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김치 또 없습니다
어머니는 둘째 가라면 서워러할 정도의 음식 솜씨를 뽐낸다. 가난한 누대에 태어난, 없는 집 자손인 나로서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면 미각을 잃어 음식 솜씨가 녹슨다고 했던가. 올해 어머님이 담근 김치는 그동안 내가 먹어온 김장 맛과는 사뭇 달랐다. 너무나 맛이......
있는 것이다 !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먹어본 기억이 없다1). 평소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형편없었다. 아무리 싱싱한 제철 생선으로 요리를 하셔도 요리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가을에 잡힌 전어를 구으면 신기하게도 봄에 잡힌 전어 맛이 났다. 그리고 꽃등심을 구우면 3,300원짜리 대패 삼겹살 맛이 나곤 했다. 김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느 해는 짜고, 어느 해는 쓰고, 어느 해는 싱거웠다. 또 어느 해는 물렀다. 봄이 되면 김장 김치의 80%는 버려졌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없었다기보다는 요리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 쪽이었다.
그래서 식재료인 물고기를 소비하는 방식은 양념이 들어간 찜이나 탕을 끓이는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은 구이였고, 길짐승 고기의 활용도 대부분은 구이였다. 고기 종류의 팔 할은 삼겹살이었다. 날짐승 고기라고 다를까 ? 생닭을 활용하는 방식은 지레짐작하시겠지만 삼계탕이었다. 내 기억에는 양념이 들어간 닭도리탕을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머니는 삼계탕이라고 우기지만 말이 좋아 말고기요, 닭이 좋아 삼계탕이지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듯이 인삼 한 뿌리 맹물에 툭, 빠트리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가 음식 맛 평가를 부탁할 때는 난감했다. 맹물 맛이 나서 맹물 맛이 난 것뿐인데 맹물 맛이 난다고 하면 실망하시니 난감할 뿐이었으니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삼 향에 진하네요 ! 국물이.... 국물이......
하지만 여기서 오해는 금물이다. 어머니는 나름 요리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계셨으니 msg를 독극물로 취급하셔서 msg의 도움 없이 어머니가 내놓는 음식은 항상 " 지옥 " 을 경험하기에 충분했다. 건강을 생각해서 맛을 포기한 고뇌라는 포장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주 최강의 짠맛이었으니까. 뭐, 지금까지는 어머니표 손맛에 불만이 많은 아들의 넋두리처럼 포장했으나 사실은 정반대다. 나는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형편없다는 사실에 지금도 감사를 느끼곤 한다. (집) 안에서 먹는 맛없는 음식에 익숙하다 보니 밖에서 먹는 음식은 천국이라.
할렐루야, 저는 동네 허름한 김밥천국에서 하늘에서 내리신 김치찌개 맛을 알현하였나이다. msg의 오묘한 감칠맛과 짠맛 속에 숨겨진 단맛에 황홀하였나이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 워낙 맛있다 보니 친구집에 가서도 친구 부모님으로부터 복스럽게 먹는다는 칭찬을 받곤 했다. 집밥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모든 음식이 맛있는 것이다. 만약에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황홀했다면 나는 밖에 나가서 젓가락이나 깨작거리며 반찬투정이나 했을 놈이다. 나는 어머니의 형편없는 음식 솜씨를 찬양한다. 그랬던 어머니가 올해에는 " 인생 김치 " 를 담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연과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겹친 결과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배추와 그 배추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고춧가루가 우연히 만나서 환상의 하모니를 이룬 것이다. 여기에 덧대어 대충 쏟은 고춧가루의 양과 대충 쏟은 양념의 배율이 신기하게 맞아떨어졌으리라. 지금 냉장고에는 삼겹살과 장어가 썩어가고 있지만 나는 오늘도 김장김치 하나만 놓고 밥을 먹고 있다. 군 고구마 위에 얹어 먹어도 맛있고, 찐 감자와 함께 먹어도 맛있고, 심지어는 호빵에 싸먹어도 맛있는 것이다. 이처럼 행운이란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겹친 결과일 경우가 많다.
불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겹쳐 불행이 되기도 한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운이 좋았던 행운은 그녀를 처음 본 날이었다. 그녀는 우연히 그 길을 걷고 있었고, 나는 우연히 창밖을 보다가 그녀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그날은 내 생일이었고, 또 우연히 그날은 첫눈이 내렸다. 그리고...... 그리고 또 우연히 나는 그녀의 둥근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을 보았다. 이 우연들이 겹쳐지자 나는 마법처럼 사랑에 빠졌다. 헤어지고 난 후, 나는 헤어진 그녀를 잊지 못한 채 술만 마시면 자주 전화를 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수십 통의 통화 발신 기록을 보고는 어제 일이 떠올라 괴로웠다.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성으로써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술을 끊을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내가 선택한 것은 핸드폰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기억에서 지울 때까지만 ! 그렇게 6년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불행하다. 정말 불행하다. 너무너무 불행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찌 되었든,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겹쳐 불행을 낳는 결과에 대하여 이제는 그 우연-들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우연들의 합이 언젠가는 행운을 가져다줄 수도 있으니까 ■
1)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맛있었던 김치는 양파 김치였다.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unheimlich1/221048058358
먹방에도 품격이 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는 듯이 지나치려고 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동영상에 5분만 투자하십시오. 신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동영상을 보다 보면 사회적 편견과는 달리 혼밥과 혼술의 예술적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요즘 이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있는 중이다. 침대에 누우면 어제 보았던, 그제도 보았고, 엇그저께도 보았던 이 방송을 틀어놓고 눈을 감는다. 이제 비디오는 필요없다. 오디오가 필요할 뿐이다. 마약 방송이다. 말은 거의 없다. 바람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 나무가 불에 타는 소리, 요리할 때와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리 그리고 그 맛에 감탄하는, 인간의 짧은 감탄사가 전부다. (목)소리-성애자인 나는 소곤거리는 소음을 듣다가 어느새 그 소리의 중심에 나를 놓는다. 가끔 살기 위해 먹는다는 교양보다는 먹기 위해 산다라는 본능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이 영상을 보다 보면 고독해져서 슬픔이 몰려와 소금새우처럼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한다. 눈물은 왜 짠가. 입을 다문다는 것은 반대로 귀를 열어둔다는 의미이다. 조용하지만 선명한, 느리지만 강건한 스타일이 좋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장이 좋다. 무의미한 것들이 쌓여서 나중에는 하나의 의미가 되는 행위들. 이 동영상을 보다 보면 코멕 매카시의 < 로드 > 와 존 윌리엄스의 < 스토너 > 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