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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선  :



 

 

 

 

 


 

이재용을 향한 편애와 편견



 


                                                                                                         책은 사서 읽지만, 읽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은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자주 들춰 보는 책은 한정되어 있다. 그것도 대부분은 필요에 의한 발췌독이다(니체 전집, 프로이트 전집, 아케이드 프로젝트, 사랑의 단상, 두이노의 비가 따위).

 

가성비와 효용성만 놓고 보자면  :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읽지 않을 책은 사는 것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이 합리적 소비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읽지 않은 책은 책장에서 비울 생각이다(라고 쓰고 있지만,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  그 자리를 각종 사전과 도감으로 채우고 싶다. 도감 중에서도 가장 가지고 싶은 도감은 보리 출판사에서 기획한 <<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도감 >> 시리즈'다. 도감은 세부 목록(동물보감, 식물보감, 동물흔적보감, 양서파충류도감, 갯벌도감, 민물고기도감, 나비도감, 나무도감, 곤충도감, 풀도감, 새도감, 버섯도감, 바닷물고기도감)을 설정한 후 

그림이나 사진을 모아서 실물 대신 보면서 읽을 수 있도록 엮은 책'인데 읽는 재미와 함께 보는 재미가 가미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무엇보다도 도감은 사진보다는 그림(세밀화)으로 구성된 책이 월등히 훌륭하다. 사진이 실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초정밀 광학적 세계의 끝판왕이기는 하나 독자가 그림을 이해하는 가독성 측면에서 보자면 사람 손으로 그려진 세밀화는 사진보다 가독성이 뛰어나다. 그렇기에 동식물 도감은 세밀화로 구성된 책으로 읽어야 한다. 그 차이는 분명하다. 사진은 광학 기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상이고 그림은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상이다.

그러니까 세밀화는 독자가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인간이 한 편의 그림 같은 사람(혹은 풍경)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사진을 찍을 때, 클로즈업과 부분 초점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진 렌즈에 의해 포착된 상은 편견이 배제된 상이다. 반면에 사진 렌즈가 아닌 사람의 홍채에 의해서 재현된 상은 편견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사람은 전체를 본다기보다는 관심이 가는 영역을 중심으로 이미지 전체를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항상 색안경을 쓰고 사물과 현상을 들여다보는 종이다. < 편견 > 이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선인 셈이다.

하여,   나는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편애(편견)라고 생각한다.  편애하는 사람에게도 품격은 있따. " 편애 " 가 강자에게만 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자에게만 쏠리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俗이고 후자는 聖이다. 예수는 후자에 속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약자에 대한 편애와 강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예수가 안철수처럼 극중주의와 화신 백화점이었다면, 나는 그에게 침을 뱉고 따귀를 때렸을 것이다. 정의로운 사람은 대부분 편견과 편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엄청난 죄를 짓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재판은 판사의 그릇된 편견과 편애 때문이 아니라 거악에 대한 " 편견 없음 " 과 정의에 대한 " 편애 없음 " 이 낳은 결과이다.

어렵게 말했으나 저잣거리 입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 저 판사 새끼, 시발 진짜 좆같은 새끼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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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6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6 10:20   좋아요 2 | URL
퇴임 후 법무팀에서 모셔가겠죠. 연봉 20억 때려서 5년 근무하는 방식이겠죠. 그러면 100억.. 합법적 뇌물이잖아요. 법무팀에서ㅓ 하는 일은 없을 테고... 뭐, 판사 입장에서는 욕 졸라 한번 처먹고 퇴임 후 목돈 마련해서 자식새끼 좋은 데 유학 보내자.. 이런 마인드이겠죠. 삼성 불매 운동해야 합니다..

마립간 2018-02-06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의로운 사람은 대부분 편견과 편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

이 문장을 보니, ≪도덕경≫의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문구가 떠오릅니다. 자연의 정의와 사람의 정의가 다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6 11:25   좋아요 0 | URL
흠... 마립간 님 한자 해석 좀 -_- ;

마립간 2018-02-06 12:08   좋아요 1 | URL
^^, 곰곰발 님의 글을, 제 독후감에 인용하였습니다.

앞부분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 천지, 성인은 인자하지 않다. 즉 편애가 없다는 뜻입니다. ≪도덕경≫의 의견입니다.

cyrus 2018-02-06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판사 이름이 정형식. 예전에 삼성 라이온스에서 뛴 정형식이라는 타자가 있었죠. 타격 센스가 박해민 급이었어요. 그런데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서 임의 탈퇴 처리되었죠. 다행히 정형식이 나간 이후로 박해민이 등장할 수 있어요. 아무튼 정형식이라는 이름,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6 11:41   좋아요 1 | URL
저 인간은 성을 바꿔야 합니다. 정씨가 아니라 화씨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희대의 변명일 겁니다.

수다맨 2018-02-06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고종석 작가가 우스갯소리로 이 나라에서 이명박근혜가 왕(또는 상왕)이라면 이건희/재용은 황제라고 한 적이 있었지요. 어제 재판 결과가 고종석의 말에 정확히 들어맞았던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7 09:51   좋아요 0 | URL
삼성이 황제라는 사실을 고종석이 아니어도 다 아는 사실이죠. 법위의 존재예요. 박근혜도 깜빵 가는 세상에 이제는 이재용은 안 가는 세상이 되었군요.

기억못함 2018-02-0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자는 자연의 섭리를 편애했어요.
천지불인은요. 큰것을 위하지 않아요.
그래서 작은 것들이 큰 놈에게 강제당하지 않게 되어요.
그러면 천지불인이 작은 놈을 위한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작은 놈이란 거는 천지불인과는 상관없는거여요.
걍 천지불인은 큰 것을 위하지 않는다는 놈이다 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요.
이러는 것이 천지간이 잘 돌아가는 것이라고 노자가 얘기하는 거라고 봐요.
그래서 위하지 않음을 위한다고 하는 건데요.
이걸 아무거나 다 에브리띵 다 위하지 않는 거라고 퉁치는 얘기로 읽으면 노자를 한참 잘 못 읽는거라고 봐요.
여기 곰곰발님 말씀처럼 사람은 편애 편견덩어리여요.
무엇을 위하여야만 사는 놈이라는 거죠.
그런데 위하면 작은 놈도 그게 큰 놈이 금새 되어버려요.
그래서 위하지 않음은 큰놈이 생기지 않게 해요.
그래서 작은 놈을 위하게 된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안되구요
위하지 않음을 위한다는 말은 오직 큰 놈을 잡기 위해 있는 말입니다요.
위하지 않음을 위하는 편견 편애는 그것이 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큰 놈이 절대 안되요.
다른 위함은 모두 큰 놈이 되요.
오직 위하지 않음을 위하는 편애 편견만이 큰 놈을 만들지 않아요.
그게 노자의 천지불인이라고 한다면 여러분 믿을 수 있씁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7 09:50   좋아요 0 | URL
허어. 그렇군요. 노자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노자의 천지불인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겠군요. 혹시 추천해주시고 싶은 책이 있으신지요.
읽고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억못함 2018-02-07 10:0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도덕경 해설서 독해서 추천드릴만한게 없습니다.
곰곰발님이 독자적으로 해석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