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하 지 않 아 도 알 아 요 :
작은 고추가 맵다
장례식장, 자식을 잃은 여자가 대성통곡하고 있다. 흘러라 눈물이여, 애끊는 단장(斷腸)이여 ! 주변을 서성거리던 형사는 이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다. 며칠 후, 형사는 여자를 사건 용의자로 긴급 소환한다. 내용은 존속 살해 혐의이다.
미리, 결과를 누설하자면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형사가 여자를 의심한 데에는 언표(자막)와 표정(화면)의 불일치, 그러니까 言과 行의 불일치에 주목한 것이다. 여자는 슬퍼서 울고 있으나 얼굴은 무표정한 모습을 보이니 형사 입장에서 보면 연극성 장애 환자처럼 보일 수밖에.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조용필 식 미사리 카페 서정의 반전 버전인 셈이다. 아아, 울고 있지만 어어, 감정이 없네 ?! 자식을 잃은 여자에게 너무 야박한 의심이 아니냐며 형사를 힐난하는 이도 있겠으나, 어쩌랴 ! 그것이 직업 윤리이거늘. 형사는 용의자가 진술하는 말짓 언어보다는 몸짓 언어'에 주목한다.
이 무표정은 여자의 잦은 성형 수술과 잦은 성형 시술에서 비롯된 얼굴 마비 증상으로 밝혀졌다. 표정이란 얼굴에 집중적으로 분포된 23가지 얼굴 근육이 만들어내는 총합인데 얼굴 근육이 마비가 되다 보니 슬퍼도 슬픈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통곡이라는 뜨거운 말짓 언어와 무감이라는 차가운 몸짓 언어가 서로 충돌하게 된 것이다. 형사에게 있어서 용의자의 진술이란 진실을 감추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진실은 언어가 아니라 비언어적 의사 소통인 몸짓말1) : 몸짓, 손짓, 표정, 시선, 태도(자세) 속에 숨겨져 있다. 당신의 거짓말(속마음)은 몸짓말에서 폭로되는 법이다.
그런데 말짓 언어보다 몸짓 언어'에서 메시지를 발견하는 방식은 비단 형사들만이 구사하는 고급 스킬이 아니다. 일반인들도 알게 모르게 말짓 언어보다는 몸짓 언어로 메시지를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 실제로 의사소통에서 언어적(verbal) 요소가 차지하는 것은 30%이고, 나머지 70%는 비언어적 요소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서구 사회에서 대선 후보 토론회를 개최할 때 " 스탠딩 방식2) " 을 선호하는 까닭은 앉아서 토론을 하게 될 경우 신체 일부가 테이블에 가려서 신체 언어(몸짓 언어)의 절반을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sbs 대선 후보 초청 1차 티븨 토론회'에서 내가 주목한 사람은 안철수'였다.
사실, 나는 후보들끼리 오고가는 말풍성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이미 대선 후보를 결정한 마당이니 토론의 품격 따위를 따지는 것은 파나 마나한 파나마 모자를 파는 모자 장수의 잇속과 같은 것이었다. 대선 토론회에서 중요한 것은 " 사운드 " 가 아니라 " (리)액션 " 이다. 지금 내가 감상하고 있는 영화는 안철수가 주연을 맡은 액션 영화'다. 그는 토론 내내 초조한 마음과 불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얼굴은 굳어서 상기되었다. 그것을 의식한 탓일까 ? 그는 억지로 입꼬리를 힘겹게 들어올려 여유있는 표정을 연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자기 능력을 벗어난 바벨을 들어 올린 역사(力士)처럼 들어올린 입꼬리는 오래 버티지를 못했다.
여유 있는 표정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근육 하나만 사용한다고 만들어지는 표정이 아니다. < 표정 > 이라는 것은 다양한 얼굴 근육이 수열과 배열 그리고 그것들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총합의 예술'인데, 안철수는 입꼬리를 위로 올리는 근육만 사용하니 이상한 표정이 만들어질 수밖에. 아아, 웃고 있어도 초조한 얼굴 ! 무엇보다도 그가 초조와 불안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확신한 데에는 틱 장애 현상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던 손가락에 있었다. 그는 시종일관 (엄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불안하다는 증거'다. 형사였다면 그 신호를 중요한 범죄 신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의외의 결과'다. 문재인은 끝장 토론에 나서라며 토론에 근거 없는 자신감을 피력했던 안철수는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끝장난 것처럼 보인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박근혜 탄핵으로 시작된 대선 정국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사실이다. 박근혜를 끌어내렸던 것은 십육 세 아이들이었고, 안철수를 끌어내린 것은 오륙 세 아이들3)이었으니 말이다. 안철수의 유치원 발언으로 쓰리디 쓰린 맘이 등을 돌린 것처럼 보인다.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가 아닌 투표권이 없는 미성년자에 의해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거인 골리앗을 이긴 것은 꼬마 다윗이라는 진실을 다시 한번 각인하게 된다. 작은 고추가 맵다 ■
1) 몸짓말 : 언어에 의하지 않고 몸짓이나 손짓, 표정 등 신체의 동장으로 의사나 감정 따위
2) 스탠딩 토론 : 박근혜 식 언어를 빌리자면 서면 보고'이다.
3) 유치원 발언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