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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지상의 방 한 칸 : 광합성, 너무 많거나 너무 적거나 !
옥탑 방에서 산 사람은 다시는 옥탑 방에서 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일종의 와신상담이다. 반 지하 셋방 세입자도 다시는 반 지하’에서는 살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를 한다. 하지만 집 없는 민달팽이 신세인 도시 빈민‘은 다시 옥탑 방에서 옥탑 방으로 이사를 하고, 반 지하 세입자도 다시 눅눅한 반 지하 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놈의 돈이 문제다. 나는 옥탑 방에서도 살아 보았고, 반 지하에서도 살아 보았다. ( 그러고 보니, 모텔에서도 장기투숙자로 살았네 ? 빌어먹을,
전형적인 빈곤 생활 유형 3종 세트구나 ! ) 옥탑은 지나치게 볕이 들어서 여름에는 너무 더웠고 겨울에는 오지게 추었다. 여름 한낮에 방에 있다 보면 복날의 개처럼 혀가 축 늘어져서 헉헉거리기 일쑤였고, 겨울에는 불알이 쪼그라들어서 내가 키우던 마르치스 애완견의 그것보다 작아져서 수치스럽기도 했다. 맙소사, 아니 내가 개보다 작단 말이야 ? 지져스 크라이스트 ! 반면 반 지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습기로 눅눅했다. 검은곰팡이가 늙은 노인의 검버섯처럼 자랐다. 이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내 얼굴에 검은곰팡이’가 필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는 도시 빈민’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누가 옥탑이나 반 지하에서 살겠는가. 그놈의 돈이 문제이지. 종종 택배 아저씨‘가 정확한 주소를 요구해 오면, 나는 반 지하 대신 반 지상’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 반 지상 ’ 이요 ?! 그리고는 이내 내 의중을 안다는 듯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빈곤을 저주하고는 했다.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부끄럽지만 번듯한 지상의 방 한 칸을 원했을 뿐이다. 광합성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지도 않은, 혹은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지상의 땅이 발아래 밟히는, 그런 < 나만의 방 > 이 필요했다.
하지만 빈민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반지하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바닥에 깔린 자의 비애'를 알지 못한다. 창밖을 통해 목격하게 되는 행인들의 낡은 신발'은 무척 구슬프다. 자신의 눈높이로 신발의 정면을 응시하는 것은 묘한 슬픔을 전해준다. 마치 나 또한 한 켤레의 신발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 반지하에서 산다는 것은 타인의 신발'을 몰래 훔쳐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볕이 적당히 들어오는 지상의 방 한 칸'을 간절히 원했다.
http://myperu.blog.me/20054537238 - 내가 살던 반 지상 호화 룸.
김애란 소설‘의 키워드는 방이다. < 지상의 방 한 칸 > 이다. 이 꿈은 너무 소박해서 종종 슬프다. 집 한 채’도 아니고 방 한 칸‘이지 않은가 ? 김애란의 문체가 명랑하지 않았다면 독자는 슬퍼서 술 펐을 것이 분명하다. 아이콩, 슬퍼라 ! 멋진 방 하나만 있으면 신나서 방방 뜰 것 같다. 연인이라면 크리스마스‘엔 모두 < 방 > 에서 하고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크리스마스'를 꺼낸 이유는 그녀의 단편 < 성탄특선 > 의 배경 때문이다. 하여튼, 이날 안 하면 고자요, 불감증이다. 나이키 본사는 < 져스트 두 잇 >이라고 섹스를 독려하며, 기타노 다케시는 < 크리스마스에 모두 다 하고 있습니까 ? > 라고 묻는다. 그러니 대한민국 여관‘은 이날만큼은 밤 9시면 여관 간판’이 꺼진다.
이 신호는 < 방 없음, 지금 모두 하고 있습니다. 방해하지 마세요 > 라는 신호다. 여관방의 불은 꺼졌지만, 벌거벗은 육체는 불타고 있는 중이다. 아, 졸라...... 좋겠다. 음냐. 이날 독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티븨에서 하는 성탄 특선‘을 보는 것이 전부다. 말이 좋아서 특선이지 재방송이다. 2012년 크리스마스'에도 < 나홀로집에 > 는 특선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될 것이고, 2013에도 < 나홀로집에 > 는 특선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될 것이 분명하다.
2014, 2015, 2016년에도 영원히 ! < 나홀로집에 > 를 나 홀로 집에서 보는 비애'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크리스마스 때 원하는 것은 당신의 클리토리스'다. 아, 이거 너무 라임을 억지로 맞춘 부적절한 랩 가사인가 ? 그나저나 예수의 생일날 모두 하다니, 심히 불경스러워라. 단편 < 성탄특선 > 은 크리스마스에 모텔 방이 없어서 날밤을 꼴딱 세는 가난한 연인‘의 이야기다. 모두 할 때, 하지 못한 연인의 이야기라니, 슬프지 않은가 ?
그들이 원한 것은 방음이 잘 된 지상의 방 한 칸인데, 그것마저도 사치가 되는 사회다. 가난이라는 것이, 좀 그렇다. 내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크리스마스 연인들을 위해서, 이날만큼은 전국의 공무원 관사‘를 무료로 개방할 용의’가 있다. 그것도 모자르면 동사무소 숙소'를 러브하우스로 개조할 용의도 있다. 물론 숙박업계의 암살 음모에 시달리겠지만, 연인들을 위하여 의욕적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한다. 다른 날은 몰라도, 적어도 크리스마스에는 < 져스트 두 잇 >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
+ 사족.
김애란의 단편'은 모두 재미있다. 단편이라는 것'은 각자 작품의 편차'가 있기 마련인데, 김애란'의 단편은 모두 일정한 궤도 이상을 유지한다. 그러한 뒷받침에는 든든한 이야기의 재미도 한몫하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탄탄한 문장에 있다. 김애란은 조경란처럼 감정을 불란서'처럼 비비꼬지 않고, 공지영처럼 감정을 남발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배수아처럼 지나치게 쿨하지도 않으며 편혜영처럼 그로테스크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명랑을 가장한 다른 문체와도 비교된다. 박민규와 더불어 독보, 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