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핫바지로 보이니 ? :
박유천과 나
오늘은 " 더러운 이야기 " 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 나 > 에 대한 이야기'이니 이 글은 내 삶의 스포일러'인 셈이다. 기행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끝난 시점도 알쏭달쏭하다. 아마도 가랑비에 옷이 젖듯 내가 저지른 이상한 행동도 작은 행위들이 쌓여서 만든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곤혹스러웠다. 나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때는 반드시 옷을 벗어야 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바지를 벗고 똥 싸야지, 그럼 바지 입고 똥 싸냐 ? " 이보게 ! 누군가 씨, 끝까지 듣게나.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 바지를 벗고 똥을 싸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홀라당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지를 내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 상의는 물론 양발도 벗어야 했다. 화장실에서 벌거숭이 상태가 되지 않고서는 일을 치룰 수 없었던 것이다. 묻지 마라. 강박 장애'란 딱히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니까. 그냥 내 괄약근이 남들보다 섬세하다고 하자.
진짜 문제는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때 발생한다. 참을 만큼 참았다가 집에 와서 해결하면 좋지만 생리 현상이라는 게...... 휴.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 벗었다. 어느 빌딩 공중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우선 바지를 벗어고, 다음은 라운드 티셔츠를, 시계를, 모자를, 빤스를, 양말을 벗고 나서야 항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1평짜리 공간에서는 한 사내가 벌거숭이가 되어 열공하는 우등생처럼 항문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내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괄약근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우선 참을 만큼 참을 수 있는가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괄약근으로 쏟아지는 압력의 크기를 가름한 결과 공중화장실에서 해결해야 된다는 메시지가 뇌하수체를 거쳐 좌측 뇌에 전달되었다. 삐리리 ~ 당신의 괄약근이 똥의 압력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15분.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23분. 결론 : 공중 화장실로 가라 ! 나는 교보빌딩으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다. 문을 열자마자 옷을 벗기 시작했다. 문제는 겨울이라는 데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화장실 안에 걸린 옷걸이는 달랑 하나.
부피가 큰 외투를 걸면 끝. 생각 끝에 바지를 옆 칸막이(공중화장실 칸막이는 대부분 위가 뚫려 있다) 위에 걸쳐 두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벌거숭이가 된 나는 변기 위에 앉아 괄약근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후두두두두두두..... 툭 ! 불길한 예감. 천장을 보니 칸막이 위에 걸어두었던 바지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솜씨 좋은 소매치기의 짓이리라 ? 후후. 소매치기의 짓일 리 없다. 남이 입던 바지를 훔치는 소매치기는 본 적이 없으니까. 칸막이 위에 걸쳐 두었던 바지가 무게 균형을 잃고 옆 칸으로 떨어진 것이다. 후두두두둑은 바지주머니에서 빠진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였고, 툭은 바지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질 때보다 천 배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장고에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 똑, 똑, 똑 ! " 여보떼여 ? " 화장실 칸막이를 사장실 문처럼 조심스럽게 두들겼다. 응답하라, 옆 칸에서 똥 싸는 이여 ! 응답하시라 ~ 하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옆 칸막이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리스 비극에 대한 정의를 10자평으로 요약하자면 " 엎친 데 덮친 격 " 인데 내 꼴이 그러했다. 이런 쉬이이이이이발 !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화장실에서 나는 울고 싶었고 고독했다. 일단 용무를 마치고 옷을 입었다.
바지만 빼고. 영락없이 바바리맨이라. ① 아무도 없을 때 화장실 문을 잽사게 열고 옆 칸으로 옮겨 재빨리 잠근 후, ② 그곳에서 바지를 입는다. ③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문을 열고 화장실을 빠져나온다. 끗. 나는 일단 화장실 문에 귀를 기울인 후 사람이 있나 없나를 확인했다. 조용했다. 이때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다행히도 내 예상은 적중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잽싸게 나와서 바지가 떨어진 칸의 문을 힘껏 열었다. ???????!!!!! 그런데 열리지가 않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화장실 비품을 두기 위해 건물 사용자가 평소 잠금 장치를 해둔 것이 아니겠는가 ㅡ
라고 해야 재미있겠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잽싸게 문을 열고 들어가 바지를 입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다짐했다. 첫째, 벗은 바지는 절대 칸막이 위에 걸쳐 두지 않는다. 둘째, 화장실 옷걸이에 걸어야 할 옷의 우선 순위는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바지가 우선한다. 바지가 안전해야 가족이 화목하고 나아가 나라가 산다. 화장실에서의 기행은 세월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제는 옷 입고 똥을 싸는 경지에 이르렀다. 스스로 대변스럽게 생각한다. 오타다.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바지는 내리고 싼다. 여기까지가 더러운 이야기의 전부'다.
이제부터는 이 글을 쓰는 목적에 해당된다. 80년대 슬래셔 무비를 20자 내외로 정의를 내리자면 다음과 같다. " 집 밖에서는 함부로 바지를 내리지 마라. " 80년대 슬래셔 무비가 주는 교훈은 집 밖에 함부로 바지를 내리다가는 괴물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다. 브래지어를 풀지 않는 여자와 바지를 내리지 않는 남자가 최후의 생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교훈은 비단 슬래셔 무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이여, 밖에서는 함부로 바지를 내리지 마라. 좆되는 수가 있다. 나처럼, 박유천처럼 혹은 슬래셔 무비 속 남자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