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울어야 내가 웃는다
촛불집회가 어느새 15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내가 참가한 집회 횟수를 계산하니 총 10회였다.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애국청년과는 거리가 먼 내가 주말마다 광장으로 향하는 까닭은 못된 상상력 때문이었다. 탄핵이 기각되어 박근혜가 개선장군처럼 청와대에 입성하여 대국민 담화를 하는 꼴을 상상해 보라(연단 뒤편에는 최순실이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다). 그 특유의 말투로 연설문을 국어책처럼 읽어내는 장면을.
" 존경하는, 애국 보수 나라 사랑 국민 여러분 ! 국민 여러분의 염원에 힘입어 이렇게 다시 돌아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동안 좌파 빨갱이 악질 앞잡이 불한당 세력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굳건히 마음을 다잡은 이유는 이 나라를 종북 세력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두고 굿을 했네, 마약을 했네, 성형 시술을 했네, 온갖 트집을 잡으며 저를 엮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저는 오로지 국민 여러분만 보고 앞으로 나가야 겠다 _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황교안, 김진태, 윤상현 의원의 투철한 애국심과 충성심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오늘 저는....... 주먹 불끈 쥐며 다짐, 다짐,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종북 좌파 악질 앞잡이 불한당 개새끼들, 두고 보자고요. 목소리가 멋진 ** 씨 ! 이제부터 종북 좌파 새끼들, 불알 다 따버리세요. 씨를 말려야 하니깐. 작살을 내야 이 나라가 안전합니다. 호홍호홍 ~ "
이때, 박근혜 뒷편에 있던 최순실의 육성이 터진다. " 클~ 났네. 이 나라 종북 분리 안 시키면 이 나라, 다 죽어 ! " 아아. 그 상상을 하니 캡사이신 공격을 받은 항문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알싸한 통증이 몰려오는 거라. 그 생각을 하면 똥구멍이 아파오면서 불알한 것이다. 오타다, 불안한 것이다. 그 불알한 판타지'가 쌓여서 주말마다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한다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군중의 밀집도를 계산하니 어림잡아 40만 명이 모였던 14차 때'보다 2배 정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 80만 명 정도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주최 측 추산 80만 명이 집회에 모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과학적 계측 못지 않게 정확한 것이 바로 체화된 경험칙'이다. 사실, 내가 집회에 가급적이면 참여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은 결정적 계기는 3차 집회 때 만난 중학생 소년 때문이었다. 우연히 두 소년이 속닥이는 대화를 엿들으니 서울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서울 말씨에 가깝긴 했으나 대화 도중에 툭 튀어나온 억양을 보니 사투리인 모양인데 가름할 수 없어서 그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 어디서 오셨어요 ? " 내가 툭 던진 질문에 그들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깜짝 놀랐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왔다고. 중학생 두 명이 사비를 털어서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다고. 이럴 때를 두고 " 엮였다 " 고 하는 것이다. 저 멀리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학생도 있는데 지척이 광화문인 곳에 사는 서울 시민 어른인 내가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웃는 얼굴을 침 뱉으랴 _ 라는 속담도 있지만, 나는 박근혜가 해맑게 웃는 얼굴을 상상하면 침을 뱉고 싶다. 당신이 울어야 내가 웃는다. 미안하돠. 끝으로 노래 한 곡 띄웁니다. 당신도 울고 있네요. 여러분.... 안녕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