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주성철 지음 / 흐름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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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다운 고집.

 

 

장국영이 죽었다. 같은 날 김정일은 군부 세력의 반란에 의해 살해당했고,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심형래는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58건의 허위 신고가 119에 접수되었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죽었다가 깨어나는 기적을 이루었으나 장국영은 더 이상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빌딩 24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이 그랬던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스스로를 발 없는 새'라고 말했던 남자는 거짓말처럼 죽었다.나는 그 소식에 휘청거렸다. < 아비정전 > 을 스무 번 넘게 보던 즈음이었다. 그날 밤, 다시 아비정전을 보았다. 살아 있는 배우의 걸작'을 보는 것과 죽은 배우의 유작'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나는 이 영화를 생각날 때마다 보았다. 볼 때마다 생각났다. 이런저런 일로 이 영화를  마흔 번 넘게 보게 되었다. 그의 영화를 습관처럼 본다는 것은 일종의 소년다운 고집'이었다.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 오마쥬인 셈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7년의 봄, 낙원동 시네마떼끄'에서였다. 그때,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영화'를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 불길한 느낌은 적중했다. 성공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소년의 불순한 고집따위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담배를 끊으면 사탕을 찾듯이, 나는 고집을 버리는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태도는 지금 생각해 보니,   또 다른  고집이었던 것 같다. 오래된 고집을 버리고 새 고집을 얻은 셈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장국영이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집을 찾았을 때'이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어머니는 만남을 거부한다. 어머니에게서 다시 한번 버림받은 그가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씩씩하게 걸을 때, 화면은 그의 빠른 걸음과는 달리 어느 순간 슬로우모션'이 되어 느린 걸음으로 바뀐다. 재촉은 지연된다. 이 빠른 걸음과 느린 걸음의 대비는 주인공의 겉과 속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빠른 걸음이 그가 어머니를 향해 내뱉는 위악의 표현이라면, 느린 걸음은 어머니 곁에 머물고 싶은 그리움이다. 어머니는 커튼이 쳐진 창가에서 아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앞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뒤에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초라한 어깨'다. 내것이 아닌 타자의 어깨'는 늘 마음 속에 오래 남는 법이다.  

 

 

 

 

오늘 우연히 이 스틸 사진'을 발견했다. 편집에서 삭제된 장면 중 하나'다. 장만옥은 왜 천장이 낮은 양조위의 방 창가에 앉아 있(었)을까 ? 나는 영화의 엔딩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는 양조위'를 장국영'이라고 착각한 적이 있다. 세 번째 보았을 때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인물'은 장국영이 아니라 양조위'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질 나쁜 모니터 화질 탓만은 아니었다. 둘은 묘하게 닮았다. 그녀는 여전히  첫사랑인 장국영을 잊지 못한 것이다. 장만옥에게 있어서 양조위는 장국영의 헛것이다. < 첫 > 의 반대말은 < 끝 > 이 아니다. < 헛 > 이다. 그러므로 첫사랑의 반대말은 헛사랑'이다. 나는 그 후로 양조위를 볼 때마다 장국영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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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독설 - 합본개정판,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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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he King’s Speech by Tom Huveners

 

 

 

 

 

욕설의 진화 : 언니의 독설.

 

 

각하가 국밥을 드실 때 질펀하게 욕을 하던 국밥집 할머니가 광고 모델이 된 적이 있다. 알음알음 들리는 소식으로는 각하와 할머니의 나이 차이는 한 살'이란다. 각하가 보기엔 얼추 비슷한 동년배'요, 서로 늙어가는 처지이니, 이 욕쟁이 할머니는 고향에 두고 온 캄캄한 밤하늘의 패, 경, 옥이었으리라. 그 이전에도 무수한 욕의 대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욕쟁이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는 했다. 서비스 산업의 논리로 보자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욕, 을 할수록 장사는 잘 됐으니 말이다.

 

기업 분석가들은 욕쟁이 할머니의 성공 비결로 가족 마케팅'을 뽑았다. 욕쟁이 할머니의 거침없는 욕을 들으면 그 옛날 시골 엄마 생각이 나는 것이다. 눈물이 찔끔 떨어지고, 마음의 평화도 찔금 얻어가는 것이다. 욕쟁이 할머니란 결국 시골 엄마 마켓팅'인 것이다. 주목해야 될 점은 엄마'가 아니라 시골 엄마'라는 점이다. 도시의 쌀쌀맞은, 신경 쇠약 직전의 교양 있는 도시 엄마'가 아니다. 촌스러운 엄마다. 아가씨 하이힐 소리 같은, 딱부러진 서울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는 계산적이지 않아서 좋은 것.

 

김미경의 독설은 욕쟁이 할머니를 벤치마킹한다. " 욕 = 독설 " 이다. 욕이란 독한 말'이다. 29살에 강사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의 무대를 밟아본 배테랑'은 청중(들)이 무엇에 호응하는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21세기 한국인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공감할 여유가 없다. 노블리스를 경험한 적 없고, 오블리제'도 본 적 없으니 훌륭한 위인전 이야기에 공감할 수는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구중궁궐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때 김미경은 구중궁궐 대신 개천'을 끌어들인다. 그리고는 자신은 개천에서 태어났다고 고백한다. 그녀 스스로 말하는 " 증평의 촌년 " 이 바로 " 개천 " 이다. 꾸벅꾸벅 졸던 청중의 눈이 번쩍 떠진다. 뜬구름 잡는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럭저럭 잘난 덕에 성공한 여자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동향이다. 우리... 친구 아닌가유?!

 

김미경의 자기비하'는 우럭처럼 울컥 해서 막 던진 넋두리'가 아니다. 셈이 밝은 강사'가 그런 뜻하지 않은 커밍아웃을 할 리는 없다. 1회 3000만 원의 강사료를 받는 그녀의 대본은 프로'답게 치밀하다. 값어치, 한다 ! < 개천 > 이라는 밑밥은 < 승천 > 이라는 화려한 변신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보이기 위한 장치'다. 사실 신데렐라 드라마는 < 개천에서 승천'까지 > 라는 서사 구조에 충실하다. 그녀는 < 걸어서 하늘까지 > 는 없는 놈들이나 하는 낭만 서사'라고 말할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스토리'를 화려하게 만드는 것은 현재의 부'가 아니다. 과거의 빈'이다. 과거에 얼마나 피똥 쌌는가, 가 그 사람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러니깐 김미경의 승천'에 청중이 호감을 보이는 이유는 그녀의 고향이 개천'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은 증평의 촌년'답게 직설적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화법을 독설'이라고 정의한다. 그녀는 고상 떠는 멘토의 힐링'과는 다르다. 혜민이 다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라고 말할 때 김미경은 등신아, 니가 잘못한 것이여 ! 라고 욕을 한다. 구수한 시골 사투리의 억양을 숨기지 않은 채 말이다. 영락없는 잔소리 많은 시골 엄마 캐릭터'이다. 이 잔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가난한 남편을 만난 이야기, 애 업고 고생한 이야기. 남들보다 2배 고생한 이야기 등등.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에피소드가 파라노마처럼 나열된다. 그런데 나열된 에피소드를 모두 모아서 분석하면 결론은 하나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난 년/놈'은 남들보다 2배 고생해야 한다, 이다. 이게 까칠한 언니가 당신에게 전해주는 성공 노하우'다. 만약에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 당신은 병신이거나 머저리다.

 

중요한 것은 < 2배의 노력 > 이 아니라 < 2배의 노력을 해야지만 여성이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구조 > 다. 이상적인 기업은 1배의 노력만 해도 성공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2배의 에너지를 쏟아야지만 승진을 하고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기업이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거나 여성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김미경은 여성이 성공하지 못한 까닭을 개인의 게으름이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구조적 문제다. 여성 차별적 사회 구조'가 핵심'인 것.

 

그런데 김미경은 무조건 개인이 열심히 안 한 죄'라고 말한다. 앞뒤가 바뀐 것이다. 생략해도 될 낱말에 밑줄을 긋고는 " 돼지꼬리 땡땡 " 붙이며 강조를 하는 것이다. 김미경이 말하는 2배의 노력 중 1배의 노력은 국가 복지 케어'의 몫이다. 그런데 그것을 국가 복지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기에 개인이 떠맡는 꼴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후진국은 아니지 않은가 ? G20의 회원국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복지'다. 김미경이 진정한 멘토라면 그 복지의 몫을 여성이 맡아야 하는 힘든 현실'을 지적해야 옳다. 그래야 좋은 언니'이다. 내가 보기엔 그녀의 착각은 인문학에 대한 지식의 부족 탓이다. 그녀는 인문학을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라고 물었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명확하다. 인문학은 자기계발서따위의 책이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빈 깡통 계좌'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물건이다.  

 

     

 

 

 

> 알라딘 검색창에 " 흔들 " 이라고 치면 엄청난 분량이 쏟아진다. 수백 권은 되는 모양이다. 제목이나 부제에 " 흔들 " 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이 말이다. 대충 몇 가지만 뽑아보자. < 상처받고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 < 흔들리지 않고 의지가... > < 당신의 사랑은 흔들리고 있다 > < 평생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을 찾... > < 흔들리는 직장인을 위한... > < 흔들리는 나에게... > < 흔들림 또한 ... > 이와 같은 방식으로 " 아프 " 와 " 미치, 미쳐 " 를 쳐보면 이 또한 수백 권이 쏟아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아프고, 흔들리고, 미친 것일까 ?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종합병원이다. 김미경의 < 언니의 독설 > 이란 책의 부제도 <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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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사용설명서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 사람은 꼼꼼한 사람이다. 반면 내용을 취사 선택해서 부분만 읽는 사람은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아예 읽지 않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내 경우는 제품사용설명서'를 읽어본 적이 없는 부류에 속한다. 나는 그것을 아이스크림 " 붕어 사만코 포장지 " 취급을 한다. 뜯으면 바로 버린다. 이렇듯 사용 설명서를 읽어본 적이 없으니 제품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제품의 기능 10가지 중 2,3개만 사용한다. 나머지는 몰라서 사용을 못한다. 이런 내가 답답한지 주위 사람들이 일일이 가르쳐준다. 그러나 불만은 전혀 없다. 폰뱅킹을 할 줄 모른다고 불편한 건 없다. 내가 휴대폰을 고를 때의 기준은 첫째가 기능이 없는 것이다. 통화와 문자 그리고 사진 이외'에는 다른 용도로 써 본 적이 없다. 디지털 노마드에서 추방당한 아날로그적 쪼다새끼'라고 욕하지 마라. 그 옛날, 칼 융 선생님께서 인간의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하였나니 내 경우는 INTP 유형이었다. 그는 나 같은 유형을 " 제품 사용 설명서'는 절대 읽지 않을 놈 " 으로 이미 규정했다. 농담이 아니라 INTP형은 제품 사용 설명서'를 잘 읽지 않는다. 허진호의 98년도 영화 < 8월의 크리스마스 > 를 보면 나와 비슷한 캐릭터'가 나온다. 한석규'가 아니다. 한석규 아버지로 나오는 신구'다. 그는 제품사용설명서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즐거운 편지.

 

 

제품사용설명서'를 읽는 것만큼 나를 미치게 하는 것도 없다. " ~ 오 " 로 끝나는, 묘한 명령체'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영혼이 없는 좀비와 소통을 하는 느낌이다. 제품사용설명서'에는 문장과 문체가 없다. 그것은 온통 삿대질 이모티콘

<>: 삿대질 이모티콘.

 

들이  문자로 둔갑해서는 문자인 척 하는 것이다.   A를 누른 후 B를 올리시오 ! C를 클릭한 후 복사한 고유번호를 입력하시오 ! 저리 가시오 ! 이리 오시오 ! 아, 하시오. 오, 하시오. 아흥아흥 하시오 ! 질문은 내가 하오. 묻는 말에나 답변 하시오 ! 제품 설명문의 세계는 온통 삿대질'이다. 그것은 손가락으로 이루어진 지시문'이다. 영화 < 8월의 크리스마스 > 에서의 사진사 정원은 아버지에게 청기 올려, 백기 내려, 백기 올리지 말고 청기 내리지 마, 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눈이 캄캄해서 글을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문자 대신 이미지'로 제품사용설명서'를 만드는 것으로 " 사진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필사 " 이다. 그러므로 그 또한 필경사'다.

 

필경사이며 사진사인 정원(한석규)'은 나와 같은 INTP 유형'을 위해서 제품사용설명서'를 새롭게 재해석한다. 그것은 일종의 메타-언어'다. 아마 인류 역사상 최초로 " 제품사용설명서(원본) " 를 사진(사본) 으로 재해석한 전무후무한 방식의 < 비디오 아트 > 행위로 남지 않을까 ? 사실 이 세상 모든 창작물은 원본의 사본'이다. 누군가의 것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피에르 메나르가 그대로 필사하고, 바틀비'는 필사하다가 미친다. 오리지날은 바닥이 난 지 이미 오래. 그래서 니체는 미래를 " 패로디'가 시작된다 ! " 로 규정했다. 19세기에 가까웠던 20세기 인간인 니체'는 확실히 21세기의 눈을 가진 천재'다.

 

카메라는 만연필이다. 그러므로 사진은 문장'이다. 연필이 문자로 이미지'를 기록한다면, 사진기는 이미지로 문자를 대체한다. 때론 사진 한 장'은 책 한 권의 내용보다 풍부할 때가 있다. 전쟁 보도 사진'은 그 정점에 다다른 영역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대중에게 주는 메시지는 보다 더 강렬하다.

 

허진호 감독은 박찬욱과는 정반대의 연출 스타일'을 갖췄다. 박찬욱이 상징을 중요시한다면 허진호는 상징을 배제하는 쪽으로 연출한다. 전자가 칼칼한 매운탕이라면 후자는 맑은 탕'이다. 그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롱숏'를 자제한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자신의 작품이 예술 영화'처럼 보이게 하려는 얄팍한 야심을 가진 이'는 롱숏을 자주 활용한다. 하지만 허진호는 롱숏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롱숏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미디엄 숏과 풀숏이 따르기 때문에 정적인 느낌이 깨지기에 그렇다. 그래서 그는 고집스럽게 미디엄 쇼트'로 간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사진사에게 가장 어울리는 프레임은 미디엄샷이다. 증명사진은 대부분 미디엄숏이니깐 말이다.

 

허진호 감독의 고백에 의하면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 즐거운 편지 > 였다고 한다. 황동규의 시'를 무척 좋아해서 외우고 다녔다고.......  그러니깐 이 영화 속 사진은 곧 LETTER'의 은유이다. ( 이 단어는 편지와 함께 문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 그가 남긴 것은 사진으로 쓰여진 필름 현상기 제품 사용 설명서'이다. 황동규 시집 < 三南에 내리는 눈 > 에 수록된 " 즐거운 편지 " 로 끝을 맺겠다. 시인은 " 밤이 들면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한다 " 고 말한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깊은 밤이었나 보다.

 

 

 

 

 

 

즐거운 편지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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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키 호러 픽쳐 쇼 > 라는 컬트 영화를 300번 넘게 감상하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이 있다. ( 컬트라는 것의 정의 중 하나가 반복 관람이기는 하지만 300번이라면 도를 넘은 것이다. ) 그는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오로지 록키 호러 픽쳐 쇼'에 대해서만 썼다고 한다. 1회 감상에 1페이지 분량의 글감이 나온 셈이다. 만약에, 그가 500번 넘게 봤다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쓸 수 있을까 ? 우리라면 엄두도 못낼 것이다. 1번 볼 때마다 코 파고, 1페이지'를 작성할 때마다 피, 똥, 싼, 다. 하지만 그 록키 호러 열혈 무명씨'라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 록키 호러 픽쳐 쇼 > 를 볼 때마다 " 반복 " 을 경험하지만 그는 볼 때마다 " 차이 " 를 경험한다. 이 차이는 다시 보기(반복)의 결과이다. 300번을 넘게 본 그는 볼 때마다 즐거워서 비명을 지르고,  3번째 보는 우리는 지루해서 댄스홀에서 지루박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이처럼 차이'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들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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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 호러 픽쳐 쇼.

 

 


 

 

 

 

 

 

 

 

 

 

 

 

 

필경사 : 글씨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필경사 : 글(소설)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소설가라고 말하고, 글씨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필경사'라고 한다. 아주 오랜 옛날 도서관 사서는 필경사였다. 그들은 손으로 직접 필사를 해서 책을 만들었다. 필사란 원본을 그대로 다시 쓰는 행위이다. 그래서 누가 책을 훔쳐서 책이 사라지면 " 다시 " 필사'를 해야 했다. 성경책 한 번 써본 사람들은 다들 알리라. 이만저만 고된 일이 아니다. 책을 도둑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 일감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도서관 사서들은 책도둑을 혐오했다고 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적었다. " 야, 시부랄 새끼야. 책 훔쳐가지 마라, 잉 ? 만약에 이 책 훔치면 니 애비는 8월의 물렁 좆이다. 알긋냐 ? 뜨거운 팬 위에 튀겨 죽을 놈아. 훔지지 마라, 잉 ? 느그들,  글씨 쓰다가 팔 빠져봤냐 ? "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이런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도서관 곳곳에 써넣고는 했다. 당시의 책은 매우 비싼 물건이어서 도서관에서는 책을 쇠사슬에 묶어두기도 했다고.

 

 

가장 흔한 공상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간 시간여행자'에 대한 공상이다. 우리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가져갈 소품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할 것이다. 132회 로또 당첨 번호, 월간 달려라 경주마, 1997년도 수능 시험 문제 해답지 등등. 그런데 꼭 타임머신이 꼭 1997년 어느 시점에서 내려준다는 법칙이라도 있나 ?  만약에 내가 시간 여행자'라면 스티븐 킹의 소설 하나를 원고지에 필사해서 과거로 돌아가겠다. 혹은 해리포터'는 어떤가 ?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느긋하게 기다리겠다. 소설가들에게 있어서 시간 여행이라는 서사만큼 매혹적인 이야기도 없다. 그래서 스티븐 킹'도 < 11/22/63 > 에서 시간 여행을 다룬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임무는 63년 11월 22일로 돌아가 케네디 암살을 저지하는 것이다. 단 시간 여행 문이 열리는 공간은 1958년 9월 9일 오전 11시 58분의 특정 거리'이다. 그러니깐, 소설 속 시간 여행자'가 총 5번의 시간 여행을 했다면 1958년 9월 9일의 그 거리 상황을 다섯 번 마주치는 것이 된다. 결국 시간 여행자'는 그들을 다섯 번이나 만나지만 그들은 항상 시간여행자'를 처음 본다. ( 킹의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이 소설도 곧 영화화될 것이다. ) 씐난다.

 

흥미진진하다. 우리는 이미 과거 속 인물의 동선과 대사가 다시 반복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과거'는 완벽하게 다시 반복되지는 않는다. 뭔가가 약간씩 달라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여행자'가 과거의 시간에 개입을 해서 생긴 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복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관객을 독자'로 바꿔보자. 시간 여행자가 특정한 장소'를 재방문하는 행위'는 곧 독자가 책을 다시 읽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다시 읽기'는 첫 번째 읽기에서 놓친 것들, 달라진 것들을 발견해서 다시 정리를 하는 행위다. 다시 보기/읽기'는 비평의 첫 번째 과정이다. 프랑스와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봤던 영화를 " 다시"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했고, 소설가 신경숙도 자신의 습작 시절'을 회고하면서 가장 큰 문학 공부 방식은 필사'라고 말했다. 이 필사의 방식은 비단 작가지망생의 절차탁마'는 아니다. 책을 읽는 독자도 밑줄이라는 이름의 필사'를 한다. 밑줄을 긋는다는 행위는 일직선으로 글씨는 쓰는 일이다. 

 

사랑의 블랙홀 : 2월 1일 다음은 2월 2일이다. 2월 2일 다음은 2월 2일이다 ?!  2월 2일 다음도 2월 2일이다. 그리고 2월 2일 다음의, 다음의, 다음날도 2월2일이다. 영화 <  사랑의 블랙홀 > 의 주인공은   그라운드호그데이인 2월 2일'이 날마다 반복되는 나날을 경험한다. 알람시계를 부수고 잠을 자도 다음날 아침 6시면 시계는 다시 멀쩡한 상태가 되어서 8월의 매미처럼 열심히 운다. 눈이 오면 내 집 앞만 쓸 것 같은, 평소 차갑고 냉정하던, 남자는 마술에 걸린 2월 2일이 계속 되자 어느새 다정하고 속 깊은 남자로 변해있다.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을 알고 있는 그는  그 능력으로 이웃 사람들을 돕는다. 2월 2일은 날마다 반복되지만 상황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 반복 서사'는 비평적 책 읽기'와 겹친다. 주인공은 평면적인 종이 텍스트 대신 3D 가상 텍스트'를 경험한다. 그가 다시 2월 2일을 경험한다는 것은 책을 2번 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2월2일의 반복에서 그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 반복은 차이를 만들고, 차이는 결국 비평/ 깨달음'을 얻는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8986

 

어쩌면 세상의 모든 창작자'는 필경사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 다시 보기/읽기/쓰기/일하기" 는 쓸모없는, 소모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생산적 행위'다. 첫 번째 읽기가 독서라면, 두 번째 읽기 이후'부터는 비평의 영역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카뮈의 < 시지프 신화 > 는 새롭게 읽힌다. 그동안 우리는 시지프'를 지나치게 실존적 허무와 부조리적 인간'에 방점을 찍어 그를 맬랑꼴리한 인간형'으로 만들었지만, 곰곰 생각하면 시지프는 필경사요, 저자이며, 비평가의 운명을 가진 자이다. 그는 다시 산을 오르는 행위를 통해서 첫 번째 노동과 두 번째 노동 사이에서의 차이'를 읽는다. 그리고 두 번째 노동과 세 번째 노동 사이에서 다시 차이'를 발견한다.

 

" 필경사 " 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필경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허먼 멜빌의 단편 < 필경사 바틀비 > 다.  바틀비'는 어느 순간부터 일을 거부한다. 그는 오로지 일 하기 싫다는 소리만 한다. " 그렇게 안 하겠습니다. " 결국 직장에서 쫒겨난 바틀비'는 모든 것을 거부한 채 구치소에서 굶어죽는다. 아, 불쌍한 바틀비 ! <  필경사 바틀비 > 라는 제목을 처음 접한 곳은 들뢰즈의 < 비평과 진단 > 에서 였다. 필경사라는 말도, 바틀비라는 말도 무척 생경스러워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보르헤스 또한 이 단편의 서문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거물이 모두 이 짧은 단편에 대한 글을 쓴 것이다. 아이구야, 이 무시무시한 걸작을 안 읽어볼 수 없는 노릇 ! 필경사 바틀비'의 직업은 다시 쓰기와 다시 읽기다. 그는 두 사본을 꼼꼼히 대조하고, 다시 검토하고, 소리내어 읽는다. 그는 이 과정에서 그만 머리가 핑 돌아버린다. 그 후 계속 안 하겠다는 소리만 한다. 그의 불복종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설 속 1인칭 화자도, 독자도 그게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바틀비는 변했다는 점이다.

 

보르헤스는 이 바틀비 캐릭터를 눈여겨보았던 듯싶다. 그는 바틀비를 녹여서 피에르 메나르'를 창조한다. 삐에르 메나르'는 보르헤스 단편에 나오는 인물로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의 몇몇 장을 마침표 하나, 쉼표 하나까지 그대로 다시 쓴다.  결국 피에르 메나르는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를 능가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우리가 보기엔 명백한 표절이지만 보르헤스'는 다시 쓰기'를 창조적 행위'로 보았다. 사실 바틀비의 다시 읽기/쓰기'는 실패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단편을 위대하게 만든 이유는 바틀비의 중단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다시 읽기에 성공한 자다.  삐에르 메나르도 다르지 않다. 이처럼 보르헤스의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 필경의 풍경 " 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옛날에는 도서관 사서가 필경사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르헤스야말로 가장 위대한 필경사'였다는 점이다. 보르헤스'는 서른 중반이 넘어서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보르헤스는 캄캄하며 축축한 지하 서고'에서 冊만 읽었다고 한다. 보르헤스가 보기에는 캄캄하고 축축한 지하 서고는 여성의 검고 촉촉한 동굴의 비유였다. 보르헤스에게는 이곳이 쾌락의 원천이었다. 사람들은 엘리트 집안 출신의 보르헤스'가 그깟 도서관 사서'에 만족하고 있다면서 조롱했지만 그는 그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는 시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다. 사실 가장 위대한 작가는 섹스피어가 아니라 보르헤스, 세르반테스, 허먼 멜빌'이다.  섹스피어가 그냥 신라면이라면 그들은  신라면 블랙'이요, 섹스피어가 스필버그라면 그들은 오손웰즈'였다. 전자가 < 딴따라 > 라면 후자는 < 난 달라 ! > 였다. 

 

필경사 피에르 메나르는 돈키호테를 다시 썼지만, 필경사 보르헤스는 20세기 문학의 역사를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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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패스트푸드점은 고객이 머무는 시간을 20분으로 제한한다는 메모를 붙여놓기까지 한다. 대체로 패스트푸드점의 구조는 고객이 먹으면서 미적거릴 필요도, 그러고 싶지도 않게 되어 있다... 고객이 20분 이상 앉아 있기에는 불편한 의자를 개발한 패스트푸드점도 있다. 이것은 패스트푸드점 실내 장식에 사용한 색상효과에 비길 만하다. 색상 효과의 요점은 긴장 완화가 아니라 고객을 빨리 내쫒는 것이다. 이 점을 두고 색상을 조심스럽게 선택한다. 로고의 주황색고 노란색부터 유니폼의 적갈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어긋난다. 이러한 색상은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하려고 동원된 것이다.

 

- 맥도날드 맥도날드化, 조지 리처.

 

 

 

 

미국의 공장은 망했다. 돈벌이는 주로 영화와 전쟁 그리고 금융업의 돈놀이'로 미국 산업'을 지탱하고 있다. 미국의 2차 산업'을 부실하게 만든 주범은 월마트와 맥도날드 시스템'이었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공장 상품은 월마트를 꽉 채운 메이드 인 차이나'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서 경쟁력을 잃었고, 맥도날드는 숙련노동자의 일자리를 파트타이머'들이 채우도록 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요리사가 하던 요리는 이제 스무살 젊은 친구가 1시간이면 터득한다. 본사에서 내려온 닭다리를 97도에서 3분 간 튀긴 후 꺼내시오 ! 라는 명령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니깐 말이다. 조지 리처'는 이 책에서 < 자본주의 합리성 > 이라는 신화'가 과연 타당한가를 묻는다.

 

그는 맥도날드의 합리성을 < 합리성의 불합리성 > 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맥도날드 시스템은 맥도날드'에게만 합리적인 것이지, 소비자에게는 불합리하다. 소비자인 우리는 돈을 내고 종업원이 해야 할 일으 한다. 음식을 직접 가져오고, 다 먹고 나면 쓰레기를 분리하여 각각의 통에 버리고, 빈 식판은 원래 자리에 다시 갔다 놓는다. 돈을 내면서 남의 가게에서 종업원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맥도날드에서 소비자에게 품삯을 줘야 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황당한 일을 하는 것일까 ? 맥도날드에서의 일련의 일처리는 하나의 문화적 습속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신속한 처리는 곧 나는 촌년이 아니라 세련된 도시 여자'다, 라는 암암리의 표현이 된다.

 

맥도날드는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막대한 광고비를 지출한다. 이제 서비스 산업은 대부부 맥도날드화'가 되었다.  현금지급기'는 은행 직원이 해야 될 일을 소비자'가 직접 하도록 만든다. 설상가상 수수료라는 돈을 내고 일을 한다. 샐러드바'도 다르지 않다.

 

 

 


 

 

 

 

 

 

 

 

 

 

고갱은 타히티 섬으로 떠났습니다.  

 

 

옛날에는 개나 소나 극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작은 댄스홀 정도의 크기면 극장 상영 허가가 떨어졌으므로 시내'에만 극장이 서너 개'는 있었다. 평일 오후에 가 보면 가관도 아니다. 축 늘어진 추리닝에 쓰리빠 끌고 오는 백수들과 건달들 그리고 데이트 비용이 아까워서 돈 천 원에 4시간은 때우는 극장을 찾는 실용파 가난한 연인들이 찾아오고는 했다. 자리 배석이 없는 것은 기본이고 상영 중 입장은 자유였다. 이런 표현이 심금을 울릴지는 모르겠지만 " 동네 그지깽깽이 " 는 다 모였다. 그런 곳이 바로 동네 동시 상영관, 3류 극장의 풍경이었으니. 어쩔 어쩔 ! 말 그대로 넘버 쓰리가 찾는 곳이 3류 극장이었다. 나 또한 동네 그지깽깽이'이므로 동네 극장은 나의 단골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 삼복 중학교 1학년 영화 열혈 오타구 돌격대 회장 " 이었기에 일 주일에 한 번은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아이들을 이끌고 극장을 순례할 의무가 있었다. " 자, 자자자. 삼거리극장과 사거리극장의 이번 주 메인 상영은 둘 다  " 터미네이터2 " 야. 하지만 삼거리는 동시상영작이 형편없군. [ 뼈와 살이 타는 밤 ]보다는 [ 살과 살이 붙는 밤 ] 이 더 좋겠어.  뼈와 살이 타는 밤'의 주연 배우는 유감스럽게도 a 컵이라구. 오늘은 사거리극장으로 고,고,고 ! " 이런 식이었다. 우리는 일단 영화 포스터가 붙은 벽이나 분식점들을 돌아다니면서 가게 주인으로부터 영화초대권을 싼 값에 사들였다. 극장은 영화 포스터를 가게 안이나 담에 붙여주는 조건으로 초대권을 그들에게 10장씩 주었다. 우리는 그 초대권을 사는 것이다.

 

자주 드나들다 보니깐 어느새 극장 돌아가는 꼴이 대충 보였다. 오호라 ! 그렇군. 금요일 6회 마지막 회'가 시작되면 우리들은 영사실에 있는 영사기사 들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아니 젖꼭지도 보여주지 않는 영화가 무슨 에로입니까 ? 관객의 애로사항은 무시해도 좋습니까 ? " 고함소리에 화들짝 놀란 늙은 영사기사'는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극장 안을 살펴보고는 큰 소리'로 외친다. " 마침 토요일에 새롭게 선보이는 [ 젖꼭지는 물론이고 그곳도 ] 라는 따끈한 영화가 있는데 대신 보시렵니까 ? 보고 나면 홍보 부탁드려요 ! " 하며 토요일에 개봉할 영화를 미리 틀어주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젖꼭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최신작을 미리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디인가 ?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우리 일행은 영화 속 장면을 실감나게 복기했다.

 

" 남자가 여자의 젖가슴을 움켜쥐지. 그럴 때마다 여자는 아흥, 아흥 한단 말이야. 이봐, 자네가 흉내내 보게 ? 그렇지. 흐흐흐흥, 흐흐흐흥. 이런 소리라네. 그리고는 여자의 엉덩이를 냅다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오호 ! 그래, 그래. 말로만 듣던 그 자세라네. 후배위지. 음... 그러니깐... 후배위란. 그래 말 자세. 자네들 말이 하는 거 봤어 ? 남, 남남남남자가 여자의 엉,엉엉덩이를 벗기고는...... " 반 아이들은 이쯤에서 거의 반 죽음 상태다. 옛날 같았으면 이몽룡처럼 "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얼쑤 " 하면 정액을 방사했을 텐데, 성욕이 금기된 아이들은 이렇게 내가 말해주는 성애 장면에도 미친다. 불쌍한 것들.

 

 

 

 오손 웰즈의 < 시민케인 > 은 걸작이지만 < 상하이...  > 와 < 악의 손길 > 그리고 < 심판 > 은 < 시민케인 > 보다 더 걸작이다. 결론은 오손 웰즈는 천재다.

 

 

겨울 방학이 되면 나는 도시락 두 개'를 싸 가지고는 도서관이 아닌 시골 변두리 극장으로 향했다. 이 동네에는 서로 가까운 거리 안에 커다란 극장이 3개나 있어서 A 극장에서 1,2회를, B 극장에서 3,4회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C 극장으로 달려가 5회와 마지막 회'를 감상하고는 막차를 타고 돌아오고는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늘 있는 여행이었다. 끼니 해결은 물론 극장 안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당시 삼거리 극장에는 연탄 난로'로 난방을 해서 난로 뚜껑 위에 양철 도시락을 놓고 영화를 보면 도시락 속의 밥이 자글자글 끓고는 했다. 잘 데워진 계란 후라이'를 극장에서 한 입 베어무는 맛이란 ! 더군다나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며 먹는 도시락은 정말 꿀맛이었다. 하지만 모두 좋은 것은 아니었다.

 

동네 양아치 형님들이 오셔서는 난로 속에다가 가스 라이터'를 버리고는 냅다 도망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은 갑자기 펑 터지는 난로 뚜껑에 기겁을 해서 혼비백산 구석진 자리로 옮기는 것이다. 그 모습을 키득키득거리며 보고 있던 형님들은 관객들이 무서워서 도망간 난로 옆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는 오징어며 밤,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소설 쓰냐고 ? 아니다. 정말 그랬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시뻘건 연탄이다. 영화 중간 중간에 연탄을 갈았는데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보이는 것은 둥둥 떠다니는 뻘건 연탄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야유를 보내고는 했다. " 아저씨 ! 연탄 가스 중독인 거 같아요. 머리가 아픔니다아아아앙. " 그리고 실제로도 영화를 보다가 연탄 중독으로 영화 도중 밖으로 나가 오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니다. 1990년 초중반까지 실제로있었던  시골 변두리 극장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극장 풍경은 cgv라는 멀티플랙스가 극장 문화를 주도적으로 선도하면서 하루아침에 바뀌기 시작한다. 괴물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 안녕하십니까, 고갱님 ! " 이라는 새로운 극장 문화'가 선보인 것이다. 고갱은 타이티 섬에 가야 만날 수 있는데 자꾸 나에게 고갱'이라고 하니 남세스러웠다. 극장도 맥도날드化가 되어버린 것이다. 옛날 극장을 차지했던 매점 아줌마와 극장 간판 아저씨, 그리고 극장 관리인은 온데간데없고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젊은 극장 스텝들은 하루종일 서서 고갱'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항상 웃는 얼굴이어지만 피곤함이 역력했다. 극장 본사에서 발령 받고 온 점장은 사무실의 씨씨티븨'를 통해 일일이 스텝을 통제했다. 조그마한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당장 무전기를 통해 쌍욕이 오갔다. " 야, 개새끼야... 티켓팅 제대로 안 할래 !!!!! " 무전기와 연결된 이어폰으로 그 소리를 들은 스텝은 화가 잔뜩 나지만 그래도 방긋 웃으며 " 어서 오십시요, 고갱님 !! "

 

그 전에는 영화를 다시 보고 싶으면 다음 회'에도 다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소비자로서의 왕 노릇도 끝난다. 스텝은 점장이 통제하고, 관객은 스텝이 통제한다. 그들은 양치기가 되어서 양이 된 관객을 내쫒는다. 이것이 바로 멀티플렉스의 효율성'이다. 원가 100원인 팝콘은 7000원에 팔린다. 여기에 나트륨을 듬뿍 첨가해서 목이 마르도록 유도한다. 목이 마른 당신은 영문도 모른 채 " 콜라 주세욧 ! " 이 모든 것은 극장 체인 본사가 보기에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불합리하다. 문제는 그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극장문을 나서면 우리는 콜라와 나트륨에 중독되어서 입에서는 트림이 나오고 똥구멍에서는 방구가 쉴새없이 나온다.    

 

 

 

 

 

 

 

▶ 이 영화, 정말 좋다. 구로자와 아끼라의 최고 걸작은 < 이끼루 > 인지도 모른다.

 

 

난로 옆에서 연탄 가스를 마시며 도시락을 까먹던 나는 도저히 이 시스템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지만 편하지는 않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자꾸 웃으면서 안녕하십니까, 고갱님 ! 이라고 하니미칠 노릇이다. 이제 나는 극장에서 김치가 담긴 병 뚜껑을 열어서 총각 무를 베어물지도 않고, 밤을 굽지도 않는다, 문어를 굽지도 않고, 동네 형들이 난로 속에 집어넣은 라이터가 언제 터질까 초조해하지도 않는다. 항온 시스템은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서 보는 이가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도통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다. 싸구려 노스텔지어인가 ?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낡은 극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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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3-28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주로 목요일에 영화를 개봉하지만 옛날에는 토요개봉'이 철저하게 지켜졌다.
그래서 상영 중 사람이 제일 없을 때가 금요일이다.
더군다나 6회 마지막 상영은 거의 몇 사람이 안 되었다.
당시 나는 영사기사 아저씨와 친분이 있어서 기사 아저씨'는 토요일 개봉할 영화를 관객의 동의 하에 틀어주고는 했다.
마지막 상영 영화는 대부분 한국 동시상영용 영화여서 재미가 없었기에
토요일에 개봉하는 메인 작품을 틀어준다고 하니 마다할 일이 없었다.
서로 서로 좋은 거다. 금요일 마지막 회에 영화를 틀어주는 이유는 또 있다.
어차피 영사사고를 막기 위해서 영화를 미리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금요일 6회 마지막 상영 시간에는 종종
토요일 개봉 영화를 보고는 했다.

노이에자이트 2013-03-3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손 웰즈의 가장 강렬한 모습은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였습니다.이 영화와 그레이엄 그린의 원작을 번갈아 읽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3-30 20:46   좋아요 0 | URL
오손 웰즈는 어디에서나 빛을 발했어요.
훌륭한 감독이기도 하고 위대한 배우이기도 하고 말이ㅛ. 전 악의 손길에 나오는 그 웰즈가 압권이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03-30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우리나라 영화에서 최초로 여배우의 유두가 나오는 영화의 제목과 연도를 기억하시는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30 20:47   좋아요 0 | URL
헤헤헤..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