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











귄의 정체








                                                              

                                                                                                   그리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 아토포스 " 라고 불렀다. < a > 가 부정과 결여를 지시하는 접두사이고 < topos > 가 장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토포스는 빗금 친 < 장소 > 이다.

내가 아토포스를 < 빗금 친 장소 > 라고 말하는 데에는 < 비장소성 >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가 끌어들인 개념인 " 비장소성(non-place) "과 겹치기 때문이다. 거기라는 대명사가 특정한 곳을 지시하는 지시 대명사라고 했을 때 " 아토포스로서의 소크라테스 " 를 알기 쉽게 번역하자면 " 거기에 없는 남자 " 라는 의미'이다.  장소가 고정된 로컬리티'라는 고정점(fixed point)을 감안하면 소크라테스는 출생지를 알 수 없는1 남자'이다. 또한,  알리바이'가 alius ( 다른 ) + ibi ( 거기에 ) 를 합친 것으로 " 다른 + 장소에 " 라는 뜻이기에 그는 " 지금 여기에 없는 " 존재로 현장 부재 증명에 실패한 존재'다. 그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기에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다. 그가 집이 아닌 거리(광장)의 철학자인 이유이다. 원더우먼도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아토포스이다.

 

그녀는 출생지가 없다. 그래서 옛날 드라마인 << 원더우먼 >> 주제가는 이렇게 묻는다. " 하늘에서 내려왔나, 원더우먼 ? " 이라거나 " 땅에서 솟아났나, 원더우먼 ? " 크레타 사람은 크레타 섬'이라는 로컬리티의 성격을 닮고,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 지역의 성격을 닮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출생지로 그 사람의 성향을 지레짐작할 수 있는 단서로 활용하곤 했는데 소크라테스와 원더우먼에게는 그러한 향토성이 없다. 아토포스는 시각적 장소(place)가 아니라 비시각적 공간인 間 : 사이 간'과 空 : 빌 공 그리고 無 : 없을 무의 세계이다.

 

서양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고 동양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아토포스는 동양적 시각이다. 아토포스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딱히 설명할 수 없다. 기표는 있으나 기의는 불가능한 세계가 바로 아토포스'다. 롤랑 바르트가 << 사랑의 단상 >> 에서 아토포스를 "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매혹시키는 " 존재라고 말한 이유는 보이지 않기에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대상이기에 그렇다. 하느님이야말로 완벽한 아토포스이다. 그는 비가시적 영역이며 촉각이 배제된 대상이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몸을 만진다는 것은 불경하다. 그는 보이지 않음으로써 절대미를 구현한 존재'이다.

남도 방언 중에 < 귄 > 이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표준 국어 사전에는 없는 단어이다. 흔히 " 잘생긴 얼굴인데 쟤는 귄이 없어 ! " 라고 쓰인다.  < 귄 > 이라는 기표의 기의를 < 귀염성 > 이라고 정의를 내리곤 하지만 귄을 표준의 세계로 확정하는 순간 더욱 불분명해지는 단어다. 귄은 귀염, 매력, 귀태, 예쁨 따위와도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귄은 선명한 기의가 생기는 순간 기의가 불투명해지게 된다.  딱 한 가지로 정의내리는 순간 무너진다.  그런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 귄 있는 얼굴 " 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추남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을 보면 " 생긴 건 저래도 귄 있는 얼굴 " 인 셈이다. 이렇듯 < 귄 > 는 무조건 아름다움을 찬양하지 않으며 무턱대고 추를 업신여기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미학의 민주주의적 상상인 셈이다. 귄은 한 가지로 고정된 기의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니 기표인 < 귄 > 은 존재하지만 기의는 규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를 닮았다. 아토포스의 다른 이름은 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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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토피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탈-아테네적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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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0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귄˝ 이 거 배웠네요..설명이 찰지게 와닿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4 12:33   좋아요 1 | URL
저도 귄이라는 정체에 대해 오지게 한수 배웠습니다..

stella.K 2016-08-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더운 여름에도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시죠?ㅋ

전 전에 곰발님 걸어 놓으신 사진 봤잖아요.
솔직히 잘 생기신 것 같진 않지만 뭔가 의미있게는 생기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는데 오늘 비로소 한 자로 설명이 가능해졌습니다.
귄! 생긴 건 그렇게 생기셨어도...ㅋㅋ 3=33=3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4 13:22   좋아요 0 | URL
귄은 극찬입니다.. 감사.
인간은 못생기더라고 의미 있게 생겨야 합니디ㅏ..


제 글은 거의 100% 저녁에 써 둔 글입니다.
저장해두었다가 아침에 옮기는 형식..

지금행복하자 2016-08-04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귄있는 사람이 되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5 13:09   좋아요 0 | URL
귄은 타고나야 합니다.. 저는 다음 생을 기대해야 겠습니다..

samadhi(眞我) 2016-08-0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긘 있는 얼굴의 대표적인 예가 유해진 같은 얼굴이랄 수 있지요. 우리는(남도 사람들) 주로 긘을 ˝호감 있는˝ ˝자꾸만 눈이 가는˝ 그래서 ˝또 보고 싶은˝ 그런 느낌을 말합니다. 제겐 너무 익숙한 말을 새롭게 학습(?)하시는 분들이 반갑네요.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5 13:11   좋아요 0 | URL
자꾸 보니 정 들더군요. 처음 봤을 때는 좀 심하게 못생겼다 생각했는데

귄.. 이란는 단어가 무척 생경스럽게 독특합니디ㅏ.. 매력적인 단어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