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대결 : 섹스피어냐, 스티븐 킹이냐 !

 

 

 

 

 

Fight Club by De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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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이었다. 가입된 철학 문학 카페'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주선한 것이다. 2009년 연말 망년회'가 밀리고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은 연초'에 뒤늦은 연말 망연회가 열린 것이다. 평소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카페 회원 중 친하게 지내는 문청 L 때문에 그를 만나기 위해 참석을 하게 되었다. 열 명 남짓 모였다. 문학 카페이다보니 " 그 흔하고 흔하고 흔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되시겠다. 그중에서 자신을 명문대 영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K라고 소개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이 친구를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잘난 척을 너무 고상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대화의 5할은 이 친구의 몫이었다. 특유의 평론가 말투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이야기하더니 셰익스피어에서 토마스 핀천까지 줄줄줄. 신형철스러운 말투로 좌중을 압도하니 그날 모임의 슈퍼스타였다. 여성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았으니깐.

 

나는 그냥 테이블 한 모퉁이에 앉아서 맥주만 홀짝이고 있는데 K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쳐다보았다. 손가락에 반지를 네 개 끼고, 목걸이는 다섯 개를 걸고, 팔찌는 왼쪽 오른쪽 네 개에 그 특유의 치요를 썼기 때문이었다. <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오시지 왜 이런 문학의 향기에 나오셨어 ? > 이런 눈빛이었다. K가 대뜸 내게 말했다. " 혹시 좋아하시는 영문학 작가 있으세요 ? " 밤하늘에 높이 뜬 인공위성 같은 사내를 바라보던 눈들이 그 사내의 말에 온통 내게로 쏠렸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셜록 홈즈와 스티븐 킹'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한 달 전에 알라딘에서 홈즈 전집 반값 세일을 하길래 사서 열독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K가 웃었다. 웃었다. 시니컬하게 웃었다. 왜 좋아하냐는 후속 질문도 없었다. 그냥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식으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처럼 보였다.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파리가 나는 것처럼 고고한 영문학을 이야기하는데 대중 추리소설 작가 얘기가 웬 말이냐, 이런 식이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내가 L에게 물었다. " 혹시 좋아하시는 영문학 작가 있으세요 ? "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전공 과목이 과목인지라 셰익스피어 고전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도 그에 대한 눈문입니다. " 하하하하하하. 내가 웃었다. 나는 하하하하, 라고 웃었지만 그에게는 " 지랄하고 자빠졌네 " 로 읽혔을 것이다." 왜요 ? " 그가 대뜸 물었다. 말투에 독이 서렸지.

 

- 아, 네에... 미안해요 ! 하하하. 전 셰익스피어 싫어하거든요 !

- 어떤 텍스트 말씀하시는 거죠 ? ( 말투가 꼭 책은 읽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라는 투였다. )

- 전부 다요. 제국주의자의 앞잡이 같아서 싫습니다. 으하하하하.

- 제국주의자의 앞잡이요 ?

- 네에, 알랑방구 대마왕 ! < 베니스의 상인 > 보세요. 그 재판이 무슨 세기의 재판입니까 ?

 

오고가는말대답'이 한참 이어졌다. ( 설전은 링크로 걸어둔다. ) 셰익스피어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됐거든요. 셜록 홈즈도 그런 분 아니시거든요 ? 제임스 조이스 님은 그런 분 아닙니다. 됐거든요. 스티븐 킹 님도 그런 분 아니십니다. 분위기는 험악까지는 아니었으니 약간 우중충해졌다. 대화에서 밀리지 않으니깐 그가 철학으로 문학을 이야기하며 셰익스피어와 제임스 조이스'를 옹호했다. 철학이라는 게 그렇다. 계보학을 꿰뚫은 놈이 이긴다. 철학의 창세기'를 읊는 놈이 이긴다.

 

깊게 아는 놈이 얕게 아는 놈을 이기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것은 문제가 안 된다. 무조건 창세기 잘 읽는 놈이 이긴다. 소크라테스에서 알랭 바디우까지 누가 더 많이 철학 노선도를 암기하느냐의 차이. 물론, 나는 졌다. 반격을 가할 수는 있었으나 재미없고 지루한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자식의 눈이 다시 한밤의 인공위성처럼 반짝거렸다. 반짝 반짝 반짝. 와와, 와와와와. 모임에 참석한 아가씨들은 다시 그에게 박수를 쳤다. 다시 토론의 주도권은 k에게 돌아가고... 한편 웅이네 가족은......

 

K가 스티븐 킹을 비판한 것 중 가장 어이없는 것은 주장은 킹의 다작'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하긴 스티븐 킹은 어마어마한 다작의 작가'다. 심농, 세이초, 킹 세 사람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소설을 쏟아낸 장본인들이다. 이들 셋이 출간한 책은 대한민국 전후 작가들이 출한한 모든 책을 합쳐도 다작 3인방의 책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농담이다. 하여튼 K는 킹의 몇몇 작품이 좋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빈약하다는 논리를 폈다. 셜록 홈즈나 킹의 작품은 문학적이기보다는 마니아적 현상으로 고찰해 보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지적질을 하셨다. " 문학을 소비 상품으로 이해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 허허허. " 라는 질문에 " 소비 상품으로 이해한다. 시부랄 놈아 ! "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싸우면 질 것 같아서 해해해 웃었다.

 

쪽수에서 밀린 나는 할 수 없이 말문을 닫았다. 순문학 모임에서 대중문학 팬이 홈즈와 킹이 최고라고 우기는 것도 예의는 아닌 듯 싶어서 그냥 술만 마시고 나왔다. 가끔 교수들의 회식자리를 상상하고는 한다. 이런 놈이 전부 다 모여서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허허허. K 선생, Y 선생, P선생 하면서 말이다. 교수 사회 참 재미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홈즈의 문장력은 후졌다에는 동의하지만 홈즈의 작품이 후졌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문장력이 킹의 문장력보다 월등하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자 카페 회원들이 몇몇 더 모였다. 나와 L은 그 자리를 나와서 2차로 종로 굴보쌈집에 갔다. 셰익스피어를 좆나게 욕했다. 제임스 조이스도 덩달아 욕을 먹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셰익스피어보다는 스티븐 킹'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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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혹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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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3-04-22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섹스피어의 저주문에 놀라곤 합니다. 어쩜 그리 독하게 저주를 일삼던지...당시 유행이었을랑가요??...전공자들은 좀 재미있고 흥미로운 얘기들을 해주면 오죽 좋겠습니까...
곰곰발님 글이 워낙 많으셔서 미처 못읽은 게 많네요^^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4-22 17:37   좋아요 0 | URL
네이버 하도 지랄 같아서 폭파시킬려고 하루종일 자료 옮겼씁니다...ㅎㅎㅎㅎ


생각해 보니... 정말 섹스피어는 저주하는 대사'가 자주 나오죠. 복수'는 역시 모든 스토리텔링 중에서 갑인 거 같아요... ㅎㅎㅎㅎㅎ.

섹스피어 섹스 사전'도 있어요. 섹스피어'가 성적 은유를 즐겨 사용해서 아예 그것들로만 설명이 가능한 사전이 있다고 합니다. 햄릿도 보면 사실 거의 성적 도발'입니디ㅏ.

대단한 양반이기는 한가 봐요... 전 딱히 동하지는 않더라고요.. 후후..
 

 

 

 

내가 밑줄 친 문장들.

 

 

책에 밑줄을 긋는 행위는 상대방의 손을 잡는 행위와 비슷하다. *장정일은 밑줄을 두고 당신도 내 생각에 동의하느냐는 물음 곧 대화 라고 말한다. 밑줄은 독자가 저자에게 보내는 공감, 동의, 지지, 환희를 나타낸다. 그것은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 라는 부분을 부를 때의 감정적 동화와 같다. .

하지만 밑줄 친 문장이 우리를 항상 매혹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서 읽다 보면 밑줄 친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그 문장을 읽으면, 내가 왜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지 도무지 모를 때가 있다. 화려했던 문장이 지금에 와서는 평범한 문장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릴 적 흠모의 대상은오래 전에 밑줄 친 문장과 비슷하다. 매혹적인 주체였던 대상은 지금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추억 속에서는 화려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초라한 것이 바로 그 옛날 흠모의 대상이다.

반대로 처음 읽었을 때는 평문처럼 보여서 밑줄을 긋지 않았다가 다시 읽을 때 좋아지는 문장이 있다. 권정생의<몽실언니> 가 좋은 예이다. 권정생의 글은 피카소의 드로잉처럼 보인다. 예술가가 보기엔 그것은 예술처럼 보이지만 문외한이 보기엔 낙서처럼 보이는 것처럼, 권정생의 글도 문외한이 보기엔 초등학생 일기처럼 보인다. 바로 그것이 좋은 문장이다. 쉬운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쉬운 문장을 난해한 문장으로 만드는 것은 쉬우나, 어려운 문장을 쉽게 설명하는 것인 어렵다. 오랜 사색 끝에 내놓는 간결한 문장은 깊이 우려낸 녹차의 맛과 비슷하다.

문장의 곁가지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문장에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딱지처럼 딱지딱지 붙어있거나, 포도처럼 포동포동한 문장은 수상한 문장이다. 지금 이 문장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면 단순한 것이 좋아진다. 화두란 버리고 버리고 남은 벼린 칼을 말한다. 단순한 질문 하나가 남지만 그것은 매우 치명적인 것이다. 밑줄 친 문장도, 사랑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단순하지만 벼린 칼 하나를 가슴에 품은 사람이 좋다.

 

 


 

 

 

밑줄 친 문장()

 

 

 

 

 

 

 

 

 

 

스티븐 킹 산문 :나는 그의 글이 셰익스피어의 글보다 좋다. 적당히 천박하고, 꽤 웃기며, 약간 무섭다. 그의 글쓰기 창작 강좌인 <유혹하는글쓰기> 는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창작론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입문서였다. 그는 젠 체하는 먹물들을 신랄하게 조롱한 다음, 십 분 후에 다시 꼬집는다. 그리고는 다시 씹고, 다시 조롱하고, 다시 비웃는다. 칭찬도 여러 번 들으면 짜증이 날 만도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신난다. 그의 잡담은 늘 재미있다. 그게 바로 그의 치명적 매력이다.

김애란의 소설 : 나애리는 나쁜 계집애. 캔디는 좋은 계집애다. 하니는 나애리 때문에 종종 울지만, 캔디는 이라이자 때문에 울지는 않는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 오히려 캔디는 우리에게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우냐 ?참치냐 ?라고 당돌하게 반문한다. 어라?!이쯤되면 우리는 캔디의 씩씩한 명랑에 홀린다. 김애란의 소설이 좋은 점은 아버지의 부재를 자신의 트라우마로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애란 소설의 주인공들은 아버지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 캔디가 등장하는 김애란식 가족 서사에서 아버지는 주인공이 아니라 < 지나가는 행인 3> 에 불과하다. 김애란 소설이 빛나는 점은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문장은 신경숙처럼 지지리 궁상도 아니고, 은희경처럼 맹랑하지도 않다. 김애란은 명랑하다.

롤랑바르트에세이 : 우리가 에세이를 싸구려 분야라고 인식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신달자나이어령 같은 사람들의 에세이 때문이다. 에세이란 본래 신변잡기 류의 글이 아니라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철학서다. 나는 그들이 거리 청소부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부지런한, 대한민국 성공 신화의 일등 공신이라는 식으로 미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불평등 사회에서 직시해야 될 것은 부지런한 일꾼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계급 모순에 대한 분노다. 롤랑바르트나 파스칼 키냐르의 에세이를 읽으면 대한민국에서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통되는 텍스트가 지나치게 천박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키냐르의 에세이는 우아하고, 바르트의 에세이는 에로틱하다.

함민복의시 : 아무리 지랄을 해도, 내게 있어서 시의 본질은 < ~ 타령’> 이다. 타령이란 본질적으로 신파이고, 한탄이며, 유행가 가사이지만 그래도 시는 멜랑꼴리하게 만드는 힘을 가질 때 위력을 발생한다. 미래파 시인들이 모던보이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시인은 좀... 지지리 궁상이어야 멋있다. 함민복의 시는 지지리궁상이다. 가난 때문에 어머니를 버려야 하는 아들의 투가리에 어미가 자신의 설렁탕 국물을 부어줄 때, 시인은 눈물은 왜 짠가 라고 묻는다. 닝기미.... 캔디도 울지 않는데, 이라이자가 괴롭히지도 않는데, 나애리도 없는데 왜 우냐고 말하고 싶지만 묘하게 이 신파는 깊은 울림을 준다.

정말 좋은 멘트: 그 사람의 방송 멘트가 하나의 문장이었다면, 나는 당장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을 것이다. 역에 도달하기 전까지 역 이름을 친절하게 방송하던 철도 기장은 그만 다음 역 이름을 까먹고 말았다. 다음 역은...“ 침묵. 다음 역은...“ 또 침묵. “ 다음 역은...“ 다시 침묵! 방송을 듣고 있던 승객들이 오히려 긴장하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다음 역은 신림이라구요. 승객들은 모두 아는데 기장 혼자 모르는 상황이다. 다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다음 역은...“ 승객들의 귀가 토끼처럼 쫑긋 ! 드디어 기장이 말을 이었다. “ ....... 어디 일까요 ? “ 기장의 멘트를 들은 승객들은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내 친구가 직접 경험한 실화다. 사람들은 < 어디일까요 역 > 에서 내렸다. 가끔 신림 역에 갈 일이 있으면 킥킥 웃게 된다. 신림의 다른 이름은 어디일까요 역이기도 하다.

 

 

http://myperu.blog.me/20110667235

 

 

 

 

 

 

 

 

권정생의동화 :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책에는 밑줄을 그은 흔적이 없다. 그의 소설 첫 문장을 읽었을 때 깨닫게 되었다. 첫 문장의 첫 음절부터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이어지는 그 끝없는 길 위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엔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매우 긴 밑줄이 선명하게 보인다.

갠이치로의소설 :갠이치로의 소설은 황당무계하다. 엽기 만화 <이나중 탁구부 > 를 소설로 만든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도 <아침에배아파서알낳어> 라는 식이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포르노를 열심히 보아야 하고, 얼음 주스 냉장고는 너무 열심히 일한 나머지 일사병에 걸려 죽는다. 사람들이 보기엔 미친 정신병자가 쓴 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의 판단이 옳다. 갠이치로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글에 열광하는 이유는 매우 독하게 슬프기 때문이다. 착란은 종종 찬란한 법이다. 나는 그 사실을 갠이치로를 통해서 배운다.

김훈의 기행문 : 김훈이 쓴 문학 평론은 그저 그렇고, 그렇고, 그렇다. 하지만 기행문은 황홀하다. 그가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사색할 때의 문장력은 압도적이다. 소설보다는 기행문이 더 좋다.

제품 사용 설명서 :아이폰 4 제품 사용 설명서에 쓰인 지시문을 읽으며 감탄하는 사람이 있을까 ? 없을 것이다. 사용 설명서에 쓰인 문장은 지극히 사무적이며, 냉정하고, 예의바르지만, 무뚝뚝하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 없는 문장이 바로 제품 사용 설명서 문체. 하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15,000원짜리 쿠스코 바르셀로나 스타일의 옷을 하나 샀다. ( 쿠스코 티는 보통 몇 십만 원 한다. 내가 입고 다니는 쿠스코 바르셀로나는 짝퉁이 아니라 디자인 문양만 흉내낸 옷이다.

가짜라기보다는 디자인을 카피한 것이다. ) 포장지 속에는 옷과 함께 제품 사용 설명서가 있었는데 펼쳐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자신있게거리를 활보합시다 !“ 태어나서 제품 사용 설명서 읽고 감동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싸구려 가짜 동대문 옷이지만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워킹하라는 말. 이 정도면 참... 센스 있으신 분이다. 그런데 얼마 후 온라인 쇼핑몰은 문을 닫았다. 쿠스코바로셀로나 스타일의 옷을 찾는 사람은 대한민국 0.1%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쿠스코 스타일의 옷은 입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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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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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방 한 칸 : 광합성, 너무 많거나 너무 적거나 !

 


 

옥탑 방에서 산 사람은 다시는 옥탑 방에서 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일종의 와신상담이다. 반 지하 셋방 세입자도 다시는 반 지하’에서는 살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를 한다. 하지만 집 없는 민달팽이 신세인 도시 빈민‘은 다시 옥탑 방에서 옥탑 방으로 이사를 하고, 반 지하 세입자도 다시 눅눅한 반 지하 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놈의 돈이 문제다. 나는 옥탑 방에서도 살아 보았고, 반 지하에서도 살아 보았다. ( 그러고 보니, 모텔에서도 장기투숙자로 살았네 ? 빌어먹을,

 

전형적인 빈곤 생활 유형 3종 세트구나 ! ) 옥탑은 지나치게 볕이 들어서 여름에는 너무 더웠고 겨울에는 오지게 추었다. 여름 한낮에 방에 있다 보면 복날의 개처럼 혀가 축 늘어져서 헉헉거리기 일쑤였고, 겨울에는 불알이 쪼그라들어서 내가 키우던 마르치스 애완견의 그것보다 작아져서 수치스럽기도 했다. 맙소사, 아니 내가 개보다 작단 말이야 ? 지져스 크라이스트 ! 반면 반 지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습기로 눅눅했다. 검은곰팡이가 늙은 노인의 검버섯처럼 자랐다. 이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내 얼굴에 검은곰팡이’가 필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는 도시 빈민’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누가 옥탑이나 반 지하에서 살겠는가. 그놈의 돈이 문제이지. 종종 택배 아저씨‘가 정확한 주소를 요구해 오면, 나는 반 지하 대신 반 지상’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 반 지상 ’ 이요 ?! 그리고는 이내 내 의중을 안다는 듯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빈곤을 저주하고는 했다.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부끄럽지만 번듯한 지상의 방 한 칸을 원했을 뿐이다. 광합성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지도 않은, 혹은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지상의 땅이 발아래 밟히는, 그런 < 나만의 방 > 이 필요했다.

 

하지만 빈민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반지하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바닥에 깔린 자의 비애'를 알지 못한다. 창밖을 통해 목격하게 되는 행인들의 낡은 신발'은 무척 구슬프다. 자신의 눈높이로 신발의 정면을 응시하는 것은 묘한 슬픔을 전해준다. 마치 나 또한 한 켤레의 신발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 반지하에서 산다는 것은 타인의 신발'을 몰래 훔쳐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볕이 적당히 들어오는 지상의 방 한 칸'을 간절히 원했다.

 

 

http://myperu.blog.me/20054537238 - 내가 살던 반 지상 호화 룸.


김애란 소설‘의 키워드는 방이다. < 지상의 방 한 칸 > 이다. 이 꿈은 너무 소박해서 종종 슬프다. 집 한 채’도 아니고 방 한 칸‘이지 않은가 ? 김애란의 문체가 명랑하지 않았다면 독자는 슬퍼서 술 펐을 것이 분명하다. 아이콩, 슬퍼라 ! 멋진 방 하나만 있으면 신나서 방방 뜰 것 같다. 연인이라면 크리스마스‘엔 모두 < 방 > 에서 하고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크리스마스'를 꺼낸 이유는 그녀의 단편 < 성탄특선 > 의 배경 때문이다. 하여튼, 이날 안 하면 고자요, 불감증이다. 나이키 본사는 < 져스트 두 잇 >이라고 섹스를 독려하며, 기타노 다케시는 < 크리스마스에 모두 다 하고 있습니까 ? > 라고 묻는다. 그러니 대한민국 여관‘은 이날만큼은 밤 9시면 여관 간판’이 꺼진다.

 

이 신호는 < 방 없음, 지금 모두 하고 있습니다. 방해하지 마세요 > 라는 신호다. 여관방의 불은 꺼졌지만, 벌거벗은 육체는 불타고 있는 중이다. 아, 졸라...... 좋겠다. 음냐. 이날 독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티븨에서 하는 성탄 특선‘을 보는 것이 전부다. 말이 좋아서 특선이지 재방송이다. 2012년 크리스마스'에도 < 나홀로집에 > 는 특선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될 것이고, 2013에도 < 나홀로집에 > 는 특선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될 것이 분명하다.

 

 

2014, 2015, 2016년에도 영원히 ! < 나홀로집에 > 를 나 홀로 집에서 보는 비애'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크리스마스 때 원하는 것은 당신의 클리토리스'다. 아, 이거 너무 라임을 억지로 맞춘 부적절한 랩 가사인가 ? 그나저나 예수의 생일날 모두 하다니, 심히 불경스러워라. 단편 < 성탄특선 > 은 크리스마스에 모텔 방이 없어서 날밤을 꼴딱 세는 가난한 연인‘의 이야기다. 모두 할 때, 하지 못한 연인의 이야기라니, 슬프지 않은가 ?

 

그들이 원한 것은 방음이 잘 된 지상의 방 한 칸인데, 그것마저도 사치가 되는 사회다. 가난이라는 것이, 좀 그렇다. 내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크리스마스 연인들을 위해서, 이날만큼은 전국의 공무원 관사‘를 무료로 개방할 용의’가 있다. 그것도 모자르면 동사무소 숙소'를 러브하우스로 개조할 용의도 있다. 물론 숙박업계의 암살 음모에 시달리겠지만, 연인들을 위하여 의욕적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한다. 다른 날은 몰라도, 적어도 크리스마스에는 < 져스트 두 잇 >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

 

 

 

 

 

 

 

+ 사족.

 

김애란의 단편'은 모두 재미있다. 단편이라는 것'은 각자 작품의 편차'가 있기 마련인데, 김애란'의 단편은 모두 일정한 궤도 이상을 유지한다. 그러한 뒷받침에는 든든한 이야기의 재미도 한몫하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탄탄한 문장에 있다. 김애란은 조경란처럼 감정을 불란서'처럼 비비꼬지 않고, 공지영처럼 감정을 남발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배수아처럼 지나치게 쿨하지도 않으며 편혜영처럼 그로테스크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명랑을 가장한 다른 문체와도 비교된다. 박민규와 더불어 독보, 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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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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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만큼 재미없는 글'도 없다. 아무리 재미있게 써도 나와 관점이 다르면 재미'는 시시한 것'으로 추락하기 마련이니깐. 사유가 곰삭은 진국이라면 모를까, 어설프게 핏기만 뺀 국물은 맛이 밋밋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원본보다 훌륭한 사본을 작성하는 것은 원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래저래 비평-사본'은 찬밥 신세일 뿐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문학비평'이 원본의 사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본'도, 그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평론가들은 늘 거들먹거리며 원본에 대하여 논하지만 사실은 부러운 거다. 대학 사채업자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덥썩 물거나, 출판사에서 던져주는 떡을 냉큼 삼키면서 그들은 먹물들의 세계사를 쓴다. 문학은 나의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문학의 나의 돈줄이라는 불편한 속내를 숨긴 것에 불과하다.

 

 


 

 

 

 

 

 

 

김애란, 두 번째 이야기



▶ 도도한 생활

김애란의 소설집 < 침이고인다 > 를 읽고 있으면, 나는 220 볼뜨‘1 백열전구의 필라멘트‘가 된다. 김애란이 단편 < 도도한 생활 > 에서


엄마는 탈수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탈탈탈탈 울었다.

- 20

 

거나,

 


내가 집을 떠나던 날, 아빠는 오토바이 ‘쇼바’를 잔뜩 올린 채 도로 위를 달리며 울고 있었다. 아빠는 오토바이 속도가 최절정에 다다랐을 때, 앞바퀴를 들며 “ 얘들아 너흰 절대 보증 서지 마 ! ” 라고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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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고 표현했을 때, 이 여자의 대책 없는 명랑함‘에 나의 필라멘트’는 깜빡깜빡 까르르르르 흔들리며 정신줄을 놓았다. 꺼, 졌다 켜졌다 ! 깜빡깜빡... 안녕하시렵니까 ? 반갑습니다. 읽다 보면 이 명랑함은 비극에 대처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명한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김애란의 < 맹랑하지 않은 명랑함 > 을 좋아한다.

 

참 좋다 !


이 명랑함은 슬픔을 감춘 명랑'이다. 서울 반지하 셋방에서 언니와 살아가는 나‘는 ( 한때 그럴듯하게 살았던 상징적 유물인 ) 처치 곤란한 피아노’와 함께 동거한다. 가장 낮은 음계‘인 도’만 울려도 득달같이 달려오는 지랄같은 주인 눈치에 피아노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 피아노, 너 밤에 짖지마 ! 쓸데없이 울지마 ! 낑낑거리지 말란 말이야 ! 소리내서 울지 말고, 웃지도 마 ! 음냐...... " 아 설움이 이런 거구나, 하는 순간 장대비’가 쏟아지고 검은 물은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아빠처럼 쇼바‘를 잔뜩 올린 채 울까? 말까?


갑자기 깜빡깜빡 거리며 신나게 까무러치던 나의 필라멘트‘가 쨍 하며 파르르르 떤다. 열이 난다. 그때 알았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리라. 필라멘트’는 울 때 쨍 하며, 밝은 곳에서만 운다는 사실. 인간과는 정반대'다.



침이 고인다.


원룸은 < 원 맨 룸 > 에서 맨‘이 빠진 것이다. 한때 급진 페미니스트’은 남성화된 언어의 전범으로 원룸‘을 지목하며 원-맨-룸’을 원 피플 룸‘으로 개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인 적이 있으며, < 한글을 사랑하는 모임 > 의 회원들은 원룸 대신에 단칸방’이라는 고유어‘를 사용해 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한 적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어찌되었든, 원룸은 혼자 살기에 적합한 방 구조‘다. 그런데 이곳에 후배가 찾아온다. 그리고는 자신의 슬픈 서사/트라우마’ 로 원 피플 룸 주인을 유혹한다. 엄마가 껌 한 통을 손에 쥐어주고는 자신을 버렸다고, 껌을 한 통 다 씹을 동안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입 안에서는 침이 고였다고 !2 결과는 ? 원룸에 둘이 함께 산다.

 

 

이쯤에서 우리는 1룸에 함께 사는 2여자의 아름다운 동거'를 바라보게 될 거란 기대'를 한다. 급진 페미니스트들 좋아할 만한 떡밥이군, 이라고 생각할 때 어찌 돌아가는 꼴이 좀 수상하다. 기획 상품이라면 모를까, 애인이라면 모를까, 1룸에 1 + 1 ‘ 은 불편하다고 김애란은 솔직하게 말한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현관문을 열 때 후배가 없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뭐, 이쯤 되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니깐. 타인의 트라우마’는 나의 상흔이 되기엔 방이, 너무 좁다 !

 


후배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사라진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을 때는 말이에요. ... 떠나고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려볼 때면 말이에요... “ 지금도 침이 고여요. ”

- 61

 



성탄특선


지상의 방 한 칸‘이 이토록 간절할 때’는 크리스마스 때‘가 아닌가 싶다. < 성탄특선 > 의 연인은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서로 엉키려고 하는 순간, 방이 없다 ! 엄기영 앵커’가 “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 라는 통속적 멘트를 날리기도 전‘에, 이미 모텔 간판’은 불이 꺼진 지 오래이다. 대한민국 연인들은 이미 벌거벗은 채 전투 중이다. 이때‘가 바로 < 정기 대 방출 > 이 아니라 < 정액 대 방출 > 이 시작되는 기간'이다. 정액들의 엑소더스다.

 

 

모두, 하고 있습니까? 모두 탈출 하셨습니까 ? 개불 같은 전립선에서의 지저분한 삶, 이제 박차고 나가세요. 불알은 당신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딱딱한 알'일 뿐입니다. 아브락삭스의 새가 되십시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진하십시요. 저기 아늑한 궁이 보이지 않습니까 ? 자, 달립시다. 탈출합니다 ! 으리으리한 궁궐을 향해서 짝꿍의 등짝을 세게 한 대 때려도 좋습니다. 오늘은 예수가 우리에게 준 자유의 기회입니다 ! 영광의 탈출입니다, 여러분 !!!!

 

 

소설 속 연인‘은 모두 다 하고 있을 때 하지 못한다. 열 군데 넘게 돌아다닌 모텔 방은 이미 벌거벗은 어처구니들로 가득 찼고, 호텔은 지나치게 비싸며 여인숙은 정액을 고급스럽게 대 방출하기에는 너무 왁자지껄한다.


한국의 좌파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그들이 편안하게 누울 지상의 방 한 칸이 없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건설교통부에 대한민국의 부동산 정책 제대로 하라고 항의 전문'을 보낼 것이 분명하다. 아, 신발 ! 아, 시 ㄴ 발 ! 나의 필라멘트가 깜빡깜빡 거리다가 쨍 하고 떴다 ! 여전히 김애란은 < 자기만의 방 > 을 이야기한다. 사랑스럽고, 편안하며, 방음 잘 되어서, 신나게 응, 응, 응, 아흥'을 당당하게 샤우팅으로 내지를 수 있는 그런 단단한 방'이 필요하다고.

 

 

 


칼자국

 

 

김애란이 그동안 자기만의 방‘에 집착했다면 < 칼자국 > 에서는 타자의 시선으로 엄마의 방을 바라본다. 엄마의 방은 부엌이다. 말랑말랑한 밀가루를 칼로 썰어서 < 칼-국수 > 를 만드는 엄마의 맛’은 한 마디‘로 칼칼하다. 이 위험한 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엄마의 방/부엌‘에서 주인공 나’는 숭고를 경험한다. 배가 고픈 나‘는 허겁지겁 사과를 깎아서 먹는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 어둑한 부엌 안, 사과 깎는 소리가 고요하게 퍼져 나갔다. 사과는 내 손에서 둥글게 자전하며 자신의 우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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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言 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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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쇼바‘를 이빠이 올리며 간지나게 울었다면, 어머니’는 탈수기 아래에서 탈탈탈탈 우는 존재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운다. 물기 하나 없는 탈수기 속 옷처럼 ! 왜 엄마는 그 흔한 방이 없는 것일까 ? 기껏해야 탈수기 옆이거나, 부엌이란 말인가 ? 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한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며 말'이다, 라고.




네모난 자리들


이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나의 필라멘트‘가 주책없이 쨍 하며 운다. 부끄럽게, 남세스럽게, 이게 뭔가. 다 큰 사내가. 12센티미터 페니스’를 가진 수컷이 이게 뭔가 말이다. 빌어먹을, 필라멘트 새끼.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과 길을 걸을 때, 나는 길라잡이‘를 자청했었다. “ 제가 길을 잘 알죠. 지름길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나는 A에서 B’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하기 위해서 남들은 잘 모르는 골목길‘로 그녀를 안내했다. “ 평소라면 30분 걸리는 거리인데, 이 길로 가면 20분이면 가죠.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요. ” 내가... 안내했던 그 길. 그녀는 모르리라, 사실 그 길은 가장 빠른 동선이 아니라 가장 늦은 동선이라는 사실 말이다.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나는 20분에 걸쳐 길을 안내한 것이다. 가끔 그 길‘을 걷고는 한다. 걸을 때마다 설레이는 골목이다. 궁금하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 알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후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깐. 아, 이런... 나의 필라멘트’가 우는 바람에 잠시 딴 생각을 했다.


< 네모난 자리들 > 은 골목골목을 누비는 남자와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그 남자의 방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다만, 먼 곳에서 불 밝힌 창문만 보았을 뿐. 어느 날 남자’가 사라진다. 여자는 용기를 내서 그 남자를 찾아간다. 문은 잠겨 있다. 그녀는 문 위에 올려놓은 열쇠를 찾아서 방 안‘을 본다. 그녀가 본 것’은 텅 빈 방이 아니라 쓸쓸한 남자의 모습이리라. 아니다, 그녀가 본 것‘은 쓸쓸한 자신의 방’이다. 타자의 방에서 자기의 방‘을 본다.



플라이데이터리코더

 

 

단편집을 읽을 때, 나는 하나의 단편‘은 읽지 않은 채 책’을 덮는 습관이 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다가 이 행위에 나름의 상징‘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책 읽기는 없다고, 독서는 언제나 미완의 행위라고 말이다. 오늘도 나는 한 편의 단편‘을 읽지 않고 책을 덮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가 끝내지 않은 책이다. 미완의 책이다.

 

 

 

 

 

 

 

 

김애란'은 " 집 " 이 아닌 " 방 "을 이야기한다. 집과 방은 뿌리와 리좀의 관계와 같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순환, 계통, 소통'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소설 속 배경은 모두 방이다. 집에 딸린 방이 아니라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 하나다. 이 방은 자폐적이다. 그래서 생래적으로 고독한 영역'이다. 그것은 마치 혼자 생활하는 표범의 영역'이기도 하다. 고독한 곁'이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3.

 

 

하지만 ( 자본주의적 ) 현재의 삶'은 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자기만의 방'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하루 머물 모텔 방'마저 없다. 기껏해야 그들이 머물러야 하는 공간은 지하'이거나 하늘 아래4' 그리고 부엌 혹은 독서실 바닥5이다. 땅 냄새에 멀미를 하는 지상은 이미 가진 자의 공간'이다. 현대의 빈민은 고독하려고 해도 공간이 없어서 고독할 수 없는 존재이다. 김애란은 그 사실을 직시한다. 깔깔거리면서, 때론 심각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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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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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공중보건 위원회 !


 

 

 

 

 

 

 

 

 

 

 

1. 낮잠


주춤, 쭈뼛쭈뼛 ! “ 물건 ” 을 살 때 주눅 들게 되는 곳이 < 약국 > 이다. 이 상점‘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손님이 왕이던 자부심은 어디 가고 약사 눈치 보기 바쁘다. 코, 코코코콘돔 주세요 ! 당당한 척하지만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그럴수록, 오히려 태, 태태태태평한.... 얼굴로. 코코코코콘돔 주세요 ! 속내를 들킨 것일까 ? 약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묻는다. 약사가 무표정하면 할수록 당황하는 손님을 위한 주인의 배려인 것 같아 오히려 더 불안하다.


도트형 콘돔으로 드릴까요, 아니면 소용돌이형으로 드릴까요, 울트라 슬림형은 어떤가요 ? 착용 시 이물감’을 느끼는 분이라면 낀 듯 만 듯한 초슬림형 0.3미리 콘돔을 추천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이죠. 그리고는 귓속말로 말한다. 조루‘에게는 두꺼운 콘돔이 최곱니다 ! 도트? 소용돌이 ?? 울트라 슬림 ??? 이물감 ???? 이물감이라는 이질적인 단어‘를 듣자 긴장감이 고조된다. 여자 친구 집에서 섹스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집 강아지가 나를 똑바로 노려볼 때의 기분이 섹스 시 이물감'이겠지 ? 아, 아아아아무거나 주세요 !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 아무거나 콘돔 > 을 끼고 섹스를 하고는 했다. 내심,

 

두꺼운 콘돔이 걸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이야 택배 주문하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때는 반드시 “ 진찰은 의사에게, 콘돔은 약사에게 ! ” 였다. 하여튼, 그때는 콘돔을 사기 위해서는 동네 몇 바퀴‘를 돌아야 했다. 대한민국 약사는 죄다 여자인 것일까 ? 여자 약사에게 콘돔 유니더스에서 출시된 0.3미리 초슬림’으로 주세요. 써 보니 착용감이 훌륭하더군요. 아, 도트형에 망고망고 향‘으로 주문할게요. 비밀인데 소용돌이는...


아파요 ! 크크크.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 그래서 나는 남자 약사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고는 했다. 옳거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약국을 보시네 ? 문을 열고 들어선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어서 오시구랴, 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불쑥 젊은 여자 약사‘가 진열대 밑에서 나타난다. “ 아빠, 계속 식사하세요 ! 손님, 무엇을 찾으시나요 ? ”


쌍화탕 주세요!


따라락, 뚜껑을 따서 쌍화탕을 벌컥벌컥 마신다. 그지깽깽이 같은 의료 보건 분야 국회의원 새끼들 ! 왜 콘돔을 약국에서만 파는 거야 ! 고생 고생해서 얻은 콘돔이니 1일 3회 복용은 엄두도 못낸다. 어떻게 해서 얻은 소중한 콘돔인데... 비닐 커버를 찢을 때마다 손이 벌벌 떨린다. 재활용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세상이 좋아졌다. 이제는 편의점과 인터넷 거래‘로도 구입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이렇게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하루 세 끼는 기본이요, 참에 야식까지 먹을 수 있다. 콘돔이 흔한 세상에 되었다. 약국이라는 것이 그렇다. 우리는 약국에 가서 우리의 은밀한 사생활을 폭로해야 한다. 박민규의 단편 < 낮잠 > 에서의 늙은 노인은 약국에서 나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약국에 들어선 노인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한다. “ 서, 서서성인 의료용 기저귀를 주세요.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어서는 콘돔을 사며 부끄러워하지만 늙어서는 요실금용 기저귀’를 사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 콘돔이 어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성인용품이라면 기저귀‘는 어린이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오브제‘라는 사실. 약국에 가서 콘돔을 산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리 생각하니 약국은 인생의 축소처럼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는 요실금용 기저귀를 사기 위해서 약국에 갈지도 모른다.

 


 

 


2. 별


사람들은 별을 안 보고 산다. 그냥 별일 없이 사는 것이 그럭저럭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 볼 일 없는 삶은 처량하게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별별’이라는 단어도 사실 잡동사니를 가지가지 나열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 이제 더 이상 별을 그리라는 유치원선생님의 주문에 ☆ 를 그리는 뽀로로 열혈 마니아’는 없다. 오히려 star‘라고 쓰는 조기 영어 교육 부모의 자녀가 존재할 뿐이다. ( “ 준장 ” 이라고 쓰는 어린이의 정신세계는 무엇일까 ? )


현대인이 하늘의 별을 보지 않는 이유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이니 사람들은 발등의 불만 바라본다. 작은 불씨 꺼지랴, 노심초사다. 그러니 하늘의 별을 누가 감상하겠는가. 단편 < 별 > 의 주인공은 대리기사‘다. 꽃뱀 때문에 인생 망친, 카드 돌려막기로 꽃뱀의 명품 핸드백’을 사주다가 급기야는 회사 돈을 유용한 인간이 등장한다. 단물만 쏘옥 빼먹고 도망간 여자는 들리는 소문에 의사 부인이 되었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우연히 만난다. 술 취한 고객과 대리기사의 관계로... 여자는 의식을 잃은 채 뒷좌석에 쓰러져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살의를 느낀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복잡하다. 차를 길가에 세워둔 후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핀다.


제목이 < 별 > 이지만 별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밤은 그냥 어두울 뿐이고, 새벽도 그냥 어두울 뿐이다. 그냥, 그냥, 그냥 어두운 밤이다. 별이 없는 하늘이다. 신용불량자인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 그냥 발등의 불‘만 본다. 불과 별, 묘하게 이질적이지만 교묘하게 닮은꼴이다.



 

 

 

 


3. 아스피린


젠장, 왜 안 나오나 했다 ! 하늘에 거대한 아스피린이 둥둥 떠 있다. 어마어마한 아스피린이다. 처음에는 우주선인 줄 알고 흥분했던 사람들도 아스피린이라는 소식에 시큰둥이다. 광선 좀 지지직, 하며 쏴 주어야 스펙터클 할 텐데 말이다. 아스피린을 보니 아, 머리 아파, 두통, 치통, 생리통이다. 단편 중 가장 박민규스럽다 !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극을 능청스럽게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4.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켰어요.


박민규가 말하길, 좆이 안 선다고 한다. 천하장사 소세지 2개를 점심 끼니 삼아 먹었는데도 좆이 안 서면,

 

 


안... 서는 거다.

 

속된 말로 좆 된 거다. 그는 단 한 대의 차도 팔지 못한 차 판매원. 경제력도 무능한데 성력‘도 무능하다니 ! 설상가상 서랍에서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딜도’가 발견된다. 오, 오오오잉 ? 그 길이가 18센티미터'요 넓이는 4센티미터다. 콘돔 재료로 쓰이는 라텍스 고무 재질이라 딱, 딱하지도 않다. 물렁물렁하다. 커다란 초록 애벌레 같다. 그러니깐 아내가 쓰는 딜도는...


세상에나 !


딜도 씨는 꼴리지 않고도 18 센티미터인 것이다. 꼴리면 도대체 몇 센티미터인 것이냐 ? 50센티미터 자 ? 맙소사, 우리의 차 판매원 사정이 딱 (딱)하다 ! 자신의 그것을 본다. 3센티미터 ? ? 절박하다. 결국 그는 화성까지 가서 차를 세 대나 파는 데 성공한다. 의기양양 돌아온다. 피곤하다. 누군가는 이런 게 소설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천박하다며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돌팔매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 문학이 세상을 구원합니까 ? ”


음담이 팔 할이다. 그래도 좋다, 박민규‘이니깐 가능한 설정이다. 소설이 거창할 것 없다고 박민규는 말한다. 딜도처럼 그저 누군가의 클리토리스를 살살 긁어주면 소설의 역할은 다했다고 말한다. 천박하면 어떤가 ?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위무하면 그만이지.

 

 

이 블로그’를 모녀가 함께 보는 이웃 블로거가 있다. 딸아, 이 블로그의 주인장, 참 재미 있는 양반이구나. 함께 읽으면 유익한 글이 많구나. 엄마는 40대를 훌쩍 넘겼고, 딸은 사춘기 소녀다. 모녀가 함께 내 글을 읽는다니 감격스럽다. 그런데 아뿔싸 ! 내가 딜도‘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같이 읽던 딸이 묻더란다. 엄마, 딜도가 뭐야 ? 엄마는 침묵하고 딸은 어느 순간 깨닫고 자리를 피했다고 !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모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유익한 글만 올리려고 했는데 어찌어찌하여 이리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순전히 박민규 탓이다. 내 탓이 아니다.


 

5. 루 디


단편집을 읽을 때, 단편 하나는 반드시 빼고 읽는다. 어찌어찌하여 징크스가 되었다. 이 버릇은 나중에 제의처럼 변질되어서 단편집의 단편 모두를 읽으면 다음날 길을 가다가 묻지 마 살인의 희생양이 될 것 같다는 재수 없는 생각‘이 들어서 이 철칙을 반드시 지킨다. 몇 년 묵혔다가 나중에 읽는 법도 없다. 그냥 읽지 않는다. 그러니깐 < 루디 > 는 앞으로 영원히 읽지 않는 단편 중 하나이다.


16편의 단편이 수록된 < 더블 > 단편집에서 가장 훌륭한 단편이 < 루디 > 라면... 물론, 억울하다 !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뺑뺑이 돌려서 선택된 것이 < 루디 > 이니 말이다. 훌륭하다고 한들 어쩔 수 없다. 누가 < 루디 > 를 영화화했으면 좋겠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로 말이다. 단편집‘이 후지길 바랐는데 좋다 ! 빌어먹을, 졸라 좋다. 박민규는 인정하기로 하자 !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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