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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고 다녀와 - 켄 로치에게 ㅣ 활자에 잠긴 시
김현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7년 7월
평점 :
소 년 감 성
1. 날개도 없는 짐승인 주제에 날개 돋힌 듯 팔리는 베스트셀러 서적'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일별백개의 의미로 백 별 만점에 별 하나를 매겼다. 감성이 과잉되다 보니 질척거리는 문장이 되고, 서사에서 억지로 교훈을 뽑아내다 보니 훈계하는 말투처럼 들렸다. 저자가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라서 좋은 것만 보는 시선을 가졌을지는 모르나, 저잣거리 뒷골목 쌈마이 세계에서 뒹굴던 나에게는 이 파스텔톤의 세계가 " 징그러운 선의 " 로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악의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무턱대고 선의를 추종할 만큼 소년 감성의 소유자도 아니다. 며칠 전, 악평을 쏟아낸 내 글에 저자'가 직접 " 좋아요 " 를 누르고는 이웃을 맺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관대하도다, 관대하도다, 관대하도다. 볼테르를 흉내 낸 것일까 ? 일단, 며루치 볶구 !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지합니다아 ~ 글쎄다, 인간 관계를 자기계발서 보고 배운 자의 흔한 대응법 ?! 그는 이 글에도 좋아요를 누를 수 있을까.
2. 개봉과 동시에 개봉일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던 << 군함도 >> 가 흥행을 멈췄다. 이대로 가다가는 손익분기점에서 못미치는 성적을 얻을 가능성에 높아졌다. 괘씸죄 탓이 크다. 이 영화가 전체 상영관 수의 80%를 웃도는 스크린을 독점하자 네티즌이 뿔난 것이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외유내강 제작사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건강한 영화 산업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몰락이 아닌가 싶다. 이제 배급사는 무조건 힘의 논리로 스크린를 싹쓸이하는 독점에 대해서 " 군함도 리스크 " 를 고려해야 처지가 되었다. 대형 배급사의 횡포라는 여론이 형성되면 네티즌에게 미운 털이 박힐 테니깐 말이다. << 군함도 >> 의 거침없는 흥행몰이에 제동을 건 데에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네티즌의 별점 테러 행위도 큰 몫을 차지했다. 보지도 않은 영화에 별점을 매기는 행위가 반드시 비윤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제 영화사는 영화를 본 관객의 입소문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의 입소문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소비자가 기업의 윤리성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닐까(미스터피자를 단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소비자가 미스터피자 회장의 갑질을 비판할 수 있는 것처럼).
3. 기대가 컸던 탓일까. " 문단_내_성폭력 "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큰 목소리를 냈던 김현 시인의 첫 번째 산문집 << 걱정 말고 다녀와 >> 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형편없어서 크게 실망했다. 책상 앞에서 타자기로 작성한 에세이라기보다는 침대에 엎드려서 연필로 쓴 일기장에 가깝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하면 짜증이 나기 마련. 가난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정치적으로는 옳긴 하나, 지나치게 결연해서 촌스럽다. 또한 감성적 문장은 읽기에 방해가 된다. 다 큰 어른의 소년 감성이라니 !
댓대기 ㅣ 이 책의 부제는 < 켄 로치에게 > 인데 막상 켄 로치에 대한 깊이'가 없고 가볍다. 켄 로치를 엮어서 이 시대의 도시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출판 기획'은 참신하지만 기획 의도와는 달리 레이아웃은 천박하다. 켄 로치에 대한 언급은 각주에 들어설 끝자락에 하늘색 글씨로 대체하고 그나마도 본문에 사용된 글자 폰트보다 작은 폰트로 삽입된다. 이런 취급은 이 책이 켄 로치를 위한 " 헌정 " 이 아니라 그를 " 헌신짝 " 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이 책은 별책부록으로 김현의 단편소설 < 견본세대 > 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런 식의 책 구성은 처음 본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자신의 단편소설이 아니라 차라리 켄 로치가 살아온 흔적-들을 다룬 약사略史' 정도는 다루어야 하는 것 아닐까 ?
덧대기 2 ㅣ 시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 같은 친구에게 " 죄송스러운 일이다 (148쪽)" 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높임법상 < 죄송스럽다 > 가 주로 상대가 윗사람일 경우에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 미안한 마음뿐이다 " 로 고쳐야 되는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