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신, 괴물 - 타자성 개념에 대한 도전적 고찰
리처드 커니 지음, 이지영 옮김 / 개마고원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                             

 

우 리 가    남 이 가   :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


 

 

                                                                                                       하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오로지 철천지원수 생각뿐이다. 한겨울, 허파가 터질 것 같이 뛰어도 철천지원수를 생각하면 힘이 나서 다시 달리고,

천근만근 무거웠던 다리도 구름처럼 가벼워라. 증오는 힘의 원천이다. 달려라 하니는 힘이 들 때마다 나애리 이 나쁜 계집애 _ 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운다. 하니의 < 나애리 나쁜 계집애 > 는 < 아브라카다브라 > 와 같은 말이다. 적이 선명할수록 목표는 명확하니까. 철천지원수 중에서도 철천지원수는 내 부모를 죽인 원수'이다. 시베리아 칼바람이 부는 설원, 누군가가 쓰러져 죽어가고 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얼어죽을 동태처럼 죽어가는 자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철천지원수'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십중팔구, 철천지원수의 곤경을 외면할 테지만 에스키모인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오로지 철천지원수 생각뿐이어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기를 학수고대했던 그는 예상과는 달리 철천지원수를 집으로 데려가 극진히 보살핀다. 극진한 보살핌으로 원기를 회복한 악당은 나흘 안에 그 집을 떠나야 한다. 나흘이 지나면 집주인의 절대적 환대는 곧 적대로 변한다는 사실을 악당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에스키모인의 관습법(사회적 합의)이다. 에스키모인은 죽어가는 자가 그 아무리 철천지원수라 해도 그를 집으로 데려가 극진히 보살필 의무가 있고, 이 복무 기한은 나흘이다. 나흘이 지나면 집주인은 환대에서 적대로 변할 권리를 갖는다. 

" 알래스카 " 라는 극한 환경에서 사는 에스키모인을 다룬 모 다큐멘터리의 내용 중 일부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에스키모인의 애티튜드는 환대인 듯 적대 아닌 환대일까, 적대인 듯 환대 아닌 적대일까, 아니면 환대인 듯 환대 아닌 환대일까 ?  눈 위에 쓰러져 죽어가는 자가 누구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살피는 절대적 환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궁금하다면 리처드 커니가 쓴 << 이방인, 신, 괴물 >> 을 읽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적대(hostility)와 환대(hospitality)는 그 라틴어 어원이 동일하다고 한다.

커니는 데리다가 쓴 << 환대에 대하여 >> 라는 책의 일부를 인용한다.

 



 

                        나는 나의 집을 개방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이방인에게(성씨와 이방인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은)뿐만 아니라 절대적 타자, 알려지지 않은 자이며 이름 없는 자에게도 그래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가 도착할 장소, 발을 들여놓을 장소를 주어야 한다. 이름을 말하라고 요구하지도, 계약 맺을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그에게 제공한 장소를 그가 차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방인, 신, 괴물 124쪽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서 계속 떠돌았던 관용어는 " 우리가 남이가 ? " 라는 말이었다. 이 말속에는 < 나 > 와 < 남 > 을 < 우리 > 라는 동일성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환대에 가까운 포섭처럼 보이지만, 속뜻을 살펴보면 < 우리 > 에서 벗어나면 < 남 > 이 될 수 있다는 적대적 경고를 담고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_ 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코끼리만 생각하게 되듯이 우리가 남이가 _ 라는 혈맹은 역설적으로 남이 되는 순간 응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초래한다. 수많은 조폭 영화에서 등에 칼을 꽂는 이는 한때 우리가 남이냐며 서로의 혈맹을 맹세했던 동지(동료)였으니 말이다.


우리가 남이가 _ 라는 말은 경상도 남성의 화술이라는 점에서 주류의 담화이며 적대를 숨긴 환대를 내포하고 있다. 대선 티븨 토론회에서 유승민이 문재인에게 북한은 주적이냐 아니냐 _ 고 묻는 것과 홍준표가 동성애는 합법이냐 아니냐 _ 고 묻는 것은 당신은 < 우리 > 인가 < 남 > 인가를 묻는 방식이다. YES 라고 말하면 적대적인 적(hostis)이 되고 NO 라고 말하면 선한 주인(hostis)가 된다. 사실, 이 질문 - 들은 모두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적대적인 적과 선한 주인은 동일어이니 물으나 마나한 질문이요, 대답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동일한 대답을 놓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한다. 좋은 사회는 우리가 남이가 _ 라고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사회다.

그래, 시발놈아 ! 우리가 남이지 님이냐, 니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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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4-28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좋아요 30번 누르면 결국 좋아요 0번이 되는 걸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4-28 12:29   좋아요 0 | URL
쇼 님, 그만 좀 괴롭히십시오. 실망입니다. 제가 누누이 29번 만 누르라고 그렇게 당부했거늘..

syo 2017-04-28 12:40   좋아요 0 | URL
아니, 말을 왜 그렇게 버릇없이 합니까. 그만 좀 괴롭히라니.

곰곰생각하는발 2017-04-28 12:52   좋아요 0 | URL
허어, 돼지발정제 논란이나 해명하세요..

2017-04-28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8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17-04-28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마지막 문구 참 좋습니다 ㅎㅎ 우리는 남입니다. 자꾸 우리 안에 넣으려는 거 보니 우리를 개, 돼지 취급하는 게 맞는 듯 하네요. 사람들은 것두 모르고 자꾸 우리 안에 들어가려고 하고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04-28 14:05   좋아요 0 | URL
저는 사회 생활하면서 우리가 남이가 - 서사‘를 자주 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못 봤습니다..
우리는 남이죠.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자꾸 남이가 남이가 하면 화가 납니다..

마립간 2017-04-28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집단 편향(ingroup bias)는 보수의 철학이기도 하고 진보의 철학이기도 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04-28 14:39   좋아요 0 | URL
네에... 보수 철학이기도 하고 진보 철학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내집단 편향은 정치적 속성이기도 하죠..
정치는 사실 편가르기 게임 아니겠습니까... 편 가른다는 것을 반드시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