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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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공중보건 위원회 !


 

 

 

 

 

 

 

 

 

 

 

1. 낮잠


주춤, 쭈뼛쭈뼛 ! “ 물건 ” 을 살 때 주눅 들게 되는 곳이 < 약국 > 이다. 이 상점‘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손님이 왕이던 자부심은 어디 가고 약사 눈치 보기 바쁘다. 코, 코코코콘돔 주세요 ! 당당한 척하지만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그럴수록, 오히려 태, 태태태태평한.... 얼굴로. 코코코코콘돔 주세요 ! 속내를 들킨 것일까 ? 약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묻는다. 약사가 무표정하면 할수록 당황하는 손님을 위한 주인의 배려인 것 같아 오히려 더 불안하다.


도트형 콘돔으로 드릴까요, 아니면 소용돌이형으로 드릴까요, 울트라 슬림형은 어떤가요 ? 착용 시 이물감’을 느끼는 분이라면 낀 듯 만 듯한 초슬림형 0.3미리 콘돔을 추천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이죠. 그리고는 귓속말로 말한다. 조루‘에게는 두꺼운 콘돔이 최곱니다 ! 도트? 소용돌이 ?? 울트라 슬림 ??? 이물감 ???? 이물감이라는 이질적인 단어‘를 듣자 긴장감이 고조된다. 여자 친구 집에서 섹스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집 강아지가 나를 똑바로 노려볼 때의 기분이 섹스 시 이물감'이겠지 ? 아, 아아아아무거나 주세요 !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 아무거나 콘돔 > 을 끼고 섹스를 하고는 했다. 내심,

 

두꺼운 콘돔이 걸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이야 택배 주문하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때는 반드시 “ 진찰은 의사에게, 콘돔은 약사에게 ! ” 였다. 하여튼, 그때는 콘돔을 사기 위해서는 동네 몇 바퀴‘를 돌아야 했다. 대한민국 약사는 죄다 여자인 것일까 ? 여자 약사에게 콘돔 유니더스에서 출시된 0.3미리 초슬림’으로 주세요. 써 보니 착용감이 훌륭하더군요. 아, 도트형에 망고망고 향‘으로 주문할게요. 비밀인데 소용돌이는...


아파요 ! 크크크.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 그래서 나는 남자 약사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고는 했다. 옳거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약국을 보시네 ? 문을 열고 들어선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어서 오시구랴, 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불쑥 젊은 여자 약사‘가 진열대 밑에서 나타난다. “ 아빠, 계속 식사하세요 ! 손님, 무엇을 찾으시나요 ? ”


쌍화탕 주세요!


따라락, 뚜껑을 따서 쌍화탕을 벌컥벌컥 마신다. 그지깽깽이 같은 의료 보건 분야 국회의원 새끼들 ! 왜 콘돔을 약국에서만 파는 거야 ! 고생 고생해서 얻은 콘돔이니 1일 3회 복용은 엄두도 못낸다. 어떻게 해서 얻은 소중한 콘돔인데... 비닐 커버를 찢을 때마다 손이 벌벌 떨린다. 재활용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세상이 좋아졌다. 이제는 편의점과 인터넷 거래‘로도 구입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이렇게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하루 세 끼는 기본이요, 참에 야식까지 먹을 수 있다. 콘돔이 흔한 세상에 되었다. 약국이라는 것이 그렇다. 우리는 약국에 가서 우리의 은밀한 사생활을 폭로해야 한다. 박민규의 단편 < 낮잠 > 에서의 늙은 노인은 약국에서 나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약국에 들어선 노인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한다. “ 서, 서서성인 의료용 기저귀를 주세요.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어서는 콘돔을 사며 부끄러워하지만 늙어서는 요실금용 기저귀’를 사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 콘돔이 어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성인용품이라면 기저귀‘는 어린이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오브제‘라는 사실. 약국에 가서 콘돔을 산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리 생각하니 약국은 인생의 축소처럼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는 요실금용 기저귀를 사기 위해서 약국에 갈지도 모른다.

 


 

 


2. 별


사람들은 별을 안 보고 산다. 그냥 별일 없이 사는 것이 그럭저럭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 볼 일 없는 삶은 처량하게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별별’이라는 단어도 사실 잡동사니를 가지가지 나열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 이제 더 이상 별을 그리라는 유치원선생님의 주문에 ☆ 를 그리는 뽀로로 열혈 마니아’는 없다. 오히려 star‘라고 쓰는 조기 영어 교육 부모의 자녀가 존재할 뿐이다. ( “ 준장 ” 이라고 쓰는 어린이의 정신세계는 무엇일까 ? )


현대인이 하늘의 별을 보지 않는 이유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이니 사람들은 발등의 불만 바라본다. 작은 불씨 꺼지랴, 노심초사다. 그러니 하늘의 별을 누가 감상하겠는가. 단편 < 별 > 의 주인공은 대리기사‘다. 꽃뱀 때문에 인생 망친, 카드 돌려막기로 꽃뱀의 명품 핸드백’을 사주다가 급기야는 회사 돈을 유용한 인간이 등장한다. 단물만 쏘옥 빼먹고 도망간 여자는 들리는 소문에 의사 부인이 되었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우연히 만난다. 술 취한 고객과 대리기사의 관계로... 여자는 의식을 잃은 채 뒷좌석에 쓰러져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살의를 느낀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복잡하다. 차를 길가에 세워둔 후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핀다.


제목이 < 별 > 이지만 별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밤은 그냥 어두울 뿐이고, 새벽도 그냥 어두울 뿐이다. 그냥, 그냥, 그냥 어두운 밤이다. 별이 없는 하늘이다. 신용불량자인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 그냥 발등의 불‘만 본다. 불과 별, 묘하게 이질적이지만 교묘하게 닮은꼴이다.



 

 

 

 


3. 아스피린


젠장, 왜 안 나오나 했다 ! 하늘에 거대한 아스피린이 둥둥 떠 있다. 어마어마한 아스피린이다. 처음에는 우주선인 줄 알고 흥분했던 사람들도 아스피린이라는 소식에 시큰둥이다. 광선 좀 지지직, 하며 쏴 주어야 스펙터클 할 텐데 말이다. 아스피린을 보니 아, 머리 아파, 두통, 치통, 생리통이다. 단편 중 가장 박민규스럽다 !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극을 능청스럽게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4.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켰어요.


박민규가 말하길, 좆이 안 선다고 한다. 천하장사 소세지 2개를 점심 끼니 삼아 먹었는데도 좆이 안 서면,

 

 


안... 서는 거다.

 

속된 말로 좆 된 거다. 그는 단 한 대의 차도 팔지 못한 차 판매원. 경제력도 무능한데 성력‘도 무능하다니 ! 설상가상 서랍에서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딜도’가 발견된다. 오, 오오오잉 ? 그 길이가 18센티미터'요 넓이는 4센티미터다. 콘돔 재료로 쓰이는 라텍스 고무 재질이라 딱, 딱하지도 않다. 물렁물렁하다. 커다란 초록 애벌레 같다. 그러니깐 아내가 쓰는 딜도는...


세상에나 !


딜도 씨는 꼴리지 않고도 18 센티미터인 것이다. 꼴리면 도대체 몇 센티미터인 것이냐 ? 50센티미터 자 ? 맙소사, 우리의 차 판매원 사정이 딱 (딱)하다 ! 자신의 그것을 본다. 3센티미터 ? ? 절박하다. 결국 그는 화성까지 가서 차를 세 대나 파는 데 성공한다. 의기양양 돌아온다. 피곤하다. 누군가는 이런 게 소설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천박하다며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돌팔매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 문학이 세상을 구원합니까 ? ”


음담이 팔 할이다. 그래도 좋다, 박민규‘이니깐 가능한 설정이다. 소설이 거창할 것 없다고 박민규는 말한다. 딜도처럼 그저 누군가의 클리토리스를 살살 긁어주면 소설의 역할은 다했다고 말한다. 천박하면 어떤가 ?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위무하면 그만이지.

 

 

이 블로그’를 모녀가 함께 보는 이웃 블로거가 있다. 딸아, 이 블로그의 주인장, 참 재미 있는 양반이구나. 함께 읽으면 유익한 글이 많구나. 엄마는 40대를 훌쩍 넘겼고, 딸은 사춘기 소녀다. 모녀가 함께 내 글을 읽는다니 감격스럽다. 그런데 아뿔싸 ! 내가 딜도‘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같이 읽던 딸이 묻더란다. 엄마, 딜도가 뭐야 ? 엄마는 침묵하고 딸은 어느 순간 깨닫고 자리를 피했다고 !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모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유익한 글만 올리려고 했는데 어찌어찌하여 이리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순전히 박민규 탓이다. 내 탓이 아니다.


 

5. 루 디


단편집을 읽을 때, 단편 하나는 반드시 빼고 읽는다. 어찌어찌하여 징크스가 되었다. 이 버릇은 나중에 제의처럼 변질되어서 단편집의 단편 모두를 읽으면 다음날 길을 가다가 묻지 마 살인의 희생양이 될 것 같다는 재수 없는 생각‘이 들어서 이 철칙을 반드시 지킨다. 몇 년 묵혔다가 나중에 읽는 법도 없다. 그냥 읽지 않는다. 그러니깐 < 루디 > 는 앞으로 영원히 읽지 않는 단편 중 하나이다.


16편의 단편이 수록된 < 더블 > 단편집에서 가장 훌륭한 단편이 < 루디 > 라면... 물론, 억울하다 !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뺑뺑이 돌려서 선택된 것이 < 루디 > 이니 말이다. 훌륭하다고 한들 어쩔 수 없다. 누가 < 루디 > 를 영화화했으면 좋겠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로 말이다. 단편집‘이 후지길 바랐는데 좋다 ! 빌어먹을, 졸라 좋다. 박민규는 인정하기로 하자 !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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