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잘 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
돌연사로 쥐도 새도
모르게 단박에 가는 법
어느 때부터인가 늦은 저녁이면 남자들이 현관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술집이나 거리에서조차 흡연이 법으로 금지되다 보니 가족이 있는 집안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게 눈치가 보이는 탓이다.
그들은 붉은 빛을 태우며 슬리퍼를 끌고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빛 공해가 없는 도시였다면 반딧불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 또한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 그러다 보니 생활 패턴이 비슷한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지 자주 마주치게 된다. s를 만난 것도 우리 둘이 흡연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활 패턴이 비슷하다는 데도 큰 몫을 차지했다. 우리는 그렇게 담배를 피우는 시간 동안 담소를 즐겼다. 한 달 전, 그녀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집을 나가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걱정은 이제 그만_ 이라며 그녀를 위로하고는 했다.
돌아오겠지, 돌아오겠지, 때가 되면 돌아오겠지_ 라는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고 고양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살고 싶은 마음이 없네요. " 그녀는 툭,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어제 그녀가 내게 말했다. " 돌연사로 가는 방법 아시나요 ? " 그녀의 입에서 돌연사란 말이 나오자 내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다. 올 것이 왔구나. " 돌연사요 ? "나 는 잠시 뜸이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 s 님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군요. 그렇게 의지가 박약해서 어찌 이 힘든 삶을 버티시려 하십니까. 힘들다고 돌연사로 단박에 가는 계획을 짜는 것은 어리석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 그녀는 토끼 눈이 되어서 말했다. " 어머 ! 절 모르시는군요, 절 모르시면 모르신다고 말씀하세요. 괜히 절, 아주 잘아는 척하지 마시고요. 지금 곰곰생각하는발 님은 저에게 맨스플레인을 시전 중이십니다. 절 모르시면 모르신다고 떳떳하게 말씀하세요.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 아니에요. "
시비조였다. 부아가 치민 나는 되받아쳤다. " 제가 절 왜 모릅니까. 저는 누구보다도 절 잘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돌연사도 잘 알고 있어요. 알지만 그걸 알려줄 순 없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돌연사로 쥐도 새도 모르게 단박에 가는 길을 알려준다면 그 사람은 악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러자 그녀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마침 같이 담배를 피우며 알게 된 j 씨가 등장했다. s는 j에게 물었다. " 돌연사로 가는 길 아시나요 ? " j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 요 위에 다정 수퍼 있죠 ? 그 윗길로 걷다 보면 왼쪽으로 쪽길 하나 나옵니다. 그곳에 동현사라는 절이 있지요. 그 절 말씀하시는 거죠 ? "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째려봤다.
- 손바닥 소설
덧대기
이기호의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 는 장편 소설 모음집(掌篇, 여기서 장은 손바닥 장'이다. 매우 짧은 분량의 소설을 장편 소설이라고도 부른다) 읽다가 이런 소설이라면 나라도 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썼다. 이 글 쓰는 데 딱 10분 걸렸다. 유머집이라고 하면 될 것을 순문학으로 등단한 등단 작가의 자존심 때문인가 ? 굳이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 옛날 스티븐 킹 형님이 편집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분량이 짧아서 서랍 속에 쳐박아둔 소설이 몇 개 있다며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 같다고 지나가는 말을 내뱉은 적이 있는데, 킹이 말했던 짧은 분량의 소설 네 편을 묶은 소설집이 나중에 출간되었다. 바로 << 사계 >> 이다. 영화 < 쇼생크 탈출 > 로 알려진 리타헤이워드와 쇼생크도 이 소설집에 묶였다. 대부분 200페이지를 넘겼다. 개인적으로 내가 뽑은 킹의 킹은 << 사계 >>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