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부일체에서 빠진 것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페미니즘 논란에 대해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모습을 보며 이마에 한자 川 를 새기는 모양인데, 나는 이 분열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갈등은 충분히 건설적이다. 계속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가는 혁명은 왕의 목을 칠 때 시작되며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그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 정권일수록 폭력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유포한다. 저항하는 세력은 곧 폭도'다. 바리케이트 너머 돌팔매하는 운동권에 대한 군부의 미러링은 곤봉으로 머리를 가격하거나 고문을 하는 방식이다. 어느 것이 더 위험한 폭력일까 ? 어쩌면 한국 사회가 메갈리아를 비판하면서 내세우는 " 극악한 폭력성 " 운운은 그동안 폭력으로 여성을 억압한 가부장의 엄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랫동안 군사부君師父의 서열을 너무나 당연시한 나머지 이 서열에 여성이나 아이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했다. 만약에 배가 침몰하여 작은 보트로 옮겨야 한다면, 그래서 선별적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누가 되어야 할까 ? 군사부 체제는 명확하다. 임금 다음에 스승이며 그 다음은 아비'다. 결국 침몰하는 타이타닉에 남는 사람은 여자와 아이이다. 남성 본위 사회가 만들어 낸 폭력성이다. 서양식 애티튜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여성에게 가해진 잔혹사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 미러링을 남성은 견디지 못한다. 나는 여혐론자 아니거등요, 나는 잠재적 가해자 아니거등요, 나는 페미니즘은 존중하지만 메갈리아는 싫거등요. 이러한 혀 짧은 말투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모두에서 쏟아내는 목소리'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를 지지하던 진보 논객마저 < 아니거등요 - 쓰리 콤보 > 를 남발하는 것을 보면 내로남불적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독한 에고를 목격하게 된다. 그는 주류가 사회적 약자를 비난하면 사회적 약자 편에 서지만, 막상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남근을 비아냥거리면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진보의 꼬라지'다, 모두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택한 진보적 애티튜드일 뿐이다.
진보 논객으로 이름을 날렸던 박●●과 한●●을 보면 답이 보인다. 이제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젊은 여성을 바라보지 말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한마디하는 것만큼 꼴불견도 없다. 서로 남남일 뿐이고 남남으로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태도'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직장일수록 분위기가 족 같은 경우는 수없이 목격했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왜 한국인은 타인을 유사 가족 관계로 끌어들인 후 골프 치면서 여성 캐디에게 딸 같다며 젖꼭지를 만지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토록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을 화를 내는 것일까 ?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은 가해자라는 말이 아니라 가해자일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에 대한 각성이지 않은가 ?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독일인들은 왜 지금까지도 홀로코스트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일까 ? 거의 대부분이 홀로코스트 이후에 태어난 그들이 말이다. 꼴도 보기 싫은 페미니즘을 멸종시키는 방법은 단 하나'다. 성차의 완전한 평등뿐이다. 그렇게 된다면 페미니즘은 사라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