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니의 독설 - 합본개정판,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The King’s Speech by Tom Huveners](http://24.media.tumblr.com/tumblr_lhgctmgW9Q1qe2w1uo1_500.jpg)
욕설의 진화 : 언니의 독설.
각하가 국밥을 드실 때 질펀하게 욕을 하던 국밥집 할머니가 광고 모델이 된 적이 있다. 알음알음 들리는 소식으로는 각하와 할머니의 나이 차이는 한 살'이란다. 각하가 보기엔 얼추 비슷한 동년배'요, 서로 늙어가는 처지이니, 이 욕쟁이 할머니는 고향에 두고 온 캄캄한 밤하늘의 패, 경, 옥이었으리라. 그 이전에도 무수한 욕의 대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욕쟁이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는 했다. 서비스 산업의 논리로 보자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욕, 을 할수록 장사는 잘 됐으니 말이다.
기업 분석가들은 욕쟁이 할머니의 성공 비결로 가족 마케팅'을 뽑았다. 욕쟁이 할머니의 거침없는 욕을 들으면 그 옛날 시골 엄마 생각이 나는 것이다. 눈물이 찔끔 떨어지고, 마음의 평화도 찔금 얻어가는 것이다. 욕쟁이 할머니란 결국 시골 엄마 마켓팅'인 것이다. 주목해야 될 점은 엄마'가 아니라 시골 엄마'라는 점이다. 도시의 쌀쌀맞은, 신경 쇠약 직전의 교양 있는 도시 엄마'가 아니다. 촌스러운 엄마다. 아가씨 하이힐 소리 같은, 딱부러진 서울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는 계산적이지 않아서 좋은 것.
김미경의 독설은 욕쟁이 할머니를 벤치마킹한다. " 욕 = 독설 " 이다. 욕이란 독한 말'이다. 29살에 강사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의 무대를 밟아본 배테랑'은 청중(들)이 무엇에 호응하는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21세기 한국인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공감할 여유가 없다. 노블리스를 경험한 적 없고, 오블리제'도 본 적 없으니 훌륭한 위인전 이야기에 공감할 수는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구중궁궐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때 김미경은 구중궁궐 대신 개천'을 끌어들인다. 그리고는 자신은 개천에서 태어났다고 고백한다. 그녀 스스로 말하는 " 증평의 촌년 " 이 바로 " 개천 " 이다. 꾸벅꾸벅 졸던 청중의 눈이 번쩍 떠진다. 뜬구름 잡는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럭저럭 잘난 덕에 성공한 여자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동향이다. 우리... 친구 아닌가유?!
김미경의 자기비하'는 우럭처럼 울컥 해서 막 던진 넋두리'가 아니다. 셈이 밝은 강사'가 그런 뜻하지 않은 커밍아웃을 할 리는 없다. 1회 3000만 원의 강사료를 받는 그녀의 대본은 프로'답게 치밀하다. 값어치, 한다 ! < 개천 > 이라는 밑밥은 < 승천 > 이라는 화려한 변신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보이기 위한 장치'다. 사실 신데렐라 드라마는 < 개천에서 승천'까지 > 라는 서사 구조에 충실하다. 그녀는 < 걸어서 하늘까지 > 는 없는 놈들이나 하는 낭만 서사'라고 말할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스토리'를 화려하게 만드는 것은 현재의 부'가 아니다. 과거의 빈'이다. 과거에 얼마나 피똥 쌌는가, 가 그 사람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러니깐 김미경의 승천'에 청중이 호감을 보이는 이유는 그녀의 고향이 개천'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은 증평의 촌년'답게 직설적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화법을 독설'이라고 정의한다. 그녀는 고상 떠는 멘토의 힐링'과는 다르다. 혜민이 다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라고 말할 때 김미경은 등신아, 니가 잘못한 것이여 ! 라고 욕을 한다. 구수한 시골 사투리의 억양을 숨기지 않은 채 말이다. 영락없는 잔소리 많은 시골 엄마 캐릭터'이다. 이 잔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가난한 남편을 만난 이야기, 애 업고 고생한 이야기. 남들보다 2배 고생한 이야기 등등.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에피소드가 파라노마처럼 나열된다. 그런데 나열된 에피소드를 모두 모아서 분석하면 결론은 하나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난 년/놈'은 남들보다 2배 고생해야 한다, 이다. 이게 까칠한 언니가 당신에게 전해주는 성공 노하우'다. 만약에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 당신은 병신이거나 머저리다.
중요한 것은 < 2배의 노력 > 이 아니라 < 2배의 노력을 해야지만 여성이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구조 > 다. 이상적인 기업은 1배의 노력만 해도 성공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2배의 에너지를 쏟아야지만 승진을 하고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기업이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거나 여성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김미경은 여성이 성공하지 못한 까닭을 개인의 게으름이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구조적 문제다. 여성 차별적 사회 구조'가 핵심'인 것.
그런데 김미경은 무조건 개인이 열심히 안 한 죄'라고 말한다. 앞뒤가 바뀐 것이다. 생략해도 될 낱말에 밑줄을 긋고는 " 돼지꼬리 땡땡 " 붙이며 강조를 하는 것이다. 김미경이 말하는 2배의 노력 중 1배의 노력은 국가 복지 케어'의 몫이다. 그런데 그것을 국가 복지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기에 개인이 떠맡는 꼴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후진국은 아니지 않은가 ? G20의 회원국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복지'다. 김미경이 진정한 멘토라면 그 복지의 몫을 여성이 맡아야 하는 힘든 현실'을 지적해야 옳다. 그래야 좋은 언니'이다. 내가 보기엔 그녀의 착각은 인문학에 대한 지식의 부족 탓이다. 그녀는 인문학을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라고 물었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명확하다. 인문학은 자기계발서따위의 책이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빈 깡통 계좌'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물건이다.
덧 > 알라딘 검색창에 " 흔들 " 이라고 치면 엄청난 분량이 쏟아진다. 수백 권은 되는 모양이다. 제목이나 부제에 " 흔들 " 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이 말이다. 대충 몇 가지만 뽑아보자. < 상처받고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 < 흔들리지 않고 의지가... > < 당신의 사랑은 흔들리고 있다 > < 평생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을 찾... > < 흔들리는 직장인을 위한... > < 흔들리는 나에게... > < 흔들림 또한 ... > 이와 같은 방식으로 " 아프 " 와 " 미치, 미쳐 " 를 쳐보면 이 또한 수백 권이 쏟아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아프고, 흔들리고, 미친 것일까 ?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종합병원이다. 김미경의 < 언니의 독설 > 이란 책의 부제도 <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