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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   이 름 은   바 람  :


 

 

 




파동과 우연



 

 

 

 


 

                                                                                                       가난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세간살이는 태양과 바람이다. 우선 < 햇볕 > 은 종합비타민제. 볕만 잘 쬐도 비타민D는 생성되니 태양이야말로 영양가 높은 < ① 비타민제 > 인 것이다. 또한 햇볕은 세로토닌을 생성하기에 < ② 항우울제 > 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환자에게 늘상 하는 소리가 볕 좋은 날에 산책을 자주 하라는 당부다.

그뿐인가, 살균 소독 건조 기능이 있으니 < ③ 식기 건조기 > , < ④ 살균기 > , < ⑤ 빨래 건조기 > 이다. 또한 볕만 잘 들어도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 ⑥ 절약형 보일러 > 요, < ⑦ 형광등 > 기능도 가지고 있다. 좋은 바람도 햇볕 못지 않은 살림 밑천이다.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에 집을 지으면 시원하니 < ⑧ 선풍기>요 , < ⑨ 에어컨 > 일 뿐만 아니라 < ⑩ 냉장실 >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집은 먼지가 없다. 바람이 티끌을 쓸어가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 ⑪ 진공청소기 > 이다. 가진 거라고는 불알 두 쪽과 맨발이 전부인 사람도 풍광(風光 : 말 그대로 바람과 빛) 좋은 집에 살면 웬만한 세간은 모두 갖춘 꼴'이다.  

오래 전, 바람이 잘 통하는 집'에 산 적이 있다. 언덕 위에 지어진, 낡고 볼품없는 이층집이었다. 무엇보다도 마을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집인데다가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과 앞뒤로 뚫려 있는 넓은 문과 창이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과 일치해서 고열로 펄펄 끓는 삼복 더위에도 늦은 봄 날씨와 같았다. 강남 복부인으로 명성을 날리시며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노렸던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재산을 탕진하고 야반도주하다시피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가장 불우했던 순간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내 기억에는 호우시절로 기억되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하나는 " 김치의 맛 " 이었다. 볕 좋은, 바람이 잘 통해서 바람 잘 날 없던 집에서 살았던 기억 중에서도 유독 그때 먹었던 김치의 맛을 잊지 못한다. 그해에는 배추 파동과 양파 파동이 동시에 발생했다( 이 부분은 추정이다). 파동은 파동인데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개의 파동이었다. 하나는 흉년으로 인해 배추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금배추 파동이 발생했다면 다른 하나는 양파 수확량이 풍년이어서 양파 값이 폭락을 한 해였다. 어머니의 선택은 배추 반 양파 반 비율로 김치를 담그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주재료가 배추였지 사실은 양파 김치에 가까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언밸런스한 조합이 기막힌 맛을 선사한 것이다. 달달하면서도 시원했고, 채소의 결이 삭지 않고 살아 있어서 씹을 때마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종종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어머니에게 그때 먹었던 김치에 대해 말하고는 하는데, 그 맛을 기억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만 그때 그 김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내 성화에 못 이겨서 어머니는 한때 김치를 담글 때 양파 비중을 높이곤 했으나 그 맛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담갔던 양파김치는 채소의 비율이 만들어낸 맛이라기보다는 좋은 바람이 지나가면서 익힌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푹푹 찌는 여름을 견딜 때마다, 바람 잘 날 없던 집이 그립다. 세간 없는 살림살이에 선풍기로, 청소기로, 그리고 김치냉장고가 되어 주었던 그 바람의 세기를 잊지 못한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개의 파동이 낳은 우연한 결과. 그 맛. 그리고 그립다, 그 바람 ■








부록 ㅣ 오늘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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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7-10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뱀룡이 형아네요. 정말 당시 폭풍인기였더랬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07-10 21:48   좋아요 0 | URL
뱀룡... ㅋㅋㅋㅋㅋㅋㅋㅋ 뭐, 하시나 궁금하네요..

2017-07-10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0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10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구는 워낙 더운 곳이라서 바람의 세기가 강해질수록 햇볕에 달군 바람이 점점 뜨거워집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7-10 21:47   좋아요 0 | URL
다습하지만 않으면 고온을 견딜 수 있는데, 정말 다습한 기온이 문제죠.
대구 분들 어찌 그 한여름을 나시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더위가 아니던데 말이죠..

( 반면에 강원도는 정말 살만합니다여름에도 그리 더운지 잘 모르겠더군요.. )

yamoo 2017-07-10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풍광이 좋은 집의 장점이 저렇게나 많다니!! 그런 집에 살면 먹는 음식도 맛있고, 병 없이 건강하게 살 것 같습니다. 잠도 잘 자고요...집을 찾을 때 풍광적 요소를 1순위로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7-10 21:45   좋아요 0 | URL
어머니 추억으로는 정말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시절이라는데, 저에게는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바닥이 맨들맨들했다는 것... 바람이 빗자루 기능을 해서 다 쓸어가니 늘 깨끗했습니다. 그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2017-07-12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3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