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 영화 비평선 시네마 4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박창학 옮김 / 이모션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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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비를 섭외하게나 :
 


 

 

 

 

 


 

왜 슈퍼맨은 항상 새옷일까 ?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4,50년대 헐리우드 영화'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작가와 고다르는 스튜디오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맨살의 영화를 생산했지만, 나는 스튜디오 시스템 아래 만들어진 엄격함을 좋아한다.

카메라 동선은 검약을 미덕으로 하고, 빛은 정확한 계산 아래 다양한 각도로 투사되며 조율된다. 현대인은 현대 영화에 비해 4,50년대 영화가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정반대'이다. 4,50년대 만들어진 미국 고전 영화는 공룡과 아바타를 컴퓨터로 그려내는 영화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카메라는 동선의 우아함 따위는 개나 준 지 오래이다.  무조건 스피드로 승부를 보려고 한다. 제구력 형편없는 투수가 무조건 스피드로 승부를 보려는 것처럼 말이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호흡이 너무 짧다. 현대 영화는 마치 ADHD 환자 같다.

처음에는 지독한 만연체 때문에 학을 떼다가 점점 빨려들 게 되는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도 같은 말을 한다. 그는 현대 영화 감독이 " 눈을 찍는 방법 " 을 모른다고 지적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어서 무릎 탁, 치고 아, 하게 된다. 아, 하고 나서 무릎 탁, 치면 어색하니 말이다. 비나 눈이 오는 장면은 로케이션 촬영으로 찍어야 한다는 믿음은 멍청한 생각이다. 설령, 실제로 눈이 내리는 장면을 야외 로케이션으로 찍었다고 해서 최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눈이 내리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눈(雪)이다. 만약에 눈을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그 촬영은 실패한 촬영이다.

눈 하면 생각나는 영화 << 러브레터 >> 는 공교롭게도 눈 내리는 장면을 형편없이 찍은 영화에 속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눈은 많이 내릴 뿐, 세세한 눈의 묘사에는 실패한다. 그저 무더기로 내릴 뿐이다. 비빔밥의 생명은 낱낱이 독립적인 밥알이듯이 눈 내리는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뭉쳐진, 떡진, 무더기로 내리는 눈이 아니라 눈송이 하나하나가 생생한 눈이다. 그런 점에서 << 러브레터 >> 의 설경은 실패한 촬영이다. 눈도 제각각 다른 결정체를 가지고 있듯이 성격도 가지가지'다. 훌륭한 감독은 영화 줄거리에 맞는 캐릭터(雪)를 원한다. " 어이, 조감독 ! 이 장면에 필요한 눈은 말이야.

부드럽지만 강단이 있고, 약간 성격이 급한 녀석으로 섭외를 하시게. 지나치게 얼굴이 허연 놈은 사절이야. 약간 잿빛이 도는 놈으로 섭외하라고. 탄광 출신으로 구하라고. 데려올 때 녹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 그렇다, 눈도 제각각 성격이 있는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전언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특기부라는 부서가 있어서 비나 눈을 찍게 되면 이 사람들이 달려와서 그 작품에 어울리는 비나 눈을 내리게 했다고 한다. 스튜디오 시스템이기에 가능했다. 스튜디오 시스템을 정작한 영화사가 1년에 만들어내는 작품이 많기에 철저한 분업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비나 눈만 만들어내는 기술자가 존재했던 것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한다는데 비와 눈을 만든 지 어언 40년이면 도통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돌아가던 고전 영화에서 눈이나 비가 내리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광장히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무더기가 아니라 송이 송이 눈꽃송이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재현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이러한 기술자들도 모두 사라졌다. 장인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눈이 오면 실제 눈이 내리는 장면으로 만족한다. 그런 눈은 아름답지 않다. << 러브 레터 >> 에 등장하는 설경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죽이 된 비빔밥을 보며 맛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리처드 브룩스 감독이 연출하고 콘래드 홀 촬영감독이 촬영한 << 인 콜드 블러드, 1967 >> 는 지금까지 내가 본 < 비 > 가운데 가장 입체적이고 선명한 비'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가 비오는 창밖을 보며 지난 일을 후회하는 장면에서 보여지는 비는 탁월한 연기자'였다. 이 장면에서 비는 개성이 있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도 않는다. 빨리 떨어지는 빗방울이 있으면 유리에 붙어서 느리게 떨어지는 비도 있고, 액션에 반응하여 사선으로 튀는 리액션도 보여준다. 그뿐이 아니다. 사형수의 얼굴에 반사된 비는 필름이 열기에 녹는 것 같은 느낌도 전해준다. 이토록 입체적인 비를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사형수의 얼굴에 반사된 비는 이제 곧 죽어야 하는 사형수의 마음을 형상화한다. 기가 막힌 장면이다. 또 한 가지 불만은 실내 장면이다. 모든 가전과 가구가 새것으로 번쩍거리는 모델하우스를 보는 듯하다.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실내 공간은 실패한 공간이다. 훌륭한 미술 감독이 실내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신경을 쓰는 곳은 손잡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손때가 많이 묻은 곳이 손잡이니 손잡이를 보면 그 집의 세월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스튜디오에 소속되었던 기술 팀이라면 손잡이에 세월을 창조했을 것이다. 나는 종종 미국 슈퍼영웅들의 슈트가 지나치게 깨끗하다는 점에서 절망하게 된다.

언제나 새옷이다. 김치 국물 자국도 있고, 케첩 묻은 흔적도 있고, 다른 단추와는 달리 색깔이 다른 실로 꿰맨 단추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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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트 사기 전에 시공사에서 미리 꾸민 공간을 전시하는 것을 뭐라 하더라.. 생각이 안 나네..

2016-08-27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7:32   좋아요 0 | URL
아하.. ㅎㅎㅎ. 그렇군요. 올 여름 폭서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라고 문안 인사 올렸습니다. ㅎㅎ 제가 검토를 안 하고 일단 글을 올리고 보는 스타일이어서.... 얼른 고쳐야게 ㅆ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7:4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네요..
저도 하루아침에 바뀐 날씨 보고 뭔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이래도 되는 거니 ? 응 ??! 참.. 절기라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젠 감기 조심해야 할 계절이 온 건가요 ? ㅎㅎ 반가운 계절이네요.
어젠 정말 걷는 기분이 좋더군요. 일부러 많이 걸었습니ㅏ다.

지금행복하자 2016-08-2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경을 가장 자연스럽게 그리려면 여러 장치가 있어야한다고 했던 지인이 생각나네요~ 그림 그리시는 분인데.. 맨눈에 자연스럽게 보인다고 그대로 그리면 절대 자연스럽지 않는 거라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7:20   좋아요 0 | URL
바람이 예술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르코프스키의 << 거울 >> 이라는 작품인데 여기서는 촬영 중에 우연히 돌개바람이 불어옵니다. 촬영 계획에 전혀 없던 바람이라네요.. ㅎㅎ

눈 오는 장면을 로케로 찍으면 떡진 장면이 됩니다. 그래서 눈 오는 장면은 오히려 장치를 사용할 수 있고 통제가 가능한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게 더 선명하고 좋죠.. 로케가 자연 풍경의 최고다, 라는 건 잘못된 것이라 생각됩니다..ㅎㅎ 영화 보면 좋은 바람을 연출하는 감독도 별로 없어요. 왜 바람은 한쪽으로만 일방적으로 흐르지는 않잖아요. 영화 보면 선풍기 바람 틀어놓고 바람이라고 우기면 할 말이 없습니다..

yamoo 2016-08-2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영화는 시간이 거꾸로 가는 거 같습니다. 저도 클래식한 영화들이 요즘 영화보다 훨씬 좋더군요~
인 콜드 블러드는 못본 영화인데, 꼭 찾아 보고 싶네요.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은 본 영화인지 가물가물합니다..

어쨌거나, 곰발 님의 영화 얘기는 언제나 내공이 느껴집니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7:37   좋아요 0 | URL
제가 소요한 영화서적만 300권이니... 돈으로 따지자면 얼마냐.. 그러니까.. 15000원만 잡아 도
450만 원 투자했네요.. 쓰벌... 그러니까 영화 관련 글은 450만 원을 투자한 결과라고나 할까요. 막 우기고 봅니다.. 후후..

위에도 언급했지만 현대 영화가 바람을 연출할 때 화딱지가 납니다. 바람은 한방ㅇ 향으로만 흐르지는 않지요. 시시때대 방향을 틀잖아요. 변덕 심한 사람처럼... 그런데 영화 속 바람은 항상 일정하죠. 대형 선풍기 틀어놓고.... 짜증나죠..

아, 정말 좋은 바람 연출 있습니다. < 사탄 탱고 > 인데 이 영화가 거의 8시간이 넘는 영화라...

아니면 토리노의말 추천합니다. 바람 연출이 탁월한 예였습니다. 약간 떡지기는 했씁니다만.. 나름 만족스러운 바람 연출..

samadhi(眞我) 2016-08-2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구 안 되는 강속구 투수들 보면 속 터지죠. 차라리 구속이 안 나오면 기대도 안 할 텐데 150을 가볍게 찍으면서 공이 하늘로 가거나 땅바닥에 꽂히면 욕이 터져 나오지요.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그렇군요. 영화에서 날 것으로 살아있는 눈이랑 비를 자세히 치어다보아야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7:38   좋아요 0 | URL
한화였던가요. 지난 번에 볼넷을 13개 남발하는 거 보고..
야, 이게 사회인 야구도 아니고...
맞더라도 볼넷은 주지 말아야 하는데... 일단 볼넷..
이게 무슨 프로양구입니까. 사회인 야구죠. 13 볼넷을 남발하는 프로야구라니..

samadhi(眞我) 2016-08-27 18:24   좋아요 0 | URL
볼넷 정말 싫어요. 차라리 거하게(?) 안타를 맞는게 낫지. 볼넷 주는 투수 되게 무기력해보여요.

stella.K 2016-08-2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군요.
영화 장면 다시 봐도 압권이예요.
어떻게 얼굴에 비가 떨어지는 게 반사될 수 있을까요?

진짜 드라마도 그렇고 모델하우스풍은 정말 인간미가 없어요.
어떻게 여기서 사람이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있는지.
그럴 수 있다고 우기는 연출가들이 있다는 게 짜증나죠.
보는 사람이 좀 공감하며 믿게 해 줘야할 텐데...
그래도 여배우들 화장 곱게하고 잠옷 갈아있고 불 끄고 자는 씬은 없어져서 다행이죠.ㅋ

원더우먼의 옷도 항상 깨끗했어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9:3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왜 항상 웃이 깨끗하나고요.. ㅎㅎ
전부 새옷임.점 누빈 흔적도 있고 해야 좀 인간적인 것 아닙니까 ?

가끔 드라마 보면 거지가 입은 옷에새옷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는 그냥 다른 채널로.. 돌립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