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ㅣ 탈아입구적 월드




한 남자가 있다. 치, 치치치명적 매력을 가진 이십 대 청춘.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은 이 남자에게 끌린다(끌린다기보다는 미친다). 그리고 꼴린다. 끌리고 꼴리고 난리도 아녀. 아, 이 남자 괜찮다. 너의 우수에 찬 얼굴을 내 풍만한 가슴으로 으깨고 싶어. 컴온, 컴온, 베이비. 남자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 나 여미새 아니거등 ?1) " 여자와의 섹스보다 안전한 것은 마스터베이션이다. 그는 자위를 하더라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 자위 " 라기보다는 " 자기애 " 에 빠진 행위처럼 느껴진다. 자위를 할 때에는 볼꼴사나울 정도로 천박해질 수밖에 없는 나는 하루키의 그 우아한 자위를 배우고 싶다, 진심이다.

​

남자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 여자만 그리워한다. 그는 점심 식사로 샌드위치와 밀러 맥주를 마신다. 특히 밀러 맥주를 마실 때에는 반드시 병나발을 분다( : 사케를 병나발 부는 모습은 본 적 없다). 밀러 병나발은 그의 시그니처. 집에서는 파스타만 먹는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면 항상 연어와 가리비가 있다. 그는 양식이 주식이다. 비프스튜, 크로켓, 파스타, 몽블랑, 스테이크, 가리비와 연어 요리. 남자의 식탁에 나토와 미소된장과 노란 다꽝은 사치. 햄버거를 먹더라도 항상 하와이안 햄버거. 도대체 하와이안 햄버거는 어떤 맛일까 ? 그의 주종은 스카치위스키 커티 삭'이다. 바에서 재즈를 들으며 커티 삭 한 잔. 이놈 참 신기하다.

​

사케보다는 커티 삭, 미소된장보다는 파스타, 꽁치보다는 연어, 이자까와보다는 재즈 바만 찾는다. 정말 신비로운 것은 직업은 백수인데 양주만 마신다는 점이다. 생활비는 어디서 났냐, 이눔아 ? 어디 그뿐이랴. 대중음악은 듣지도 않는다. 그는 클래식(과 재즈)만 듣는다.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바흐의 불알덴.... 오타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마라톤은 그의 생활 철학이다. 우여곡절 끝에 여자는 남자를 침대로 끌어들인다. 온갖 방중술로 이 남자를 내 것으로 삼으리라. 아침에 여자는 침대에서 눈을 뜬다. 남자의 자리에 남은 것은 구겨진 시트다. 남자는 떠났다. 여자는 구겨진 시트처럼 주먹을 쥔다. 그녀의 손이 바르르 떨린다.

​

하루키 월드 문학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일본의 풍경이 아니라 유럽의 풍경이다. 그렇다면 하루키 문학은 일본적인가 ?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의 문학은 지극히 서양적이다. 그래서 많은 평론가들이 하루키 문학은 일본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하루키야말로 굉장히 일본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일본인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이유는 역사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 문제보다는 백인 선망 때문이다. 일본 근대화 시절부터 꿈꿨던 탈아입구(脱亜入欧 :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편입하자는 사상)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1999년 일본에서 학술회의가 열렸을 때 일본 측 대표는 일본이 유럽연합에 가입해야 한다는 제안을 진지하게 요구했었다.

​

일본 애니를 볼 때마다 궁금했던 것은 만화 캐릭터 속 인물은 누가 봐도 서양인의 외모와 체형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일본적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마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공간은 유럽의 풍경이다. 왜 일본인들은 자신이 아시아에 속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까? 하루키 월드 속 남자들은 모두 다 서구적이다. 오후에는 마라톤을 즐기며 샌드위치에 밀러 맥주를 마시고, 저녁에는 바에서 재즈를 들으면서 스카치위스키 커티 삭을 마신다. 파스타는 주식이다. 나는 하루키 문학에서 명예 백인이 되고 싶은 욕망을 읽는다. 그의 작품은 감성적 허무주의가 깊이 스며들어 있는 척하지만 결론은 음담패설이다(결론은 여자와 잔 이야기).

​

왠지 모르겠지만 멋있는 것처럼 보이는 쿨 재팬 보이 속에 숨겨진 것은 탈아입구와 음담패설 그리고 스노비즘(속물 근성)이다. 하루키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불쾌함이다. 보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역겹다.

​

​

​

​

1) 하루키 문학 속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인과의 섹스에 관심이 없다. 성적 욕망은 주로 자위로 해결한다. 쓸쓸하다. 저 한없이 쓸쓸한 우울.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한 줄로 요약해 보자(아래는 누리웹에서 펌). 결론은 여미새. 그래서 내가 항상 하루키 문학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포르노 버전이라고 조롱하는 이유이다.

​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잘 모르는 여자와 같이 잔 이야기

- 1973년의 핀볼 : 쌍둥이와 같이 잔 이야기

- 양을 쫓는 모험 : 귀가 예쁜 여자와 같이 잤는데 그 여자가 사라진 이야기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밥을 많이 먹는 여자와 같이 잤는데 갑자기 일각수의 머리뼈가 빛난 이야기

- 노르웨이의 숲 : 같이 잔 여자가 자살하고 그녀를 추모하다가 중년 여자와 같이 잔 이야기

- 댄스 댄스 댄스 : 호텔 프론트 직원과 그녀의 직장에서 같이 잔 이야기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첫사랑과 같이 잤는데 그 여자가 떠난 이야기

- 태엽감는 새 : 같이 자긴 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이야기

- 해변의 카프카 : 어머니와 같이 잤는데 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

- 애프터다크 : 진짜로 그냥 잠만 자는데 누가 지켜보고 있는 이야기

- 1Q84 : 암살자인 첫사랑과 결국 같이 자는 이야기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같이 잔 적도 없는데 남들이 같이 잤다면서 욕하는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