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대결 : 섹스피어냐, 스티븐 킹이냐 !

 

 

 

 

 

Fight Club by De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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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이었다. 가입된 철학 문학 카페'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주선한 것이다. 2009년 연말 망년회'가 밀리고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은 연초'에 뒤늦은 연말 망연회가 열린 것이다. 평소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카페 회원 중 친하게 지내는 문청 L 때문에 그를 만나기 위해 참석을 하게 되었다. 열 명 남짓 모였다. 문학 카페이다보니 " 그 흔하고 흔하고 흔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되시겠다. 그중에서 자신을 명문대 영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K라고 소개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이 친구를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잘난 척을 너무 고상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대화의 5할은 이 친구의 몫이었다. 특유의 평론가 말투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이야기하더니 셰익스피어에서 토마스 핀천까지 줄줄줄. 신형철스러운 말투로 좌중을 압도하니 그날 모임의 슈퍼스타였다. 여성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았으니깐.

 

나는 그냥 테이블 한 모퉁이에 앉아서 맥주만 홀짝이고 있는데 K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쳐다보았다. 손가락에 반지를 네 개 끼고, 목걸이는 다섯 개를 걸고, 팔찌는 왼쪽 오른쪽 네 개에 그 특유의 치요를 썼기 때문이었다. <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오시지 왜 이런 문학의 향기에 나오셨어 ? > 이런 눈빛이었다. K가 대뜸 내게 말했다. " 혹시 좋아하시는 영문학 작가 있으세요 ? " 밤하늘에 높이 뜬 인공위성 같은 사내를 바라보던 눈들이 그 사내의 말에 온통 내게로 쏠렸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셜록 홈즈와 스티븐 킹'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한 달 전에 알라딘에서 홈즈 전집 반값 세일을 하길래 사서 열독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K가 웃었다. 웃었다. 시니컬하게 웃었다. 왜 좋아하냐는 후속 질문도 없었다. 그냥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식으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처럼 보였다.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파리가 나는 것처럼 고고한 영문학을 이야기하는데 대중 추리소설 작가 얘기가 웬 말이냐, 이런 식이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내가 L에게 물었다. " 혹시 좋아하시는 영문학 작가 있으세요 ? "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전공 과목이 과목인지라 셰익스피어 고전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도 그에 대한 눈문입니다. " 하하하하하하. 내가 웃었다. 나는 하하하하, 라고 웃었지만 그에게는 " 지랄하고 자빠졌네 " 로 읽혔을 것이다." 왜요 ? " 그가 대뜸 물었다. 말투에 독이 서렸지.

 

- 아, 네에... 미안해요 ! 하하하. 전 셰익스피어 싫어하거든요 !

- 어떤 텍스트 말씀하시는 거죠 ? ( 말투가 꼭 책은 읽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라는 투였다. )

- 전부 다요. 제국주의자의 앞잡이 같아서 싫습니다. 으하하하하.

- 제국주의자의 앞잡이요 ?

- 네에, 알랑방구 대마왕 ! < 베니스의 상인 > 보세요. 그 재판이 무슨 세기의 재판입니까 ?

 

오고가는말대답'이 한참 이어졌다. ( 설전은 링크로 걸어둔다. ) 셰익스피어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됐거든요. 셜록 홈즈도 그런 분 아니시거든요 ? 제임스 조이스 님은 그런 분 아닙니다. 됐거든요. 스티븐 킹 님도 그런 분 아니십니다. 분위기는 험악까지는 아니었으니 약간 우중충해졌다. 대화에서 밀리지 않으니깐 그가 철학으로 문학을 이야기하며 셰익스피어와 제임스 조이스'를 옹호했다. 철학이라는 게 그렇다. 계보학을 꿰뚫은 놈이 이긴다. 철학의 창세기'를 읊는 놈이 이긴다.

 

깊게 아는 놈이 얕게 아는 놈을 이기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것은 문제가 안 된다. 무조건 창세기 잘 읽는 놈이 이긴다. 소크라테스에서 알랭 바디우까지 누가 더 많이 철학 노선도를 암기하느냐의 차이. 물론, 나는 졌다. 반격을 가할 수는 있었으나 재미없고 지루한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자식의 눈이 다시 한밤의 인공위성처럼 반짝거렸다. 반짝 반짝 반짝. 와와, 와와와와. 모임에 참석한 아가씨들은 다시 그에게 박수를 쳤다. 다시 토론의 주도권은 k에게 돌아가고... 한편 웅이네 가족은......

 

K가 스티븐 킹을 비판한 것 중 가장 어이없는 것은 주장은 킹의 다작'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하긴 스티븐 킹은 어마어마한 다작의 작가'다. 심농, 세이초, 킹 세 사람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소설을 쏟아낸 장본인들이다. 이들 셋이 출간한 책은 대한민국 전후 작가들이 출한한 모든 책을 합쳐도 다작 3인방의 책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농담이다. 하여튼 K는 킹의 몇몇 작품이 좋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빈약하다는 논리를 폈다. 셜록 홈즈나 킹의 작품은 문학적이기보다는 마니아적 현상으로 고찰해 보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지적질을 하셨다. " 문학을 소비 상품으로 이해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 허허허. " 라는 질문에 " 소비 상품으로 이해한다. 시부랄 놈아 ! "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싸우면 질 것 같아서 해해해 웃었다.

 

쪽수에서 밀린 나는 할 수 없이 말문을 닫았다. 순문학 모임에서 대중문학 팬이 홈즈와 킹이 최고라고 우기는 것도 예의는 아닌 듯 싶어서 그냥 술만 마시고 나왔다. 가끔 교수들의 회식자리를 상상하고는 한다. 이런 놈이 전부 다 모여서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허허허. K 선생, Y 선생, P선생 하면서 말이다. 교수 사회 참 재미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홈즈의 문장력은 후졌다에는 동의하지만 홈즈의 작품이 후졌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문장력이 킹의 문장력보다 월등하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자 카페 회원들이 몇몇 더 모였다. 나와 L은 그 자리를 나와서 2차로 종로 굴보쌈집에 갔다. 셰익스피어를 좆나게 욕했다. 제임스 조이스도 덩달아 욕을 먹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셰익스피어보다는 스티븐 킹'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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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3-04-22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섹스피어의 저주문에 놀라곤 합니다. 어쩜 그리 독하게 저주를 일삼던지...당시 유행이었을랑가요??...전공자들은 좀 재미있고 흥미로운 얘기들을 해주면 오죽 좋겠습니까...
곰곰발님 글이 워낙 많으셔서 미처 못읽은 게 많네요^^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4-22 17:37   좋아요 0 | URL
네이버 하도 지랄 같아서 폭파시킬려고 하루종일 자료 옮겼씁니다...ㅎㅎㅎㅎ


생각해 보니... 정말 섹스피어는 저주하는 대사'가 자주 나오죠. 복수'는 역시 모든 스토리텔링 중에서 갑인 거 같아요... ㅎㅎㅎㅎㅎ.

섹스피어 섹스 사전'도 있어요. 섹스피어'가 성적 은유를 즐겨 사용해서 아예 그것들로만 설명이 가능한 사전이 있다고 합니다. 햄릿도 보면 사실 거의 성적 도발'입니디ㅏ.

대단한 양반이기는 한가 봐요... 전 딱히 동하지는 않더라고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