 후보 명단이 최신 정보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주구장창 하루키가 해마다 후보에 오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루키 팬들은 하루키가 20년 내내 후보로만 선정되었다고 투덜대지만 어쩌면 20년 내내 후보조차 오르지 못한 작가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주장은 50년 후에나 알 수 있다. 하루키 팬들이 분노하자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 " 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독자만 있으면 되니까요. " 항상 삐딱한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 이제 독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이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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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10-08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내려가다가, ˝남자는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외로움에 몸서리를 친다. 외로우니무니다, 외로우니무니다, 외로우니무니다, 와따시와 조또 외로우니무니다.....˝에서 빵터졌스무니다...ㅎㅎ

하루키는 산문집만 읽어서 소설은 모르겠는데...완전 정형화돼 있나 봅니다..ㅎㅎ 넘재밌게 잘 읽었으므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6-10-08 16:52   좋아요 0 | URL
하루키는 산문집만 좋아요. 그리고 단편집도 볼 만하고. 하지만 장편 가면 진짜 열받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루레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풀슬립 일반판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크리스티안 프리델 외 출연 / 디온(The On)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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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죄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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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인 독일군 장교 루돌프 회스 아내 헤트비히 회스는 어머니를 집으로 초대한다. 자신이 꾸민 그림 같은 집을 어머니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긍심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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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이만큼 자수성가했다는( : 어머니는 유대인 집 하녀였다), 보통 사람의 뿌듯함이 엿보인다. 이 뿌듯함에는 소박한 정취와 건강한 생의 의지'마저 느껴져 인간적이다. 부유한 유대인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어머니 또한 성공한 딸의 행복 앞에서 행복하다. 오, 행복. 행복. 행복하여라. 딸은 어머니를 모시고 정원의 높은 담을 지나가고 있다. 담 너머로 보이는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각장이다. 일반 가정집 천장 높이인 높은 담 너머로 붉은 지붕 소각장의 굴뚝이 보인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삶의 안온과 死의 절멸이 교차하고 있다. 아내는 행복한 미래를 설계한다. 내년에는 더 아름다운 정원을 꾸밀 거예요. 엄마, 나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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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회스 가족이 설계한 생의 의지 옆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써 생의 의지다. 죄수이기에 죄수복을 입은 것이 아니라 죄수복을 입었기에 죄수가 된 수용자들은 살고자 하는 의지 하나로 지옥을 견딘다. 딸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에서 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수용자들에게는 하루에 만 명씩 소각되는 장소의 벽이니깐 말이다. 딸은 엄마에게 집이 맘에 들어요 ? _ 라고 묻지만 담은 가족의 죄를 증명하는 증거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수용소 담을 가릴려고 포도 덩굴을 잔뜩 심어 뒀어요. 죽음의 수용소 담벼락을 예수의 피(포도)로 은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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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내가 뽑은 가장 중요한 시퀸스다. 감독의 과시적인 허세( :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두고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에서 쉰들리리스트 이후 가장 훌륭한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평가했는데 유감스럽게도 < 존오브인터레스트 > 는 쉰들러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라 그냥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다. 스필버그는 < 쉰들러 리스트 > 에서 온갖 기교를 자랑하며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강조했지만 그 화려한 기교에는 어딘지 모를 지랄 같은 감독의 과시적 허세가 엿보여서 불쾌했다. 흑백 화면 속에 붉은 옷을 입은 소녀만 컬러로 보여주는 장면은 촌스러웠다)도 없고, 재난의 전시도 없고, 노골적인 메시지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강렬하다.


또한 서사보다 스타일이 강조되지만 그 형식 때문에 오히려 서사에 깊이를 더한다. 일반적인 영화는 관객의 " 심리적 몰입(감정 이입) " 을 유도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과 인물 간 거리 두기를 통해서 " 심미적 거리 " 를 유지하는 소격 효과(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를 강조한다. 형식이 서사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주제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독창적인 걸작이다.


이 영화의 진짜 공포1)는 홀로코스트라는 " 지옥 " 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옥과 함께 천국( 아내 : " 17살부터 꿈만 꿨던 삶을 마침내 이뤘어 ! 애들도 건강하고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해 해 ! " ) 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레베카 솔닛은 << 이 폐허를 응시하라 >> 에서 낙원은 지옥 속에서 출현한다( 지옥 속에 출현하는 낙원 A Paradise Built in Hell )고 희망을 품고 말했는데 이 말을 뒤집어서 절망적으로 말하자면 : 이 영화에서 지옥은 낙원 속에서 출현한다. 영화에서 제노사이드 장면은 오로지 생활 소음2)으로만 묘사된다. 시각은 철저하게 배제된 채 희미한 청각으로 재현된 학살은 담 너머 일상 생활 속으로 침투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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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활 소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반대로 의미 없는 생활 소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조현병의 증후다). 지옥은 천국 속에서 출현하듯이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사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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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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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함 밤하늘 아래 루돌프 회스 가족 가정집 야외 정원에서 휴식을 즐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압적이다. 가족의 야회 장면은 캄캄한 밤하늘의 압도적인 비율 때문에 짓눌려 있다. 이 포스터는 왜 기괴해 보일까. 아시는 분 ? 정답은 별이 없기 때문이다. " 별 볼 일 없다 " 라는 표현을 영어로 번역하면 " 디제스터 disaster " 다. 참사, 재난, 엄청난 불행이란 뜻인데 이 단어는 별과 연관이 있다. 이 단어( = disaster)는 별( : astro)이 없는( : dis-) 상태에서 유래한 말이다. 화산 폭발이나 대형 자연 화재 때 검은 재가 하늘을 덮쳐 밤하늘의 은하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별이 없는 밤하늘은 지옥이다. 철학자 고병권은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철학적인 영화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 내가 작년에 본 최고의 영화 포스터 디자인이다.



2)

영화 속 한 장면. 남편은 퇴근이 늦는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폰 너머로 아내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 나 지금 야근 중이야. 미리 전화 못해서 미안. 회사에 급한 일이어서. " 남편은 직감적으로 아내가 외간 남자와 모텔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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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의심이 가는 한 남자를 떠올린다. 친구다. 그에게 전화를 건다.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왜 ? 지금 내 아내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테니까.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다. 받지 않는다. 남편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 남편의 직업은 사운드 슈퍼바이저(음향 감독)다. 그는 아내의 통화음이 5평 내외의 닫힌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작은 공간에서 울리는 진동과 넓은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진동의 차이를 그는 알고 있다. 또한 아내와의 통화음에는 일상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생활 소음이 제거되어 있다. 마치 후시 녹음을 위해 녹음실에서 대사만 녹음한 테이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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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생활 소음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생활 기기의 기계음,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귀뚜리마 소리 등등 x100. 생활 소음을 완벽하게 제거하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것 같지만 막상 생활 소음을 완벽하게 제거하면 평화롭기보다는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생활 소음은 우리가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 이것을 백색 소음ㅡ 화이트 노이즈라고 한다. 남편이 아내의 외도를 확신했던 것은 대사(아내의)만 있고 화이트 노이즈(생활 소음)은 제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텔 방이 일종의 녹음실 부스 역할을 했던 것.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에는 반드시 생활 소음을 따로 녹음해서 대사와 믹싱을 한다. 이것을 영화 용어로 엠비언트 사운드라고 한다. 이 일은 영화 스탭 중에서 사운드 슈퍼바이저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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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소음은 세뇌의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돈 드릴로의 눈부신 걸작 소설 << 화이트 노이즈 >> 에서 주인공 가족은 미디어 속에서 송출되는 메시지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무작위적으로 적용되며, 무의식적으로 세뇌된다. 그들은 불안의 방식을 쇼핑으로 해소한다. 미디어는 명령하고 인간은 좀비처럼 따른다.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이 연출한 <<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은 인공적인 기괴한 음향과 생활 소음을 적극 활용하여 영화의 주제를 부각한다.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에 산다. 유리 온실이 있고 수영장도 있다. 정원에는 온갖 종류의 꽃과 나무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넝쿨은 집을 둘러싼 높은 담을 초록으로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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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담은 루돌프 회스의 가정집 담이면서 동시에 하루에 몇 만 명을 소각시킬 수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담이기도 하다. 관객은 수용소 안의 유대인을 볼 수는 없지만 가정집 담 너머로 들리는 생활 소음만 희미하게 듣는다. 이 생활 소음이 무엇인지 현대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시각은 제거된 채 희미하게 청각만으로 침투한 소리의 홀로코스트를 지켜보고 있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익숙한 소음이다. 그들은 하루에 4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소각로에서 불에 태워질 때 나는 타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단잠을 잔다. 누군가에게는 제노사운드(제노사이드+사운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안온한 ASMR이다. 이 얼마나 몸서리 쳐질 정도로 끔찍한 역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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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두고 자신이 만든 << 쉰들러 리스트 >>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칭찬했지만, 이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라 그냥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모습이 심히 꼴불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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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복지국가 - 약탈, 인종 학살, 공범들
괴츠 알리 지음, 최준영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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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철도와 도로를 깔아준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내 목구멍에서 좆같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지만 어쩌랴. 누런 강냉이를 털고 싶었으나 그의 우람한 이두박근을 보며 간신히 참았다. 몸에 남아 있는 근육이라고는 남근밖에 없는 나는 몸을 사려야 했으니까. 크아아아. " 현실 속에서 뉴라이트 열혈 당원을 만나다니, 헐 ! "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칼 든 강도가 남의 집에 침입해서 집수리하고 나왔다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선량한 강도는 없다. 제국의 점령지 정책에 있어서 핵심은 " 수탈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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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의 복지국가 >> 에서 저자는 히틀러 정권 시절 독일 국민의 정치적 충성심은 사상보다는 사심(이념보다는 이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은 홀로코스트 문제를 인종 이데올로기 문제로만 접근했었지만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국가 재정 문제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유대인 정책의 핵심은 국가가 유대인 재산을 빼앗아 국가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소유했던 기업, 주택, 토지, 귀금속은 물론이거니와 가구, 식기, 침대, 옷 같은 생활용품도 경매를 통해 국가 금고로 환원되었다. 그 규모는 150억~ 200억 마르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60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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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은 고스란히 병사 급여와 독일 국민의 사회 복지 재원으로 사용되었다. 역설적이지만 독일 사회 복지의 황금기는 히틀러 정권 때였다(동물 복지도 히틀러가 만든 걸작품이다). 홀로코스트 문제를 다룬 21세기 걸작 영화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독일 나치 간부였던 회스 가족은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고급 가구와 보석으로 집과 가족을 꾸민다. 그리고 영화 제목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는 " 금전적 이익 "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금전적 이득에 눈이 먼 독일 국민의 도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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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넉넉한 사회 복지를 위해 유럽 전체를 거대한 은행 ATM 기기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한 풍경이지만 독일 국민이 누린, 사치에 가까운 풍요는 히틀러 시대 때 완성되었던 것이다( 낮은 세금, 안정적 물가, 풍족한 급여 ). 당시 독일 병사였던, 나중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하인리히 뵐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 25마르크라는 엄청난 병사 급여 " 를 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독일 국민에게는 히틀러 시대야말로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어쩌면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말빨에 세뇌당한 것이 아니라 복지 정책에 만족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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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대인 재산을 약탈해서 사회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던 히틀러는 범위를 확대하여 유럽으로 확장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점령지에 대한 수탈의 양도 많아지고 그만큼 독일 국민은 풍요로웠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홀로코스트와 독일 전쟁을 단순히 인종 혐오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히틀러의 죽음으로 모든 죄는 히틀러와 나치에게 돌아갔지만 따지고 보면 독일 국민은 공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히틀러와 나치는 전쟁범죄자였고, 독일 국민은 장물아비였다.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어디에서 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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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패망한 독일에 입성한 한 영국군 장교는 이렇게 회고했다. “...... 사람들은 그 폐허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혈색이 좋았고, 행복해 보였으며, 깔끔하고 옷도 잘 갖춰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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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10-06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오브 인터레스트....찾아보겠습니다!
간만에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6-10-07 14:34   좋아요 0 | URL
단언컨대 이 영화 21세기 걸작입니다. 제 리뷰 링크 걸어두겠습니다. 꼭 보세요.
https://blog.naver.com/unheimlich1/223633042248
https://blog.naver.com/unheimlich1/223636789291
 


​비록, 어쩌다가 노래방에 가면( : 이번 명절에도 가족들이 모여 노래방에 갔다. 그곳에서 나는 박상철의 무조건과 태진아의 옥경이를 불렀다. 수치스러워서 몸이 떨렸다. 다음 생에서는 악기로 태어나리라 ) 트로트를 부르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악 장르는 트로트다. 더군다나 아이가 화장을 하고 트로트 흉내를 내면 광기에 사로잡힌다. 아, 제발 ! 또한 신파를 싫어해서 질질 짜는 트로트 노래는 더더욱 질색이다. 친구가 이 동영상을 추천했을 때 나는 광안리 쭈꾸미처럼 째려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싫어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었다. 몇 번을 사양했지만 친구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국밥을 씹으며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신안 기거도 우럭처럼 울컥했다. 노래 가사 중에서 " 꿈에 한 번 오세요. " 라고 부를 때 그만 눈물이 주르르르륵. 아, 이 어린 소녀는 누구란 말인가. 아이야, 울지 마라.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우주가 돕는단다. 늘 하는 말이지만 러브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거리 " 1)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멀리 있으면 보다 애틋해지는 법이다. 꿈이란 공간이야말로 인간이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다. 소녀가 죽은 아빠에게 꿈에 한 번 오세요 _ 라고 간청할 때 이보다 더 애틋한 초청은 없다. 우느라 밥알 몇 개 쏟았다. 

https://youtu.be/IamJ5OoIEho?si=26YL2983-zRYSEJ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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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되 작별하지 않는다




https://youtu.be/OczdD6-qqAs?si=qfWVRN1bUgeRI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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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작별 인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표현은 " 다녀오다(갔다가 오다) ! " 다. GO AND COME BACK ! 발화자가 학생인 경우는 학교 갔다가 집에 오겠다는 약속이고, 직장인 경우는 직장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오겠다고 다짐을 말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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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듣다 보면 " 다녀오다 " 는 단어는 매우 숭고한 낱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발화자는 수신자에게 " 나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곁으로 돌아올거야 " 라는 약속을 당신에게 하고 떠나는 것이다. 작별이기는 하나 동시에 작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작별인데 작별하지 않겠다니. 이 얼마나 멜랑꼴리하며 달콤한 속삭임인가. 이 낭만적 다짐을 날마다 약속한다. 한국인은 사랑에 대한 표현이 서툴다고 말하자면 사랑한다는 표현보다 다녀오다는 표현이 더 비장하고 웅장하다. 애정의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의 깊이다. 서사의 깊이로 따지자면 사랑한다는 형이하학이고 다녀오다는 형이상학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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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어는 매우 정교하며 깊이 있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언어다. 내 비록 화장실에서 국어사전을 펼쳐 읽으며 한글 공부를 하지만 읽을수록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 안녕하세요 >> 로 기억한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 늦게 집에 온 아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녀왔습니다 _ 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다( :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이가 집에 왔을 때 부모는 잠시 외출을 했던 모양이다). 인사란 인사를 하는 사람과 인사를 받는 사람이 있을 때 발생하기에 아이의 다녀왔습니다_ 라는 인삿말은 하나 마나 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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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효율성만 놓고 따지자면 이 장면은 쓸모없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오즈 야스지로는 왜 이 장면을 삽입했을까 ? 숭고하기 때문이다. 朝花夕拾(조화석습)이란 루쉰의 산문 제목이 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뜻이다. 오즈의 아이는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는 마음으로 아침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와 인사를 한다. 다녀왔습니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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