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고 끝에 악수
젊은 시절, 아버지는 서부 영화를 좋아했다(고 말씀하신 적 있다). 클래식한 맛보다는 마카로니 맛을 좋아하셔서 << 내 이름은 튜니티 >> 나 << 장고 >> 같은 영화를 즐겨 보는 부류였다. 나는 이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내 이름은 " 장고 " 가 되었다. 홍장고, 내 본명이다. 부부는 슬하에 4남매를 두었는데 막내 이름은 홍악수였다. 장고 끝에 악수를 낳은 것이다. 아버지의 개성과 유머가 빛나는 이름이었지만 자식들은 그 이름 때문에 또래에게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 시절에 왕따란 문화가 없어서 견딜 만했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지점은 막내인 악수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막내의 직업은 자동차 판매사원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악수부터 해야 하는 직업인지라 막내인 악수가 하는 일은 악수하는 일부터 시작되었으니 절묘한 작명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우자동차 판매사원 홍악수입니다아 ! 막둥이는 고객과 악수를 하며 악수하는 일로 먹고 사는 악수입니다 _ 라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하하하, 재미있는 양반이시구만. 막내는 이 에피소드를 거론하며 역시 사람은 이름대로 산다고 말하곤 했다 -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소설 하나를 쓰고 싶다. 장고와 악수 형제가 풍파를 겪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2 웃음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
웃음의 반대말은 울음이 아니다.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인용하여 유명해진 윌콕스의 문장 "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그러면 혼자 울게 될 것이다 " 는 구절은 사실이 아니다. 윌콕스는 웃음의 전염성을 강조하면서 동정 없는 세상을 강조하지만 울음은 하품을 닮아서 전염성이 강하다. 임마누엘 칸트는 << 순수 이성 비판 >> 에서 < 웃음 > 은 " 팽팽한 기대가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화했을 때 " 나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 everything " 를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 nothing " 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 (헛) 웃게 된다는 말이다. 뮤지컬 영화 << 오즈의 마법사 >> 에서 위대한 마법사'가 알고 보니 쩨쩨한 꼬맹이 오스카'라는 사실이 폭로되는데 이때 관객은 크게 (비-, 헛-, 코-)웃게 된다. 이처럼 웃음은 " 위상 수학 " 과 관련이 있다. < 큰 것 > 을 기대했는데 < 작은 것 > 이라는 사실이 폭로될 때 비웃음이, 헛웃음이, 코웃음이 나는 것이다. 반대로 별다른 기대 없이 < 작은 것 > 을 예상했는데 < 큰 것 > 을 보게 될 때에는 감탄으로 변한다. 그러니까 웃음의 반대말은 울음보다는 감탄에 가깝다. 안철수라는 인물이 대중으로부터 유독 (다른 정치인에 비해) 희화화되는 이유는 그가 한때는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꼬맹이'라는 사실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제가 안철수입니꽈, 갑철수 입니꽈아 ~ 안철수가 대선 토론회에서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장면을 보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가 커밍아웃되는 장면이었다. 몸짱 남성이 빤스를 내렸는데 대물 대신 쩨깐한 번데기를 보게 되는, 뭐..... 그런 느낌.
3 미학은 불편하다
편한 의자치고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의자는 없다. 몸에 편한 의자는 미학적 가치를 포기할 때 얻을 수 있는 물건이다. 거무퉤퉤한 PC방 컴퓨터 의자를 보라. 이처럼 편안함은 격식과 양식을 포기할 때 발생한다. 하지만 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사물은 대부분 격식과 양식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렇기에 의미와 가치가 있는 명품 디자인 의자는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것은 없애야 할 요소가 아니다. 복장 문화도 마찬가지다. 거지가 입고 다니는 옷은 편하지만 왕이 입고 있는 옷은 불편하다. 좋은 예가 넥타이다. 양복에서 넥타이는 실용적 기능을 거의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활동하는데 여러모로 불편함을 주지만 없어서는 안될 소품이다. 인간 관계라고 해서 다를까. 나는 편한 관계보다는 조금은 불편한 관계를 원한다. 가족 같이 편하게 지내라는 고용주의 말을 믿지 않고, 격의 없이 지내자며 편하게 하대하는 어르신도 믿지 않는다. 불편에서 오는 긴장은 타인을 향한 무의식적 무례를 방지할 수 있다. 최근에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 노 키즈 존 " 문제도 불편한 것을 나쁜 가치로만 여기려는 이기심에서 시작된 논란이다. 노 키즈 존의 핵심은 어른이 아이를 불편한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모임과 장소의 성격에 따라 노-타이는 무례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가 아이라는 존재를 단순하게 불편해서 풀어헤쳐야 하는 넥타이 쯤으로 여긴다면 그 태도는 무례하다. 불편한 것을 못 견뎌하는 사람일수록 무례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불편은 관계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