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영화, 세 권의 책  :

 

 

 

데이비드 F. 샌드버그 단편 영화 - 들


 

 

 


 







O.L 

섹스와 공포 / 파스칼 키냐르       ㅣ         궤짝 안에서 무엇인가가 긁는 소리가 난다. 이어서 궤짝문이 열리려고 하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도망친다. 하지만 발길을 멈춘다. 공포의 정체를 보고 싶다는 호기심. 그녀는 궤짝 안을 들여다본다. 깊고 어두운 심연이다. 주인공이 보인 태도는 논리 모순이다. 무서운 대상을 보지 않으려는 마음과 그 대상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궤짝에서 도망치는 행위는 생에 대한 의지인 에로스'다. 반면, 궤짝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죽음에 대한 호기심인 타나토스'다. 프로이트가 인간은 에로스적 욕망과 타나토스적 욕망이 함께 한다고 말한 이유'이다. 사실, 공포는 아름다운 존재다.

플라톤은 공포는 아름다움의 첫 번째 현존이다_ 라고 말했다. 공포는 사랑에 빠졌을 때 보이는 신체 반응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숲길에서 독사를 만났다고 치자. 이때 당신은 사랑에 빠진 연인과 비슷한 신체 반응을 보이기 된다. 대상만 보이고 주변은 화이트 아웃되거나 페이드 아웃된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숨이 가쁘다. 그리고 몸은 경직된다. 지금 당신이 마주보고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독을 품은 뱀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이렇게 음탕한 뱀처럼 서로 뒤섞인다. 영화적 표현을 사용하자면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오버랩된다.



 




F.O 

세미나  /  라캉         ㅣ          최승자 시인은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두려움을 느낀다. 탈출구는 하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빛이 보이는, 열린 문을 향해 다가간다. 다가갈수록 문은 커진다. 조급한 마음에 뛰면 문을 멀리 달아난다. 그럴수록, 여자는 초조하다. 서두르면 멀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여자는 두려움 때문에 서두르게 된다. 뒤에서 검은 손이 그녀의 얼굴을 만지자 여자는 뒤를 돌아보게 된다. 거대한 어둠을 보자 여자는 있는 힘껏 열린 문을 향해 뛴다. 문이 닫힌다. 어두운 공간은 이제 완벽하게 팽창한다. 여기서 문은 라캉이 말하는 소문자 a 이다. 

인간은 대상 a 에 다다르기를 욕망하지만 대상 a에 다가가는 순간 죽는다. 그것이 인간의 불가능한 허무이다. 이 단편 영화에서 주인공 여자를 남자로 치환하면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된다.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지만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뒤돌아보지 말 것 ! 오르페우스는 이 사실을 명심한 채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다. 드디어 지상의 빛이 보인다. 조금 더 걸으면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환희와 안도가 교차하자 오르페우스는 그만 경고를 잊게 된다. 뒤를 돌아보자 아내는 사라진다.

여기서 오르페우스가 본,  끝에 가서야 환해지는 빛은 라캉이 말하는 소문자 a 이다. 대상a에 도착하는 순간 아내는 사라진다. 아니, 영화적 표현을 사용하자면 페이드아웃된다.






3D 

시뮬라시옹 / 장 보드리야르          ㅣ          탁자 위에 사과와 커피를 올린 후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 뷰파인더에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만 카메라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반면, 사람의 눈에 거실은 텅 비어 있지만 뷰파인더에는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가 보인다. 뷰파인더를 따라가면 사람 눈에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뷰파인더 창에는 보인다. 아직은 안전하다. 그 대상은 모니터 안에서만 존재하니까. 방심하고 있는 사이,  환영은 느닷없이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난다.  여기서 뷰파인더에 비친 대상은 환영이다. 실제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환영은 원본 없는 사본'이다. 시뮬라시라(복제)'이다.

소문은 대부분 원본 없는 사본이다. 직접 두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다는 사람은 많다. 원본(실체)이 없기에 소문은 헛것(nothing)이지만 nothing에 뼈와 살을 붙이자 점점 구체적인 형상이 만들어진다. 결국에는 가상(nothing)이 현실 속으로 튀어나와 실재를 위협한다. 소문에 의한 추측과 억측이 한 사람을 죽인다. 조중동은 사실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추측과 억측(nothing)을 사실인 양 보도해서 실재( thing ) 를 찌른다. 영화적 표현을 사용하자면 2D가 3D로 바뀐다고나 할까.





보너스



올해 기대되는 영화 << light out >> ,  2013년에 만든 단편 << light out>> 를 상업 장편영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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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29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섹스와 공포> 판매하는 지 알아봤는데, 품절되었더라고요. 예스24에는 ‘일시품절’로 뜨던데 일단 기다려보고, 안 되면 중고로 사야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9 12:30   좋아요 0 | URL
중고로 비싼 가격에 사도 전혀 아깝지 않은 텍스트입니다. 파스칼 키냐르의 진면목을, 집대성된 에세이인데 오히려 잘 안 알려져서 의아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 거의 한 20년 걸친 작품이라죠..( 뭐, 작가가 게을러서 썼다가 쉬고 썼다 쉬고 해서 그렇지만..)

yureka01 2016-07-2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가운 시인 이름보여서 좋네요..최승자시인..(일전에 쓸쓸하고 먼나먼 이 시집..왜 14쇄인가..했더니만..역시 ...한편 시인이 많이 아프단 소식듣고..얼른 기력 찾았으면 하는 바람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뭐좀 재대로 하겠다 싶은 분들은 왜들 빨리 떠나려 하는지 원 ㄷ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9 13:27   좋아요 1 | URL
14쇄나 찍었나요 ? 꽤 많이 나겠네요. 쓸쓸하고 머나 먼은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보다 필력이 많이 딸린다는 것은 분명하더군요.. 시집 물위에 씌어진을 봐도 그렇고....

최승자 시인을 기억하는 이 많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 명이었으며 스타 시인이었는데
저도 신문기사 보고 알았씁니다.
전어느 대학 교수 하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무척 안타깝더라고요.
최승자 시인이 그렇게 문단 권력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yureka01 2016-07-29 13:53   좋아요 0 | URL
아마 심각한 알콜중독증이 있었던걸로 압니다.
건강이 상당히 않좋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작년에 구입한 시집이 14쇄판이었더군요..
시인의 시집이 그렇게도 팔렸는데 형편이 곤궁했다니...
어쩌면 시인은 자기 영혼을 파서 시로 만드는 자해행위가 아닐까 싶더군요..

(네..그렇게 유명세 탄 시인이라면 문단에서 한몫했을텐데..역시 권력하곤 친하지 않는 성격이었던가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9 13:58   좋아요 1 | URL
그 정도 인지도라면 왜 대부분은 대학에서 자리 하나 차지하기 일쑤인데..
이 분은 모교 강사 자리를 부탁해도 안 되었다 하더라고요..
뭐. 비단 문단에 밉보였다기보다는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습니다만.
30kg도 안나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어찌 지내시나 모르겠네요.

stella.K 2016-07-2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샌드버그의 영화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정말 표현의 귀재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 개인적으론 두번째 영화가 가히 압권이란 생각이 드는네요.

좋은 영화 보여주셔서 감사!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9 15:23   좋아요 0 | URL
하우스 호러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래도 알려진 단편들이죠.
전에 알고 있었는데 이 사람 역시나 할리우드에서 재능을 알아보고
헐리웃 진출했네요..

남편으로나오는 사람이 샌드버그입니다. 인상 좋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9 15:29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단편은 픽쳐드라는 단편인데... 함 보세요...
영화의 본질을 아주 잘 보여주는 샌드버그 단편입니다...

stella.K 2016-07-29 18:07   좋아요 0 | URL
넵. 근데 네이버 검색창에 치면 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