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철은 누구 신지 ?
어릴 때는 싸움에서 승패의 기준이 코피였다. 카운트 펀치와는 상관없이 코피를 흘리면 패자였다. 반면에 어른이 되면 싸울 때 승패의 기준은 눈물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놈이 지는 놈이었다. 그래서 캔디는 지지 않기 위해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 캔디는 사람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참고 참고 참고 참다가 결국에는 참치가 된 최초의 참치 인간이었다. 울지 않겠다는 다짐은 어른이 되어가는 징표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할 때 패자는 언제나 여자였다. 나는 울지 않았고 여자는 울었다. 하지만 크게 울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완전한 승리라기보다는 불완전한 승리였다. 1승, 2승, 3승, 4승......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떠나는 여자 앞에서 대성통곡했다.
박연폭포 같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 기나긴 싸움의 완벽한 패자는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달을 맨바닥에 누워 끙끙 앓았으니 완벽한 KO패였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제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테스토스테론보다 에스트로겐이 내 몸에 침투하여 영화를 보다가 우는 날이 많아졌다. 영화 << 변호인 >> 을 보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송강호가 국밥을 먹으면서 울먹일 때 나도 먹먹해서 우럭처럼 울었다. 품위 있는 눈물이어서 불만은 딱히 없었다. 볼락이나 쏨벵이 혹은 꼴뚜기처럼 울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송강호만큼 울방(먹으면서 우는 장면)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도 없다.
극장 밖을 나왔을 때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교통이 지체될 만큼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버스 안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강북삼성병원 언덕길에서 창밖의 풍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수라장이었다. 수천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경향일보 사옥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길 위에서 경찰, 기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로 뒤엉켰다. 대한민국 역사상, 공권력이 최초로 민노총 사무실을 강제 진압하는 현장에 내가 있었다. 불끈. 노동자인 나는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못하는 투사적 성격이어서 겉으로는 침묵한 채 속으로만 외쳤다. 독 ! 재 ! 타 ! 도 !
영화를 보고 나면 별점을 매긴 채 시니컬한 글을 쓰는 게 취미인데 << 변호인 >> 은 노무현, 박근혜, 민노총 공권력 개입 사건 따위와 맞물리면서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 인간아, 이 영화 보고 펑펑 울었다며 ?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겠지만,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울었다고 해서 그 영화가 반드시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타인의 불행과 죽음 앞에서 운다는 것은 그 불행에 대한 연민과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일 뿐이지
그 사람의 인생 혹은 그 영화에 대한 지지는 아니다. 캡사이신이 잔뜩 들어간 떡볶이를 먹고 매워서 눈물이 났다고 해서 그 요리가 훌륭한 맛은 아니지 않은가. 칭찬은커녕 잇속에 눈이 멀어서 손님의 똥구멍은 생각도 않은 채 독극물에 가까운 캡사이신을 대량 투하한 주인장을 욕하기 마련이다. 나는 영화 << 7번 방의 선물 >> 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지만 이 눈물이 영화에 대한 지지는 아니었다. 이 영화의 신파는 캡사이신 잔뜩 들어간 떡볶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 << 변호인 >> 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신파였기에 따분한 신파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은 채 지지하는 글을 썼다. 내가 지지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죽은 노무현이었으니까. 삼성 반도체 노동자 피해 사건을 다룬 << 또 하나의 약속 >> 도 같은 이유였다. 이 영화는 만듦새가 조악했지만 이 영화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지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반도체 노동자였다. 한때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던 내가 이제는 누구와 싸워도 진다. 쪽팔리다.
- 혁오는 천재다.
덧대기 ㅣ 올해는 알라디너 한수철과 신지 님를 모시고 술 한 잔 마시는 게 내 목표다. 의심이 쌓이면 불화만 높아지는 법. 그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두 분을 초청합니다. 두 분이 운우지정을 나눌 만큼 서로 존경하는 사이이니 내가 술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두 분 몸만 오십시오, 모든 비용은 제가 내겠습니다. 댓글 남겨주세요. 그나저나 날마다 일기처럼 글을 올리시던 한수철 님이 어제는 글을 올리시지 않아서 걱정에 태산 같다. 공교롭게도 한수철 님이 쉬는 날에는 신지가 글을 올리시네. 참..... 절묘한 타이밍이다. 두집살림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