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의 중간, 어디쯤
영화 << 마더 >> 에서 무면허 침술을 놓는 엄마( 도준의 母, 김혜자 扮)는 " 허벅지의 중간, 어디쯤...... " 에 침을 놓는다. 그녀 말에 의하면 그곳은 막힌 혈( 맺힌 울화)을 뚫어주는 맥이자 망각을 유도하는 혈'이다. 이 혈은 대중에게도 익숙한 통점이다. 우스개'로 과부들이 성욕을 참기 위해 바늘을 찔렀다는 곳이 바로 그곳이니 말이다. 웃음을 참아야 하는데 참지 못할 경우도 이 부위를 꼬집게 된다. 다시 말해서 < 허벅지의 중간 어디쯤 > 은 쾌락 욕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드라큘라가 여성의 몸에 송곳니를 박는 곳이 목(neck)인데, 이 단어에는 " 자궁 "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에 드라큘라의 흡혈 행위는 곧 성행위와 연결되듯이 김혜자가 침을 놓는 허벅다리 안쪽도 성행위에 대한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영화 속 에피소드 : 김혜자는 불임으로 고통받는 사진관 여자 미선(전미선 扮)에게 주기적으로 허벅지에 침을 놓는다. 그곳은 불임을 가임으로 만들 수 있는 맥이다. 그러므로 허벅다리 안쪽 침 시술은 성과 관련이 있다. 또한 << 살인의 추억 >> 에서 가정 방문을 통해 불법으로 주사를 놓는 의료 행위를 했던 전미선은 불법으로 침을 놓는 김혜자와 겹친다. 둘은 모두 불법 야매 의료 시술자'다. 영화 << 살인의 추억 >> 이 어린 여성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수컷에 대한 이야기라면 << 마더 >> 는 아들을 지키기 위한 히스테리 한 암컷의 원초적 본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곳은 바지가랑이를 걷어올린다고 드러나는 부위가 아니다. 허리띠를 풀고 바지 지퍼를 열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신체 부위인 것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린다. 김혜자는 남자의 허벅다리 안쪽, 은밀한 곳에 침을 박는다. 이 사실은 김혜자가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것은 일종의 " 출장 서비스 " 인 셈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사실을 모호한 형태로 암시한다. 도준의 친구로 등장하는 진태가 상의를 탈의한 채로 김혜자에게 말한다. "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 그리고는 김혜자에게 위자료 명목으로 < 돈 > 을 요구한다. 허문영은 << 마더, 불안과 히스테리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라는 글에서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진태는 잘 다듬어진 상체를 내밀며 놀랍게도 친구의 엄마에게 "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라고 쏘아붙인 뒤, " 위자료 조로 오백만 해줘 " 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 말들은 창녀와 기둥서방의 말처럼 들린다. 아마도 엄마는 한때 진태(진구 扮)와 성교했고, 그 대가로 용돈을 주었을 것이다.
-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164쪽
이러한 성적 모호함은 그녀가 형사들과 맺는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김혜자는 형사에게 나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협박조로 말한다. 순간, 둘 사이에 성적 긴장감이 감돈다. 또한 김혜자와 도준의 근친상간은 이미 수많은 평자들이 지적한 사항이기도 하다. 그녀는 " 퍼블릭 우먼(창녀) " 인 셈이다. 이 여성 캐릭터는 희생하는 모성 신화에서 벗어나 있다. 이 영화를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희생으로 읽는다는 것은 완벽한 오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도준에게 살해된 아정'이라는 여학생은 김혜자의 거울이자 도플갱어'다. < 쌀 > 을 얻기 위해 몸을 판 아정'이라는 인물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쌀과 몸의 거래라는 아주 오래된 물물 거래 방식'이다. 몸을 팔아서 쌀을 얻는 방식은 전자 상거래가 활발한 현대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교환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구세대의 교환 방식인 것이다. 그녀는 " 스크루지 노파 " 가 되어 과거 속 자신(아정)을 바라본다. 그녀가 감추고자 하는 것은 아들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다.
김혜자는 맺힌 울화를 푼다고 허벅지에 침을 놓지만, 사실 그곳은 일시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통점'이다. 오르가슴이 일시적인 죽음이자 정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허벅다리 안쪽에 침을 박는다는 것은 일시적인 기억의 죽음, 마비 혹은 정지'인 것이다. 김혜자의 침술은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최면술사'가 오대수에게 속삭이는 최면 기능과 닮았다. 그것은 기억 마비'인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 관광버스 안에서 김혜자는 치마를 걷어올려 허벅지 중간에 침을 놓는다. 일시적 망각은 잠시 고통을 잊게 만든다. 동시에 그 행위는 성욕의 일시적 보류라는 점에서 찰나적 거세 행위이기도 하다. 그녀는 황혼이 지는 풍경 속에서 몸을 흔든다. 잠시의 망각이 만든 평화'다. 영화 << 마더 >> 가 아들을 죽음(교도소)에서 구조한, 성적으로 문란한 모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 밀양 >> 은 아들을 죽음에서 구하지 못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차이'에서 각자 출발하지만 본질적으로 궤적은 동일하다. 김혜자가 과거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 침술 > 을 사용한다면 << 밀양 >> 에서의 전도연은 종교에 심취한다. 그녀의 종교 생활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 밖의 세계를 향한 동경'이라는 점에서 허벅다리 안쪽에 놓는 침'이요, 통증을 잊게 만드는 모르핀'이다. 두 여자 모두 불안과 히스테리에 빠진 여자'다. 두 영화 모두 모성 신화의 싸구려 신파에 빠지지 않고 여성성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인 영화'다. << 밀양 >> 은 전도연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머리카락이 성적 오브제라는 점에서 단발(斷髮) 행위는 쾌락의 일시적 보류이자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거세 행위는 그닥 희망적이지 않다. 불안과 히스테리로 클로즈업된 얼굴은 균열을 예고한다. 이 거세는 도마뱀의 꼬리'를 닮았다. 잘린 부위는 다시 자란다. 그녀들의 악몽도 마찬가지'다.
- 긴 머리카락은 성적 대상이다. 풀어헤친 머리는 창녀를 의미했다. 그래서 서구 중세 사회에서 여성은 외출을 할 때 머리를 묶거나 캡을 썼다. 자세한 내용은 http://myperu.blog.me/20113231534 ( 모나리자는 왜 머리치장을 하지 않았을까 )
- " 허벅지의 중간 어디쯤 " 이란 표현은 허문영의 << 밀양, 한 고전주의자의 안간힘 >> 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