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집에 :
housekeeper

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총선 결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김종인 지지자는 김종인 때문에 야권이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하고, 문재인 지지자는 문재인 때문에 야권이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하며, 안철수 지지자는 안철수 때문에 야권이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한다.
놀라운 < 점 > 은 박근혜 지지자도 박근혜 때문에 야권이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이건 뭥미?!). 정치 평론가'도 20대 총선 결과의 원인'을 놓고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이요, 가지각색(ㅡ各色)이다. 내가 이 현상을 재미있게 생각하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집요하게 << 결과의 원인 >> 을 찾으려고 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태도는 과학적 사고'가 낳은 병폐이다. 과학은 " 결과의 원인 " 을 증명하는 학문이니까. 쫌, 무식하게 말하자면 과학이란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학문이라는 말이다. 과학적으로 ?! 여기서 핑계는 원인이고, 무덤은 결과'다. 그런데 정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것일까 ? 더민주'가 호남에서 참패한 원인(이유)은 반문(반 문재인) 정서 때문이다,
라는 명쾌한 분석을 내놓으면 좋겠지만 물리학이 아닌 사회학에서는 여러 요소가 우연히 결합하여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제임스 딘을 보라, 십대의 반항이 모두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니 승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역사를 해석할 뿐이다. 수전 손택이 해석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던 데에는 문화 권력이 해석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 역사 >> 가 의미 없는 우연과 의미 없는 우연과 의미 없는 우연이 겹쳐, 혹은 수많은 의미 없는 우연에 우연찮게 의미 있는 사실이 하나 끼어들어 만들어진 결과'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수학 공식처럼 명쾌한 결론(원인 + 결과)을 의심하는 편이다. 그래서 선인과 악인이 분명한 드라마를 보면 흥미를 잃는다.
내 관심을 끄는 서사나 캐릭터는 < 모호함 > 이다. 등장인물이 뭔가, 좀, 그러니까..... " 야리꾸리 " 할 때 매력을 느낀다. 뭐여, 거시기.... 그러니께, 저거슨.... 저 몸짓은 나를 유혹하는겨, 경멸하는겨 ? " 알다가도 모를 때 호기심이 발동한다. 수잔 손택은 아르토에 대해서 " 어떤 작가들은 읽히지 않기 때문에, 본래 읽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학적, 지적 고전이 된다. (수전 손택, 우울한 열정, 이후 2009. 237쪽) " 라고 지적했다. 해석의 모호함이 예술적 아우라를 선물하는 경우다. 독자(혹은 관객)인 우리는 항상 조이스에 대하여, 카프카에 대하여, 로브그리예에 대하여, 타르코프스키를 이야기하며 텍스트가 난해하다고 불평을 쏟아내지만, 바로 그 선명하지 않은 난해성(難解性)이 고전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샘 페킨파 감독이 1971년에 만든 영화 << 어둠의 표적, straw dogs >> 은 걸작'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 야리꾸리 " 하다. 뭐여, 저거슨.
조용한 성격의 수학자 데이비드(David Sumner: 더스틴 호프만 분)는 관능적인 여인 에이미(Amy Sumner: 수잔 죠지 분)와 결혼하여 도시의 폭력을 피해 그녀의 고향인 작은 마을로 이사간다. 하지만 곧 그들은 그곳이 더 폭력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차고를 짓기 위해 네 명의 주민을 고용하면서 그들의 삶은 아주 불쾌하기 그지없게 된다. 그들의 고양이가 매달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기도 하고 유약한 데이비드에게 쏟아지는 마을 주민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때 에이미의 옛 애인이었던 헤네이의 등장으로 두 사람의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데이비드는 그들과 맞설 것을 결심하고 차고도 혼자 힘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들의 사냥 여행에 같이 가자는 제의를 뿌리치지 못한다. 화가 난 에이미를 남겨 놓고 여행을 떠났지만 데이비드는 곧 사냥터에 혼자 남게 된 것을 알게 된다. 헤네이와 그의 동료들은 돌아와 에이미를 강간한다. 얼마 후 혼자 버려진 것에 화를 내며 데이비드가 돌아오지만 에이미는 강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ㅡ 어둠의 표적 줄거리, 네이버 제공
특히, 에이미의 태도는 그 누구보다도 야리꾸리하다. 이상하게 꼬인 캐릭터'다. 페미니즘 진영으로부터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바 있는 강간 장면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강간과 화간 사이에 에이미를 위치시킨다. 에로 영화'였다면 에이미의 애매모호한 위치 선정'을 에로 영화의 상투적 클리쉐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영화는 복잡하다. 무엇보다도 엘리트 도시 남성과 결혼하여 신분이 상승된 시골 여성이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던 남성들과 갈등을 빚는다는 점에서 이 성적 모호함은 계급 갈등적 요소를 담고 있다.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수학자 데이비드'도 마찬가지'다. < 그 > 는 과학적 사고(이성적이고 합리적인)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영화가 끝나갈수록 야생적 사고(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를 보이는 폭력적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 폭력성 또한 애매모호하다. 방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공격인지, 아니면 혐오를 숨긴 공격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처럼 부부가 쌍으로 야리꾸리하다 보니 이 영화를 명쾌하게 읽어내기란 불가능하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었다. 해골이 담긴 물은 모르고 마실 때가 달콤한 법이다. 영화는 수학 공식처럼 간결한 정석'을 내놓지 못한다. 인간 행동의 본질도 다를 게 없다. 우리 안의 선과 악은 함께 공존한다. 지킬과 하이드가 한몸으로 공존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원제는 straw dogs(지푸라기 개)이다. 노자의 << 도덕경 석의 >> 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 해석하면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추구(芻狗)와 같이 여긴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