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참고 또 참고합시다
때는 바야흐로 지난 대선. 이명박의 패악질이 유난히도 길었던 시대여서 절망도 깊었던 세월이라 한숨도 깊었으니 시민들은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한 마리 " 참치 " 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참치 인간'입니다. (무를, 아니) 물을 주세요 ~ 그만큼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대선 선거 당일, 투표율이 예상보다 10% 높았다는 점은 야권 지지자'에게는 희망이었다. 8부 능선'을 지나 이제 곧 고지가 점령될 것 같았다. 적기(赤旗) 내리고 청기(靑旗) 올려 ! 여기저기서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 친구야, 술 한 잔 하자. " 친구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 그 > 는 야권 대선 후보의 당선'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약속은 5시였으나 친구가 지각을 하는 바람에 5시 30분으로 늦어졌다. 우리는 모 술집에서 만났다. 느긋이 앉아 개표 현황을 지켜보리라.
술잔이 한두 잔 오가며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갈 무렵에 대선 선거 개표 방송'이 시작됐다. 카운트다운. 5, 4, 3, 2, 1. 두둥. " 박근혜 52% 당선 예측 " 티븨 화면에는 박근혜 우세'라는 자막이 큼지막하게 박혔다. 친구와 나는...... 말이 없었다. 서로 아무 말도 없이 10분이 흘렀다. 5년을 참치로 살았는데, 앞으로 5년은 다랑어로 살아야 할 < 날 > 을 생각하자 눈물이 났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긴 왜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치'가 되어야 했던 5년에 이어 다시 5년을 버텨야 하는 심정. 선거 개표 방송이 시작되고 20분이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고기 한 점 먹지 않은 채 자리에 일어나서 각자 집으로 향했다. 울적한 마음 달랠 길이 없어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일부러 << 들장미 소녀 캔디 >> 주제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 참고 참고 또 참치 / 울긴 왜 울어 / 웃으면서 달려라 /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 이 세상 끝까지...... 나애리 이 나쁜 계집애 ~ 이상한 일이다. 왜, 캔디 노래를 부르면 끝은 항상 달려라 하니로 끝나니 ? 이명박과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을 선보였다. 패악질이 도를 넘어 미미솔솔 레파미파솔라'를 찍었다. 총선 전야, 문득 지난 대선 당일이 생각났다. 이번 20대 총선도 희망은 없어 보인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시냇물 전체를 흙탕물로 만들어 버리듯이, 안철수가 총선 전체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갔다. 안철수 입장에서는 보면 야권이 망할수록 (자신의) 대권이 선명해지는 구도. 야권의 한 축인 그가 들고 나온 프레임은 놀랍게도 " 야권 심판론 " 이었다. 가망 없는 싸움이 되었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지.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참고 또 참고합시다. 권력은 국민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투표하는 국민에게 나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