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 백화점 :
" 시라노, 와 시라노? " 1)
그 친구를 보면 종종 신은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180cm를 훌쩍 뛰어넘는 키에 넓은 어깨. 콧등은 샤프하고 턱선은 터프하니, 와 ~ 그뿐인가. 숱 많은 머리에 100% 직모'이어라. 순정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캐릭터. 여기까지는 좋다. 완벽하다, 와 ! 여자들은 그 친구 앞에만 서면 볼이 빨갛게 물들곤 했다. 나는야 질투의 화신백화점. 그를 보면 질투에 눈이 멀 듯도 하지만, 나는 질투는커녕 웃으면서 코나 팠다. 질투가 뭐예염, 먹는 거예염 ?! 문제는 그가 입을 열면 발생한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중에 하필이면 아쟁'이어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음이 정확하지도 않으면서 말은 천리마보다 빠르니, 그의 새된 목소리를 오래 듣다 보면 짜증이 난다(더군다나 말주변이 없어서 멘트는 저렴했다. 외모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탓일까 ? 여자 앞에서 똥 마렵다고 고백하며 화장실 가는 남자는 처음 보았다).
우~ 백마 탄 왕자에 달뜬 여성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 기색 > 이 뚜렷할수록 내 얼굴은 < 화색 > 이 돈다. " 그래, 신은 공평하구나. " 그래서 그랬을까 ? 그는 내 목소리를 존경했다. 오타가 아니다. 그 친구는 실제로 내 목소리를 존경했다. 그럴수록 나는 입으로 비올라를 연주하고는 했다. 우우우우우웅. 저음이란 이런 것이여 ! 시라노 드베르주라크, 그는 귀족 가문으로 뛰어난 검객이자 언변이 뛰어난 시인으로 문무(文武)를 겸비한 재사(才士)이자 셀럽이었다. 또한 정의로운 남자여서 불의를 보면 주저없이 칼을 뽑고는 했으니 상남자 중에서도 상남자'라 할 만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지독히도 못생긴 코를 선물했으니 얼굴 한가운데 박힌 것은 아아, 주먹코이자 들창코'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코주부 선생을 비웃었다. " 선생, 나한테 그런 코가 있었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당장 잘라 버렸을 거요, 라거나 어이, 친구, 그 갈고리 요즘 유행이요 ? 모자 걸어두기에는 안성맞춤이겠는걸, 이라거나 거기서 코피가 흐르면 홍해를 이루겠군, 이라거나 향수 가게에는 멋진 간판이 되겠구료, 라고 놀렸다. 듣기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듣기 싫은데 하물며 ! 반대로 신(神)은 시라노의 동료인 크리스티앙에게는 잘생긴 얼굴을 주었지만 변변치 못한 말주변을 선물했다. 한쪽은 비주얼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다른 한쪽은 오디오 컴플렉스 때문에 의기소침한 것이다. 속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라노에게는 크리스티앙의 멋진 코가 부럽고, 크리스티앙에게는 시라노의 입이 부럽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록산느'라는 여성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둘 다 자신이 없다. 결국 시라노는 친구(크리스티앙)를 위해 연애편지를 대신 쓰고 어둠 속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세레나데를 부르기도 한다. 영화 << 사랑은 비를 타고 >> 에서 형편 없는 목소리를 가진 무성 영화 스타'를 대신해서 무대 뒤에서 목소리 연기를 하는 무명 배우 캐시처럼 말이다. 영화 << 시라노 연애 조작단 >> 은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처럼 2% 부족해서 연애에 쑥맥인 의뢰인을 위해 맞춤형 설계를 하는 에이전시가 주요 무대'이다. 의뢰인은 타킷녀 앞에서 시라노 연애 조작단이 짜놓은 각본대로 연기를 하면 된다. 성공률은 100%다. 영화는 각본대로 짜인 연출만 가지고는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교훈(가식적인 연기를 버리고 진심을 보여야 성공하리라)을 주지만,
사람과 사람 간 연극성 상호 소통 의례 행위를 오랫동안 연구한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동의하지 않을 듯싶다. < 진심 > 은 보여야 하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즉, 진심의 본질은 전시성(展示性) 에 있다. 영화 << 시라노 연애 조작단 >> 은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빙 고프먼의 상호 소통 의례를 다루지만 결말은 생뚱맞다. 연애 행위에서 수컷이 본심을 드러내면 늑대가 된다. 연애에서 본심은 숨기고 허위와 허례를 연기할수록 낭만적이다. 어빙 고프먼'은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연기하는가에 촛점을 맞춘다. 그가 보기에 < ~ 척하기 > 는 가식'이 아니라 본질인 것이다. 현대 사회는 정교한 연극 무대요, 우리 모두는 훌륭한 연기자인 셈이다. 우리는 본심은 감추고 무대 위에 오른다.
다시 말해서, 영화 << 시라노 연애 조작단 >> 은 " 로오맨틱 " 을 가장한 " 리얼리틱 " 한 내용인 것이다. 리얼리틱 성공적 ?! 돌이켜보면 : 나 또한 잘 짜인 각본대로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연기를 하고는 했다. 우연한 만남을 가장했지만 사실은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기회였으며, 남산 오르는 길을 모른다는 그녀를 위해 동행을 자처했던 내가 그녀에게 가르쳐준 지름길이 사실은 가장 먼 길이었다는 사실도 내가 짜놓은 각본이었다. 10분이면 오를 길을 30분 넘게 에둘러 걸었다. 어쩌면 남산 오르는 지름길'을 모른다는 그녀의 말도 연출인지도 모른다. 나는 진심을 보여야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영화의 순수한 결말을 그닥 믿지 않는 편이다. 물론 진심을 드러낼 때 사랑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인 결과가 더 좋은 결실을 맺기도 한다는 사실을 경험한 속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이 그닥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 시라노 연애 조작단 >> 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이 책도 함께 추천한다 ■
1 ) 시라노를 왜 싫어하노
2 ) 진심은 보여야 하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즉, 진심의 본질은 전시(展示 ) 에 있다. 영화 << 시라노 연애 조작단 >> 은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빙 고프먼의 상호 소통 의례를 다루지만 결말은 생뚱맞다. 연애 행위에서 수컷이 본심을 드러내면 늑대가 된다. 연애에서 본심은 숨길수록 낭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