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는 낮은 쪽을 향하고 분노는 위쪽을 향한다

 


 

 

1. 어떤 논리

그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둘째, 네째 일요일 강제 휴무) 정책'에 대하여 분통을 떠트렸다. 전통 시장과 동네 골목 상권을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이 영 못마땅하다는 논리다. 주말에 가족들이랑 이마트 갔는데 ~ , 이마트에서 허니버터칩 사려고 했는데 ~  , 인증샷 올려서 친구에게 자랑하려 했는데 ~  문을 닫았네 ??!  알고 보니 의무 휴업일이네 ? 소비자를 우롱차로 아나 ?  요약하자면 정부의 시장 개입'이 주말에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것. 탁상 행정이라며 노발대발,  이이이이런 시발 ~  그러더니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더럽고 불친절한 시장 불매 선언 ! "  논리가 하도 시발스러워서 웃었다. 한강에서 뺨 맞고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하는 꼴. 백 번 양보해서 대형마트 규제 정책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치자. 그래서 이 정책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하자. 병신이 아니라면 자신이 화를 내야 할 대상은 정책 입안자'에게 향해야 하는 것이 정상.  " 야. 이 개새끼들아 !    책상에서 머리 굴리니깐 이런 정책이 나온 거 아님 ? "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그는 이 정책을 추진한 입법부와 행정부에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엉뚱하게 모든 잘못을 < 시장과 골목 상권 자영업자 > 에게 돌린다. 결론은 시장과 골목 상권 자영업자 때문에 대형마트 강제 의무 휴무 정책이 실행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리적 삐약삐약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불똥은 엉뚱한 곳에 튀는 법. 혐오 범죄'가 약자에게 총을 겨누는 과정의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좋은 예가 실업률이 높을수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 범죄율도 덩달아서 높아지는 현상이다. 실업률과 이주노동자의 유입은 서로 연관이 없다. 실업률이 높다면 일자리'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인천 공단 같은 3D업종 사업체에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그래서 이 결손을 이주노동자로 채운다.  즉,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얻어서 한국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가 일자리를 기피했기에 이주노동자가 결원을 채웠으니, 실업의 원인이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업률은 정부의 노동 정책 실패 때문에 발생한다.




2. 박근혜와 위안부

작명의 달인인 박근혜 정부는 " 최종적 및 불가역적 " 이라는 인상 깊은 구절로 이번 협상안을 정리했다. " 최종적 및 불가역적 " 이라는 표현을 달리 말하면 " 딴말하기 없귀 ~ " 다. 이 문장을 일본이 주도적으로 넣었다면 합의금 넉넉하게 줬으니 두 번 다시 징징거리지 말라는 요구다. 마치 합의금 문제로 자신(일본)을 꽤나 괴롭혔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옛다, 이 시부랄 놈들아 ! 돈 넉넉하게 줬으니 먹고 떨어져라, 이런 뉘앙스'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항변하지만, 이미 그런 반응이 일본에서 전해져 온다. 위안부 소녀상 철거하기 전에는 절대로 돈 주지 마라, 는 일본 보수 신문의 논설 논조를 봐도 그렇다. 최종적 및 불가역적 타결이 낳은 결과다. 한국인은 졸지에 보상금 바라고 병실에 누운 나이롱 환자'가 되었다. 일본 외교부는 사과와 거래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위안부 철거를 조건으로 한 립서비스는 사과가 아니라 협상이다. 가해자가 사과를 빌미로 피해자에게 요구 조건을 내건다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 외교부는 결국 앵벌이 외교를 한 것이다. 국격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라의 품격이 바닥을 향해 추락하면 이쯤에서 우리는 박근혜의 자격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  다시 신자유주의자의 논리'로 돌아와서 : 그는 이번 위안부 협상 타결에 화가 났을 것이다. 굴욕적인 외교 정책이 못마땅할 것이다. 화가 난다, 화가 나. " 철밥통의 한계야, 한계 ! "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위안부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굴욕은 없겠지. 이게 다 위안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여. 이것이 바로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지탱하는 환원론이다. 벌써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이 보상금에 욕심을 부린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세월호 유가족을 과도한 보상금을 요구하는 뻔뻔한 부모로 연결시키려는 수작과 유사하다. 일본 정부가 잃은 것은 10억 엔이고 한국 정부가 잃은 것은 국격이 아닐까 ?   혐오는 상부를 향하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한다. 혐오와 분노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혐오는 대부분 낮은(혹은 소수) 계급을 향한다. 반면 분노는 상부를 향한다. 예수는 증오(혐오)를 가르치지 않았다. 분노를 가르쳤을 뿐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퐁당살롱 2015-12-3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섭고 단단한 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혐오가 올 한 해의 키워드였을만큼 사람들은 반대의 상황에 선 다른 이를 비웃고 경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분노와 혐오의 대상 또한 모호해지고, 성난 군중은 그 대상을 똑바로 보지 못 한 채 사실상 언론과 여론에 끌려다녔구요.
결국 어떤 것도 정의내린 것도 없이, 정의롭지 못 하게, 한 해가 끝나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01 09:48   좋아요 0 | URL
무섭게 욕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우파 좌파 안 가리고 사람 사귀는 쪽인데
저런 무논리를 펼치는 사람 보면... 말해도 안 통하고... 답답합니다.

아니 왜 잘못된 일의 주체에 대항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약한 자를 물어뜯으려고 할까요...

stella.K 2015-12-31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드라마 송곳이 너무 일찍 종영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드라마로라도 할 말을 했어야 했던 건데 뭐 그런...ㅋ

쌍용자동차 문제가 어쨌든 해결되서 다행이긴 한데
왜 이 문제가 우리 자체로 해결하지 못하고 인도인 대주주가 나서서야 비로소 해결이 됐을까?
의구심과 아쉬움이 크고, 복직이 됐으니 내년에 신규 사원은 얼마 안 뽑겠지? 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위안부 문제는 너무 오래 끌어 온 것도 사실인데 어느 날 갑자기 맥없이 해결된 것 같아서 오히려 의아스럽더군요.
우리의 근혜 누님은 매번 문제 밑에 깔려 있는 진상을 잘 모르는가 봐요.
그런 사람이 있긴 하더군요. 자신이 보려고 하는 것만 보려고 하고 자기식의 판단과 해석을 하고.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답답하긴 하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1-01 09:49   좋아요 0 | URL
확실히 송곳은 막 이제 시작이다 할 때 끝난 느낌이 납니다. 이거 시리즈로 가나요 ? 신즌 1 2 이렇게 말입니다. 후속작이 나올 만도 한다. 송곳 완성된 만화는 아니죠 ?

2016-01-01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1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3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3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3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12-3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전 그것들이 왜 이리 혐오스러울까요? 치가 떨립니다.
그 끔찍한 세월을 살아내신 분들의 한숨소리가 귓밥 두껍게 앉은 뒷궁(?) 늙은이한테 들리질 않으니.
병신년에 그 할매 귓밥 좀 파줍시다. 그래봐야 말귀 못 알아먹을 걸 생각하면 에고...

곰곰생각하는발 2016-01-01 09:50   좋아요 0 | URL
정치가가 정치를 잘한 탓이죠. 나쁜 의미에서...
아주 자기들 유리하게 정치 지형을 만들어놨어요....
앞으로가 더 무서운 것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6-01-01 09:5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이미 쭉 깔아놓은 부정들을 당연하게 만들고 저항도 하지 않는 순한(?) 백성들과 자기네 편인 종편과...
모두 덫에 빠져들었지요.

마립간 2016-01-0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곰곰발 님.

새해 첫 인사네요.

감정은 저에게 영원한 숙제와 같은 것입니다. (저는 감정맹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페이퍼도 저에게는 숙제입니다.
숙제 ; 1) 사람들은 대개 不義에 관해 분노를 할까요, 혐오를 할까? (저는 분노라고 생각하는데,) 정의의 개념은 위를 향한 감정일까?
2) 혐오 중에 일반적으로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나 그 예는? 예를 들어 존나 싫어하는 알라디너 등은 가능한가?

곰곰생각하는발 2016-01-07 14:27   좋아요 0 | URL
마립간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마립간 님에게 숙제를 내줘서 죄송스럽습니다 ~

불의에 대한 것은 분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보기엔 분노는 대의적 명분에 따른 미움이고
제가 보기엔 혐오는 개인적 편향에 따른 미움이 아닌가 싶습니다.