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독서의 공통점
만국 공용어’라는 영어가 가진 힘은 막강하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이미 태생부터 커다란 기회의 불평등이 있다. 지식은 주류 언어를 중심으로 수집·배치되고 있으며, 비주류에 가까울수록 주류의 언어를 익히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영어 사용자 중에서도 억양에 따라 그의 정체성을 세부적으로 나눌 수 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식별 수단이며 권력이다.
-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중
버나드 쇼의 희곡 << 피그말리온 >> 을 뮤지컬 영화로 만든 << 마이 페어 레이디 >> 에서 오드리 햅번은 저잣거리에서 꽃 파는 시골뜨기 처녀로 나온다. 오드리 햅번의 뒷골목 쌈마이 언어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긴 하지만, 지상의 피조물이라기보다는 천상의 피조물에 가까운 " 우아~한 여자 " 오드리 햅번이 앵앵거리는 목소리로 시바, 조낸, 아따, 시부럴, 오메, 환장, 조또 따위의 저잣거리 입말을 쏟아낸다고 해서 " 아우 ~ 천한 여자 " 라는 말을 내뱉기는 쉽지가 않다는 단점은 있다(소설에서 주인공 두리틀 일라이자는 태어나서 한번도 목욕을 한 적이 없는 여자로 나온다).
그녀는 거리에서 저짓거리 입말을 받아 적는 음성학자 히긴스 교수를 만나는데, 그는 " 영어 사용자 중에서도 억양에 따라 그의 정체성을 세부적으로 " 연구하는 학자'이다. 오드리 햅번은 나중에 그를 찾아가 상류층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언어 성형에 대한 이야기이니 렛미인의 성대 개조 프로그램인 셈이다. 오드리 햅번은 과연 < 아우 ! 천한 여자 > 에서 < 우아 ! 귀한 여자 > 로 변신할 수 있을까 ? 뭐, 다들 아시겠지만 상류층 언어를 습득한 오드리 햅번은 눈부시도록 고귀한 여성이 된다. " 고상한 언어가 주는 힘 " 이다. 이처럼 언어란 계급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나랏 말쌈이 듕국과 사맛디 아니 하듯이 이건희와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도 서로 사맛디 아니 하니 이런 젠장 ! 비주류 언어는 주류 언어를 동경하고 배우려고 하지만 주류 언어는 비주류 언어를 무시하고 천대하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글을 전혀 모르는 문맹인이 문명 사회에서 받아야 하는 차별과 억압은 오죽하랴.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 책 읽어주는 남자 >> 라는 소설에서 한나 슈미츠라는 여성은 언어의 이러한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여자다. 그녀는 글을 모른다. 문명 사회에서 문맹자가 겪어야 할 수치와 폭력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그 사실을 숨기려 한다. 소설은 그 지점에서 작동된다.
소설이란 진실을 비밀의 영역으로 묶어둘 때 신나게 까불 수 있으니까. 소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5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 이제 갓 15살이 된 소년 마이클 버그는 우연히 30대 여성인 한나 슈미츠를 만나 주기적으로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된다. 소년은 책을 펼치고 여자는 옷을 벗는다. 그녀에게 섹스와 독서는 동일한 쾌락인 셈이다. 섹스와 독서의 공통점은 속을 들여다보는 행위'이니 그녀가 제안한 방식은 동일 가치의 물물 교환인 셈이다. 15살 소년과 36살 성인 여성의 섹스가 자극적 설정 같지만 깊이 있게 들어가면 관계를 나누는 < 사이 > 가 아닌 관계를 맺는 < 사랑 > 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객체가 아닌 결속체로써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난다. 소설의 결말은 남성 작가답게 남성 판타지가 스며들어 있지만 거슬리지는 않는다. 문맹자가 문명 사회에서 겪어야 할 두려움은 루스 랜들의 무시무시한 걸작 << 활자 잔혹극 >> 에서도 다룬다. << 책 읽어주는 남자 >> 에서 한나는 비밀이 폭로될까 봐 일터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리 도망을 쳤다면, << 활자 잔혹극 >> 에서 입주 가정부인 유니스는 집주인인 커버데일 가족이 그녀의 비밀을 알아차리자 가족을 몰살하는 것으로 비밀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이 훌륭한 잔혹극을 읽다 보면 작가 루스 랜들이 버나드 쇼의 << 피그말리온 >> 이란 희곡을 참고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탐서가인 히긴스 교수와 커버데일은 겉으로는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은근히 하층민 여성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또한 일라이자(피그말리온)와 유니스는 하층민 여성으로 비주류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도 같다. 사실 문맹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무지'다. 문명자 입장에서는 문맹자가 겪는 일이 사소한 해프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인 그들에게는 죽을 만큼의 수치심인 것이다. 눈은 떴으나 앞은 캄캄한 상황이 문맹자의 마음 속이다. << 피그말리온 >> , << 책 읽어주는 남자 >> , << 활자 잔혹극 >> 은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다. 각각 << 피그말리온 >> 은 조지 쿠커 감독에 의해 << 마이 페어 레이디, 1964 >> 로, << 책 읽어주는 남자 >> 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에 의해 << 더 리더, 2008 >> 로, << 활자 잔혹극 >> 은 클로드 샤브롤 감독에 의해 << 의식, 1995 >> 으로 만들어졌다.
만듦새도 모두 훌륭해서 원작 소설과 함께 영화를 함께 보며 비교하는 재미가 매우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