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달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 미야자와 리에 외 출연 / 올라잇픽쳐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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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여자







가끔 배우 한 명이 관객 멱살을 하드캐리해서 끌고 가는 영화가 있다. 배우 전도연이 이 진상 짓을 잘한다. 감독 필요 없어요, 연출 필요 없어요, 조연 필요 없어요. 내가 멱살 잡고 끌고 갈게요. 난, 소중하니까. 히힝. 이런 경우는 답 없다. 감독은 괄약근 풀고 배우가 하는 짓을 너그럽게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다 된 밥에 숟가락 얹는. << 종이달 >> 의 미야자와 리에도 그런 경우다.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혼신의 힘을 발휘한 필생의 연기라고나 할까. " 간바레, 미야자와 리에 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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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주인공 리카(미야자와 리에 분)는 10년 차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은행에서 경단녀 우대라는 구인 광고를 보고 입사한 계약직 직원이다. 그녀는 주로 노년층 고객 편의를 위해 가정 방문하여 은행 업무를 보는 일을 담당이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자신이 맡은 업무에 충실할 뿐이다. 직업에 대한 성취욕은 없다. 그녀는 20년이 넘는 업무 경력을 가지고 있는 직장 선배(고바야시 사토미 분)의 별 볼 일 없는 직장 생활을 보면 자신의 미래를 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능력이 좋아도 여자에게는 승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나이가 들면 한직으로 밀려나 퇴사 압박을 받는다는 사실. 이때 리카 앞에 나타난 것은 잘생긴 20대 대학생 청년이다. 모든 욕망을 거세한 채 살았던 그녀 앞에 나타는 청년과 보낸 뜨밤은 상상하지도 못한 결말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무한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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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의 티라면 무미건조한 삶에 딱성냥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불싸지르는 청년 역을 담당한 배우가 매력이 없기는 하나( : 내가 보기에는 매력이 1도 없다) 그 모든 것은 미야자와 리에가 커버한다. 그녀는 애인과의 호화스러운 데이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은행 돈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불행은 시작한다. 최고급 호텔에서 3박 4일 휴가를 보내는가 하면, 애인에게 명품 시계 필립파텍을 선물하기도 한다. 함께 살 집도 장만한다. 이 모든 돈은 고객의 돈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 젊은 청년과 바람난 유부녀가 벌인 은행 공금 횡령 사건 "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간단한 한 줄 요약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오묘한 지점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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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증식한다. 자신의 욕망이 불온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통을 끊고 싶지만 욕망이란 아메바 몸통과 같아서 끊겨진다기보다는 새로운 개체로 증식한다. 남편에게서는 채울 수 없는 육체적 욕망은 젊은 애인과의 불륜으로 채우는 것에 만족하다가 이내 금전적 욕망으로 채우게 된다. 하지만 훔친 돈으로 재현한 욕망들은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미야자와 리에는 리카의 열성적이며 극성적인 불온을 연기하지만 우아하며 단호하다. 막나가는 여자 캐릭터이지만 우아하다. 다시 말해서 리카라는 캐릭터는 우아하지만 막나간다. 관객은 이 지점에서 당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이 재수없는 여자를 응원하게 된다. 그녀각 은행 통유리를 깨고 도망칠 때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외쳤다. " 리카, 뛰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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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치, 치치치치치명적인 매력이다. 뜨거울 때 공허한 표정으로 열기를 식힐 줄 아는 배우와 불성실하고 불쾌할 수 있는 캐릭터를 관객이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연출한 감독의 힘이다. 욕망과 생활이 충돌할 때 발생하게 되는 좌절을 감독은 탁월한 연출력으로 재현하고 있다. 무기력한 진짜 생활을 가짜 욕망이 집어삼킨다고 해서 무기력한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욕망이란 아메바의 몸뚱이와 같아서 버려진 잘린 몸뚱이에서 머리가 자라고 꼬리가 자라서 되돌아온다. 진짜는 가짜를 이길 수 있지만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다. 욕망은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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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 " 종이 달 " 은 가족이나 연인들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을 때 가짜 달이 그려진 배경 앞에서 찍었다 하여 생겨난 표현으로 행복했던 한 때를 의미한다고 한다.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종이 화폐로 대표되는 가짜 욕망과 사진관에 걸린 종이 달로 대표되는 진짜 행복. 가짜 욕망으로는 진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 진짜 달과 종이 달의 차이는 빛의 유무일 것이다. 빛이 없는 허영(가짜)은 음영(그림자)조차 만들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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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풀슬립 700장 넘버링 한정판 - 엽서(5종)
팀 밀란츠 감독, 킬리언 머피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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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mall, Good Thing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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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아일랜드, 어느 작은 마을에서 석탄 보급소를 운영하는 빌 펄롱(킬리언 머피 분)은 아내와 다섯 딸을 둔 중년 남성이다. 80년대는 유럽에서 가장 빈국이었던 아일랜드에 설상가상 경제 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아일랜드 국민들은 빵이 없어 기아에 허덕이고 석탄과 땔감이 없는 이들은 추위에 몸을 떨었다. 빌 펄롱은 누구보다도 성실했기에 그나마 굶주림과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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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색이 깊고 말이 없는 조용한 남자라는 점에서 스토너1)를 닮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가난한 이웃에게 연민을 보낼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세면대에서 석탄 배달 일로 더러워진 검은 손을 씻으면서도 가정의 평온과 안온이 신의 은총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선의와 신의를 시험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수녀원에 강제로 감금된 소녀의 간절한 " 외침 " 을 듣고 그 호소에 응답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소녀의 외침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할 것인가 ? 여기에는 수녀원과 지역 마을을 둘러싼 복잡한 지정학적 관계가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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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수녀원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 이 수녀원은 매춘 여성, 미혼모, 고아 소녀를 강제로 입감 시켜서 노동력 착취와 인권 유린을 했던 곳이다. 강제 노역은 물론이거니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미혼모의 아이들은 입양을 원하는 가정에 팔렸으며, 성폭행과 살인이 수시로 발생하곤 했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지만 몇몇 장면으로 그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수녀원에서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지역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수녀원과 지역 주민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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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배달을 하는 빌 펄롱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미혼모 아들로 태어나 마을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던 그는 집주인의 보살핌과 일꾼 네드로부터 조건 없는 타자의 환대를 받으며 성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들의 친절과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평온과 안온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1) 되는 자신의 결심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지만 양심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바로 그 결심을 시작하는 데에서 끝이 난다.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펄롱을 연기한 킬리언 머피의 고뇌하는 얼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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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 속 캐릭터를 연기한다기보다는 펄롱이라는 인물에 대한 존중을 닮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 연기 " 를 하는 것이 아니라 " 실천 " 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어떤 숭고함을 닮았다. 펄롱이 선을 대표한다면 악을 대표하는 수녀원장 역을 연기한 에밀리 왓슨의 절제된 현현도 탁월하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악에도 품격이 있다면 에밀리 왓슨이 연기한 수녀원장에게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골적이지 않지만 교묘하고 적나라하다. 이 모든 것은 배우의 힘이다.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 스토너 >> 와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을 좋아한다면 놓칠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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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 스토너 > 주인공 이름

2) 레이몬드 카버 단편 소설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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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 한글 580년, 팍스 코리아나로 가는 길
이현준 지음 / 해향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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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셨을 때 자모는 28글자였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 한글이 24글자이니 4글자가 사라진 셈. 사라진 4글자는 다음과 같다.아래아(ㆍ), 반치음(ㅿ), 옛이응(ㆁ), 여린히읗(ㆆ). 이현준의 <<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은 문자 >> 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네 글자(네 박자 아닙니다잉)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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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던 것은 나라는 인간은 한글에 대해서 너무 많이 모른다는 점이었다. 한글은 기본 5자( : ㄱ, ㄴ, ㅁ, ㅅ, ㅇ )를 바탕으로 가획을 통해 문자를 만들었고 가획이 될수록 소리의 세기는 커진다. ㄱ(기역)에 힘을 주어 거친소리를 내면 ㅋ이 되고, ㄴ(니은) 바탕에 1획을 가획하면 ㄷ이 되고, ㄷ의 가획은 ㅌ이 된다. ㅁ ㅡ ㅂ ㅡ ㅍ, ㅅ ㅡ ㅈ ㅡ ㅊ , ㅇ ㅡ ㆆ ㅡ ㅎ 도 같은 원리다. 된소리 ㄲ, ㄸ, ㅃ, ㅆ, ㅉ 는 소리 세기의 끝판왕이다. 그렇다면 ㆀ , ㅥ, ㆅ 란 자모도 있었을까 ? 서울 사람이 " 이모 " 라고 말하는 것과 경상도 사람이 " 이모 " 라고 발음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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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의 " 이 ~ " 는 소리가 낮고 부드러운 반면에 경상도 사람의 " 이↘ " 는 소리가 높고 강한 된소리다. 전자는 다정하고 눈물 많은 사람 같다면 후자는 강인한 걸크러쉬 분위기다. 우리 귀에는 똑같은 이응 발음으로 들리지만 자세히 들으면 서울 사람과 경상도 사람은 서로 다른 발음을 하고 있다. 지금은 한글 글자 체계에서 사라졌지만 후자의 이는ㆀ (쌍이응) 발음이다. 한국인은 영어 알파벳 E 를 " 이 " 라고 발음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ㅇ의 거친소리(된소리) " ㆀㅣ" 로 발음한다. 사라진 된소리(ㆀ , ㅥ, ㆅ)와 순경음(‘ㅱ’, ‘ㅸ’, ‘ㅹ’, ‘ㆄ) 그리고 네 글자(ㆍ, ㅿ,ㆁ,ㆆ). 를 모두 사용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를 원음에 가깝게 기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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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물소리,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한글은 문자이면서 동시에 발음 기호인 것이다. 소리의 재현에 있어서 사전에서 사용되고 있는 국제음성기호보다 더 뛰어나다. 현재 일본어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글자는 300개 정도이지만 한글은 24가지 조합으로 11,0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사라진 자모를 활용하면 최대 20,000개 글자를 만들 수 있다. 놀라운 문자다. 이 놀라운 문자를 한국인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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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욕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ㄱ(기역), ㅋ(키읔), ㄲ(쌍기역)은 모두 한배에서 낳은 자식들이란다. 소리 낼 때 구강 구조가 똑같다고. 한배에서 나왔다고 모두 같은 성질머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세종대왕은 ㄱ을 가획하여 거센소리 ㅋ을 만들었다(ㄷ의 거센소리 ㅌ. ㅈ의 거센소리ㅊ. ㅂ의 거센소리ㅍ). ㄱ보다 ㅋ이 힘이 센 경우다. ㅋ보다 더 거센소리는 ㄲ으로 만들었다. ㄲ는 후두 근육을 긴장한 상태에서 음을 쏟아낼 때 나는 소리다. 성질머리만 놓고 보면 막내 ㄲ가 고약하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막내 녀석들이 ㄲ, ㄸ, ㅃ, ㅆ 다. 이놈들은 힘도 세고, 성질도 고약하고.... 약간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보이는 자음이다. 막돼먹은 자식들이지. 재미있는 사실은 쌍욕에 자주 쓰이는 자음이 쌍자음이라는 점이다. 욕이란 일상적 언어 체계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때 소리를 크게 내질러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다.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기에는 쌍자음이 최고다. 한국의 대표적인 욕인 " 씨발 " 은 후두 근육을 강하게 조여서 거칠게 토해내는데 감정을 내뱉고 나면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욕계의 화룡점정 혹은 쌍욕의 쌍화탕은 " 씨발새끼 " 다. 자신의 울분을 토해내듯이(내장을 밖으로 꺼내겠다는 다짐으로) 내지르면 씨빨쌔끼가 된다. 쌍자음 무뢰한들이 총출동한 장면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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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계사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읽다 보면 결론은 돈이다. 특히 전쟁사는 돈을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흔히 십자가 전쟁은 종교 전쟁으로 이해하지만 아니다. 사료를 보면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돈(약탈)을 벌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다. 최근에 읽은 << 히틀러의 복지국가 >> 도 히틀러가 독일 국민의 전쟁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약탈을 통한 국민 복지 분배였다. 세계가 가난해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다. 가난하다는 것은 빚이 많다는 의미이고, 빚은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국민의 불만이 많아지만 국가가 내놓는 수단은 전쟁이다. 최근 유럽이 심상치 않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열악한 교육 정책에 불만을 품고 시위를 하고, 스페인은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대규모 텐트촌을 만들며 항의를 한다. 독일 폭스바겐도 직원 10만 명 감원을 통보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일본 상황도 만만치 않다. 일본 국민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진행 중이다(우-러 전쟁, 이란 전쟁). 중국도 호시탐탐 대만을 노리고 있다.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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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알파벳과 한글

나는 종종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영어 알파벳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라는 황당한 상상을 한다. 한글 자음ㄱ과 ㄴ은 영어 대문자 L 같고, ㄹ은 대문자 S, ㅇ은 대문자 O, ㅋ는 대문자 F 와 닮았다. ㅌ은 대문자 E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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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의 << 1973년의 핀볼 >> 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느닷없이 왜 하필 핀볼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의문은 쉽게 풀렸다. 하루키는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영어로 글을 쓰다가 그 문장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문장이 나오게 되었고, 이를 자신의 문체로 삼기로 했다고 말이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을 때 하루키는 일본인이지만 영미식 사고를 한다. 1973년의 고스톱이라거나 1973년의 가부키라는 제목은 하루키 문학과는 동떨어진 표현 아닌가. 그는 겉은 노란데 속은 하얀 바나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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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갔다오다

누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 작별 인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 갔다올게 ~ " 한국인은 가족들 앞에 맹세를 한다. 일하러(혹은 공부하러, 혹은 여행 떠나며... ) 갔다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에게로 돌아온다는 약속. 약간 닭살 돋는 멘트다. 한국인은 아침마다 멜로 영화에서나 할 법한 부끄러운 약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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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의

친구가 박물관에 전시한 어의(임금이 입는 옷)를 보다가 궁금증이 생겼다. 옷소매 끝단이 너무 긴 것이다. 팔길이보다 1미터는 더 길어보였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 멍청아 ! 임금이 손 쓸 일이 뭐가 있냐. 똥 쌀 때도 궁녀들이 요강 놓고, 엉덩이에 묻은 똥도 닦아줬다고.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야 소매 끝이 길면 일할 때 거추장스럽지만 임금은 아니거등. 옛날 유럽 귀족 여성들이 입었던 옷 봐라. 바닥에 질질 끌면서 다니잖아. 그거 왜 그런 줄 아냐 ? 자기들은 빨래를 하지 않잖아. 다 하녀들이 빨래를 하니 그런 옷이 만들어진거라구." 친구는 바로 수긍했다. 손을 자주 사용한다는 것은 계급이 낮다는 소리다. 이 논리는 조폭의 세계에서도 통용된다. 넘버3는 손에 칼 들고 설치지만 넘버2는 말로 명령한다. 그는 명령만 할 뿐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넘버1은 ? 입으로 힘을 과시하는 놈은 넘버원이 아니다. 진짜 넘버1원은 눈빛으로 명령한다. 그의 눈짓 하나에 한 생명의 생과 사가 놓여 있다. 이재명의 SNS글을 두고 말이 많다. 주로 팀김어준이 발악을 한다. 메시지로 협박을 한다나 ?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며 조롱을 한다. 나는 역설적으로 이재명의 SNS 글을 보며 이재명은 무소불휘의 권력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 조금 슬펐다. 말(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없다는 뜻이다. 이재명보다 상전은 팀김어준이다. 삼족을 멸해야 할 족속들이다. 망나니가 되어 무딘 칼로 그 새끼들 모가지를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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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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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앤씨
엘렘 클리모프 감독, 알렉세이 크라브첸코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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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기가에 앞서

이 글은 허세 가득한 동네 형이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컨셉으로 쓴 글이다. 약간의 독자 모독과 약간의 독설과 약간의 쿨병이 섞인 지랄병맛체 영화 리뷰'다. 비록 쿨병 작렬하는 지랄병맛체로 쓴 고약한 리뷰이나 영화만큼은 최고 수준의 전쟁 영화라는 점은 명백하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에서 밥을 먹는 심정으로 눈치 보면서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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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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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 지옥의 묵시록 >> 봤나1) ? 영화 좀 본다는 새끼들이 항상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영화지. 그런데 난 말이야. 이 영화가 상당히 역겹단 말이지. 몇 번을 봤는 데도 정말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쳐.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잖아. 내용이 굉장히 철학적이지. 철학적이라는 게 뭐냐 ? 에휴. 내가 너희들 수준을 너무 높게 봤구나. 닥쳐 이 새끼들아. 궁시렁거리지 말고. 형아가 설명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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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의 묵시록 >> 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를 찾지. 영화 보다 보면 굉장히 사유적이잖아. 그런데 이 형아는 이 꼬라지가 굉장히 역겹다는 거야. 미국 새끼들, 솔까말 얘기해 보자. 전쟁 범죄자들이잖아.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서는 고뇌하는 지식인 흉내를 낸단 말이야. 그 누구냐. 커트 대령. 이 새끼. 말론 브란도가 뚱뙈지로 나오잖아.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어. 영화에서 보면 말론 브란드는 절대 악이자 순수 악으로 등장하잖아. 그런데 말론 브란드는 너무 뚱뚱해서 그냥 초고도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 환자처럼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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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도 엉망이야. 호러, 호러, 호러 _ 이 지랄하는데, 아니 이게 대사야 ? 잤니, 잤어, 잤냐구 !! 영화는 엉터리인데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원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음, 저 인물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군. 음, 저 인간은 전쟁의 야만적 폭력성을 의미해. 앗, 저 고장난 시계는 이성적 세계가 멈추고 야만의 시간이 돌아왔다는 은유가 아닐까 ? 하. 이런 개지랄. 에라이 ~ 얼핏 보기에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반성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그냥 베트남 전쟁은 그럴싸한 배경일 뿐, 사실은 허세를 부리고 싶은 거야.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포는 진짜 공포가 아니라 멋진 공포야. 지적 공포, 쿨한 공포. 재수없는 공갈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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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진짜 전쟁 영화 한 편 소개할게. 영화 << 컴 앤 씨 >> 추천한다. 꼭 봐라. 이 영화의 특징이 뭔 줄 아냐 ? 이 영화는 << 지옥의 묵시록 >> 과는 달리 깊은 사유를 하면서 이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왜냐하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거든. 이 영화 보면서 이 캐릭터는 무엇은 상징하고 저 장면은 무엇을 은유한다는 식의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어. 진짜 공포는 생각을 마비시키거든. 정말 이 영화를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전쟁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진행이 돼. 생각은 사치야. 바로 내 눈 앞에서 죽음과 살육이 진행되는데 그곳에서 무슨 사유를 한다는 거야. 이 영화는 마치 소년이 셀카봉 들고 학살을 라이브로 송출하는 유튜브 채널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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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화(??)여서 생각 없이 끝까지 압도적 공포 속에서 영화를 지켜보다가 영화가 끝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생각을 하게 돼. 마치 방학이 끝나는 날 하루 전에 방학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학생처럼 말이야. 이 영화 속 공포는 멋지지 않아. 사람을 질리게 만들거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전쟁을 볼거리로 만든 자극적인 작품이라거나 전형적인 러시아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욕을 하지만...... 하, 시부랄놈들. 알고 좀 시부러. 이 영화가 단순히 러시아를 옹호하는 프로파간다 영화였다면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8년 내내 소련 당국의 검열과 싸우지는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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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독일군에 대해서 자비 없이 잔혹하게 묘사했지만 그렇다고 소련군을 영웅으로 묘사하지도 않아. 오히려 잔인할 정도로 냉소적이지. 나중에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분간이 안 가. 이 영화를 끝으로 감독은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하게 돼. 이래도 국가 선동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 욕을 할래 ? 내가 본 전쟁 영화 가운데 << 컴 앤 씨 >> 는 라리사 세피트코 감독이 연출한 << 고양, 1977 >> 과 함께 최고의 걸작 전쟁 영화라고 자부할 수 있어. 재미있는 사실은 두 감독이 부부라는 사실이야. 이 영화에 비하면 지옥의 묵시록, 플레툰,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는 개 같은 영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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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국주의 할리우드 영화 속 공포는 예뻐. 존나 예뻐. 뭔가 근사해. 영화 보고 나면 관객인 내가 꽤 근사하고 선량한 도덕주의자가 된 것 같잖아. 뭐, 쉰들러 리스트가 너의 인생 영화라고 ? 그러니 개인의 취향은 존중해 달라고 ?? 조까라마이싱이닷. 됐고. 이 영화 한번 봐봐봐봐, 꼭 !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거야.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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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하면서 내린 결론은 " 무지의 폭력 " 이었습니다. 전쟁 범죄자 아이히만은 도덕성이 결여되었다기보다는 무지無知,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무지막지(無知莫知)한 괴물이 되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내린 최종 결론은 " 가장 질이 나쁜 악은 무지에서 태어난다 " 였습니다. 제가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 지옥의 묵시록 >> 을 비판하는 이유는 악을 탐구한다는 미명 아래 악을 영웅시한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커츠 대령이라는 절대 악을 찾아, 그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맡은 윌러드 대위의 모험담을 담은 영화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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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영웅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오디세이 식의 모험극에 불과합니다. 전쟁의 화신인 커츠 대령은 어둠 속에서 사유의 감옥에 갇힙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군인보다는 철학자에 가깝습니다. 그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는 점에서 아이히만과는 정반대인 캐릭터입니다. 감독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악의 본성을 탐구하겠다고 말하지만 그가 싸질러놓은 것은 악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미치광이 커츠 대령은 좆같지만 왠지 멋있어 ! _ 영화는 줄곧 그런 태도를 유지합니다. 전범 국가의 자기 반성은커녕 자아 성찰에 가깝습니다. 제국주의자 특유의 뻔뻔한 태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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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사유의 늪에 빠진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이 의미심장한 어조로 내뱉는 대사에서 영화의 주제를 찾으려 애를 쓰지만, 말론 브란도의 대사는 아무 의미 없는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걸을 때마다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뚱뚱한 몸으로 촬영장에 나타난 그는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습니다. 대사 한 줄 외우지도 못했고, 결국 감독은 아무 의미 없이 내뱉는 그의 즉흥적 혼잣말을 화면에 담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이성을 상실한 광기와 초현실적인 악몽을 재현하려는 목표를 이루었다기보다는 중간에 자포자기한 영화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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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실패한 영화입니다. 반면에 엘렘 클리모프 감독이 연출한 전쟁 영화 << 컴 앤 씨, 1985 >> 는 관객에게 생각할 틈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영화 << 지옥의 묵시록 >> 이 월러드 대위의 우아한 오디세이 여행이라면 << 컴 앤 씨 >> 에서 소년이 그저 정신없이 떠도는 영화입니다. 목적지도 없고, 서사도 없고, 플롯도 없습니다. 또한 영웅도 없고 희생도 없으며 교훈도 없습니다. 적과 싸우면서 민중을 고무하는 감동적인 연설도 없습니다. 위안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오직 압도적인 죽음만 병열로 나열될 뿐입니다. 끝으로 희망조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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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자칫 선동 영화(프로파간다)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 지옥의 묵시록 >> 이야말로 비열하고 졸렬한 선동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전쟁 영화들은 겉으로는 반전을 내세우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영웅주의에 대한 찬양입니다. 전쟁이라는 지옥도에 과도한 의미와 서사를 부여하고 그 서사에 구원과 희생을 담는 행위야말로 선동적이입다. << 지옥의 묵시록 >> 를 보고 나면 남는 것은 반전 메시지가 아니라 황홀한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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