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론 : 하니는 나애리 때문에 달린다
엄마 생각만 하면 힘이 솟는다는 하니의 고백을 나는 믿지 않는다. 하니를 달리게 만드는 힘은 엄마가 아니라 나애리'다.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선명할수록 목표는 뚜렷해지는 법이니까. " 나애리, 이 나쁜 계집애 ! " 이 대사는 영화 << 성난황소 >> 에서 왕년에 권투 챔피언'이었으나 나중에는 싸구려 술집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전락한 로버트 드니로가 거울을 보며 자기 암시를 하는 것과 동일하다. " 나는 챔피언이야, 나는 챔피언이야, 나는 챔피언이야,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 < 신체 > 가 초라할수록 자기 최면'은 강박성을 띤다. 당당한 목소리에는 초라한 자기 연민'이 엿보인다.
< 나애리 이 나쁜 계집애 > 이라는 대사는 승리를 위한 하니의 승리 구호이자, 자기 최면이자, 반복되는 루틴(의례)이다. 하니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결국에는 참치가 되어버린 착한 언니의 운명을 교훈삼아 " 걸 크러쉬 " 한 캐릭터로 자신을 포장한다. 쿨하게 때론 시크하게. 또 어느 때는 만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선화 연기도 보여준다. 나는 바보처럼 참치가 되지는 않겠어 ! 이 지점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하니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육상 선수가 아니라 나애리와 싸워서 이긴 운동 선수라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운동선수는 하나같이 " 자신과의 싸움 " 을 강조한다. 제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바로 제 자신이었습니다 ! 이런 고백은 신물이 나도록 들은 소리'라 이제는 감동적이지도 않다.
김성근 한화 프로야구 감독이 늘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극기다. < 극기 > 란 이길 극(克)에 자기 기(己)'이니 나를 이기는 방식. 그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게, 게게게게으른, 잠자는 사자에게 해삩은 비치지 않아 !!! " 그래서 그는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낮에도 펑고, 밤에도 펑고, 펑고가 최고야 ! 그 유명한 지옥 훈련'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 숨차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하면 숨차서 죽을 것 같은 사람은 숨차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되받아친다. 아. 이런, 극기. 한화 선수들은 김성근 식 조련법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다. 2016년, 마리화나'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펑고의 매운 맛을 보여주마, 기대하시라 ! 개봉박두. 두둥 ~
성적은 2승 9패, 꼴찌'다. 어제 경기(두산VS한화 2016.04.14)는 김성근 식 채찍질이 야만적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경기였다. 그는 덕장도 아니요, 명장도 아니요, 야신도 아니었다. 고집불통 늙은 꼰대'일 뿐이었다. 그가 선수들에게 주입하고자 했던 것은 극기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복종'이었다. 말 안 듣는 놈은 내치거나(3할 6푼의 김경언은 타격 폼 교정이라는 이유로 2군으로 강등되고), 투수에게는 벌투로 응징한다. 불펜 투수 송창식은 1회부터 몸을 푼다. 불펜 투수라면 경기당 15개 공을 던지고 물러나야 하지만 그가 이날 경기에서 던진 공은 90개에 육박했다. 만루홈런 포함 4개의 홈런을 맞을 동안 김성근은 투수 교체를 지시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야구 중계진'이 송창식의 육체적 한계보다 정신적 충격을 걱정할 정도였으니 이보다 잔인한 경기는 없었다.
김성근은 야구를 감독한 게 아니라 약자를 상대로 갑질을 보여준 것이다. 권력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망신을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채찍질은 없다. 그는 5회'가 끝나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덕아웃을 빠져나갔다. 누가 봐도 보이콧'이다. 수많은 경기를 지켜봤지만, 감독이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덕아웃을 이탈한 사례는 본 적이 없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공교롭게도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다. 세월호 선장이 배를 지키지 않고 떠난 것처럼, 캡틴 김성근은 두들겨맞는 자식들을 내버려둔 채 배를 버리고 빠져나갔다. 한때 야신이라 불렸던 인간의 낯짝'이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극기는 자신을 소모하는 방식'이다. 쑥도 아니면서 들쑥날쑥한 등판(송창식은 전날에도 15구를 던졌고, 며칠 전에는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스케줄'에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없다. 좋은 선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선수가 아니라 좋은 시스템과 관리가 만들어낸다 ■
덧대기
+ 여왕과 제왕 : 감독이 혼자서 야구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났다. << 머니볼 >> 의 빌리 빈 단장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빌리 빈 이후, 감독은 경기'에만 집중하고 전체 살림은 프런트의 몫이 되었다. 전자가 바깥양반이라면 후자는 안방마님인 셈이다. 이처럼 현대 야구는 감독과 프런트가 서로 협업을 권장하는 쪽으로 변했다. 쉽게 말해서 각자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이다. 2011년, 김성근 감독이 sk를 우승으로 이끈 후 경질되었을 때 토사구팽이란 여론이 형성되었지만, 집구석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쌓이고 쌓인, 감독과 구단 프런트의 갈등이 화근이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니까 김성근은 한국 시리즈 우승의 전유물을 혼자 독점하려고 전횡을 일삼았다는 것.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영역까지 선을 넘어서는 오지랖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모든 것은 내가 통제하겠소. 이 독재 선언 때문에 sk 구단이 한국 시리즈 우승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감독을 경질한 배경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이 사실을 외면했다. 오히려 상업적 가치로써 김성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 야신 > 이라는 이름은 성과주의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열망하는 대중 욕망과 그것을 이용하려는 언론이 만들어낸 피의 월계관이었다. 야신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상대 팀에 대해 무자비했다. 사인 훔치기와 빈볼 시비는 다반사였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 선수에게도 가혹(빈볼 지시)했지만, 자기 선수에게도 가혹했다.
펑고는 사랑의 매를 가장한 망신 주기'였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김성근 식 야구가 한국 정치를 닮았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김성근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박근혜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닮았다. 김성근이 언론을 장악하며 프런트의 영역까지 이래라저래라 통제했다면, 박근혜 또한 콘크리트 지지율을 바탕으로 입법 기관을 불신하며 국회를 자기손 안에서 다루기를 원했다. 특히 자기 새끼인 김정준의 월권은 김성근이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스포츠보다는 정치에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가 언론플레이로 " 유다 만수(이만수) " 를 바보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박근혜가 유승민을 내치는 과정과 닮았다. 제왕과 여왕의 정치는 모두 구시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