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관과 위민관
다음은 한겨레 임석규 논설위원의 글 전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12월, 청와대에 3개 동의 비서실 건물이 새로 들어섰고 ‘여민관’(與民館)으로 명명됐다. 여민, 국민과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한다는 뜻이다. <맹자> ‘양혜왕장구 하편’에 나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유래했다. 왕이 자기만 즐기면 백성들이 반발하지만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면 백성들도 함께 기뻐할 것이란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9월, 여민관을 위민관(爲民館)으로 바꿨다. 위민,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다. 세종의 위민정치를 본받겠다는 명분이었는데, 실은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의 일환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위민관을 여민관으로 되돌렸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위민은 국민이 객체가 되는 개념이고 여민은 국민과 함께한다는 뜻”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여민은 국민을 주체로 바라보는데 위민은 국민을 대상으로 본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부를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부른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정부이니 ‘더불어 정부’란 이름이 제법 어울린다. ‘더불어’는 아무래도 ‘위민’보다 ‘여민’에 더 가까운 단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위민관보다 여민관이 나을 수도 있겠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자가 만든 이름을 바꾸고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운다. 위민관은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었다. 후임자는 그것을 또 바꾸고 흔적을 없앤다. 여민관이란 ‘본명’을 되찾는 일이 행여 이런 악순환의 연장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여민이나 위민이나 뜻은 다 훌륭하다.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해도 좋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는 것도 나무랄 게 없다. 그런데 위민을 내세우고 친서민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백성들보다 토건업자들 배를 더 불렸다. 문패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속에 담긴 뜻을 제대로 구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나는 여민이나 위민이나 뜻은 다 훌륭하다는 임석규의 말에는 일단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의하지 못한다. 철학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 여당 與黨 > 의 사전적 의미는 정부 정책을 지지하여 서로 짝이 되는 무리'라는 뜻이다. 동반자요, 수평적 관계이다. < 여민 與民 > 도 마찬가지다, 당의 자리에 민을 대입했으니까. 하지만 < 위민 爲民 > 은 다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 백성을 위한다 " 는 뜻인데 가만 보면 " 누가 " 라는 주어가 빠져 있다. 도대체 누가 백성을 위한다는 것일까 ? 지금은 왕정이 아닌 공화정 시대이니 임금이 백성을 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애티튜드는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