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풀슬립 일반판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크리스티안 프리델 외 출연 / 디온(The On)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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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죄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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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인 독일군 장교 루돌프 회스 아내 헤트비히 회스는 어머니를 집으로 초대한다. 자신이 꾸민 그림 같은 집을 어머니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긍심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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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이만큼 자수성가했다는( : 어머니는 유대인 집 하녀였다), 보통 사람의 뿌듯함이 엿보인다. 이 뿌듯함에는 소박한 정취와 건강한 생의 의지'마저 느껴져 인간적이다. 부유한 유대인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어머니 또한 성공한 딸의 행복 앞에서 행복하다. 오, 행복. 행복. 행복하여라. 딸은 어머니를 모시고 정원의 높은 담을 지나가고 있다. 담 너머로 보이는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각장이다. 일반 가정집 천장 높이인 높은 담 너머로 붉은 지붕 소각장의 굴뚝이 보인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삶의 안온과 死의 절멸이 교차하고 있다. 아내는 행복한 미래를 설계한다. 내년에는 더 아름다운 정원을 꾸밀 거예요. 엄마, 나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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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회스 가족이 설계한 생의 의지 옆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써 생의 의지다. 죄수이기에 죄수복을 입은 것이 아니라 죄수복을 입었기에 죄수가 된 수용자들은 살고자 하는 의지 하나로 지옥을 견딘다. 딸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에서 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수용자들에게는 하루에 만 명씩 소각되는 장소의 벽이니깐 말이다. 딸은 엄마에게 집이 맘에 들어요 ? _ 라고 묻지만 담은 가족의 죄를 증명하는 증거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수용소 담을 가릴려고 포도 덩굴을 잔뜩 심어 뒀어요. 죽음의 수용소 담벼락을 예수의 피(포도)로 은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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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내가 뽑은 가장 중요한 시퀸스다. 감독의 과시적인 허세( :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두고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에서 쉰들리리스트 이후 가장 훌륭한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평가했는데 유감스럽게도 < 존오브인터레스트 > 는 쉰들러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라 그냥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다. 스필버그는 < 쉰들러 리스트 > 에서 온갖 기교를 자랑하며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강조했지만 그 화려한 기교에는 어딘지 모를 지랄 같은 감독의 과시적 허세가 엿보여서 불쾌했다. 흑백 화면 속에 붉은 옷을 입은 소녀만 컬러로 보여주는 장면은 촌스러웠다)도 없고, 재난의 전시도 없고, 노골적인 메시지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강렬하다.


또한 서사보다 스타일이 강조되지만 그 형식 때문에 오히려 서사에 깊이를 더한다. 일반적인 영화는 관객의 " 심리적 몰입(감정 이입) " 을 유도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과 인물 간 거리 두기를 통해서 " 심미적 거리 " 를 유지하는 소격 효과(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를 강조한다. 형식이 서사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주제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독창적인 걸작이다.


이 영화의 진짜 공포1)는 홀로코스트라는 " 지옥 " 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옥과 함께 천국( 아내 : " 17살부터 꿈만 꿨던 삶을 마침내 이뤘어 ! 애들도 건강하고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해 해 ! " ) 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레베카 솔닛은 << 이 폐허를 응시하라 >> 에서 낙원은 지옥 속에서 출현한다( 지옥 속에 출현하는 낙원 A Paradise Built in Hell )고 희망을 품고 말했는데 이 말을 뒤집어서 절망적으로 말하자면 : 이 영화에서 지옥은 낙원 속에서 출현한다. 영화에서 제노사이드 장면은 오로지 생활 소음2)으로만 묘사된다. 시각은 철저하게 배제된 채 희미한 청각으로 재현된 학살은 담 너머 일상 생활 속으로 침투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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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활 소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반대로 의미 없는 생활 소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조현병의 증후다). 지옥은 천국 속에서 출현하듯이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사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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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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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함 밤하늘 아래 루돌프 회스 가족 가정집 야외 정원에서 휴식을 즐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압적이다. 가족의 야회 장면은 캄캄한 밤하늘의 압도적인 비율 때문에 짓눌려 있다. 이 포스터는 왜 기괴해 보일까. 아시는 분 ? 정답은 별이 없기 때문이다. " 별 볼 일 없다 " 라는 표현을 영어로 번역하면 " 디제스터 disaster " 다. 참사, 재난, 엄청난 불행이란 뜻인데 이 단어는 별과 연관이 있다. 이 단어( = disaster)는 별( : astro)이 없는( : dis-) 상태에서 유래한 말이다. 화산 폭발이나 대형 자연 화재 때 검은 재가 하늘을 덮쳐 밤하늘의 은하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별이 없는 밤하늘은 지옥이다. 철학자 고병권은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철학적인 영화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 내가 작년에 본 최고의 영화 포스터 디자인이다.



2)

영화 속 한 장면. 남편은 퇴근이 늦는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폰 너머로 아내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 나 지금 야근 중이야. 미리 전화 못해서 미안. 회사에 급한 일이어서. " 남편은 직감적으로 아내가 외간 남자와 모텔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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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의심이 가는 한 남자를 떠올린다. 친구다. 그에게 전화를 건다.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왜 ? 지금 내 아내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테니까.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다. 받지 않는다. 남편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 남편의 직업은 사운드 슈퍼바이저(음향 감독)다. 그는 아내의 통화음이 5평 내외의 닫힌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작은 공간에서 울리는 진동과 넓은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진동의 차이를 그는 알고 있다. 또한 아내와의 통화음에는 일상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생활 소음이 제거되어 있다. 마치 후시 녹음을 위해 녹음실에서 대사만 녹음한 테이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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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생활 소음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생활 기기의 기계음,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귀뚜리마 소리 등등 x100. 생활 소음을 완벽하게 제거하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것 같지만 막상 생활 소음을 완벽하게 제거하면 평화롭기보다는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생활 소음은 우리가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 이것을 백색 소음ㅡ 화이트 노이즈라고 한다. 남편이 아내의 외도를 확신했던 것은 대사(아내의)만 있고 화이트 노이즈(생활 소음)은 제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텔 방이 일종의 녹음실 부스 역할을 했던 것.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에는 반드시 생활 소음을 따로 녹음해서 대사와 믹싱을 한다. 이것을 영화 용어로 엠비언트 사운드라고 한다. 이 일은 영화 스탭 중에서 사운드 슈퍼바이저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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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소음은 세뇌의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돈 드릴로의 눈부신 걸작 소설 << 화이트 노이즈 >> 에서 주인공 가족은 미디어 속에서 송출되는 메시지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무작위적으로 적용되며, 무의식적으로 세뇌된다. 그들은 불안의 방식을 쇼핑으로 해소한다. 미디어는 명령하고 인간은 좀비처럼 따른다.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이 연출한 <<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은 인공적인 기괴한 음향과 생활 소음을 적극 활용하여 영화의 주제를 부각한다.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에 산다. 유리 온실이 있고 수영장도 있다. 정원에는 온갖 종류의 꽃과 나무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넝쿨은 집을 둘러싼 높은 담을 초록으로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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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담은 루돌프 회스의 가정집 담이면서 동시에 하루에 몇 만 명을 소각시킬 수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담이기도 하다. 관객은 수용소 안의 유대인을 볼 수는 없지만 가정집 담 너머로 들리는 생활 소음만 희미하게 듣는다. 이 생활 소음이 무엇인지 현대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시각은 제거된 채 희미하게 청각만으로 침투한 소리의 홀로코스트를 지켜보고 있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익숙한 소음이다. 그들은 하루에 4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소각로에서 불에 태워질 때 나는 타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단잠을 잔다. 누군가에게는 제노사운드(제노사이드+사운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안온한 ASMR이다. 이 얼마나 몸서리 쳐질 정도로 끔찍한 역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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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두고 자신이 만든 << 쉰들러 리스트 >>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칭찬했지만, 이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라 그냥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모습이 심히 꼴불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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